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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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보물 제1615호


1. 개요


慶州 王龍寺院 木造阿彌陀如來坐像. 조선 세조의 명으로 세조 12년(1466) 왕실발원을 받아 조성을 시작하여 성종 5년(1474)에 최종 완성한 조선 초기의 불상. 현재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의 왕룡사원에 소장 중이고, 보물 제1615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왕룡서원에서 550여 년간 전해오는 불상으로, 1466년 세조가 왕실 종친부와 지방관료, 양반과 양민 등 수많은 사람들의 발원을 모아 직접 조성하기 시작하여 성종 5년에 최종 완성한 조선 초기의 왕실발원판 불상이다.
당시 한국의 왕이 직접 명을 내려 국가적으로 제작이 이루어졌고 훗날 왕실 가족들 및 신하들이 왕과 함께 불상을 보러 와 발원까지 한 불상으로, 조선 초기를 대표하는 불상이라 중 할 수 있다. 국보 제 221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과 국보 제228호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의 모습과 표현 양식이 비슷하다.
이 외에도 불상에는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여러 복장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세조년간에 만들어진 환성사미타삼존조성결원문(還城寺彌陁三尊造成結願文), 세조 12년에 불상을 조성하며 만든 아미타불조성기 및 중수기, 1326년에 만들어진 묘법연화경삼매참법 권하(妙法蓮華經三昧懺法 卷下), 1338년 만들어진 금강반야다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 1543년에 만들어진 묘법연화경 권4(妙法蓮華經 卷四) 등이 발견되었다.

3. 바깥고리



4. 보물 제1615호


이 불상은 복장에서 발견된 「환성사미타삼존조성결원문(還城寺彌陁三尊造成結願文)」을 통해 1466년에 조성역사를 시작하여 1474년에 비로소 완성되었으며, 불상의 조성발원에는 왕실종친부 및 지방관료·양반·양민 등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였고, 불상의 제작은 양수(良手) 대선사(大禪師) 성료(性了)와 부양수(副良手) 선사(禪師) 혜정(惠正)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불상은 무릎이 넓고 둔중한 것에 반해, 어깨는 상대적으로 좁고 허리는 길어져 전반적으로 늘씬한 비례를 보여준다. 특히 머리 폭이 좁고 끝이 뾰족한 팽이형의 머리와 고려후기 불상에 비해 양감이 줄어든 수척한 얼굴, 좁게 연 가슴, 왼쪽 어깨 부근의 칼날형태로 접은 주름, 왼쪽으로 치우쳐 표현된 Ω형 주름 등은 1458년에 조성된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국보 제228호)의 양식계를 잇고 있고, 양쪽 무릎 앞에서 표현된 예리한 각을 이루며 활처럼 휘어진 주름과 무릎 위쪽에 형성된 돌출주름 등은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상(국보 제221호) 등 조선전기에 제작된 불상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주름 표현이다.

이 불상은 「조성결원문」을 통해 불상의 제작연대는 물론 조성·봉안장 소, 그리고 조각승을 비롯한 조성주체를 분명히 알 수 있는 조선 초기 불상의 기준자료이며, 특히 이 불상은 전통불상의 토대 하에 조선 초 새롭게 유입된 외래양식을 적절하게 수용하여 만든 불상계통으로 모든 면에서 국보 제228호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비교되는 수준 높은 작품으로 평가되며, 확실한 제작연대를 가진 조선초기의 몇 안 되는 작품 중 하나로 조선초기 조각양식의 성립과 흐름을 이해하는 데 더없이 좋은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