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거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강창거는 1910년 9월 16일 제주시 용담동에서 강제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독립운동가 강창보의 동생으로, 제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25년 4월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입학했다. 1926년 6월 제주공립농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일본인 교사 나기다 히코지(柳田彦二) 한인 학생들을 차별 대우하자 이에 분개하여 동맹휴학을 전개하다가 퇴학당했다. 이후 서울에서 경성사립중앙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하여 재학하던 중 21927년 또다시 동맹휴학 투쟁을 전개하다가 경찰서 유치장에 잠시 구금되기도 했다.
이렇듯 일본인 교사들의 한인 학생들에 대한 부당 대우에 불만이 많았던 그는 사회과학연구에 관심을 가졌고, 1929년 1월 학생운동단체인 조선학생과학연구회(朝鮮學生科學硏究會)에 가입했으며, 뒤이어 고려공산청년회(高麗共産靑年會)에 가입하여 활동을 전개했다. 1929년 7월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 식민지 지배체제를 비판하는 모임을 갖다가 체포되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30년 9월부터 1931년 1월까지 전라남도 목포에서 제주기선상회 사무원으로 근무하였고, 1930년 5월 다시 서울로 상경했다. 1931년 6월 중순경 정관진의 지도 하에 서울 창신동에서 경성세염회사 노동조합의 인계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1931년 7월 상순경에는 3~4회에 걸쳐 서울에 있는 양정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사상과 일제 지배 타도를 역설하는 연설을 했다. 이 일로 1932년 3월 김기범(金基範)·강위황(姜渭璜)과 함께 체포된 그는 그해 9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34년 9월 만기 출옥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오사카시에서 살다가 8.15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하여 서울 동대문구에서 살다가 1947년 2월 23일 좌익 세력의 통일전선단체인 '민주주의 민족전선'에 가담해 제주도지부를 결성했다. 그러나 4.3 사건으로 제주도에서의 활동이 더이상 어려워지자 일본으로 피신했고, 오사카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2004년 11월 1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강창거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2006년 9월 25일 국내로 봉환되어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