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표
1. 개요
賈彪
(? ~ 168?)
후한 말의 인물. 자는 위절(偉節).
2. 생애
영천군 정릉현 사람으로 2명의 형제가 있었는데, 형제가 모두 유명했지만 형제 중에서 가표가 제일이라 세상 사람들은 가씨네 세 호랑이 중에서 가표가 가장 용맹했다고 말했다.
젊어서 경사에서 유학했고 지조가 있어 순상과 함께 유명했으며, 처음에는 주군에 출사해 효렴으로 천거되었다가 신식현장이 되었다. 가난한 백성은 어린아이를 제대로 양육하지 않고 죽였는데, 가표는 엄한 법을 시행해 살인과 같은 죄로 다스렸다.
성 남쪽에 도적이 있어서 백성의 재산을 탈취하고 북쪽에서는 부인이 아들을 죽였는데, 가표는 관리를 보내 현장에 가서 증거를 확인하고 남쪽으로 데려오게 했다. 가표는 여인에게 도적이 남을 해치는 것을 그럴 수 있다지만 어미가 자식을 죽이는 것은 하늘의 도에 크게 어긋난다고 꾸짖었으며, 다시 북쪽으로 데려가서 여인을 벌주게 했다.
성 남쪽의 도적들은 이를 듣고서는 목에 밧줄을 두르고 자수했으며, 수 년 내에 백성이 키우는 아이들 수가 수천 명이나 되어 모두가 가 현령이 키운 자식이라면서 아들은 가자, 딸은 가녀라고 불렀다.
166년에 제1차 당고의 금이 일어나 당인들을 가뒀는데, 잠질이 도망오자 많은 벗들은 잠질을 숨겨줬지만 가표는 문을 닫아걸고 받아들이지 않자 사람들이 가표를 원망했다. 그러자 좌전에서도 때를 보아 움직이되 후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말라고 했다면서 잠질은 군주를 강요하다가 사단을 일으켰으니 자신이 만든 허물인데, 내가 그와 함께 힘으로 싸울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자신이 숨겨줘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에 모두가 가표의 공정한 인식에 감복했으며, 조정에서 진번이 환제에게 간언해 논쟁했지만 소용이 없었으며, 조정이 두려워 떨면서도 이를 다시 말하는 사람이 없자 가표는 낙양으로 가서 두무, 곽서를 설득했다. 두무가 당인을 변호하자 환제는 당인들을 사면했고 감옥에 풀려난 이응은 내가 풀려난 것은 가생의 지모라고 말했다.
168년에 제2차 당고의 금이 일어났고 가표는 당인이라면서 금고형에 처해졌다가 집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