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응유전설
1. 개요
"아기가 전 남친을 쏙 빼닮았군요" - 한겨레21 기사
감응유전(telegony)은 암컷과 이전에 교배한 전 수컷의 유전자가 그대로 이어져 유전된다는 가설이다. 당연히 현대 과학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사실 이 이론이 진지하게 제기되기 시작한 19세기에도 멘델의 유전법칙이 발견되면서 논파되었다. 즉, '''유사과학'''이 맞다.
2. 역사
이 가설의 기원은 생각보다 멀리 올라가야 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기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이의 특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순히 임신 당시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특성뿐만 아니라 어머니가 그 이전에 만났던 모든 수컷의 특성에 영향을 받는다고 보았다. 이것과 별개로 여성의 처녀성에 대한 중시는 고대 사회에서 일반적이었으며 혼전순결을 깼을 때의 처벌도 강했다. 당시에는 물론 감응유전이라는 단어나 유전학적 이해가 없었을 테지만, "내 아이의 피에 다른 남자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인식은 흔했다.
케케묵은 가설이었던 감응유전이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던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의학자 오스틴 플린트는 다음과 같이 기록한 바 있다.
그러나 흑인에 대한 차별적인 언급에서 알 수 있듯, 이 또한 사회진화론이나 골상학과 같은 인종차별적 이론으로 급격하게 경도되었다. 19세기 이론가들도 감응유전이 일어난 사례를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19세기는 물론이고 지금까지도 단 한 번도 수컷의 형질이 감응유전으로 인해 유전되었다는 것이 증명된 바 없다.'''특이하지만 이상하게도 이전의 임신이 자손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것은 동물 사육 업자들에게 잘 보고되고 있는데, 만약 순종의 말이 한 때 열등한 수컷에게 임신된다면, 이후의 새끼들은 반드시 첫 번째 수컷의 형질을 나타낸다. 인간에게도 같은 영향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두 번째 남편에 의해 여성은 전 남편을 닮은 아이들을 가질 수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은 특히 머리카락과 눈의 색깔에 의해 잘 관찰되는데, 흑인에 의해 아이를 낳은 백인 여성은 그 후에 백인 남자의 아이를 낳더라도 흑인이 가지는 특징을 발현하는 것 같다.'''[1]
3. 제3의 형질
한편, 아이에게서 알려진 아버지의 유전 형질이 아니라 제3의 형질이 발견된 사례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감응유전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조금 있다. 수컷의 정액은 생각보다 수명이 길고, 교배 주기가 짧을 경우 정액이 오염되어서 (알려진 아버지가 아닌 다른) 수컷의 정자가 수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가축의 순혈성이 깨지는 경우는 이럴 경우가 잦은데, 축사에서는 난교가 일상적이기 때문이다.
2014년 진화생물학자 A.J 크린의 연구팀은 초파리에게 있어서 감응유전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 바가 있긴 하다. 그런데 실제로 논문에서 밝히는 것은 일반적인 유전자 형질의 유전이 감응유전으로 일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교배가 일어나 수컷의 정액이 암컷의 생식기관에 들어갔을 경우, 자손 초파리의 몸 크기가 두 번째 수컷이 아니라 첫 수컷의 조건condition[2] 에 영향을 받았다는 논문이다.
즉, 이전에 교배했던 아버지의 형질을 물려받았다는 얘기와는 다소 다른 셈. 물론 정액을 생식기관에 받지 않은 암컷의 경우에는 두 번째 수컷의 환경조건에 영향을 받았으므로 유전적이지 않은 부분의("non-genetic") 유전이 관찰된 셈이다. 어쨌든, 19세기에 이미 논파된 전통적인 감응유전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