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신창동 유적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375호'''
'''광주 신창동 유적'''
光州 新昌洞 遺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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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512-1번지
'''분류'''
유적건조물 / 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 / 유적분포지
'''면적'''
260,715㎡
'''지정연도'''
1992년 9월 9일
'''제작시기'''
철기시대
'''위치'''


1. 개요
2. 내용
3. 바깥고리
4. 사적 제375호


1. 개요


光州 新昌洞 遺蹟. 광주 신창동 유적은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위치한 초기 철기시대 대표 유적이다.
광주 신창동 유적은 1992년에 사적 제375호로 지정되었다.

2. 내용


광주 신창동 유적에는 저습지를 중심으로 하여 초기 철기시대(기원전 2~1세기)부터 원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의 집터, 무덤 등과 같은 유적들이 모여있다. 여기서는 각종 철기 무기와 공구를 비롯하여 목제품들 및 현악기 등과 같은 당시의 생활 유물들 뿐만 아니라 토기, 호두와 같은 견과류, 각종 곡물의 씨앗 및 농경기구 등 농업과 관계된 유물들이 다량 발견됐다. 이렇게 발견된 유물들 중 상당수가 국내 최초 발견이라 해도 무방할 것들이었다고 한다.[1]
1963년 서울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해 신창동 유적에서 옹관묘(甕棺墓)[2] 53기가 발견됐고, 이후 국립광주박물관에서 1992년에 실시한 첫 조사[3] 이래로 수차례 조사를 통해 다수의 생활 유적들을 발굴했다.[4]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 대부분은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5]

3. 바깥고리



4. 사적 제375호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 영산강 유역 낮은 평야지대에 자리한 초기 철기시대의 늪과 못터, 토기가마터, 배수시설, 독무덤(옹관묘) 등 고대 농경문화와 생활유적이 있는 곳이다.

독무덤은 53기가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토기와 철기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지역 독무덤은 영산강 유역 삼국시대 독무덤 계보가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그 가치가 크다.

늪과 못터에서 토기, 목제, 석기 등의 유물이 나왔는데, 특히 빗, 괭이, 나무 뚜껑과 같은 목제유물들은 당시 생활모습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이와 함께 불탄쌀, 볍씨, 살구씨와 같이 농경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것들도 발견되었고, 터에서는 토기 제작기술의 발전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움집터에서는 바닥 가운데에 타원형 화덕을 설치하였다.

이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 생활문화연구와 농경생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목제 유물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중요하다.


[1]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선사 유물과 유적 - 광주 신창동 유적[2] 독무덤이라고도 한다.[3] 국도 1호선 직선화 개량공사로 인해 긴급조사가 이뤄졌다고 한다. 출처 : 한국어 위키백과 - 광주 신창동 유적[4] 출처 : 고고학사전 - 신창동 유적[5] 2012년 12월 25일부터 2013년 3월 3일까지 국립광주박물관에서는 광주 신창동 유적에 관련한 '2000년 전의 타임캡슐' 특별전시전을 열기도 했다. 중앙일보 - 비단·현악기·신발 .. 광주 신창동은 '고대사 타임캡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