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나라
1. 개요
蔡
중국 서주시대부터 존재하던 나라로 무왕 때 문왕의 5남인 채숙 도가 봉토를 받아[1] 건국되었으며 후작의 작위를 받은 동성 제후국으로 지금의 하남성 상채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수도는 상채였다가 나중에 신채로 옮겼다.
2. 역사
초기에 무왕의 동생인 관숙 선, 은나라 주왕의 아들 무경, 동생인 곽숙 처와 함께 주(周)왕실에 도전해 삼감의 난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주공 단에 의해 진압되었는데 주모자였던 관숙과 무경은 주살되고 군대를 동원했으나, 소극적이었던 채숙은 군주에서 폐위되어 추방되고 군대를 동원하지는 않았으나 참가는 한 곽숙은 3년 동안 녹봉을 받지 못했다. 채숙은 추방지에서 병들어 죽었으나, 그의 아들 채중은 선량한 공적으로 다시 채나라 제후가 되었다. [2] 특히 이 채중(蔡仲)은 주(周) 천자로부터 국명(國名)으로 성씨(姓氏)를 하사받아 채(蔡)씨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춘추시대 초기에는 주(周) 왕실이나 주변 제후국과 교류하는 등의 활동을 벌였으나, 초(楚)의 공격을 받아 급격히 쇠퇴하였으며 영후 때 초(楚) 영왕의 공격으로 일시적으로 멸망하게 된다. 나중에 영왕을 죽인 평왕이 영후의 아들을 복위시켜 채를 복국시켰지만 대신 초(楚)의 속국으로 존재하였다. 결국 춘추 말기인 기원전 531년 초(楚) 혜왕의 명령을 받은 영운과 자발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3. 여담
현재 존재하는 채씨들은 채나라에 기원을 두고 있다. 채나라의 제2대 군주인 채중(蔡仲)때 국명(國名)으로 성씨(姓氏)를 사성[3] 받아 채(蔡)나라의 왕족은 채(蔡)씨가 되어 그 후손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기 때문. [4][5]
여담으로, 진나라를 전국 통일로 이끈 승상 이사는 초(楚) 상채(上蔡)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4. 역대 군주
앞에는 시호, 뒤에는 이름이다.(예: 공후 흥, 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후작 희흥) 또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군주도 있다.
[1] 그래서 채나라 제후의 성이 희성 채씨(姬姓 蔡氏)이다.[2] 곽숙은 3년 후 정신을 차려 다시 복권된다.[3] 賜姓, 나라에서 성을 내려주는 일.[4]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씨, 주씨, 연씨, 오씨, 한씨등의 어원은 대부분 이렇게 중국의 고대 국가들 이름이다, 요새는 조금 덜하지만 한국에서도 다른 지방에서 시집온 여자들은 이름 00댁 하는 식으로 이름보다는 지역으로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5] 유럽에서도 해당 국가나, 지방, 주 등을 성으로 삼은 사람들은 '''아주''' 많다. 특별히 성이 없는 사람들이 이주한 뒤 고향을 그리거나 어디 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붙인 것, 때로는 착오에 의해서도 고향이 성씨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실존인물은 아니지만 영화 대부에서 비토 콜레오네의 경우 실제 성씨는 콜리오네가 아니었지만 입국을 허가하던 직원이 말이 안 통해서 답답해하다가 가방에 붙어 있던 고향을 성씨로 착각하고 그냥 이걸 성으로 지어줬다. 비토 콜리오네의 경우 이 성을 바꾸기 번거롭기도 하고, 고향을 그리는 의미에서 계속 써서 콜리오네 가문이 생기게 된다.[6] 父는 부라고 읽어야 하나 이 당시에는 보라고 읽었다.[7] 아버지 경후가 자신의 부인, 즉 며느리와 간통하는 것을 보자 그를 시해하고 즉위했다. 그러나 영후 12년 초 영왕이 영후를 신읍으로 유인해 술을 먹인 다음 그를 죽이고 채나라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채의 일시 멸망'''.[8] 은태자 우의 동생으로 초 영왕을 죽인 초 평왕이 영후의 어린 둘째 아들 여를 찾아 채를 복국시켰다, '''채의 복국'''.[9] 은태자 우의 아들. 평후가 죽자 그의 아들을 몰아내고 즉위했는데 그의 아버지 우는 초 영왕이 제사에 산 제물로 바쳐 죽였다.[10] 나라가 망해서 시호가 없음.[11] 재위 4년 초혜왕의 공격으로 채나라를 멸하자 그는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