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영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곽영은 1922년 평양에서 차병수(車炳修) 등 11인과 함께 평양경찰서 정문 건너편에 자전차포를 위장 경영하면서 연통제 실시, 군자금 모집, 국내외 독리투사들의 연락처 제공 등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이 사실을 파악해 동지들을 모조리 체포하자, 그는 경찰의 추적을 피해 서간도로 망명했다.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1922년 6월에는 국민대표회의에 상해 재류청년임시대회 대표로 참가하여 나석주, 최일(崔一) 등과 함께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그해 7월에는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목표로 하여 안창호, 김덕진(金德鎭), 최창식(崔昌植), 차이석, 안정근, 남형우 등과 함께 사책진회(時事策進會)를 조직하여 그 회원으로 활동했다.
1924년 3월, 곽영은 청년동맹회(靑年同盟會)를 발족시켜 신언준, 엄항섭, 최남식(崔南植) 등과 함께 "민족적 독립의 완성을 위하여 희생적으로 분투하자"는 강령 아래 상하이 청년들의 단합을 도모했다. 이때 그는 후보 집행위원에 선임되어 독립운동자들의 단합을 추구하는데 전념하는 한편, 임시정부의정원 의원에 선출되어 임정의 정치분야에서도 크게 활동했다. 1924년 6월에는 임시정부 재무부 참사(參事)로 임명되어 임정 운영에도 참여했으며, 1925년 8월에는 김원봉을 단장으로 하는 의열단에 가입, 활동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곽영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