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교
1. 개요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신양리 산72에 있었던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의 학사 학력 인정 각종학교였던 신학교.
2. 역사
1979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의 분열로 대한예수교장로회(개혁)이 생겨났다.
1992년에 재단 이사회가 구성되었고 1995년에 개교하였으나, 재단 분규로 인하여 실질적으로는 '''이듬해에 바로 폐교된'''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행정상으로만 존속되어 2008년까지 교원과 학생들이 없는 개점휴업 상태로 장기간 방치되다가 교육부에 의해 부실대학 구조조정 차원에서 아시아대학교와 함께 나란히 폐교되었다. 그래서 같이 폐교된 아시아대학교와는 달리 특별편입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학교가 존속되던 당시 건물은 초등학교를 연상케 하는 규모의 건물 단 한동만이 있었고, 현재는 장기간 방치되면서 교정이 그냥 숲이 되어버렸다.
당시 예장 개혁은 장로회광주신학교(광신대학교)를 산하에 두고 있었으나 광주측의 신학교였고 1987년에 '개혁신학연구원'이라는 신학교를 개교하였나 당시에는 미인가였다. 그래서 학사 인정 각종학교인 개혁신학교를 세운 것이다. 하지만 당시 예장 개혁이 교단의 내분으로 학사행정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별수없이 폐교시킨 것이다.
만약 개혁신학교가 위기를 이겨내고 살아남았다면 음성군의 유일한 신학대학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일담을 보면 알겠지만 예장 개혁의 신학교로 존속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3. 학과
- 신학과
4. 캠퍼스
5. 후일담
개혁신학교에 재적했던 학생들(1학년)과 교직원들은 광신대, 개혁신학연구원으로 편입, 이직되었다.
결국 예장 개혁 광주측이 예장 개혁과 결별하여 광신대학교를 데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과 통합하였고 개혁신학연구원은 개신대학원대학교로 승급하였다. 하지만 형제학교였어도 학교 자체 역사와 큰 관련이 없었기에 개신대학원대학교와 광신대학교는 개혁신학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한편 예장 개혁은 예장 전도, 예장 국제, 예장 합동보수 측과 통합을 거듭하여 보수 계열 군소 교단의 합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다락방 류광수 목사 영입'''[1] 으로 논란이 일어나 영입에 찬성하는 예장 개혁과 영입에 반대하는 예장 합동보수로 분리되었으며 개신대학원대학교도 예장 합동보수를 따라가 예장 개혁과 결별하였다.
구 예장 개혁의 대부분이 예장 합동보수에 합류하였으며 예장 합동 계열 군소 교단 중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교단으로 인식된다.
다락방의 신학적 논란이 완전히 끝나지 않는 이상 신 예장 개혁의 논란이 끝나기 어려워보인다. 결국 류광수 목사는 예장 개혁을 탈퇴했다. 그러나 워낙 파급력이 컸던 사건이었기에 논란이 계속되었다.
한편 예장 개혁, 예장 합동보수는 지금까지도 보수 군소 교단들과 통합을 하고 있다. 2016년에 예장 개혁 방배동측과 예장 국신과 일부 예장 개혁국제 교회가 통합했지만 예장 개혁국제 교단이 예장 개혁과 통합한게 아니다.
예장 개혁은 개혁신학교의 전례도 있고 학령인구 감소로 교육부가 더이상 인가를 내주지 않아서 대학을 세울 수 없다. 그래서 한때 산하로 두었던 개신대학원대학교에 신학생들을 위탁해서 교육시'''켰'''다. 지금은 아예 다락방과 신학교도 일원화시켜서 그냥 다락방 교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개혁대학원대학교'라는 교육기관을 산하에 두고 있다는 주장이 있으나 확인된 바 없다.
6. 기타
- 교육부에게 정식으로 인가받은 '개혁신학교'는 예장 개혁의 개혁신학교가 유일하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다른 개혁신학교는 미인가이기에 교단을 꼼꼼히 확인해라.
[1] 다만 다락방의 이단성 논쟁은 교단에 따라 시각차가 크며 개혁신학교와 별개의 내용이므로 자세히 서술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계에서 문제점으로 지목되었던 부분이 고쳐지지 않아서 이단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