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윤

 


[image]
성명
곽윤(郭奫)
이명
곽대연(郭大淵)

겸와(謙窩)
본관
현풍 곽씨
생몰
1881년 2월 2일 ~ 1927년 2월 7일
출생지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
사망지
경상남도 거창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곽윤은 1882년 2월 2일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중촌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곽종석의 조카로,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승희, 장석영 등이 이끄는 상소 운동에 참여해 300명의 경상도 유생들과 함께 을사오적 처단과 을사조약 파기를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후 1919년 2월 26일 김황(金榥) 등과 함께 상경해 윤충하(尹忠夏), 김창숙을 만나 독립청원운동에 관해 협의하고 곽종석을 대표로 추대하며, 독립청원서 집필을 위촉한다는 계획을 수립한 뒤 거창군으로 돌아와 곽종석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곽종석은 이를 흔쾌히 수락하고 장석영과 김황이 작성한 초안을 김창숙과 함께 검토한 뒤 김황의 초안을 토대로 청원서를 수정하기로 결정했다. 곽윤은 곽종석, 김창숙이 손을 본 독립청원서를 정본(正本)하고, 미투리 날줄로 꼬아 숨겨가기 편하도록 만들었다. 이것을 ‘면우본’이라 부르는데, 김창숙이 가져간 ‘면우본’은 한 차례 더 수정을 거쳐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1925년 8월, 곽윤은 서울에서 김창숙을 만났다. 당시 김창숙은 내몽고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기 위해 자금을 모집하고 있었다. 곽윤은 협조를 약속하고 10월에 김창숙, 김황, 송영우(宋永祐), 손후익 등과 함께 신건동맹단(新建同盟團)을 결성했다. 이들은 주로 경북 일대의 책임을 맡아 봉화군의 권철연(權喆淵), 달성군 원대동의 최해윤(崔海潤) 등을 대상으로 군자금을 모집했다. 1927년 2월 7일 거창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곽윤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