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나라
1. 개요
管
현재 중국 허난 성 정저우에 있던 나라
2. 상세
은나라 멸망 후 주무왕이 형제들을 봉할 겸 주왕의 아들 무경(武庚)[1] 을 감시하기 위해 세운 나라 중 하나로 자신의 아우 관숙 선을 봉한 곳이다. 작위는 후작으로 추정된다. 관나라에 봉해진 관숙 선은 채(蔡)나라에 봉해진 채숙 도, 곽(霍)나라에 봉해진 곽숙 처와 함께 무경을 감시하여 삼감(三監)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주 무왕이 사망하고 어린 주성왕이 뒤를 잇자 주공단이 섭정이 되었다. 이에 관숙, 채숙, 곽숙은 불만을 품고 주공이 왕위를 빼앗을 것이라는 말을 사방이 퍼뜨리고 무경과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키니 이것이 삼감의 난이다. 주공은 소공 석과 함께 왕실 내부와 제후들을 단속하며 반란의 진압에 나섰다. 하지만 동쪽의 회이(淮夷)와 연합한 은나라 유민들의 저항이 거세서 반란의 진압에는 3년이나 걸렸다. 결국 무경은 사로잡혀 주살되었고 반란의 주모자였던 관숙은 처형되었다. 똑같이 반란에 참가했지만 소극적으로 참여한 채숙은 유배되었고 간만 보던 곽숙은 봉토가 몰수되어 결과적으로 삼감은 사라졌다. 이 후 채숙이 유배지에서 사망하자 그의 아들 채중 호를 다시 채나라에 봉하고 곽숙은 3년 후 곽나라에 다시 봉했다. 하지만 관숙은 죄가 워낙 크고 자손도 없었으므로 관나라를 그대로 멸했다.
삼감의 난을 진압한 주공은 옛 은나라의 영토를 둘로 나누어 통제를 강화하였다. 대신 무경의 숙부였던 미자계를 송(宋)에 봉하고 자신의 동생 강숙 봉을 위(衛)에 봉했다. 더불어 자신의 장남 백금(伯禽)을 노(魯)에 봉해 동쪽의 회이에 대한 통치를 맡겼으며 은나라 유민들 다수를 낙읍(지금의 뤄양)으로 이주시켰다.
[1] 또는 녹보(禄父)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