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

 



자유한국당

'''미래통합당'''

국민의힘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브랜드뉴파티
(창준위)
같이오름
(창준위)
바른미래당
(개별 합류)

미래한국당


[image]


<color=#fff> '''미래통합당'''
'''영문명'''
United Future Party (UFP)
'''한문명'''
未來統合黨
'''등록 약칭'''
통합당
'''고유번호'''
116-82-03628
'''창당일'''
2020년 2월 17일[1]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11,12,14,17,20대(5선)
'''원내대표'''
주호영/17,18,19,20,21대(5선)
'''정책위위장'''
이종배/19,20,21대(3선)
'''사무총장'''
김선동/18,20대(재선)
'''당명 변경'''
2020년 9월 2일 '''(국민의힘)'''
'''통합 정당'''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외]
(2020년 2월 17일 신설합당)
미래한국당 (2020년 5월 29일 흡수합당)
'''이념'''
보수주의

'''내부계파:'''
자유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재정보수주의[2]
공화주의[3]
질서자유주의[4]
녹색보수주의[5]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
'''중앙당사'''
'''의석 수'''
103석[6] / 석 (당명 변경 직전)
'''당 색'''
해피 핑크 (#EF426F)}}}
'''정책 연구소'''
여의도연구원
'''국제 조직'''

'''공식 사이트'''
[7]
'''SNS'''
[8] [9]

2020.09.02. 기준
1. 개요
2. 상세
3. 성향
3.1. 분파
4. 비전
5. 정강·정책
6. 당색 및 로고
6.1. 국민의힘으로 당명교체하기까지
7. 당가
8. 역사
8.1. 창당 추진 과정
8.1.1. 2019년
8.1.2. 2020년
8.2. 창당 이후
9. 소속 의원
10. 계파
12. 역대 지도부
12.1. 통합추진위원회
12.2. 창당준비위원회
12.3. 초대 지도부
12.4. 비상대책위원회
13. 원내 지도부
13.1.1. 심재철 지도부[A]
13.2.1. 주호영 지도부
14. 시도당 지도부
15. 상임고문단
16. 선거
16.1. 국회의원 선거
16.2. 재보궐선거
17. 여담
1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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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래통합당'''은 자유한국당,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 등 중도·보수 세력들이 합당하여 2020년 2월 17일 창당해 동년 9월 2일 국민의힘으로 당명이 변경될 때까지 대한민국의 제1야당이자 보수정당이었다. 공식 약칭은 통합당. 당 사이트에 공개된 공식적인 당의 역사를 살펴보면 알겠지만 통합한 3개의 법적 전신 정당들 중에서 1997년 한나라당 때부터 내려오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정치적인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부가 친박으로 구성됨에 따라 완전한 친박정당이 되어 총선에서 참패를 하게 되었다는 평가가 많으며, 국민들의 박근혜 혐오 성향에 의하여 태극기 극우 세력의 지지만으로는 역부족이었기에 참패와 당 차원의 개혁은 필연적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대표만 보더라도 황교안 그리고 한선교, 원유철 인데 모두 대표적 친박이다.
'''2020년 8월 31일에 국민의힘으로 신당명이 낙점'''되었으며, 창당 후 198일만인 9월 2일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교체하였다. 이로 인해서 '미래통합당'은 신한국당의 기록을 깨고 '''보수정당 역사상 최단기 당명'''이 되었다.[10] 또한 민자당계 정당 역사상 유일하게 전당대회를 치르지 않은 당명이다. 또 민자당계 정당 역사상 최초로 야당으로만 존재했던 정당이다.[11]

2. 상세


보수 진영에서는 1997년 한나라당(신한국당+통합민주당) 출범 이후 약 23년 만의 신설 합당이다.[12] 당 공식사이트의 발자취를 보면 알겠지만 한나라당 때부터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봐서 법적 전신 중 자유한국당에 대한 계승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당의 뿌리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창당된 민주자유당이다.[13] 정당의 행보와는 별개로 계보상으로 민주당계 정당이었던 평화민주당의 법적 후신 정당이기도 하다.[14]
가까운 전신의 역사를 언급하자면 2016년 말 새누리당 분당 사태 이후에 탄핵을 찬성하는 비박 계열과 탄핵에 반대하는 친박 계열로 나뉘어졌는데 비박계열이 바른정당으로 분당해 나갔고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변경하였다.
먼저 자유한국당은 당명 개정 이후 대선 경선을 거치며 홍준표 당시 경남지사를 선출했다. 처음에는 낮은 지지율에 허덕였고 심지어 선거비 반액 보전도 못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에 떨었으나 안철수의 실책과 동시에 샤이보수 효과로 24%, 2위를 차지하며 구사일생했다. 다만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허니문 효과와 2018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만든 평화무드로 완패하며 다시 위기에 처했고 한동안 오르지 않는 지지율에 허덕였다. 그후 김병준 비대위가 지지율을 좀 올리고 후에 황교안 지도부 선출과 동시에 콘크리트 지지자들의 지지를 다시 회복했다.
2019년 후반기 조국 사태더불어민주당을 바짝 쫓고 정부의 여러 실책으로 지지율을 꽤 올렸으나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황교안 대표에 의해서 중도·보수 대통합의 중심축이 되면서 결과론적으로 미래통합당 초반부 당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한편 바른정당은 2017년 개혁보수를 내세우면서 창당했으나 유승민의 대선후보 지지율이 10%가 안되는 등 내분이 격화되어서 총 3차례에 걸친 바른정당 탈당 사태를 겪었고 원내교섭단체를 만들고도 남을만큼 30명에 달하던 의원수가 9명까지 줄어들자 국민의당과의 연대에서 통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협력방안을 논의하다가 결국 2018년 초에 국민의당과의 통합해서 2018년 2월 13일 통합 전당대회를 통해 바른미래당으로 합당하였다.
바른미래당은 2018년 지방선거에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공존하는 정당임을 선언하였고 창당 당시에 국민의당에서 온 호남출신 인사를 포함한 극중주의 세력과 바른정당에서 온 자유보수주의 세력에 걸쳐 있었다. 하여튼 다양한 정치적 이념과 세력이 혼재된 탓에 여러가지 내부 갈등과 지지율 정체로 분열되었고, 당 내 보수지지층과 보수계 의원들을 대표하는 유승민 의원의 친유계가 탈당 후 2020년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하면서 분당되었다. 한편 민주당계 출신의 이언주 의원은 새보수당과 같은해 독자적으로 전진당을 창당하면서 분당했다.
그리고 그 새로운보수당과 전진당은 자유한국당이 주도한 중도·보수 대통합의 대의에 동조하였고 그 외 2개 창준위를 비롯한 여러 시민사회단체가 개별적으로 합류하면서 미래통합당의 창당준비가 시작되었다.
2020년 미래통합당은 창당 직후 통합의 중심에 있었던 황교안 당대표의 영향으로 자유한국당 계열이 주도권을 잡았고 그래서 새누리당 이래로 내려온 전통적인 보수주의 계파의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의 성향이 강했다. 그러나 총선 과정에서 공관위의 사천논란들과 당내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친박친황계의 막말논란들은 사상의 최악의 총선참패의 성적이자 4연패라는 신기록을 만들어냈다. 이로 인해서 보수세력은 사실상의 아노미 상태에 빠졌고 수습을 위한 일환으로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새롭게 떠올랐다.
비대위의 권한과 임기를 놓고 줄다리기 하다가 마침내 5월 말 막강한 전권을 쥐고 임기를 시작한 김종인 비대위는 수도권, 청년, 호남이라는 세 키워드를 바탕으로 광풍행보를 보였다. 먼저 과거 보수의 대통령인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 사과하겠다고 발표했으며 이외에 중도 성향의 청년들까지 끌어들이기 위한 20~35세 연령의 유럽식의 당내당 형태의 청년정당을 만들 계획을 발표하며 2020년 연말에 정식 출범을 약속했다.
민주자유당 이래로 자유한국당 시절까지의 정강·정책과 비교하면 크게 변화한 정강·정책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경제적 자유주의 성향의 기존 당 주류와는 달리 신공화주의 성향의 유승민친유계 그리고 질서자유주의 성향의 김종인의 색채가 짙어졌다. 이로 인해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념을 폭넓게 받아들였는데 새누리당 시절의 경제민주화뿐만 아니라 기본소득도 핵심적 경제정책과제 중 하나로 부상되었다. 그 외 공교육의 교육개혁, 정치개혁, 사법개혁, 녹색보수주의라고 불러도 될만큼의 시장주의적 관점의 환경정책, 노동문제를 비롯해서 전향적이고 광범위한 사회권의 수용을 동반해서 10가지 핵심정책 중 절반 가까이 진보적인 의제를 담은 새로운 정강과 정책을 발표하였다.
이후 지지율의 추세가 호전되는 듯하다가 사랑제일교회민경욱 등 당내 원외 강경파들의 8.15 광복절 문재인 정부 규탄 집회를 계기로 인해서 이러한 행보가 무색해졌다.
[image]
2020년 8월 19일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보수정당 대표로는 최초로 5.18 국립민주묘지를 참배하였다. 그는 묘역에 가서 무릎을 꿇고 울먹이며 민주정의당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사죄했다.[15] 김종인 비대위원장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 백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첫걸음을 뗐다.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게 안 나아가는 것보다 낫다는 빌리 브란트의 충고를 기억한다. 5·18 묘역에 잠든 분들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께 깊은 사죄를 드린다.”고 말했다.
1980년도 당시 자신이 적극적으로 항변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침묵을 택한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했으며 자유한국당 시절의 망언에 대해서 사죄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빌미로 왜곡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본인의 국보위 경력에 대해서 “그동안 여러 번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과 군사정권에 반대한 국민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한편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방명록에 쓴 내용은 “5·18 민주화 정신을 받들어 민주주의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이다. 측근도 몰랐던 김종인 '무릎 참배' 뒤엔, 31년전 브란트 독대
비대위에 의해서 2020년 9월 2일 당명을 국민의힘으로 변경하게 되었다. 또한 당명 개정과 함께 전면개정으로 새로운 정강정책을 제정했는데 새 정강정책은 모두의 내일을 위한 약속, 우리의 믿음, 기본정책 3가지 파트로 구성되어있으며 과거 어떤 보수정당의 정강정책과 비교해도 진보적이고 기존의 정강정책과 비교해서 양적으로도 풍부하다.

3. 성향


2020년 보수와 일부 중도의 통합을 기치로 공식적으로 '''중도·보수 빅 텐트'''[16]을 표방하는 '''미래통합당'''이 창당되었다. 2010년대 이후 보수의 정체성이자 강경보수적인 계파의 사회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반공주의적인 면모는 창당 후 전반기까지 유지되었다. 그러나 비대위 이후에는 좌클릭의 영향으로 중도주의적 계파의[17] 질서자유주의, 온건보수적인 계파의 자유보수주의, 본격화된 녹색보수주의, 재정보수주의, 진보적 보수주의[18]가 후반기부터 국민의힘으로 당명을 교체할 때까지 이어진다.

3.1. 분파


  • 자유주의 분파
질서자유주의 성향에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보수자유주의 성향에 김병준 등 친노출신, 구 국민의당 계가 해당된다.
기존 우익들은 김종인을 더불어민주당이 보낸 첩자 취급을 하며 구 국민의당 계도 보수가 아니라고 비판한다. 공정한 시장경제를 위한 경제민주화를 추진하고 노동유연성을 위한 노동개혁과 고용안전망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노동정책은 사회적 시장경제의 영향으로 보인다. 또 기본소득 의제를 꺼내들기도 했다. 중도실용주의 또는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다.[19]
  • 자유보수주의 분파
꽤나 스펙트럼이 넓은 분파다. 재정보수주의에 따른 재정준칙 도입 등의 정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되며 자유한국당 시절 사라진 녹색보수주의적인 정책이 과거보다 보강되고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가 따뜻한 보수로 표상되는 온정적 보수주의인 진보적 보수주의 계파로 유승민과 친유계가 있다.[20] 이외 다수의 개혁보수들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신공화주의 성향의 유승민과 친유계는 보다 중도적인 이념이다.[21]
  • 사회보수주의 분파
기본적으로 신보수주의에 토대를 두며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지만 동시에 박정희식 친대기업적 관치경제의 성향을 가진 모순이 존재한다. 복지정책에서는 복지정책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대체로 선별적 복지정책보다는 보편적 복지정책을 더욱 선호하는 편이다. 반공주의 성향이 두드러지고 강한 대북정책을 선호한다. 사회문화적으로 보수적이고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지만 권위주의적인 면모는 90년대의 국민보수주의적 분파보다 약해보인다. 2010년대 이래로 주류 분파다. 하지만 김종인 비대위 이후로 힘을 잃고 있다.
  • 국민보수주의 분파
엄밀하게 말해서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19대 대선에서 자유한국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홍준표가 이 성향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 대체로 특이하게도 신보수주의 성향을 토대로 가지고 있으며 우익 대중주의적인 성향이 있다. 홍준표를 따르는 친홍계가 당내에 존재한다.

4. 비전


'''혁신·확장·미래'''

통합신당준비위원회의 박형준 위원장은 출범식 연설에서 "미래통합당의 첫 번째 가치는 혁신이고, 두 번째는 확장, 세 번째는 미래"라고 했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정권이 헌정 질서를 흔들리게 하고 있고 대한민국 70년의 기적적 성취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게 하려면 통합당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헌법정신이라며 "자유⋅민주⋅공화⋅공정의 가치를 담은 헌법정신을 유지 확대 발전할 것"이라고 했다.

5. 정강·정책


2020년 2월 14일 미래통합당이 창당되기 3일 전 첫번째 정강정책을 제정했다. 그러나 이것은 강령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미래통합당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를 통해 발전해온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계승 발전시킨다.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세계 선진 국가로 만들고, 국민 각자의 행복을 높이는데 우리 당의 역사적 임무가 있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북핵 위협을 제거하여 진정한 평화를 이루고, 헌법 가치가 구현되는 통일을 지향한다. 다양한 기회와 선택권이 주어지고 법치와 신뢰, 인권이 살아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부터 불법과 비리, 특권과 기득권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한다. 미래통합당은 나라의 기둥인 경제와 안보를 튼튼히 지키며, 정의로운 사회․따뜻한 공동체를 만들고 자유와 평등․공정과 정의․인권과 법치라는 민주공화국의 헌법가치들을 온전히 지켜낸다. 헌법 가치에 충실한 정당,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정당, 미래 가치를 선도하는 정당으로서 미래통합당은 국민의 사랑을 받고 국민의 믿음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의 핵심 정책 기조는 다음과 같다.

'''1. 법치를 바탕으로 한 공정한 사회 구현'''
풍요로운 경제와 더불어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중심 과제다. 법치가 그 중심에 있다. 법치는 민주질서와 공정한 경제, 인권 수호를 위한 토대이자 출발점이다. 3권 분립 정신을 존중하고, 권력이 법치를 흔드는 일을 근절해야 한다.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법 앞의 평등이 철저히 구현되고, 다양한 기회를 바탕으로 한 절차적 공정성이 사회 곳곳에 뿌리내리게 한다. 권력과 재산을 이용하여 특권과 반칙을 범하는 행위를 근절한다. 당이 솔선수범하여 부정부패를 근절하고 공적 열정과 봉사정신이 정치의 가장 중요한 미덕으로 자리 잡도록 한다.
'''2. 삶의 질의 선진화'''
국민 각자가 나의 자유와 행복을 구가하고 신뢰와 친밀성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드는 데 주력한다. 삶의 질의 선진화를 위해 복지․환경․문화․건강․평생학습 등 삶의 질 인프라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즐겁고 쾌적한 생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초고령화 사회에 대응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며, 저출산을 해소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도록 정책적 노력을 배가한다. 격차 해소를 위한 복지정책을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도록 유의하면서 적극적으로 펼친다. 복지의 생산성을 높이고 맞춤형 복지가 되도록 한다. 참여와 봉사를 통한 시민적 덕성을 고양해 신뢰 사회를 만들고 서로 보살피고 상대를 존중하는 공동체의 미덕과 품격을 높인다.
'''3. 북핵 위협 억지와 안보 우선 복합외교'''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키고 국가를 부강하게 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다. 오늘의 안보에서 가장 큰 위협은 북핵이며, 이를 폐기시키는데 모든 힘을 기울인다. 아울러 북핵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안보태세를 구축하는 데 주력한다. 북핵 위협을 무력화할 있는 첨단 국방 역량을 구축한다. 동맹에 기초한 자강의 길을 걸어왔던 대한민국에게 한미동맹은 여전히 핵심적인 가치동맹임을 분명히 인식한다. 한미동맹을 진화시키면서 세계질서의 변화와 더불어 급변하는 동북아 질서에 대응하는 복합외교 전략을 수립한다. G20 국가로서의 국가 위상을 더욱 드높이고, 세계에 열려 있는 통상국가로서 경제외교를 강화한다.
'''4. 교육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교육백년대계 확립'''
삶의 질을 위해서나 경제 발전을 위해서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아실현을 이루고 각 분야에서 인재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교육임을 확고히 인식한다. 이에 입각해 산업화 시대의 교육 패러다임을 디지털 혁명시대의 교육 패러다임으로 바꾸는 데 주력한다. 즉흥적이고 단발적인 입시제도 위주의 교육개혁이 아니라 유아교육부터 대학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과정과 내용이 미래지향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근원적 교육개혁을 추구한다. 교육의 공정한 기회의 사다리로서의 역할을 복원하며, 교육의 다양성과 선택권을 중시한다. 이를 위해 중장기적 안목과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교육 비전과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철저히 준비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한다.
'''5. 민간주도․미래기술주도 경제 발전'''
개인과 기업의 자율과 창의가 존중되고 미래 기술이 주도하여 혁신이 넘치는 경제를 촉진한다. 이를 위해 법률이 금지하는 독과점과 불공정행위에 저촉되지 않는 한 시장에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한다. 정부는 경쟁에 의해 촉진되는 기업가정신과 혁신 역량을 촉진할 의무가 있다. 시장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규제를 막고, 혁신에 장애가 되는 규제를 혁파하고 창의적 도전 정신이 시장에 넘쳐나도록 한다. 좋은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동개혁을 추진한다. 공정한 경쟁 질서를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고 국리민복을 위한 경제발전을 지향한다.

6. 당색 및 로고


''' 의 로고'''
[image]
당색이 자유한국당과 미래를향한전진4.0의 빨간색, 새로운보수당의 하늘색, 주황색, 회색 중 그 어떤 색도 아닌 분홍색을[22] 채택했다. 이 색은 과거 보수 정당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에서 사용하던 색으로, 당시에는 밀레니얼 핑크라고 불렸다. 원색 계통이 아니라서 눈에 확 안 들어온다는 평가도 있고, 파스텔 톤으로 부드러운 느낌을 줘 젊은 세대를 노린다는 취지에 적합하다는 평가도 있다. #

6.1. 국민의힘으로 당명교체하기까지


21대 총선에서의 참패로 당명의 교체가 결정되었다. 새로운 당명의 길이는 3글자가 유력해 보이고, 당색도 단색이 아닌 3가지 색상으로 바뀔 것이 유력해 보인다. 김수민 홍보본부장은 사람들이 당명에 자유가 들어간 것을 선호한다고 했으나, 과거의 자유당과 겹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가장 많이 받은 신청은 국민이라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자유, 한국, 미래, 우리, 행복, 희망, 함께, 다함께 희망으로 등. 다양한 이름들이 응모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죄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들이라는 것(...).[23]
2020년 8월 31일 비상대책위 회의 직후 새로운 당명을 공개하고 새 당명 및 정강정책 의결을 위한 상임전국위와 전국위는 9월 1일과 2일 비대면·온라인 방식으로 개최할 예정이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취임 100일인 9월 3일 전후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한다. 한편 현판식이나 로고 확정, 당색 등의 절차는 가급적 추석 전에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년 8월 31일 9시 43분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힘''', '''한국의당''', '''위하다''' 의 세 가지 후보군을 공개하였다. 온라인 의원총회와 9월 1일에 있을 전국 상임위, 2일 전국위를 거쳐 최종 의결할 예정이라고 발표했으나 사실상 국민의힘으로 확정되었다. #
2020년 9월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국민의힘으로 정식 당명 변경되었다.

7. 당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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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미래통합) 통합 (미래통합당)
승리를 위해 행진
어두운 세상 우릴 밝혀주는 희망
모두가 하나되는 길 (미래통합)
짙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요
미래통합당!
미래! 통합! 행복을 위해
우리 손을 잡고 승리의 길을 가요
미래! 통합! 승리를 위해
우리 힘을 합쳐 미래를 향해 가요
함께!
미래! 통합!
미래통합당! ×2
어두운 세상 우릴 밝혀주는 희망
모두가 하나되는 길 (미래통합)
짙은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 가요
미래통합당!
미래! 통합! 행복을 위해
우리 손을 잡고 승리의 길을 가요
미래! 통합! 승리를 위해
우리 힘을 합쳐 미래를 향해 가요
함께!
미래 (미래통합) 통합 (미래통합당)
승리를 위해 행진

당가의 제목은 승리의 길로서 미래통합당 출범식에서 모두 함께 불렀다.

8. 역사




8.1. 창당 추진 과정



8.1.1. 2019년


  • 2월 27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결과 국민 통합과 보수 결집을 우선 과제로 내세운 황교안 대표 지도부가 선출 및 구성되었다.
  • 4월 1일: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을 주도로 하는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출범하였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는 각계 전문 인사 30여 명이 우리나라 현실을 진단하고 성공한 국가와 실패한 국가 모델을 연구하면서 시작됐다. 자유와 공화 측은 창립 선언문을 통해 북핵폐기와 한반도 항구적 평화와 공영, 경제와 노동 개혁, 정부와 공공부문 개혁, 교육 개혁,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 박형준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은 자유와 공화를 지향하는 정치 세력의 규합과 통합을 통해 정치 혁신에 나설 것이라며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보수 재편의 진앙지가 될 것임을 확인했다. 창립총회에는 유승민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이 참여하였다. 당시 황교안 지도부는 정통 보수를 강조하면서 개혁 보수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 비박과 수도권 의원들 사이에선 "강경 보수만으로는 내년 총선 승리와 집권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개혁 보수를 앞세운 보수의 전면적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전한다. #
  • 8월 20일: 시민단체 '플랫폼 자유와 공화'가 20일 개최한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에서는 보수 대통합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놓고 보수 진영 내에서 엇갈린 견해가 표출됐다. #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보수 정당의 자기 혁신은 불가능하다면서, 기존 보수 정당의 혁신 세력이 중도 기치 아래 통합해야 한다면서 중도 세력을 구심점으로 한 보수 대통합론을 제시했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혁신비상대책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을 묻지 말고 공통의 비전과 철학을 중심으로 뭉치자고 제안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반문연대의 틀 안에서 작은 차이는 무시하는 통합의 길로 가 안철수 전 의원부터 우리공화당까지 끌어안고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한국당 중심의 반문연대 구축에 초점을 맞췄다. 정병국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은 보수진영 통합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선거를 앞둔 인위적 통합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통합에 앞서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등을 돌린 보수 세력들이 반목을 멈추고 생존을 위한 화해와 용서의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황교안 대표도 이때쯤부터 유승민 의원에게 보수통합 러브콜을 보내왔다.
  • 10월 9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자신이 밝힌 원칙에 동의한다면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6.13 지방선거 패배 이후 바른미래당의 분열 조짐 가운데 비당권파 좌장으로서 당내 조직인 '변화와 혁신을 위한 비상행동(이후 새로운보수당)'을 이끄는 유 의원이 처음으로 한국당과의 통합·연대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주목을 끌었다.
유승민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 '개혁보수로 나가자', '낡은 것 다 허물고 새 집 짓자'의 보수 통합 3대 원칙을 강조하였다. '탄핵의 강을 건너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탄핵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그 입장을 분명히 해야만 보수가 살 수 있고, 탄핵에 찬성, 반대로 싸우면 도움이 안 된다며 이를 수용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혁 보수'는 조국 사태 이후 보수가 헌법 가치 가운데 자유뿐 아니라 평등과 정의, 공정의 실현도 의제로 내세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설합당의 방식을 선택하는 데 대해서는 "첫째와 둘째 원칙이 중요하다. 이걸 받아들이면 셋째 원칙은 자연스레 따라온다."라고 언급했다. #
  • 11월 6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총선 승리를 위한 본격적인 통합 추진에 나설 뜻을 알렸다. 당내에는 자유우파 통합 추진 기구를 설치하겠다고 언급했다. 과거가 아닌 미래로 향하는 통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보수 진영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의견차가 있는 데 대해 '불문에 부치자'는 뜻으로 해석되었다. 통합 과정에서는 "한국당 간판을 내리고 새로운 간판을 다는 문제도 논의할 수 있다"고 전격 선언해 바른미래당 내 바른정당계 의원들이 주도하는 제3지대 신당과의 통합도 검토되는 것으로 풀이되었다. 박형준 교수 등이 물밑 접촉에 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

8.1.2. 2020년


  • 1월 14일: 박형준 전 국회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하여 보수통합을 위한 혁신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새로운보수당전진당을 비롯한 수많은 범보수, 중도 정당 및 시민단체에 통합을 제안했다. 전진당은 통합에 참여하기로 했지만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통합을 반대하며 전광훈 목사와 함께 '국민혁명당(현 자유통일당)' 창당을 선언했다. 친박계 극우 우리공화당은 통합에 미지근한 반응으로, 홍문종 공동대표가 독자 친박신당을 창당하겠다고 나서며 오히려 분열하고 있다.
  • 1월 29일: 문병호 전 바른미래당 최고위원, 김영환 전 의원, 장성철 당시 바른미래당 제주도당위원장 권한대행,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옛 국민의당-안철수계 인사들이 박형준 혁통위원장과 회동을 갖고 통합신당이 진정한 범중도·보수 정당이라면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안 전 대표의 측근인 김도식 전 비서실장은 입장문을 내고, 이들의 혁통위 합류 움직임은 그들의 정치적 소신에 따른 것이지 안 전 대표의 정치적 입장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
  • 1월 31일: 혁신과통합 추진위원회 제1차 대국민 보고대회가 있었다. 당초 합당 선언으로 계획되었으나 자유한국당새로운보수당 간의 의견 차를 좁히지 못해 대국민 보고대회로 축소된 것이다. 박형준 혁신과통합 추진위원장은 대회 경과보고에서 범 중도보수 통합을 강조하며 "자유·민주·공화·공정과 창조성·휴머니티"를 핵심 가치로 하겠다고 밝히고 "통합신당이 유일한 범중도보수의 정통 세력임을 선언한다"고 했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통합을 강조하여 당장 아쉽고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함께 바꿔나갈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지금 자유우파가 발휘해야 할 지혜라고 말했다. 반면 하태경 새로운보수당 책임대표는 통합 작업이 막바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국민은 저 통합이 무원칙한 통합이냐, 원칙이 있는 통합이냐 한 가지만 볼 것"이라고 언급하며 원칙을 강조했다. 하 대표는 "'탄핵의 강을 건너자'는 것은 들어와서 치고받지 않기 위함"이라며 통합 이후 내홍을 막기 위해 탄핵 불복 세력에 대해 재차 선을 그은 것이다. #
  • 2월 6일: 혁통위는 통합신당준비위를 출범시키며 20일 안으로 통합신당을 창당하기로 했고 유승민 의원의 입장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새로운보수당의 답장만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유승민 의원이 황교안 대표에게 당대당 통합 대신 선거 연대를 할 것을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통합이 늦어지면서 새로운보수당 소속 구체적인 인사들의 탈당 후 개별 합류 가능성까지 제기되었다. #
  • 2월 9일: 유승민 의원이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민의 명령인 보수 통합을 따라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의 신설합당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 이 자리에서 유 의원은 "지난 10월 제시한 보수 재건 3원칙만을 지켜줄 것"을 강조했다. 자신의 공천권, 지분, 당직에 대한 요구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새로운보수당 중앙당과 시도당 당직자들의 고용승계를 요구하였다. 자유한국당은 유승민 의원의 통합 결정을 반긴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 2월 13일: 자유한국당은 국회에서 전국위원회를 열고 새보수당, 전진당과의 통합을 의결하고 모든 합당 관련 권한을 최고위원회의에 위임한다고 밝혔다. 당명은 통합신당 혹은 대통합신당이 물망에 올랐었으나 결국엔 미래통합당으로 결정됐다.
  • 2월 14일: 총선을 2달 앞두고 전당대회를 치러 새 지도부를 뽑기에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당 최고위에 기존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를 비롯 8명의 최고위원직이 유지되고 거기에 4명의 최고위원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신임 최고위원으로 원희룡 제주지사와 이준석 새로운보수당 젊은정당비전위원장을 우선 내정했다. 보수 시민단체들은 이에 반발해 전원 사퇴했다.
  • 2월 16일: 2개의 중도 성향 청년 정당인 브랜드뉴파티, 같이오름과 청년단체 젊은보수가 미래통합당으로의 합류를 선언했다. 그리고 비어있던 최고위원 2자리에 바른미래당 출신 김영환과 전진당 출신 김원성을 선임하였다.
  • 2월 6~17일: 통합추진위원회는 시민·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약칭 시대연)의 참여하에 자유한국당(황교안), 새로운보수당(유승민), 미래를향한전진4.0(약칭 전진당, 이언주) 3당을 신설합당키로 하고 이를 위한 통합신당준비위원회를 발족했다.
통합신당준비위원회는 2월 6일 15인으로 출범, 2월 10일 김일두(시대연 추천) 추가 위촉, 총16인으로 구성, 2월 14일 시대연 추천 7인 전원 사퇴했다. '혁신공천=총선승리'를 위해 공천관리위원장과 공천관리위원에 시민·사회단체의 참여가 절실하다는 주장이 무산되어 2월 14일 시민·사회단체 출신 공동위원장(장기표)과 통합신당준비위원(김근식, 김일두, 박준식, 안병용, 안형환, 조형곤) 전원 사퇴했다.

공동위원장(5인): 심재철(자유한국당), 정병국(새로운보수당), 이언주(전진당), 장기표, 박형준(이상 시대연)

정치혁신특별위원장: 문병호

통합신당준비위원(10인): 김상훈, 송언석(이상 자유한국당), 정운천(새로운보수당), 김원성(전진당), 김근식, 김일두, 박준식, 안병용, 안형환, 조형곤(이상 시대연)


8.2. 창당 이후



8.2.1. 2020년




9. 소속 의원




10. 계파



계파 분류가 3당 합당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전 공화계, 민정계 세력은 그 후신인 자민련 출신의 몇몇 중진의원을 제외하고[24] 현재는 대부분 정계를 은퇴한 상태다.[25] 민주계 역시 세월의 흐름에 따라 대부분은 정계를 은퇴한 상황이다.[26] 1990년대 민주계와 반민주계의 계파 구도, 2000년대 초반의 이회창계와 반이회창계의 계파 구도는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을 계기로 친박·친이 계파 구도로 재편되었으며[27] 2012년 친박이 당권을 장악한 이후 2020년 총선 때까지 친박·비박 계파 구도를 이어나갔다. 21대 총선 이후 김종인-주호영 지도부가 당권을 잡고 개혁을 추진했는데 당명 변경 전까지 개혁을 추구하거나 동의하는 원내 중심의 당권파와 개혁을 반대하는 원외 중심의 비당권파로 재편되어갔다.
90년대에는 김영삼 대통령의 주도로 신민주계가 탄생하고 YS키즈라고 불리는 상도동계[28]가 많이 늘어났으며 90년대 말 이회창이 당권을 잡은 이후로는 2000년대 초반에는 이회창계가 많이 늘어났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는 박근혜가 당권을 잡은 이후로 친박이 늘어났으며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된 2000년대 후반에는 친이가 늘어났다. 사실 친이계인 수장 이명박 또한 김영삼이 영입한 상도동계이다.
2010년대 들어서 일부 구(舊) 친노가 개별적으로 입당했는데 2012년 새누리당과 합당한 이후에는 공화계이회창계의 후신으로 볼 수 있는 자유민주연합, 자유선진당 계열의 충청계가 당내의 유력한 계파 중 하나로 지금까지 살아남아있다. 또 같은해인 2012년에 합당한 정통민주당 출신의 동교동계도 당내원로의 위치로 존재하고 있다. 이외에 반노 성향의 비교적 젊은 동교동계가 미래통합당이 창당되면서 들어온 사람이 있다.
2017년 새누리당 분당사태 이후에는 친박이 세력을 조금씩 잃었다. 그 틈에서 홍준표가 당권을 잡은 이후 소규모의 친홍이 형성되었으며 친박황교안을 중심으로 당권을 잡은 이후로 부활하는 데 성공했고 친박 중 상당수가 친황으로 탈바꿈했다. 2020년 미래통합당이 창당된 이후로 바른정당 계열의 친무, 친유국민의당 계열의 구(舊) 안철수계, 구(舊) 손학규계가 늘어났다.
핵심적인 계파로 분류하자면
  • 김영삼 중심으로 상도동계[29]YS키즈[30]
  • 유승민을 중심으로 한 친유[31]
  • 김종필청구동계를 기원으로 해서 이회창을 중심으로 뭉쳤던 이회창계를 포함한 일부 충청계 인사들[32]
  • 손학규를 중심으로 뭉쳤던 구(舊) 손학규계[33]
상도동계 정치인들과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아직까지도 소수로나마 남아있다. 참고로 친이계의 수장인 이명박은 원래 운동권 출신이기도 하다.[34]
상도동계가 중심이던 문민정부에서 갈려나간 계파들이 바로 공화계와 민정계 세력들이다. 이때 상도동계와 운동권 세력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운동권1987년 민주화 이후로 분열했는데, 각자 성향에 따라 보수 또는 진보로 세력을 틀면서 현재까지 남아 있다. 남아있던 민정계와 공화계는 신한국당 시절 몰락했으나 1997년 문민정부의 몰락, 이회창 대선후보와 협력 관계 등을 통해 부활하는데 성공했고 이후 정계은퇴하고 친박계 원로가 되었다.
친박의 경우, 일부가 공천에서 탈락하는 등으로 줄어들었다. 정확히는 대부분이 친황으로 변모했다. 그래서 친황친박의 계파 중 하나로 구분되기도 했다. 그러나 21대 총선을 계기로 황교안 체제가 망하는 등으로 크게 쪼그라들면서 당의 무수히 많은 계파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특이하게 2월 보수통합으로 안철수국민의당 당적을 가졌던 인사들이 통합에 합류했는데, 개별 입당의 방식이므로 이들이 단일대오를 구성할지는 미지수였다. 실제 안철수 등 이들의 중심을 흡수하진 못했다. 종잡을 수 없는 성향을 보이는 이언주를 제외한다면 미래통합당 내에서 가장 중도적인 인사들이긴 했다. 심지어 민주당계 정당에 20년 넘게 몸담았던 김영환도 있을 정도. 민주당계 출신은 꽤 있다. 원유철새정치국민회의, 새천년민주당에 있었고, 김성태 또한 원래는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의원으로 당선된 적이 있었다.
손학규계이찬열임재훈, 장진영도 합류하였는데, 임재훈은 패스트트랙 찬성에 대한 징계 차원에서 컷오프당했다. 이찬열 의원도 3선의 지역구 경쟁력에도 불구하고 패스트트랙 찬성이라는 원죄를 피하지 못하고 컷오프 당했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이 개헌 저지선만 간신히 확보하며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이에 따라 친박과 비박이라는 당내 계파 지형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새누리당 이후 2017년 이전까지는 비박, 친박의 양대 구도였지만, 21대 총선 이후로는 친박이 크게 몰락하였다. 총선 직후 계파들의 군웅할거 상황에서 2021년 재보궐선거까지의 임기 보장을 조건으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추대되면서 김종인-주호영 지도부가 탄생하였는데 이전에도 보기 힘든 강도로 당의 개혁을 시작했다. 그래서 계파를 떠나서 개혁을 추구하거나 찬성하는 원내 중심의 당권파와 개혁을 반대하는 원외 중심의 비당권파로 나눠졌다.
  • 황교안 대표가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모든 당직에서 사퇴했다. 경제 실정·조국 사태·코로나19 등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전혀 살리지 못했고, 노무현 탄핵 사태 이후 치뤄진 17대 총선의 패배보다도 훨씬 더 한 대한민국 보수정당 역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고 황교안이 함께한 원외세력들이 당 지도부의 참석거부에도 불구하고 광복절 광화문 집회를 강행하면서 총선 이후 중도쇄신의 노력으로 여당의 지지율을 역전했던 것이 다시 재역전을 당하는데 일조했다. 이로 인해서 극우적인 기독교 우파 이미지가 강화되어서 사실상 황교안의 정치 생명은 끝났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친황 세력도 몰락했다.
  • 홍준표, 김태호, 윤상현, 권성동컷오프를 극복하고 무소속으로 당선되어 돌아왔다. 향후 이들의 당내 입지가 강화되어 차기 지도부에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 총선 이후 복당하려는 움직임은 전혀 없다. 미래한국당 입당을 통한 우회 입당 방법을 시도하려고도 했지만 미래한국당이 미래통합당과 재빨리 통합하는 바람에 불가능하게 됐다.
  • 7명이 당선된 유승민계에 대한 전망은 언론사별로 판이하다.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친유계가 나름대로 선전했고, 총선 이후 정국에서 유승민이 보수 재건의 구심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중앙일보오신환, 이혜훈, 지상욱 등 친유계 현역 의원들이 줄줄이 낙선했다는 점을 들어 오히려 당내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 보고 있다. 그래도 유승민은 타격을 적게 받은 편이고, 대경권에서 김희국, 류성걸, 강대식이 살아남고, 부울경에서는 하태경, 조해진이 살아남은데다 수도권에서는 김웅, 유경준, 유의동, 김은혜, 권영세가 살아남았으며 비례대표의 경우 정운천, 신원식 등이 살아남아서 당내 입지가 좁아졌다고 보기는 힘들다.
  • 당내 안철수계는 21대 총선에서 전멸했다. 기사 총선 이후에도 뚜렷한 활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의당이 겨우 비례대표 3석 밖에 얻지 못하면서 안철수가 통합당과의 연대 또는 합당을 통해 세력 확장을 노릴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사
  • 공천 과정·선거 패배를 거쳐 당내 친박이 줄어들었고, 기독자유통일당·우리공화당·친박신당극우정당들도 원외정당으로 전락했다. 중도 외연 확장을 방해할 세력은 이제 소멸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기사

11. 지지 기반




12. 역대 지도부


'''대수'''
'''이름'''
'''임기'''
초대
황교안 (黃敎安)
2020년 2월 17일 ~ 2020년 4월 15일
대행
심재철 (沈在哲)
2020년 4월 16일 ~ 2020년 5월 8일
주호영 (朱豪英)
2020년 5월 8일 ~ 2020년 5월 31일
비대위
김종인 (金鍾仁)
2020년 6월 1일 ~ 2020년 9월 2일



12.1. 통합추진위원회


2020년 1월 14일 ~ 2020년 2월 6일
[1]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는 2월 18일에 등록되었다.[외] 2개 창당준비위원회 합류: 브랜드뉴파티, 같이오름[2] 고전적 자유주의를 계승한 이념 중 하나로서 정부가 재정지출과 부채에 신중해야하며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 정부가 재정정책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것을 주장하는 이념이다. 감세정책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대표적인 재정보수주의 성향의 정책으로 재정준칙의 도입 및 상시적인 지출 구조조정, 페이고 원칙의 도입 등이 있다.[3] 고전적 공화주의의 전통을 계승한 현대적 공화주의는 공공선을 위해서 개인의 자유를 일부 제약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현재 한국 보수정당의 공동체주의 분파다. 그래서 기본소득 도입, 복지 확대에 대해서 호의적이다. 그 외 시민의 미덕과 시민들의 공적 영역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를 주장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유승민이 있다.[4] 독일식 사회자유주의로서 사회적 시장경제의 개념을 주장하며 현재까지 독일식 보수주의에 녹아들어있다. 경제민주화를 외치는 김종인 등 자유주의 중도파가 해당된다.[5] 이명박 정권이 녹색 성장을 제창한 것이 기원이 되었다고 본다. 다만 새누리당 시절까지도 단순 선언의 수준에 불과했고 자유한국당 때는 심지어 당의 정강·정책에서 빠지기까지 했지만 새로운 정강·정책에 다시 부활했으며 구체화되었다. 기후변화에 대비해서 시장자유주의 경제의 관점으로 친환경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이념이다.[6] 지역구 84석, 비례대표 19석[7] 당명이 국민의힘으로 바뀌면서 링크가 국민의힘 공식 사이트로 연결된다.[8]자유한국당의 블로그로 공식 블로그이다.[9]새로운보수당의 블로그로 공식 블로그이다. 다만 업데이트는 없는 상태.[A] [10] 6개월 15일 총 195일. 그 신한국당도 준 2년, 정확힌 1년 11개월 존속했으며 단순 당명 변경이기에 민주자유당의 역사까지 합치면 7년이다.[11] 민주자유당 창당 이후 민자당-신한국당은 늘 여당이었고 한나라당이 창당 되면서 대선에서 패하고 10년간 야당생활을 했지만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여당이 되었고 이후 2012년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교체하며 새누리당은 당명을 자유한국당으로 교체하기 전까지 늘 여당이었다. 자유한국당은 탄핵 정국에서 당명을 교체해 아직 여당의 지위에 있었을 때였고 한달간 여당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미래통합당은 야당으로만 존재했던 최초의 보수정당이다. 여당과 야당을 동시에 경험해 본 정당은 한나라당과 자유한국당이 있다.[12] 한나라당은 이후 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며 '''22년 3개월''' 동안 존속해 '''대한민국 역사상 최장수 정당'''이었으나, 2020년 중도·보수 대통합을 이뤄 미래통합당을 창당함에 따라 해산되었다. 그러므로 한나라당, 새누리당,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과는 법적으로 다른 법인이다. 그러나 고유번호는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다.[13] 한국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들인 이승만-박정희-김영삼 대통령 사진이 당사에 여전히 걸려 있으며 민주자유당에서부터 이어져온 여의도연구원을 계속 싱크 탱크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 등을 볼 때, 역대 대한민국 보수정당의 계보를 잇는 적통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통합당 대변인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해낸 정당이라는 말을 논평에서 하는 편으로 볼 때 1960~1980년대의 권위주의 정치세력과 그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이어온 민주화 세력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14] 평화민주당은 이후에 1990년대를 거치면서 신민주연합당민주당통합민주당으로 바뀌고, 그 과정에서 김대중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하며 분당했다. 후에 통합민주당이 신한국당과 합당한 한나라당이 되었다. 민주당계 정당의 적통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김대중이 1995년에 창당한 새정치국민회의의 법적 후신 정당이다.[15] 1979년의 10.26 사건12.12 군사반란 그리고 1980년의 서울의 봄5.17 내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참조[16] '연석회의', 중도·보수 통합신당 추진 촉구...'야권재편' 시작, `중도·보수빅텐트` 가시화할까…공천·선대위·비례당 관건, 안철수계 공동토론회서 '중도·보수 빅텐트' 언급… 향후 노선 '고심'[17] 정확히 말하자면 중도~중도우파 성향의 계파[18]공화주의로도 부를 수 있어보인다.[19] 통합당, 새 당명 '국민의힘' 의결… 중도‧실용 표방(종합)[20] 유승민을 공화주의자라고 부르는데 보수주의 중 하나로 본다면 여기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21] 스페인의 중도좌파정당인 사회노동당은 2000년대 초반 집권시기 중도주의 이념인 신공화주의를 수용하기도 했다.[22] 공식 명칭은 해피 핑크.[23] 함께는 더불어민주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새정연 시절 민주당이 당명을 바꾸려 할 때 후보로 있었던 이름 중 하나이며, 다함께 희망으로는 더불어가 연상된다. 제일 많은 국민도 당장 국민의당과 통합을 하지 않는 이상 사용이 어렵고.[24] 현재 공석으로 비워진 국회 부의장으로 유력시 되는 5선의 정진석 의원과 4선의 이명수 의원[25] 은퇴한 몇몇 민정계 정치인들은 현재 상임고문으로 활동중이다.[26] 상도동계 막내에 속하는 김무성, 정병국 등은 정계은퇴 선언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2020년 총선에서 불출마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있다. 다만 정병국 전 국회의원은 김선교의 수사향방이나 차기 행보에 따라 여주시·양평군에 출마할 가능성이 높기도 하고, 경기도지사 등 타 관직으로의 출마 가능성이 존재하기도 한다. 물론 청년정치학교 교장으로 재임 중이다.[27] 큰 틀에서는 군사정권에 우호적이던 공화계와 민정계는 친박에 대부분 흡수되었으며,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민주계는 친이에 대부분 흡수됐다. 따라서 친박과 민정계를, 친이와 민주계를 겹쳐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계이지만 친박으로, 공화계 또는 민정계이지만 친이로 간 사례도 일부 존재한다.[28] 대표적으로 김무성, 정병국. 참고로 정병국은 미래통합당의 뿌리를 3당 합당 때로 보고 있다. #[29] 박관용, 정병국, 김무성 등.[30] 홍준표, 이회창, 이명박, 정의화 등이 있다. 다만 이회창은 이후 삼김시대 청산을 주장하며 김영삼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하였다. 노무현도 원래는 YS키즈였으나 3당 합당에 반발해 김영삼 곁을 떠나 김대중에게 갔다.[31] 그런데 김희국, 진수희, 정병국, 박정하, 김은혜, 조해진, 류성걸친이 출신들도 있고, 하태경, 오신환, 지상욱처럼 계파색이 약한 인사들도 있는데다, 이혜훈, 유의동, 구상찬과 같은 구 친박 출신들도 존재해서 어떻게 보면 민주계로 분류되기도 한다.[32] 충청계 대표 정치인이었던 김종필은 2018년 사망했고, 이후 주자였던 이회창은 정계 은퇴를 한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는 각자 도생하고 있다. 한때 유승민은 원조 친박이기 전에 이회창계이기도 하기에 친유나 성향이 자유보수주의로 비슷한 친이에도 꽤 있는 상황이다. 김종필을 중심으로 했던 자유민주연합에서는 자민련에서 첫 의정활동을 했던 정진석 의원이나 자민련으로 정계를 입문한 이명수 의원 정도만 남아있다.[33] 다만 현재 손학규계는 와해된 상태이고, 미래통합당 내 손학규계 정치인들은 개별 입당한 경우이다.[34] 고려대학교 재학 시절에 한일수교 반대를 위한 6.3 항쟁에 참여했다가 체포 및 투옥 되었고, 소요죄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 정치권(6인)
    • 김상훈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 이양수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 정운천 새로운보수당 공동대표
    • 지상욱 새로운보수당 공동대표
    • 송근존 전진당 창당준비위원회 통합추진위원장
    • 정경모 국민소리당 창당준비위원회 부위원장
  • 시민단체(6인)
    • 이갑산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상임대표
    • 박인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 박상덕 원자력국민연대 공동대표
    • 김근식 경남대 교수
    • 신용한 서원대 석좌교수
    • 김은혜 MBN 앵커·특임이사
    • 안형환 국민통합연대 사무총장 (前 한나라당 의원)

12.2. 창당준비위원회


2020년 2월 6일 ~ 2020년 2월 17일
  • 창당준비위원회
    • 창당준비위원장 (5인)
      • 박형준
      • 심재철
      • 정병국
      • 이언주
      • 장기표[사퇴] (2020년 2월 6일 ~ 2020년 2월 14일)
    • 창당준비위원 (15인)

12.3. 초대 지도부


2020년 2월 17일 ~ 2020년 5월 31일
  • 대표
    • 황교안[A][사퇴][35] (2020년 2월 17일 ~ 2020년 4월 15일)
    • 심재철 권한대행 (2020년 4월 17일 ~ 2020년 5월 8일)
    • 주호영 권한대행 (2020년 5월 8일 ~ 2020년 5월 31일)
  • 최고위원
    • 당연직
      • 원내대표: 심재철[A]주호영
      • 정책위의장: 김재원[A]이종배
    • 선출직[A]
      • 조경태 ,수석최고위원,
      • 정미경
      • [탈당][36] (2020년 2월 17일 ~ 2020년 3월 4일)
      • 김광림
      • 신보라 ,청년최고위원,
    • 지명직[38]
      • 김영환
      • [탈당][37] (2020년 2월 17일 ~ 2020년 3월 25일)
      • 이준석
      • 원희룡



  • 대표비서실장: 김명연이상일[39]

  • 통합추진위원회는 총선을 앞두고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대신, 자유한국당의 지도부를 준용하며 4명의 최고위원을 추가로 임명하는 방식으로 지도부를 꾸리기로 합의했다.
  • 위 지도부는 21대 총선을 얼마 남기지 않고 급조하다시피한 지도부이기 때문에, 총선 이후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로 재편될 것이라고 한다. #

12.4. 비상대책위원회


2020년 6월 1일 ~ 2020년 9월 2일
[A] A B C D 자유한국당에서 승계[사퇴] [35] 21대 총선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였다.[탈당] A B [36] 공천 배제로 탈당 선언 및 최고위원직 사임. 이후 미래한국당으로 이적[37] 공천취소 후 탈당. 이후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38] 미래통합당을 창당하며 새롭게 임명한 최고위원이다.[39] 심재철 당대표 권한대행 비서실장




  • 2020년 4월 28일 상임전국위원회에서 의결 정족수 미달로 비상대책위원회 임기 연장을 위한 당헌 개정이 무산되었고 그럼에도 미래통합당 전국위원회에서는 김종인의 비대위원장 임명안이 가결되었으나 김종인은 비대위원장직을 거부하였다. #
  • 2020년 5월 22일 21대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의 뜻대로 1년동안 임기를 보장하도록 합의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같은날 오후 5시 김종인의 사무실을 찾아가 면담을 하였고 김종인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였다. #
  • 2020년 5월 27일 당헌 개정을 위한 상임전국위를 다시 열었고 비대위 임기를 2021년 4월 재보궐선거까지 연장했으며, 같은 날 지명직 비대위원 인선도 완료했다. #
  • 2020년 6월 1일 공식 출범했다.
  •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의 출범으로 한나라당 시절부터 미래통합당까지 10년간 8번의 비대위를 구성하는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13. 원내 지도부



'''국회'''
'''기수'''
'''대수'''
'''이름'''
'''임기'''
'''비고'''
20대
5기
초대
심재철 (沈在哲)
2020년 2월 17일 ~ 2020년 05월 08일

21대
1기
제2대
주호영 (朱豪英)
2020년 05월 08일 ~ 2020년 9월 2일
[40]

13.1. 제20대 국회



13.1.1. 심재철 지도부[A]


2020년 2월 17일 ~ 2020년 5월 8일
[40] 2020년 6월 15일에 이종배 정책위의장와 함께 사의를 밝혔으나 # 다음날인 2020년 6월 16일에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와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재신임되었다. #[A]

  • 당헌의 부칙에 따라 구 자유한국당의 지도부를 준용하였다.

13.2. 제21대 국회



13.2.1. 주호영 지도부


2020년 5월 8일 ~ 2020년 9월 2일


14. 시도당 지도부



15. 상임고문단



  • 김수한[국회의장]
  • 신영균
  • 정재철
  • 나오연
  • 서정화
  • 윤영탁
  • 김종하
  • 이한동[국무총리][당대표]
  • 이연숙
  • 권해옥
  • 박헌기
  • 김기배
  • 김용갑
  • 정재문
  • 이세기
  • 이해구
  • 김동욱
  • 최병렬
  • 박관용[국회의장]
  • 김영구
  • 정창화
  • 하순봉
  • 권철현
  • 강재섭[당대표]
  • 목요상
  • 유흥수
  • 문희
  • 신경식
  • 이재오
  • 최병국
  • 이상배
  • 이인제

16. 선거




16.1. 국회의원 선거


'''연도'''
'''선거명'''
'''지역구 (비율)'''
'''비례대표 (득표율)'''
'''총 의석 (비율)'''
'''결과'''
2020년
21대
84 / 253 (33.2%)[41]
후보를 내지 않음 [42]
84 / 300 (28.0%)
원내 2당[43]

16.2. 재보궐선거


'''연도'''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국회의원'''
'''광역의원'''
'''기초의원'''
2020년

3 / 8

10 / 17
17 / 33

17. 여담


  • 중국인 입국금지에 관해선 당내 반응이 엇갈리는데, 중국인 입국 금지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정부와 여당을 일제히 비난하기는 하나, 이준석 등은 전면 입국금지는 무리수라며, "상용 비자를 엄격한 심사를 통해서 내주되 단기 단체 관광 비자 같은 것은 통제하자"는 의견을 개진하기도 하였다.
  • YMCA 측에서 개최한 전국 청소년 모의투표에서는 전국이 전부 다 더불어시민당이 1위였으며 그나마 경북, 경남, 부산만 미래한국당이 2위였다. 그러나 해당 모의투표는 정확하게 청소년들의 민심을 포착했다고 보기는 매우 힘든 것이, 이 전 YMCA에서 개최한 모의투표의 결과도 보면, 민주당 다음으로 페미니즘 정당인 여성의당 지지도가 2위를 다투는 것을 볼 수있다. 해당 모의 투표의 존재를 모르는 청소년이 엄청나게 많은 데다가 주로 페미니즘 성향을 가진 적지 않은 수의 청소년들이 신좌파 정당에 참가한 영향이 크다. 이러면 당연히 미래통합당의 지지도가 낮게 나올 수 밖에. 21대 총선 전에 일반 청소년 투표 비율로는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남성 한정으로 미래통합당도 그리 낮지 않은 결과를 볼 수있다.
  • 21대 총선 역대급 참패의 영향으로 창당 후 198일, 비대위 출범 후 99일만인 9월 2일 당명 개정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미래통합당'이라는 당명은 흑역사이자 주요 보수정당 최단기 당명으로 남게 된다.[44]
  • 2020년 8월 25일 김종인 비대위원장 등이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을 찾아가 면담했으나, 일행 중 김미애 미래통합당 의원이 비말 차단 효과가 없는 망사 마스크를 쓰고 정은경 본부장을 대면하여 거센 비판을 받았다. 자칫 국가 방역의 핵심인물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 침 튀는 망사마스크 쓰고 정은경 본부장과 면담이라니...

18. 비판과 논란




19. 둘러보기






[국회의장] A B [국무총리] [당대표] A B [41] 지역구에 공천한 후보 목록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후보자/미래통합당 문서 참고.[42] 미래한국당(비례위성정당)에 후보를 내었다. 자세한 내용은 미래한국당 문서 참고.[43] 개헌저지선 붕괴,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포함 시 신속처리법안 저지선 및 필리버스터 무력화 저항선 붕괴[44] 당명 수명이 짧은 편인 신한국당, 자유한국당도 각각 2년과 3년은 갔는데, 미래통합당이란 당명은 최대 7개월 존속했다. 이보다 짧은 건 2005년~2009년 민주당계 정당 암흑기에서도 통합민주당 5개월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