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갑

 


1. 개요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


1. 개요


20대 총선때 광주시의 인구 증가로 인해 갑/을로 분할되었다. 현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다.
광주시의 원도심 역할을 하고 있는데다 북쪽 지역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라 보수세가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동 지역의 인구가 을 선거구 못지 않게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태전동 쪽까지 택지지구 개발이 진행중이다 보니 보수세를 상쇄시키고도 남는다. 면 세 곳이 상술한 특성상 인구가 적을 수밖에 없는데 특히 남종면같은 경우 북한 접경지역들 못지 않게 과소하고 이마저도 고령화로 감소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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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갑 관할 구역
경안동, 송정동, 광남동, 퇴촌면, 남종면, 남한산성면

2. 역대 국회의원 목록과 역대 선거 결과


총선
당선자
당적
임기
선거구
16대
박혁규

2000년 5월 30일 ~ 2004년 5월 29일
광주시
17대
2004년 5월 30일 ~ 2005년 9월 9일
정진섭
2005년 10월 27일 ~ 2008년 5월 29일
18대
2008년 5월 30일 ~ 2012년 5월 29일
19대
노철래

2012년 5월 30일 ~ 2016년 5월 29일
20대
소병훈

2016년 5월 30일 ~ 2020년 5월 29일
광주시 갑
21대
2020년 5월 30일 ~

2.1. 20대 총선


8년만에 정진섭과 소병훈의 리턴매치가 성립되었다.
국민의당은 남궁형후보를 공천했으나 후보등록을 하지않았다.
'''광주시 갑'''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정진섭(鄭鎭燮)
29,890
2위
새누리당
48.47%
낙선
'''2'''
'''소병훈(蘇秉勳)'''
'''31,769'''
'''1위'''
'''더불어민주당'''
'''51.52%'''
'''당선'''
'''계'''
'''선거인 수'''
122,751
'''투표율'''
51.2%
'''투표 수'''
62,908
'''무효표 수'''
1,249
이 선거구는 도시 지역구임에도 불구하고 출구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후보와 새누리당 정진섭 후보간의 격차가 3%에 불과했다. 이는 정진섭 전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시절에 지역구 관리를 잘했다는 평이 있었다. 세부적으로 보면 농촌 지역인 퇴촌면, 남종면, 남한산성면에서 정진섭 후보가 앞섰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층 인구가 많고 광주시의 원도심 지역인 경안동, 송정동, 광남동에서 소병훈 후보가 큰 폭으로 앞섰다. 특히 농어촌 행정구역들 상당수가 '''상수원 보호구역'''을 제대로 끼고 있고 공장들도 드물게 있는지라 노년층 토박이들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 점을 간과하기 힘들다.

2.2. 21대 총선


'''광주시 갑'''
경안동, 송정동, 광남동, 퇴촌면, 남종면, 남한산성면
'''기호'''
'''이름'''
'''득표수'''
'''순위'''
'''정당'''
'''득표율'''
'''비고'''
'''1'''
'''소병훈(蘇秉勳)'''
'''53,221'''
'''1위'''
'''더불어민주당'''
'''56.14'''%
<color=#373a3c> '''당선'''
'''2'''
조억동(趙億東)
40,469
2위
미래통합당
42.69%
낙선
'''7'''
엄태영(嚴泰榮)
1,094
3위
국가혁명배당금당
1.15%
낙선
'''계'''
'''선거인 수'''
156,890
'''투표율'''
61.0%
'''투표 수'''
95,752
'''무효표 수'''
968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현역 소병훈 의원이 단수공천 되었다.
미래통합당에서는 조억동 전 광주시장이 단수공천되었다.
소병훈 의원이 4월 16일 0시 37분에 55.2%의 득표율일 때 당선이 확정되며, 재선에 성공했다.
세부 결과로는 소병훈 후보는 모든 동 지역과 관외사전투표에서, 조억동 후보는 모든 면에서 우세하였지만 동에서의 표차가 워낙 너무 크다보니 경합도 아니라 압승이었다.[1] 더군다나 조 전 시장이 광주시 난개발의 주범으로 인식되어 동 지역에서 평이 좋지 않았다.[2]

[1] 면에서의 표차는 '''200~400'''여표에 불과하였지만 동에서의 표차는 최소 '''2000'''여표 이상이었다.(특히 광남동에서만 무려 '''6000'''여표(!)이상 차이가 나면서 승부가 일찌감찌 결정되었다.)[2] 특히 을 선거구에 위치한 오포읍을 빌라촌으로 뒤덮어버려 극심한 교통난을 초래해서, 좀 더 보수세가 있는 갑 선거구로 나왔음에도... 오죽하면 시장 시절 별명이 '빌라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