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린대 병원 나무 젓가락 사망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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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건으로 사망한 아이 A의 영정
杏林大病院割りばし死事件
1. 개요
일본 교린대학(杏林大学)병원 나무 젓가락 사건은 1999년 7월 10일 도쿄도 스기나미 구에서 솜사탕을 먹고 있던 남자아이 A가 넘어져 목을 나무 젓가락으로 깊이 찔린 뒤 사망한 사고이다. 그 후 형사, 민사 소송에서 의사의 과실의 유무를 따졌지만, 모두 의사에게 과실을 물을 수 없으며 정황상 아이를 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2. 사건의 진행
1999년 7월 10일, 당시 4살이던 A는 중학생인 형과 어머니와 함께 도쿄도 스기나미 구에서 열린 지역 축제에 놀러갔다. 어머니는 솜사탕을 사준뒤 형에게 '동생 A를 잘 돌보고 있으라'고 일러두고 축제 티켓 발권을 위해 잠시 자리를 떠났다.
A는 솜사탕 나무 젓가락을 입에 문 채 형 주변에서 놀고 있었는데, 오후 6시 5분쯤 앞으로 엎어져 넘어지면서 나무 젓가락이 그대로 목에 박히고 만다. 박힌 나무 젓가락은 부러졌고 A는 자력으로 나무 젓가락을 빼냈다. 이때 빼내어 버린 나무 젓가락은 사건 후에 수색했지만 발견 못했다고 한다. A는 충격으로 일시적인 가벼운 의식장애를 보였지만, 잠시 후 의식을 되찾았다.
이후 축제장 보건실에서 간호사가 살펴봤을 때 입안에 상처가 있는 것은 확인했지만 출혈이 멈춰 있었고, 이후 오후 6시 40분쯤 교린대 부속 병원 구급센터로 옮겨져 이비인후과 의사가 재차 진찰했지만 입안 상처와 가벼운 구토 증세 외에는 특별한 이상 징후를 찾지 못했다. 이때 의사는 어머니에게서 '나무 젓가락에 목이 찔렸다'는 설명은 들었지만 젓가락이 목 안에서 부러진 사실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목의 상처를 소독하고, 뇌수막염 가능성도 고려해 항생제를 투여한 뒤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연락하도록 당부하고 오후 8시경 모자를 귀가시킨다.
이날 밤, A는 두 번 정도 구토를 하고 여느날처럼 잠이 들었다. 다음날 7월 11일 오전 6시경 걱정이 된 어머니가 자고있는 A에게 말을 걸었는데, 대답은 없었지만 눈꺼풀이나 입술 움직임이 있었다. 어머니는 그걸 확인한 뒤 다시 잠이 들었다.
3. A의 사망
오전 7시 반경, A가 의식이 없는것을 발견한 어머니는 즉시 구급대를 불렀다. 구급대가 도착한 시점에 A는 이미 심폐정지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응급실로 이동해 계속해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오전 9시 2분 A는 사망판정을 받는다.
4. 재판
4.1. 형사 소송
2000년 7월, 경시청은 진찰을 담당했던 이비인후과 의사를 업무상 과실 치사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2002년 8월 검찰은 불구속 기소 했다. 또 의사가 나중에 진료 기록 카드에 정보를 수정한 것이 발각되어, 의료 기록 조작 의혹도 지적되었다. 2006년 3월 도쿄 지방 법원은 의료 기록 조작의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의사의 과실로 인해 A가 사망했다고 인과 관계를 밝히기는 어려우며, 정황상 A를 살리기는 힘들었다'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 측은 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고, 두 번째 재판이 열렸지만 2008년 11월 판결 역시 의사의 과실이 부정되고 무죄 판결을 내린다. 유족은 상고를 희망했으나 검찰은 포기, 도쿄 검찰청의 스즈키 히로시 차석 검사가 기자회견을 열고 "상고 이유를 찾아 낼 수 없다"고 밝히며 피고인의 무죄가 최종 확정됐다.
4.2. 민사 소송
2000년 A의 부모는 병원 측과 의사를 상대로 총 8960만엔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도쿄 지방 법원에 민사 소송을 제소했다. 2008년 2월 1심 판결에서 의사의 과실로 인한 사망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기각됐다. 2009년 4월 2심에서도 같은 이유로 기각, 이에 유족은 상고를 하지 않을 방침을 밝히면서 재판은 종결되었다.
5. 사망 원인
사망 초기 뇌출혈을 의심해 머리 X선 및 CT 촬영을 실시했을때, 머리뼈우묵에 경막 외 혈종과 공기의 유입이 발견되었지만 여전히 직접적인 사망원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부검을 실시했을 때 처음으로 목정맥과 머리뼈 바닥을 뚫고 소뇌까지 가서 박힌 '''약 7.6cm의 나무 젓가락 조각'''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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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뇌의 위치와 구조
형사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A가 나무 젓가락을 물고 넘어진뒤 스스로 제거했지만, 부러졌을때 남은 나무 젓가락 파편이 왼쪽 목정맥에 구멍을 뚫고 두개 내강과 소뇌에 도달, 이 부위에서 정맥 내 혈전을 형성했고 이것이 사망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한편, 민사 판결에서는 "파편으로 인한 뇌부종 및 두개 내압 항진이 되면서 자연적으로 호흡중추 내지 순환중추의 장애로 인해 사망 한 것으로 인정되지만 구체적인 기전은 알 수 없음"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교린대의 지난 10년간 의료 기록을 볼 때 사물로 구강 내를 찔린 사례는 100명 정도 있었는데, 그 중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 사례나 사망한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고 한다. 또한 머리뼈 바닥은 두껍고 딱딱하여 교통사고같은 큰 충격이 아니라 보통 나무 젓가락에 뚫리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봐도 전례가 없는 매우 특이한 경우였다. 아마도 신체가 완벽하게 성장하고 단단해지지 않은 어린아이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
6. 사건 여파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의 의료 붕괴가 심해졌다는 평을 받는다. 이때까지 대형 병원 근무 의사는 노동 수준에 맞지 않는 저소득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인내하며 사회에 기여했지만, 의료 행위 결과가 신통치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의료 과실 형사 책임을 추궁당하면서 의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2] 특히 일본은 원래 응급실 의사가 적고, 비응급 전문의들이 응급실까지 담당하며 지탱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전문의들이 응급실 진료를 피하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또한 의학 연구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연구 결과가 형사 책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학회와 의학 잡지에서 증세, 합병증, 부작용 보고가 격감했다고 한다. 학회에서 상대의 실수를 지적하는 질문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생겼다는 말이 돌만큼 의사끼리의 의학적 경험과 정보 공유마저 저해되었다.
사망한 A의 어머니에 따르면 형사 고소를 시작한 뒤로 유족에게도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3]
[1] 이런 희귀한 경우까지 상정해 모든 환자에게 정밀 검사를 권할 수도 없는 것이 그러면 과잉 진료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2] 의료 과실이 있었다면 몰라도 이 사례는 통상적인 수준의 진료로는 잡아낼 수 없는 희귀 사례였고 의사의 과실은 없었다.[3] 다른 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이 매우 의아하겠지만, 일본의 메이와쿠 문화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일이다. 일본인의 시각으로는 이번 일로 의료계가 입은 피해를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순수히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욕을 먹는 사례가 흔히 나타난다. 이 사건도 한국 등 다른 나라였으면 유족이 동정을 받고 의료계는 고개를 들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과실 여부와 무관히 유족만 편들고 의료계를 맹비난하는 행태가 바람직한가는 또 생각해 볼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