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마신류
1. 개요
'''鹿島神流'''
쇼와 시대 '현세의 무사시(今武蔵)라고 불린 쿠니이 젠야(國井善弥)로 유명한 검술 유파. 일명 가시마류(鹿島流), 신류(神流)라고도 한다.
단, 검술 위주이기는 하나, 유술, 발도술, 나기나타술, 봉술, 장술, 수리검술 등을 포함한다.
스스로 18대 종가라고 한 쿠니이 젠야 이전의 계보가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일반적으로는 쿠니이 젠야가 자신이 배운 무술을 종합하여 창시한 현대 무술로 보는 설이 많다.
2. 일반적인 설명
가시마신궁(鹿島神宮)에서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가시마노타치(鹿島の太刀)'[1] 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가시마신궁에서 모시는 제신인 타케미카즈치(武甕槌大神)가 악신을 진정시킬 때 사용한 기술이 시초라고 하며, 발도술 카타(形) 중 '하라에노타치(祓太刀)'가 그 흔적이라고 한다. 또, 타케미카즈치가 타케미카타나(建御名方神)와 힘겨루기를 할 때 사용한 기술이 유술 '영기지법(霊気之法)'의 시초라고 한다.
유파로서의 개조는 마츠모토 마사노부(松本政信). 센고쿠 시대, 히타치(常陸 / 現 이바라키현) 지방의 호족인 가시마씨(鹿島氏) 가신이던 마사노부는, 사직 후 가시마신궁에 기원하자 검술의 극의를 기록한 '천구서(天狗書)'를 얻었다. 가시마신류 사범가에 대대로 전해지는 천구서는 마사노부의 친필이라고 하여, 사범가의 증명이 되었다. 또, 마사노부는 오의 '히토츠노타치'의 발안자라고 한다. 전술한 기원 당시 쿠니이 겐하치로(國井源八郎)와 교류하고 있어, 겐하치로를 후견인으로 하여 유파를 열었고, 이후 쿠니이가에서 종가를 맡고, 카미이즈미 노부츠나(上泉信綱)를 필두로 마사노부의 제자들이 대대로 사범가를 계승했다. 이후 사범가는 도쿠가와 막부로부터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유파명을 바꿔 신카게류(新陰流)라고 하였다고 한다. 제12대 종가 쿠니이 다이젠(國井大善)이 직심영류(直心影流)의 면허를 받은 시점에 종가와 사범가를 통합해서 18대 쿠니이 젠야까지 이어졌다. 현재 종가는 21대 쿠니이 마사카츠(國井正勝), 사범가는 19대 세키 후미타케(關文威)가 맡고 있다.
방어와 공격을 항상 동시에 행하고, 검을 휘두르지 않고 한동작에 치며, 모든 기술에 우라와자(裏技)가 존재하는 등, 무술의 성질을 나타내는 '오개법정(五ヶ之法定)'이라는 원칙을 기본으로 하여 기술이 성립되었고, 고등기술 역시 그 발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또 유술 등 기타 무술 역시 검술과 거의 같이 행할 수 있다. 그리하여 창술 등은 마니와넨류(馬庭念流)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창술과는 그 손잡는 방법이 반대이다.
3. 전승에 관한 의문점
가시마신류 측의 주장에 따르면,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의 명에 의해 가시마의 전서는 불태워져셔, 가시마신류에 관한 전서는 거의 남아있지않다고 한다. 그 주장의 진위와는 별도로, 입증 가능한 자료가 없어 18대 쿠니이 젠야 이전의 역사에 의문을 갖는 견해가 많다.
- 쿠니이 젠야는 젊은 시절 마니와넨류의 내제자가 되어 마니와넨류를 수행하였으며, 가시마신류 검술의 자세나 기술에는 마니와넨류와 비슷한 것이 많다. 유파의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쿠니이 젠야 스스로 마니와넨류와의 관계를 인정했다는 기술이 있다.
- 쿠니이가에 전해지는 전승에서는, 제 12대 종가 쿠니이 다이젠이 직심영류를 수행하여, 직심영류의 '법정지형(法定之形)'을 기본으로 가시마신류 검술의 '기본타치(基本太刀)'를 만들었다고 되어있다.
- 위의 기본타치에 관한 설을 증명하듯, 쿠니이 젠야 이전에 해당하는 11대까지의 계보가 직심영류와 일치한다. (이에 관해 쿠니이 젠야는 2대 사범 카미이즈미 노부츠나, 4대 사범 오가사와라 나가하루(小笠原長治), 7대 사범 야마다 잇푸사이(山田一風斎) 등이 가시마신류를 수행한 것을 비밀로 하고 신카게류나 직심영류를 창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쿠니이 젠야는 스하라 쿠니야스(栖原邦泰)에게 사사하여 마니와넨류를 수행하였으나, 이때 쿠니야스가 창시한 묘도류 유술(妙道流柔術)도 배웠다. 이 때문에 가시마신류 유술의 기술은 묘도류 유술과 비슷한 것이 많다. (쿠니이 젠야는 묘도류 유술을 배운 것은 맞으나, 이미 마니와넨류 입문 이전에 [[야규신음류|야규신카게류]의 사사키 쇼노신(佐々木正之進)에게 유술을 전수받았다고 주장한다.)
- 가시마신류의 유술에는, 고류 유술에서 많이 보이는 포박술, 단도술 등의 기술이 적은 근대 유술유파의 특징이 보인다. (단, 기술이 많고 적은 것은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므로 단정짓기는 힘든 주장이다.)
- 가시마신류 유술의 기분인 '영기의 법(霊気の法)'은 대동류 합기유술(大東流合気柔術), 아이키도(合気道)의 '합기들기(合気上げ)'와 매우 비슷하며, '합기들기에 대하여 가시마신류에서는 영기의 법이라고 한다'라고 기술된 문헌도 있다.
- 1938년 6월 26일 발행된 주간 아사히의 기사인 '고무도의 진체를 말한다(古武道の真髄を語る'에는 넨류 마스오 토라지로(増尾寅次郎)와 쿠니이 젠야(당시에는 쿠니이 미치유기(国井道之)라고 했음)의 넨류 연무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 잡지 극의(極意)에서 쿠니이가를 인터뷰할 당시, 쿠니이 젠야의 제자가 다케다 소가쿠(武田惣角)[2] , 우에시바 모리헤이(植芝盛平)[3] 도 가시마신류를 배웠다고 주장했으나, 대동류 합기유술, 아이키도에서는 부정했다.
[1] 히토츠노타치(一の太刀)라고도 한다.[2] 대동류 합기유술의 개조. 대동류 측에서는 대동류를 현대에 알린 중흥조로 칭하나, 대동류 자체가 소가쿠가 배운 여러 고류 무술을 통합해 만든 무술이라는 견해가 정설이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3] 아이키도의 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