SC지대

 

대한민국 국군 제4863부대(HID) 소속의 부대이다. 200명 정도로 구성됐으며 특징은 부대원이 화교외인부대라는 것이다.
SC란 말 자체는 seoul chinese의 준말로 한국에 체류했던 화교란 뜻이다.
한국전쟁이 한참이던 1951년 1월 반공화교를 중심으로 창설하였다. 장교가 없던 탓에 중화민국군 장교가 파견되어 교육을 맡았다. 본래 장제스는 국민혁명군을 한국전에 참전시키고자 하였으나, 이승만의 반대와 미국의 거부로 무산되었다.[1]
10주간의 양성훈련 후에 장병들은 12명씩 조를 나눠 육군방첩부대에 분산배치되었다. 무장공작대원 70명은 전방에 배치되어 중국군과 북한군 사이에서 한국어와 중국어를 쓰는 식으로 정보 수집 활동을 펼쳤다. 부대 해체 당시 무장공작대원 생존자는 20명 정도였다고.
1953년 9월에 부대가 해체되고 일부가 군에 남아 중공군 포로 설득과 대북 방송 중국어 파트 등과 심리전 등에서 종사했다. 외국인이라 보상금은 받지 못 했으나 이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1971년 부대원 53명이 종군기장을 받았고 75년에 10명이 보국포장을 받았다. 2명이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세계일보의 2014년 6월 25일 기사를 참고했다.제2 조국 지키려다 산화…기록 없이 역사 뒤안길로,“잊혀진 화교참전용사 추모비라도 세워주오”(2014년 6월 24일 기사)
200명이 참전해 40명이 전사했는데 이중 39명이 한국에 매장된 것으로 추측된다.

[1] 맥아더는 중공군의 참전이 확인되자 중화민국군 동원과 중국 만주 폭격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으며, 장제스도 파병에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뒷일은 생각도 않고 무조건 전쟁확대만을 외치는 맥아더의 호전성과 명령불복종에 질린 트루먼 대통령이 맥아더를 전격 해임하면서 국부군 참전은 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