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수원
1. 역사
과수를 재배하는 밭
고대 이집트에 과수원이 존재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나 한국에서의 역사는 짧다. 세종실록 등에 옛날부터 감, 밤, 대추, 귤과 같은 과실에 대한 기사가 실렸음을 볼 때 오래 전부터 과수가 재배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당시의 과수원은 지금과 같이 집약적으로 생산한 것이 아니라, 자가소비용으로서 집 주위에 심어져 방임상태에서 채집하는 정도였다. 고려사에는 1052년에 탐라에서 세공으로 바쳐오던 감귤의 양을 1백포로 늘린다는 기록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감의 주산지로 남부의 각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대전회통에 귤나무재배를 장려한 기록이 있다.
현재 재배되는 주요 과수들은 1906년 대한제국 정부가 지금의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설치하여 외국으로부터 개량된 품종을 도입하여 시험재배하는 한편, 본격적으로 과수재배를 권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에 의한 과수원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나마 있던 과수원도 6.25 전쟁으로 황폐화되었다. 1960년대부터 기술개발과 교육, 재배장의 확대, 정부의 농가소득증대작물지정 및 지원으로 재배면적이 늘기 시작하였다.
2. 관련항목
판타지 소설가 이영도의 부모님이 감 과수원을 운영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영도 작가가 피를 마시는 새 이후 작품 활동이 뜸해지자 팬들이 감 과수원에 대한 저주와 협박[1] 을 퍼붓기 시작하여, 이제는 이영도 작가 = 과수원 공식이 성립된 드립. 이 때문에 과수원은 판타지 커뮤니티에서 연중하거나 폼이 무너진 작가들이 끌려가는 마굴, 혹은 신작 플롯이 묻혀있는 보물창고나 성역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1] 대표적인 것이 감 가격이 폭락해 버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다들 흉년이 되라는 말을 했으나 흉년이 되면 공급이 적어져 가격이 상승한다는 것이 알려지자 풍년이 들어버리라는 저주로 바뀌었다. 그 외에도 과수원을 불태워야 한다, 과일은 불태우고 나무는 먹어라 등등도 있다. 물론 실제로 그러겠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농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