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전투

 

1. 임진왜란경주읍성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
1.1. 제1차 경주 전투
1.2. 제2차 경주 전투
2. 한국전쟁 초반에 벌어진 전투


1. 임진왜란경주읍성에서 벌어진 두 번의 전투




1.1. 제1차 경주 전투


1592년 9월 25일(음력 8월 20일),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박진이 의병장 권응수, 정세아의 5천명의 병력과 관내 읍병을 합쳐 1만여 군사를 거느리고 왜군이 차지한 경주읍성을 탈환하기 위해 공격했지만 오히려 왜군이 북문으로 나와 조선군 600명을 사살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박진은 안강의 본진으로 후퇴했다.

1.2. 제2차 경주 전투


한 달 뒤인 10월 12일(음력 9월 8일)에 박진은 다시 군사를 정비한 후 관군 5천명을 이끌고 경주읍성을 다시 공격했다.[1] 이때는 비격진천뢰화차 등을 이용해 막강한 화력을 투사해 경주읍성을 탈환하는 데 성공하고 영남 지역의 왜군들을 해안 쪽으로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2] 당시 일본군은 이 비격진천뢰의 위력에 상당히 놀란 모양인지 「정한위략」에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빙 둘러서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하자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같이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는 폭풍에 날아갔다. 기이하고 놀라서 서생포로 돌아왔다."


2. 한국전쟁 초반에 벌어진 전투


공식 명칭은 안강-기계 전투이며, 포항시 안강과 기계면 일대에서 북한군이 경주로 침입하려는 걸 두고 싸워서 경주 전투로도 불리고 있다.

[1] 참고로 야간 공격을 감행했다.[2] 조총이 야간 공격 시에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것도 한 몫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