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마다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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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jah Mada
(? ~ 1364)
지금의 인도네시아에 존재했던 마자파힛 제국의 재상[1] .
2. 상세
자야나가라 황제의 황실 근위대장으로 일하다가 반란이 일어나자 황제를 숨긴 후 의도적으로 황제가 죽었다는 소문을 퍼트렸으며, 이 소문에 수도가 혼란에 빠지자 이 때를 놓치지 않고 가자 마다는 반란을 진압했다. 이에 대한 공으로 장관 비슷한 자리에 올라 큰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황제가 후에 그의 아내를 뺏어간 것에 앙심을 품은 가자 마다는 암살자를 시켜 황제를 암살했다. 이 암살자는 다름아닌 자야나가라의 주치의였는데, 그도 가자 마다처럼 아내를 빼앗겨 앙심을 품고 있던 차였다. 물론 치밀한 가자 마다는 그 암살범도 죽여서 증거를 인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라덴 위자야의 맏딸이자 자야나가라의 이복 누나인 트리부와나[2] 가 제위에 오르자 가자 마다는 황제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가자 마다는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군을 움직여 반란을 진압하고 대재상의 자리에 오른 후 발리까지 정복했다.
황제의 아들이 장성하자 아들인 하얌 우룩에게 제위를 물려주었는데, 어린 하얌 우룩은 가자 마다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하얌 우룩 시대에 마자파힛군은 인도네시아 군도 각지로 원정을 나가 마자파힛의 영토를 크게 넓혔는데, 가자 마다는 제독 음푸 날라(Mpu Nala) 등이 이끄는 해상 원정을 총괄 지휘하였다. 이때가 마자파힛 제국의 전성기였다.
가자 마다는 군사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술수에도 능했고 온갖 정책 결정도 이 사람이 다 했으며, 법률서까지 편찬했다. 이 사람이 원인 미상으로 죽은 후에는 이 사람의 업무를 네 사람이 이어받을 정도였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혹한 정치가였지만 동시에 마자파힛 제국의 부국강병을 혼자서 이룬 유능한 사람이었다는 말씀. 이런 면모 때문인지, 그는 현지에서 일명 '도깨비 재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3. 현재의 평가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식민지배로 국경이 정해진 나라이며, 전통 시대 역사 또한 여러 섬에서 소국들이 난립하는 역사가 대부분이었다. 현대와 주류 종교도 다르고 존속 기간도 짧지만 영토가 제일 넓기 때문에 현대 인도네시아와 영토가 제일 비슷한 마자파힛 제국을 대대적으로 띄워준다.
인도네시아에서 이 사람의 위명은 매우 높아 욕야카르타에 인도네시아 처음으로 세워진 종합대학에 이 사람 이름을 붙일 정도이다. 바로 가자마다 대학교로, 현재도 인도네시아 대학교, 반둥 공과대학교와 함께 인도네시아의 최고 명문으로 유명하다.
4. 등장 매체
문명 5에서 인도네시아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한다.
문명 6에서는 본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본인이 옹립한 트리부와나 여왕이 지도자로 등장[3] 하여 다시 한 번 인도네시아 전성기의 인물임을 드러내었다.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라이즈 오브 라자에서 말레이인 민족 캠페인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도네시아 해군에 동명의 구축함이 존재하였으며, 영국 N급 구축함 HMS 넌파레일이 인도네시아 해군에 인수되어 재명명된 함이다. 월드 오브 워쉽 범아시아 트리의 7티어 정규 구축함으로 등장한다.
[1] 현재 총리의 직책에 해당[2] 트리부와나의 모후는 싱하사리 크르타나가라 왕의 막내딸 가야트리 라자파트니(Gayatri Rajapatni)였고, 자야나가라의 모후는 인드레스와리(Indreswari)였다. 인드레스와리는 다르마스라야 왕국 트리부와나라자(Tribhuwanaraja) 왕의 딸로 수마트라에서 온 말레이인이었으며, 라덴 위자야의 다른 네 황비가 모두 자바인이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가장 이질적인 황비이자, 맞아들인 후 라덴 위자야가 가장 총애한 황비였다. 라덴 위자야의 제1황비 트리부와네스와리(Tribhuwaneswari)는 아이를 낳지 못하여 인드레스와리의 아들 자야나가라를 입양하였고, 이로 인해 제1황비의 아들 자야나가라가 계승권 서열 1위가 된 것으로 보인다. 당대의 사료 중 《나가라크르타가마》에는 자야나가라의 모후가 인드레스와리로 기록되어 있고, 이보다 조금 이른 시기의 크르타라자사 비문(Prasasti Kertarajasa, 1305)에는 자야나가라의 모후가 트리부와네스와리로 기록되어 있다.[3] 서양에 알려진 이름인 기타르자(Dyah Gitarja)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