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한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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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홈페이지
廣寒樓苑
대한민국의 명승 제33호.[1]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누원이다. 하나의 건물인 광한루의 이름을 따서 누원의 이름이 붙은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로도 매우 유명하다.
위의 사진은 광한루원은 물론 남원시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 랜드마크로도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각종 영화촬영을 했으며, 광해, 도리화가 등에서도 나온다. 매년 춘향 선발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1414년(태종 14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새운 것이 시초이다. 1444년(세종 26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고 1461년(세조 7)년 장의국(張義國)이란 사람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가 누(樓)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각각의 섬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도,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도,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도이다.
1626년(인조 4년), 임진왜란 때 모두 손실된 누각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하고 이후 영주도의 영주각을 중수하고 광한루의 큰들보를 고치고 난간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부 약도 및 안내 #
야간 무료개장을 실시하고 있다. 4~10월까지는 19~20시, 11월~3월까지는 18~20시이다.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281호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2]
1461년(세조 7)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오작교를 함께 건너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려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남원역에서 남원시 시내버스 133번, 161번, 142번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220번, 281번, 230번, 211번, 161번, 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101번과 220번을 이용할 수 있다. 어디서 접근해도 택시비 5천 원 이내 구간이다.
승용차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가 가장 가깝다.
어른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천 원, 남원시민은 무료이다.
주차 요금
승용차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15인승 이하 소형버스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16인승 이상 중대형버스 당일 주차 4천 원, 월 주차 6만 원
구 도심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복사 절터나 만인의총 등으로 이동하기 편하다.
멀지 않은 곳에 승월교나 사랑의 다리를 통해 춘향테마파크로 향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공식 홈페이지
廣寒樓苑
1. 개요
대한민국의 명승 제33호.[1] 전라북도 남원시 천거동에 있으며 조선 중기 천체와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 누원이다. 하나의 건물인 광한루의 이름을 따서 누원의 이름이 붙은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무대로도 매우 유명하다.
위의 사진은 광한루원은 물론 남원시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 랜드마크로도 매우 유명하다.
그 외에도 각종 영화촬영을 했으며, 광해, 도리화가 등에서도 나온다. 매년 춘향 선발대회가 이곳에서 열린다.
2. 역사
1414년(태종 14년) 황희가 광통루라는 누각을 새운 것이 시초이다. 1444년(세종 26년)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고 1461년(세조 7)년 장의국(張義國)이란 사람이 요천의 물을 끌어다가 누(樓) 앞에 은하수를 상징하는 커다란 연못을 파고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오작교를 가설하였다. 각각의 섬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방장도, 금강산을 상징하는 봉래도, 한라산을 상징하는 영주도이다.
1626년(인조 4년), 임진왜란 때 모두 손실된 누각을 남원부사 신감이 재건하고 이후 영주도의 영주각을 중수하고 광한루의 큰들보를 고치고 난간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3. 시설
내부 약도 및 안내 #
야간 무료개장을 실시하고 있다. 4~10월까지는 19~20시, 11월~3월까지는 18~20시이다.
3.1. 광한루
광한루원의 중심 건물로, 대한민국의 보물 제281호다. 1419년 황희가 남원에 유배되었을 때 누각을 짓고 광통루(廣通樓)라 하였다. 그 후 1434년 세종 16년에 남원부사 민여공이 중수하고 당시 충청 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였던 하동부원군 정인지가 이 누에 올라 경관을 감상하다가 “오호라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경관은, 나의 고향의 경승을 감상하게 되면 나의 고향보다 나은 곳이 없고, 더욱이 이곳 광한루보다 나은 곳이 없더라"라며 용성지(龍城誌)로 했다. 또 일설에는 ”호남의 승경으로 달나라에 있는 궁전 광한청허지부가 바로 이곳이 아니던가“하고 감탄하여 그 후 광한루로 개칭되었다.
광한루 앞뒤에는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란 편액이 걸려있다. 호남제일루라는 말 그대로 호남에서 제일가는 누각이라는 뜻이며, 광한과 청허부는 하늘나라 월궁의 옥경에 들어서면 ‘광한 청허지부’가 있다는 신화적 전설을 상징하고, 계관은 달나라의 계수나무 신궁을 상징한다. 광한루 누각에 걸린 여러 편액 중 광한루란 편액은 신익성, 호남제일루와 계관의 편액은 185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누각을 중수하면서 손수 써 걸었다. 이 중 계관의 편액은 동학농민전쟁 때 없어진 것을 1930년대 광한루를 대대적으로 보수할 때 남원유지 강대형이 다시 써 건 것이다. 또한 현재 광한루에 걸린 광한루란 편액은 전 민의원 조정훈이 쓴 글씨이다.
1879년 광한루가 차츰 북쪽으로 기울어져 이를 방지하기 위해 루 북쪽에 다락(월랑)을 세워 층층대를 만들어 놓았다. 북쪽의 층층대는 1877년(고종14년)에 부임한 남원부사 이용준이 광한루가 퇴락하여 본관 전체가 북쪽으로 기울어져 무너질 우려가 있어 수지면 고평리에 사는 추(秋) 대목의 묘안을 받아들여 북쪽에 누를 오르내리는 계단을 만들되 본관과 같이 아름드리 기둥을 세워 튼튼하게 고정시켜 본관의 기울음을 바로 잡고 외관으로도 더 화려하게 하였다. 이는 결과적으로 누각 건축사상 큰 의의를 가지게 되는데 그것은 우리나라 누각에 월랑을 가설하게 된 시초이며 이전까지는 누상을 오르내리는 사다리만 설치하였다.
3.2. 오작교
까마귀 오(烏), 까치(鵲), 다리(橋)자를 쓴다.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담긴 바로 그 다리이다.[2]
1461년(세조 7) 남원부사 장의국이 광한루를 수리하면서 다리를 새로놓고 오작교라 부르게 됐다. 그 이후 광한루는 정유재란때 불타 1626년 복원됐지만 오작교는 처음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오작교는 길이 57m, 폭 2.4m, 4개의 홍예경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존하는 연지교 중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크다.
오작교를 함께 건너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전설이 있고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이 어려있는 곳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3.3. 완월정
1971년 신축. 동쪽을 향해 있는 수중누각이다. 옛날 옥황상제가 계식 옥경에는 광한전이 있으며, 그 아래 오작교와 은하수가 굽이치고 아름다운 선녀들이 계관의 절경 속에서 즐겼다는 전설이 있다. 이 전설에 따라 광한루는 천상의 광한전을 재현한 것이며, 이 완월정은 지상인이 달나라를 즐기기 위하여 전통 조선식 누각을 세워 광한루원의 절경을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춘향제 등 각종 행사를 치르는 무대로 활용하고 있다.
4. 교통편
남원역에서 남원시 시내버스 133번, 161번, 142번으로 이동할 수 있다. 남원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220번, 281번, 230번, 211번, 161번, 공용버스터미널에서는 남원시 시내버스 101번과 220번을 이용할 수 있다. 어디서 접근해도 택시비 5천 원 이내 구간이다.
승용차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 남원IC가 가장 가깝다.
5. 입장료
어른 3,000원, 청소년 및 군인 1,500원, 어린이 1천 원, 남원시민은 무료이다.
주차 요금
승용차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15인승 이하 소형버스 당일 주차 2천 원, 월 주차 3만 원
16인승 이상 중대형버스 당일 주차 4천 원, 월 주차 6만 원
6. 인근 관광지 및 편의시설
구 도심 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만복사 절터나 만인의총 등으로 이동하기 편하다.
멀지 않은 곳에 승월교나 사랑의 다리를 통해 춘향테마파크로 향할 수도 있으니 참고하자.
[1] 옛 사적 제303호[2] 칠월칠석날이 되면 비가 오고 까마귀와 까치를 볼 수 없고 까치의 머리가 흰 것은 오작교가 된 까치의 머리를 견우와 직녀가 밟아 벗겨졌기 때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