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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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세조 12년(1466)에 왕명으로 제작한 동자상. 상원사에 봉안되었는데 현재 국보 제221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보물 제793호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복장유물의 내용에 의하면 세조의 둘째딸 의숙공주 부부가 왕실의 지원을 받아 세조 12년(1466)에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고 한다.
삼국시대와 고려 때 성행했던 문수신앙은 조선 개국 초에도 이어졌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태조 2년(1393) 3월과 4월, 태조 3년(1394) 2월조에 개경 연복사에서 태조 이성계가 직접 문수법회에 참여했다. 또한 친히 오대산에 사자암(獅子庵)을 중건하다. '사자암'이란 지혜의 문수보살이 동물의 왕인 사자를 타고 다닌다 하여 붙인 이름으로, 오대산이 곧 임금이 인정한 문수보살의 주처임을 뜻했다. 이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문수신앙의 명맥이 이때까지는 이어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태종때부터 폐불정책이 시행되자 자장율사 이래 천여 년간 이어져오던 한반도에서 문수신앙은 큰 충격을 받았다. 태종은 국가의 명으로 승려를 시켜 복을 비는 불사를 모두 폐지하였고 산릉의 곁에 사찰을 세워 명복을 빌게 하는 옛 관습 또한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불교행사가 점차 소멸되고 천여 년 동안 이어져내려오던 수많은 도심 사찰들이 허물어졌다.
그러다 세조가 흥불정책을 펴자 문수신앙 또한 다시 발현하고, 조선 왕실에서도 적극적으로 불상 제작과 사찰 후원을 시작했다. 상원사에 있는 목조문수동자좌상 또한 이시기에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발원하여 조성한 것이다. 조선왕조 5백여 년 동안 왕실 차원에서 조성한, 정말 예외적인 불상이다.
이 불상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세조는 말년에 피부병인 욕창을 앓았는데, 치료차 오대산을 방문하였고 오대천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던 차에 지나가는 어느 동자에게 등을 밀어달라고 부탁하였다. 목욕을 마친 세조는 동자가 등을 밀어줘 몸이 날아갈 듯이 가벼워지자 기뻐하였지만 한편으론 부끄러워 동자에게 "어디 가서 왕의 옥체를 보았다는 소리를 하지 마라." 하였는데, 동자도 "어디 가서 문수동자를 봤다고 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답하고는 사라졌다고 한다.
문수보살의 도움으로 병이 낫자 세조가 크게 감격하여 화공을 불러 이때 만난 동자의 모습을 그리게 하였는데, 어느 화공도 제대로 그리지를 못하였다. 그러던 중 하루는 누더기를 걸친 노스님이 와서 자신이 그려보겠다고 하였고 이에 세조는 노스님의 몰골에 속으로 탐탁치 않아하면서 믿지를 않았으나 일단 그 모습을 설명해주려 했다. 그러나 노스님은 자신이 알아서 그리겠다며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곧 그려온 문수동자의 모습이 자신이 봤던 것과 너무 똑같아 세조가 놀라게 된다. 급히 어디서 왔냐고 묻자 노스님은 영산회상에서 왔다고 하고는 곧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즉 세조는 동자와 노스님으로 화현하여 나타난 문수보살을 두 번 친견한 것이다. 훗날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그림을 본으로 삼아 문수동자상을 조각하여 절에 봉안했다고 한다.
문수보살이 욕창 치료에 영험하다는 믿음은 중국 당나라 이후부터 동아시아 민간에 널리 퍼졌다. 세조의 문수감응 설화 역시 이러한 문수신앙을 기반으로 나왔을 가능성이 높고[1] , 세조 시기 문수화현사상을 잘 보여준다.
3. 의의
조선시대 불상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세조 때의 숭불의식에 의해 왕실에서 직접 조성한 완성도 높은 예술적인 불상으로 조선시대 불교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매우 섬세한 수인(手印)과 옷주름, 독특한 자세나 착의법 등 조선시대 고유한 불상 문화에 대해서도 알아 볼 수 있다.
4. 기타
2018년 3월 31일, 일제강점기에 아사카와 다쿠미라는 일본인이 수집한 조선의 소반상 구족반, 조선 세조의 명으로 당시 유명 예술인이던 강희안이 그린 우리나라 조선 전기를 대표하는 명화 고사관수도와 함께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이 천상의 컬렉션에 출연하였다.‘천상의 컬렉션’ 다쿠미 소반X박철민-문수동자상X이현이-고사관수도X신동근
5. 관련 영상
6. 바깥고리
- 한국어 위키백과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 조각 :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 두산백과 : 평창 상원사 목조문수동자좌상
7. 국보 제221호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 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손가락과 약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 ‘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 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 물론 명분도 없는 쿠데타로 왕이 된 세조가 자신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기 위해 일부러 그런 설화를 퍼뜨렸을 거라는 말도 있다. 세조가 부정적 재평가를 받는 현재는 상원사 문수동자상 설화 등 세조와 관련된 긍정적인 설화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