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clearfix]
1. 개요
2012년 2월 2일 민주자유당부터 신한국당을 거쳐온 한나라당[3] 이 19대 총선 승리를 위해 당명을 교체하여 새로 출범한 정당이다.[4][5] 기존 한나라당은 이름이 바뀐 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정당등록면허증을 새로 발급하기 때문에 한나라당 명칭은 없어졌다.[6]
새누리당은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내세우면서 이명박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해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변경했던 당명으로 보수 도약을 선언했으나, 한나라당에서 변화한 계기 자체가 10.26선거 패배와 DDoS 사건 등으로 말미암은 위축, 그리고 야당 통합 운동을 통한 성장 탓이 크므로 혁신이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과거 부정 차원에서 새 출발이라는 느낌이 더 강한 것이 아니냐는 평도 있다.
다만, 새누리당 창당 이후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며 복지를 전면 공약으로 들고 나온 점 등으로 인해 새누리당 측이 과거 한나라당 시절만큼 정통 보수 성향을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도 있다. 이는 양극화가 심화되는 등 청년층 사이에 반보수 성향이 굳어지자 한나라당 시절부터 '보수' 문구 삭제 등을 놓고 논쟁을 벌이며 이미 나타난 모습이긴 하다.
다만, 이는 경제 부분에 한정된 얘기로 당내 최대계파였던 친박계부터가 사회이념적 부분에선 자유주의적 보수가치보다 오히려 국가주의적 성향을 띤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 부분도 이후 경제활성화를 강조하며 다시 보수가치로 돌아가려 한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실제 이런 친박 패권주의와 사당화를 비판하며 2016년 12월 27일 비주류 의원들이 집단 탈당하여 바른정당이 탄생하였다.
2017년 2월 13일에 자유한국당으로 개명하였다. 정확히는 당명만 바뀐 것이지 해산 후 재창당 같은 방식은 아니지만 문서가 너무 길어질 수 있고 이념 스펙트럼도 그 전보다 좁아졌기에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등의 선례를 따라 별도 문서로 작성되었다. 이후 친박 성향의 국민이 새누리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당시 홈페이지 도메인은 'www.saenuriparty.kr', 공식 트위터 계정은 '@saenuridang'이었다.
2. 정강·정책
2012년 2월 13일 한나라당의 정강·정책을 전면 개정해서 만든 판이다.[7]
2.1. 국민과의 약속
새누리당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며 모든 정책의 입안과 실천에 있어 오로지 국민의 뜻에 따를 것임을 약속한다. 우리 국민은 일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수 많은 대내외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건국했음은 물론,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룩해 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보수적 가치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자기혁신과 희생 그리고 책임정신을 통해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발전을 주도해왔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정치군사적 분쟁으로 전 세계적 차원의 불확실성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국가발전과 국민행복 사이의 간극 확대, 성장 잠재력의 정체와 일자리 없는 성장,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저출산ㆍ고령화의 가속화 등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와 같은 위기와 시련을 현명하게 극복함은 물론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세계 속에 당당한 나라, 모든 국민이 함께 인간다운 삶을 누리는 ‘국민행복 국가’를 만들 것을 국민 앞에 약속한다. 이를 위해 기존 정강정책을 전면 개정하여 새로운 『국민과의 약속』을 제시하고, 이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우리는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것이 시대적 요구임을 깊이 인식하고, 촘촘한 사회안전망과 실효성 있는 복지제도를 확립한다. 평생맞춤형 복지체제를 구축하여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국민의 자아실현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무너진 ‘기회의 사다리’를 복원하여 대한민국의 사회적 역동성을 다시 회복한다.
우리는 공정한 시장경제를 추구한다. 자율과 책임, 분권과 창의, 개방과 경쟁을 통해 경제활성화를 도모하되,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질서를 확립하여 사회적 불균형과 격차를 줄이는 한편, 성장과 개방의 혜택이 온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도록 한다.
우리는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추진한다. 이를 통해 남북한의 평화 유지와 공동발전을 도모하며, 장차 전개될 통일한반도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간다. 한반도 비핵화는 반드시 실현시킬 것이며, 한반도 평화와 국익최우선을 목표로 원칙과 유연함이 조화를 이루는 균형외교를 추진한다.
우리는 법치주의와 권력분립 그리고 지방자치의 원칙을 더욱 공고히 하고, 문화강국을 지향하며, 언론의 자유를 적극 보장하고, 재외국민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한다. 소통과 공론의 활성화를 통해 국민의 뜻을 정책에 적극 반영하는 한편, 뼈를 깎는 노력으로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 정책정당, 국민정당, 전국정당으로 거듭 태어난다.
우리는 ‘국민행복 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추진의 실천규범으로 조화와 통합을 지향한다. 성장과 복지, 시장과 정부,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 환경과 개발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념·지역·세대·계층 간 갈등을 해소하는 국민통합적 접근 방법을 모색한다.
2.2. 기본정책
10대 약속 23개 정책
1.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복지국가
1-1 국민 행복을 위한 평생맞춤형복지
1-2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존중
2. 일자리 걱정없는 나라
2-1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
2-2 청년일자리 대책 중점 추진
2-3 노인과 장애인 맞춤형 일자리 대책 추진
3. 공정한 시장경제
3-1 공정한 시장경제질서 확립을 통한 경제민주화 구현
3-2 과학기술과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를 통한 성장잠재력 제고
4. 기회균등의 창조형 미래교육
4-1 교육기회균등의 실현과 공교육 강화
4-2 창의와 인성을 갖춘 인재 양성
4-3 평생학습사회의 구축
5. 다양함을 존중하는 소통과 배려의 사회문화
5-1 가족가치의 극대화
5-2 안전한 나라
5-3 양성평등사회의 구현
5-4 열린 문화사회와 나눔 공동체
5-5 700만 재외동포 지원과 한민족 네트워크 강화
6. 지속가능한 친환경사회
6-1 친환경사회와 녹색성장
7. 한반도 평화와 국익중심의 국방외교
7-1 굳건한 안보체제의 확립과 군복무시스템개선
7-2 국익과 신뢰에 기반한 평화지향적인 균형외교
8. 통일한반도시대의 주도
8-1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노력 강화
9. 국민과 소통하는 신뢰의 정치 구현
9-1 미래지향적 선진정치
9-2 실질적 지방화와 분권화
10.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신뢰정부
10-2 국민의 삶을 책임지는 강한 정부
10-2 나라살림 잘 꾸려가는 유능한 정부
3. 당의 상징
- 한국어: 새누리당
- 영어: Saenuri Party
- 중국어
- 일본어
- 신자체 한자 사용: セヌリ党
- 발음 표기
- 현대 가나 표기법: セヌリとう
- 헵번식 로마자 표기법: Senuri-tō
- 일본어의 외래어 표기법: 세누리토
사이비 종교인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교주 이만희가 당명을 자신이 지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천지 이만희, 새누리 당명 '내가 지어 준 것' 자랑 새누리당의 후신인 미래통합당은 이 발언에 관해서 명예훼손죄로 고발했다.
로고 제작을 주도한 사람은 에이스침대 카피라이터 출신인 조동원 홍보기획본부장이다. 원래는 야당 성향에 나꼼수 애청자였지만 영입된 후엔 '새누리 150석'을 위해 뛰었다. '국민을 품는 그릇이자 미소를 상징하는 입술, 세로로는 국민 목소리를 듣는 귀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조동원은 당색으로 빨간색을 쓴 데는 '붉은 악마와 같은 젊은 세대 선호와 기호를 반영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색 발표 초창기에는 보수지지층을 중심으로 빨간색 자체가 소위 '빨갱이'를 연상시켜 보수 우파 당색과 매치하기 어렵다고 반발이 나왔다. 이외에도 새누리당 측에서는 백의민족의 흰색 배경에 열정의 붉은색을 표현했으며, 태극기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태극기와 매치도 하고 한나라당을 대표하던 색도 계속 쓸 겸 겸사겸사 결국 검정색 글씨를 파란색으로 바꿨다.
한편 붉은색(퓨처 레드)을 당 색으로 사용하고 있는 진보신당이 이를 두고 자신의 색을 강탈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8]
출범 당시에는 새누리당 도메인이 될만한 saenuri.or.kr, saenuri.org[9] , saenuri.co.kr, saenuri.net, saenuri.com이 전부 다른 교회 내지는 단체가 소유하였다. 그러나 saenuriparty.kr라는 도메인으로 무난하게 등록을 성공했다.
4. 당가
5.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해체 위기
2016년 일어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그야말로 새누리당은 존폐위기에까지 이르렀다. 박근혜 대통령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고, 이후 대통령 임기동안 대통령을 보좌해 집권여당으로서 같이 국정 운영에 협조했음에도 최순실에 의해 국정 농단되고 있는 것을 아예 알지도 못했을 뿐더러 사전에 예방하려고 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치명적인 과오였다.
김무성 의원은 현재의 사태에 새누리당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새누리당을 탈당하라는 요구를 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조원진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김무성 의원에게 말조심하라고 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당해산의 위기에까지 몰린 상태다.
게다가 당 외부요인으로 역시 새누리당에게는 한없이 불리하게 돌아가는데 대구에서 여고생이 시국발언을 하는가 하면 국내외적으로 박근혜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가 빗발치고 있다. 심지어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정훈 치안정감이 평화롭게 시위해줘서 고맙다며 앞으로도 시위를 허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등 경찰들도 진압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가히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정권에서 쫓겨났을 때를 방불케 하는 분위기다.
현재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집권여당으로서 전혀 뒷수습을 하지 못하는 등 사실상 식물 정당으로 전락해 버렸다. 게다가 현 새누리당의 주 세력인 친박계는 뒷수습은 커녕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폭발한 민심과는 정 반대로 촛불시위를 폄하하거나, 종북몰이를 하거나, 대통령 비호에만 급급한 모습을 국민들에게 적나라하게 보이고있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게 되어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치명적인 정치적 오점을 고정지지층의 도움으로 넘겨 정당해산을 모면한다 하더라도 박근혜가 임기를 다 채우든 하야해서 중간에 대통령을 그만두든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새누리당으로 출마하면 무조건 낙선이라고 봐도 정확할 정도로 미래가 지극히 어둡다. 그 정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대선에서 새누리당으로 출마하는 후보는 앞으로 정치생명이 끝나버릴 가능성도 거론되는 수준이니... 실제로 이후 대선 후보는 이전 박근혜 정권과의 관계가 두고두고 발목을 잡힐 수밖에 없다.
다만, 새누리당에서 나가떨어진 지지층 중 다수가 바로 야당 지지층으로 돌아서지는 않고 부동층에 상당수 머물러 있다는 것은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인 점이었으나...약 1달의 시간이 지나면서 11월 말을 기점으로 부동층도 점점 야권에 흡수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새누리당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까지 포함해도 이미 당 지지율 역대 최저치를 갱신한 지 오래되었다.
그래도 일각에서는 시간을 끌며 비토 여론이 식어가기를 기다린 다음 당명을 바꾸고 박근혜를 탈당시키는 등 각종 개혁조치를 내놓으면 숨어있던 고정 지지층들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반쯤 희망섞인 추측도 있긴 하다. 더 나아가 야권 지지층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로 제13대 대통령 선거처럼 야권의 분열로 인한 표 분산과 북풍, 그리고 반기문이 박근혜를 설득해서 하야시키는 모습을 연출하고 새누리당의 추대를 받아 대통령 출마를 하면서 보수표 재결집과 중도층 표를 얻고 보수정권 재창출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집권 여당으로서 있는 동안 전혀 몰랐다고 한 것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막장성에 경악하고 있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제대로 해명할 수 있을지와 친박의 노골적인 러브콜을 받아 사실상 여권주자로 인식되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경우 무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파에 따라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새누리당이 무너지는 이 상황에서 반기문이 과연 이 당에 오긴 할지조차 확신이 없는 상태. 이미 새누리당을 포기한 반기문이 제3지대로 갈 것이란 예측도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게다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시작으로 비박계와 친박계의 당 내부 갈등도 더욱더 심화되고 있는데, 20대 총선 공천학살 및 노골적인 차별로 인해 심각해진 계파 분열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계기로 제대로 터졌다는 평. 게다가 2016년 11월 20일 검찰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피의자 신분으로 규정함에 따라 탈당도 이어지고 있다. 비박계 김무성 전 대표의 경우 본인이 먼저 헌법을 위반한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공언한 상태.
11월 24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11월 4주차 주간여론조사에서는 전주보다도 하락한 12%의 당 지지율로 16%의 국민의당에게도 밀려 창당 후 최초로 제3당으로 추락하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게 되었다. 이는 신한국당 - 한나라당 - 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범보수정당 사상 최악의 수치다. 지지율 1위인 더불어민주당(34%)과는 3배 가까이 차이가 나며, 이제는 정의당(7%)과도 경쟁해야될 판국에 놓였다(...). 여의도 정계에서는 이 지지율 하락이 새누리당 의원들의 본격적인 엑소더스의 신호탄이 될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다만 상황이나 신념에 따라 분당하는 게 익숙한 다른 정당과 달리 크고 강력한 거대 정당을 떠나서 살아본 적이 없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과연 분당을 선택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는 사람들도 있다. 새누리당이 분당했다는 가정 하에 친박계 정당과 비박계 정당을 놓고 정당 지지 여론조사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12월 16일 발표된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판세는 비슷해서 더민주 지지율이 40%까지 오른 반면, 새누리당은 15%로 표류하고 있다.
5.1. 비박계의 비상시국위원회
한편, 지지율이 급락해 정의당과 비슷해진 사태 해결을 위해 당내 비박계가 모여 비상시국위원회란 단체를 구성하고, 정국수습과 탄핵문제 등을 모의했다. 자세한 내용은 비상시국위원회 항목 참조. 그리고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된 몇일 뒤인 2016년 12월 13일 해체를 선언하였다. 이후 바른정당으로 재편되었다.
5.2. 친박계의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수세에 몰린 친박계 중진이 긴급회동을 가져 13일에 결성된 친박계 모임이다. 현역 의원 50여명 등이 참여하여 출범한 ‘구당모임’으로서 비박계의 비상시국위원회와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혁신과 통합 보수연합 항목 참조. 그리고 여기 또한 2016년 12월 20일 해체되었다.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재편되었다.
5.3. 새누리당 분당 사태
2016년 12월 13일 김무성 전 대표가 '''"새누리당 재산 얼마인가 우리가 알아보진 않았지만 이 또한 과거 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에 재벌들을 등쳐서 형성한 재산이라는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국가에 다 헌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실제 김무성 전 대표를 비롯한 비박계 입장에선 분란을 주도한 친박계 핵심인사 몇 명을 짜르고 아예 당 해체 수준으로 가는 혁신안을 내놓지 못하는한, 보수세력이 살아나지 못할 것이란 절박감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친박 vs 비박 구도 속에서 비박이 분당할 것이란 예측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또한, 바른정당 이전부터도 친이계의 중진 이재오를 필두로 한 친이계 일부가 늘푸른한국당이라는 신당 창당을 준비하면서 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6년 12월 20일, 신중론적인 입장이였던 유승민 역시 탈당으로 의견을 같이 했고, 비박들이 탈당을 선언하면서 분당은 현실화 되고 말았다.# 2017년 창당된 새로운 신당은 바른정당으로 불리고 있다.
이 사태는 2020년 미래통합당으로 합당되기 전까지 3년간 1990년 이후 처음으로 복수의 유력한 보수야당이 보수지지층을 놓고 경쟁하는 시대로 접어들게 했다.
6. 역사
6.1. 2012년
- 새누리당/2012년 문서 참고.
6.2. 2013년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직선제 이후 처음으로 과반 득표에 성공하면서 엄청난 권력과 정통성을 확보한 데다 민주통합당을 위시로 한 야권은 멘붕에 빠져서 헤메는 상황인지라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일단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시점까지는 무난하게 정국을 이끌어 나갈 수 있었다.
박근혜 정권에서는 2014년 지방선거 때까지 당분간 큰 선거도 없어서 새누리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을 이끌어 나갈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 2013년 4월에 201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가 예정되어 있으나, 이 선거가 그렇게 중요한 선거도 아닐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선거의 경우 2014년에 바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걸려 있기 때문에 4월 선거만 하면 10월에 하반기 재보선이 없고, 국회의원 재보선의 경우 2013년 1월 시점에서는 아직 결정된 곳이 한 곳도 없기 때문이다.[10]
촛불 집회가 일어난 이명박 정권 집권 초 같은 혼란이 박근혜 정권에 되풀이 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박근혜 당선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굳건한 지지세가 확고하기 때문에 안철수 전 후보가 바람을 일으킨다 해도 재보궐선거에서 그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2014년 상반기에 지방선거가 있고, 2016년에 가야 총선이 있지만 2014년 지방선거는 오히려 새누리당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이유는 서울, 인천, 충청도, 강원도 등 지자체장이 모두 민주당 소속인지라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민주당 지자체장 심판론만 들고 나와도 간단히 승리할 수 있는 상황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박근혜 당선자와 새누리당은 그야말로 하늘의 복을 받은 이들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전통적으로 여당에게 불리했다는 징크스가 있고 교육감 선거도 같이 있어서 새누리당에 마냥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단, 지방선거는 항상 지난번 지방선거 결과가 뒤집어지는 징크스 역시 있는데 이것이 또 적중한다면 이는 새누리당에 유리한 점이다.
한편으로 포스트 박근혜를 노릴 만한 거물 정치인 부재가 지적되고 있다. 뉴스1 뉴스2 신한국당 시절부터 당 아이콘 역할을 했던 김영삼 - 이회창 - 박근혜 - 이명박 - 박근혜 계보가 제18대 대통령 선거로 끝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선엔 이겼음에도 승자의 저주가 우려되기도. 물론 김문수나 정몽준 , 김무성 등 유력 후속 주자가 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유력 주자의 인지도나 지지도보단 영향력이 낮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새누리당이 지역별로 조직력이 튼튼하고 50대 이상 장노년층의 확고한 지지세가 있기 때문에 의외의 인물이 부각되면 차기 주자가 없다는 약점도 극복할수 있을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며, 실제 2004년 초까지만 보더라도 이회창[11] 대세론이 대선 참패로 무너진 뒤 '대선에 내세울 인물이 없다'는 전망으로 훨씬 더 어두웠으나 2004년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대인 민주당 역시도 김대중 당선 이후 선거들을 보면 4년 내내 눈에 띄는 주자가 없다가 마지막 1년 사이에 급조하는 방식으로 대선 주자를 옹립하는 형태였으니[12] 실제로 뚜껑이 열려서 대선이 임박하기 전까지는 정치 지형도가 어떻게 바뀔지 속단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13]
이런 가운데 2013년 4월 재보궐선거에서 부산 영도에 김무성 의원이 당선되었고 충남 부여.청양에서 이완구 의원이 당선되면서 당내 역학구도가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물론 황우여 대표의 임기가 2014년까지여서 김무성 의원이 당장 당권을 쥘수는 없으나 박근혜 대통령에게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여당 입지를 바꿀 여지가 있다. 2013년 10월 재보궐선거에서는 박명재 의원이 정치 신인으로 당선되었고 서청원 의원이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되며 정치에 복귀했다.
6.3. 2014년
8월 터진 입법로비 파문에 박상은, 조현룡 의원 등이 연루되었다고 보도되었다. 한편 김무성 대표는 관훈토론회에서 입법로비 온상인 출판 기념회에 대해 "선출직 의원이나 로비 대상에 있는 고위공직자는 출판기념회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발언하였다.
제6회 지방선거에서는 여론조사상 무난한 승리가 예상되었으나,[14]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정국이 돌변하면서 무승부격의 결과를 얻었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는 총 15개 의석 중 무려 11개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는데, 애초에 기존 의석이 새누리당 당선자가 많았던 지역이긴 하지만 민주당계 텃밭이던 호남에서 이정현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변으로 받아들여졌다. 보궐선거에서 나경원, 정미경, 이정현이 당선되며 정계에 복귀했고 홍철호, 이종배, 배덕광, 김용남, 유의동, 김제식 등의 정치신인들도 탄생했다.
2014년 새누리당 혁신특별위원회에서 현행 정치후원금 제도를 건드렸다. 현행 정치자금제도에 따르면 정당은 자체 후원회 운영을 통한 정치자금 모금 활동이 불가능하고, 국회의원 개인의 후원회만 허용된다. 정치자금 제공은 개인만 허용(연간 2000만원, 한 개 후원회에 500만원 제한)되며 외국인과 국내·외의 기업 또는 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 문제는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만 허용하다보니 기업이나 단체에서 직원이나 회원명의로 후원금을 소액으로 쪼개거나 차명을 통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등 온갖 편법과 불법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2014년 새누리당 혁신위는 현 후원금 모금 방식은 지지기반이 미약한 정치 신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준다며 결국 정치자금 음성화를 부추기고 의원들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심화시킨다고 보고 있다. 물론 정당의 후원회 결성 및 정치자금 모금을 허용하고 기업이나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를 허용할 경우 예상되는 문제점도 적지 않지만 충분한 정보공개만 이뤄진다면 정당의 후원회 운영과 기업의 후원 활동을 허용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6.4. 2015년
새누리당/2015년 문서 참고.
6.5. 2016년
새누리당 분열 #중앙일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 나서 박근혜 추종 세력이자, 현 여당 지도부인 친박 세력은 어느 정도 책임이 덜한 비박에게 공격을 받았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표결로써 더 이상 두 세력은 같은 당에 있기 힘들게 되었다. 나름 분당만큼 막기 위해 노력한 중도 세력도 있었지만 계속되는 친박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새누리당은 셋으로 나뉘고 말았다.
새누리당/2016년 문서 참고.
6.6. 2017년
자세한 사항은 새누리당/2017년 문서를 참조할 것. 2월 13일 당명이 자유한국당으로 변경되었다.
7. 계파 갈등
초기에 친박과 비박의 계파 갈등이 매우 심각했으며 결국 2016년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새누리당 분당 사태가 일어나 친무, 친유, 친이와 같은 비박 계파 대다수가 증발했다.
8. 역대 전당대회
한나라당이 2012년 2월 13일 15차 전국위원회에서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개정하면서 정식으로 새누리당이 출범하였다.
9. 역대 지도부
9.1. 비상대책위원회
-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9.2. 초대 지도부
9.3. 비상대책위원회
- 비상대책위원장: 이완구
9.4. 제2대 지도부
새누리당 제3차 전당대회를 통해 결정된 지도부.
9.5. 혁신비상대책위원회
9.6. 제3대 지도부
새누리당 제4차 전당대회를 통해 결정된 지도부.
9.7. 비상대책위원회
10. 원내 지도부
10.1. 20대 국회
- 원내대표 : 정진석 (2016년 5월 3일 - 2016년 12월 12일)[29] → 정우택 (2016년 12월 16일 - 2017년 2월 13일)
- 정책위원회 의장 : 김광림 (2016년 5월 3일 - 2016년 12월 12일) → 이현재 (2016년 12월 16일 - 2017년 8월 2일)
- 원내수석부대표 : 김도읍 (2016년 5월 8일 - 2016년 12월 12일) → 김선동 (2016년 12월 19일 - 2017년 2월 13일)
- 원내부대표단 : 오신환, 강석진, 권석창, 김성원, 성일종, 이만희, 이양수, 정태옥, 최연혜 (2016년 5월 9일 ' 2016년 12월 12일) → 박찬우, 민경욱, 정태옥, 엄용수, 임이자, 송석준, 송희경 (2016년 12월 19일 - 2017년 2월 13일)
- 원내대변인 : 김명연, 김정재, 민경욱[30] (2016년 5월 8일 - 2016년 12월 12일) → 김정재, 정용기 (2016년 12월 19일 - 2017년 2월 13일)
11. 역대 주요 선거 결과
-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 박근혜 15,773,128표 / 30,722,912표, 득표율 51.55%, 대통령 당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