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손기
1. 전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公孫頎
위문후의 치세로 전국시대 초기 최강국이었던 위나라의 세력을 본격적으로 붕괴시킨 탁택전투의 기획자. 생몰년 미상.
본래는 공족 출신이었다. 본격적인 기록이 나오는 것은 탁택전투 관련이다. 송나라의 세객으로 등장한다. 공손기는 한(전국시대)나라의 한의후와 조(전국시대)의 조성후에게 위나라를 공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 내용이 당시는 위나라 위무후의 치세 말기[1] 였으므로 태자자리를 두고 자앵과 대부 공중완(公中緩)이 대립중인데, 자앵이 절반 이상을 차지 하고 있으니 이를 공격하면 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조나라와 한나라가 연합해서 위나라를 공격해서 승리한 것이 탁택전투이다.
하지만 한나라와 조나라는 이후의 위나라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로 의견이 갈렸다. 조나라는 자앵을 죽이고 공중완을 왕으로 올린 다음에 자앵이 차지하고 있던 땅을 나눠먹자는 것이었고, 한나라는 자앵과 공중완을 모두 왕으로 올려서 위나라를 두 조각 내자는 것. 이 둘이 합의를 보지 못하고, 결국 한나라가 먼저 철수하면서 위나라를 완전히 멸망시키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이후 공손기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2. 전국시대 진나라의 인물 公孫起
3. 후한 말의 인물 公孫紀
후한 말의 인물. 생몰년 미상.
유우의 부하로 유주의 종사를 지냈는데, 193년에 유우가 10만 명을 이끌고 공손찬을 공격하려고 했다. 공손기는 공손찬으로부터 성이 같다고 해서 두터운 대우를 받자 공손기는 유우가 공손찬을 공격하려는 것을 알고 밤을 틈타서 공손찬에게 이를 알려줬으며, 이 때 공손찬은 부곡들이 모두 흩어져 밖으로 나가 있는 상황이라 공손기가 이 사실을 알려줬음에도 불구하고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공손찬이 성벽의 동쪽을 파고 달아나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유우의 병사들이 싸움이 익숙하지 않은데다가 유우가 백성을 사랑해 불을 지르는 등의 소란 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급히 성을 포위하지 않았는데, 공손찬이 그 틈을 타서 1백의 정예를 뽑아 불을 질러 유우군을 공격했다.
유우의 군사는 불을 모두 껐지만 유우군은 크게 패해 거용현으로 달아나 오환족, 선비족을 불러 구원받으려 했지만 공손찬이 포위해서 3일 만에 함락하고 유우를 사로잡은 채로 돌아가서 공손찬이 승리한다.
3.1. 창작물에서
웹게임 삼국야망에서 3등급에 해당하는 장수로 나온다.
삼국지: 한말패업에서 등장해 군사 59, 무용 49, 지모 46, 정무 42, 인사 38, 외교 39의 능력치로 167년생으로 나온다.
[1] 사기 위세가 혜왕편에는 위무후가 죽었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