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와쿠
'''迷惑 '''
미혹[1][2]
'''메이와쿠'''는 일본 문화의 특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혐오하는 경향을 말한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개념 자체는 전세계 여느 공동체에서나 있는 보편적 개념이지만, 그 중에서도 메이와쿠는 다소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일본식 문화이다. 이는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상호 갈등의 불씨가 될 만한 행동을 금기시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된 개념으로, 각국에서 일본어 '메이와쿠'를 번역할 경우 한국어로는 '민폐', 영어로 'nuisance'라 쓰고는 있으나 사실 이보다는 메이와쿠의 범위가 더 넓고 복잡하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위화감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이나 심지어는 사고의 피해자와 그 유족까지 메이와쿠에선 민폐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테마에(建前)''' 문화 역시 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도록 표현을 자제하는 것에서 생겨난 관습으로, 전근대 열도라는 폐쇄적 세계관 안에서 사회 평온을 보전하기 위한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또, 이와 관련된 일본 특유의 토론 문화가 바로 '''네마와시(根回し)'''다. 원래 뜻은 '나무를 옮겨 심기 전 뿌리를 둥글게 다듬는다'는 뜻인데,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에서는 사전교섭, 물밑작업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회의나 토론 전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 등을 미리 알려서 이견(異見)과 불편한 감정이 유발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민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제멋대로'''여서, 자기들의 입장여하에 따라 '메이와쿠'를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집단에서 조금만 튀거나 다르거나, 심지어 구성원의 수준이 약간 달라져도[3] 메이와쿠라고 낙인을 찍는 일이 많다. 이지메 가해자의 흔한 변명인 '저 녀석이 집단에 적응 못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로 이용될 정도이니 문제가 정말 심각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그저 겉으로만 조용히 지내려는 습성을 배울 뿐이지 '''진심 어린 배려는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막말로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 때문에 도리가 없어서 지킬 뿐이다. 까닭이 무엇이건 메이와쿠를 깨트린 상대는 사회에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간주한다. 고로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의 '메이와쿠'라는 특이 정서는 곧 "민폐를 끼치는 상대방을 상종하지 말고 그냥 깡그리 무시하라." 혹은 "민폐을 끼치는 상대방에게 민폐로 앙갚음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4] 이런 비뚤어진 정서는 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혐오정서' 중 하나인 것이다.
또 언뜻 오지랖이 없으니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답답한 사회상이 생겨버린다.[5] 지나치게 민폐(?)[6] 금지, 정숙할 것을 강조하며 감정 표출조차 메이와쿠로 봄으로써, 큰 사고가 터져 가족이나 지인이 죽어나가는데도 마음대로 울 수조차 없다. 이런 점은 서구권은 물론이고 그나마 일본과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는 한국에서도 경악할 정도이다.[7]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 하는 것도 상대방이 먼저 요구할 때까지는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모순적이게도 베풂을 요구하는 것도 민폐로 보기 때문에 서로간의 자유로운 베풂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는 전근대적 가치관과 성차별적 관습에도 반영되어 사회와 가치관 변화에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도 한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 차별이 특히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 성 차별적인 관습이 곧 메이와쿠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놀란 것 가운데 하나가 '여자들이 남자처럼 양반다리(胡坐) 자세를 하고 앉는 것'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여성의 올바른 앉기 방법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여성으로서 기본적인 예절 교육도 받지 않은 것'이며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한 민폐'이기 때문에, 일본의 기성 세대 중에는 이를 두고 '한국인 여성은 몸가짐이 나쁘다.' 등의 어이없는 논평을 하는 작자도 있었다. [8] 이 문화는 비단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비교적 서구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신세대 젊은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석구석은 물론 개인의 내면에까지 메이와쿠가 스며들어 있는 까닭에, 성차별적인 관습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불편한 행동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집단따돌림(이지메), 엔자이 등이 여전히 횡행하는 이유 또한 바로 메이와쿠라는 비뚤어진 미덕 때문이다. 메이와쿠는 시대가 요구하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개성을 크게 억압하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 층에는 메이와쿠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
역설적으로, 남이 먼저 폐를 끼치거나 실수를 저질러도 이를 발 벗고 나서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른바 '''"너 하나만 입 싹 다물고 있으면 우리 모두가 평온할 수 있다."'''든지의 비합리적인 악습으로 적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상이 약자나 소수자,[9] 성폭력 피해자, 이지메 당한 청소년, 엔자이 피해자 등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혼자서는 너무 무력해서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나, 메이와쿠라는 이름 아래 이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실제로 일본에는 이런 식으로 무고한 사람이 침묵하는 사회 앞에서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를 당해도 혼자서 앓아넘기는 사례가 아주 많다.(일본/사법 문서로.) 이는 중요한 사건이나 사고의 목격자에게도 적용되어, 목격자가 증언이나 증거를 제출하면 칭찬은 커녕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일본 매체를 보면 가끔씩 '''피해자'''인 사람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고 사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가'''' 하고 속 터질 일이지만, 위와 같은 메이와쿠 문화에 따라 '''사회의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 사회의 평온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 자체가 논란'''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사회의 문제들을 숨기면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여도 사회 내부는 심각하게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음에도, 메이와쿠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고칠 기회조차 빼앗고 있다. 피해를 주지 말 것을 강조하는 일본에서 가해자가 마음 놓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 생기는 셈이다.
미나마타병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피해자들이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기는 커녕 마을 사람들로부터 동네 이미지를 망친다며 비국민, 매국노 취급받고 숨어 살아갔다. 교린대 병원 나무 젓가락 사망 사건에서 죽은 아이의 가족이 오히려 나중에 맹비난을 받았다는 점 역시 메이와쿠 문화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19의 일본 내 확산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의료진과 그 가족들까지 이러한 따돌림의 피해를 받고 있으며, 이것 또한 일본 내 의료붕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지메 논란 게다가 엄마가 딸에게 코로나19 감염 이유로 극단적으로 자살하는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또한 메이와쿠라는 개념이 일본인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란 비판도 있다. 아시안 홀로코스트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사과 문제, 하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역시 위와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이 사고에서 일본은 적절한 후속 대응을 실시하지 않아 인접국에 방사능을 유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십에서 수백만 톤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도 하지 않은 채 태평양에 무단 방류하여, 북서태평양 어장 생태계를 박살내 놓은 전과가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국가적인 차원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의 탈퇴를 선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고래잡이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을 포함한 외국에서는 이를 두고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집단으로서의 일본이 '민폐를 싫어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다르다는 걸 나타내 주는 사례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진보 성향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고질적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며, 또 역사적으로 봉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배경으로 인해 지방 문화의 전통이 긴 일본답게 지역별로도 어느 정도 온도차가 있어서, 도쿄나 교토에 비해 일본인치고 솔직담백하다는 평이 많은 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 지역 사람들은 비교적 널널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기본적으로 메이와쿠 의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 또한 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말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 것'''. 예를 들어 우리나라처럼 '취업을 했냐', '결혼을 했냐' 등등을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착각하면 안 될 것이,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 '상관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유보한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 공동체가 생각하는 정도에서 벗어날 경우 공동체에서 꺼림 혹은 이지메를 당하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공동체 지향주의의 소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시부야구 등지에서 무척이나 과감하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거대한' 공동체의 영역으로 나아갔을 때 이러한 것들은 단지 젊은 날 혈기의 소산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결국 학생 때 단정하게 머리 땋고 교복 입고 단화 신고 다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 취업을 하기 직전까지는 실컷 갸루를 하건 폭탄머리를 하건 개성적인 패션을 즐기다가도 취업만 하면 머리 검게 물들이고 단정한 양복[10] 을 입고 획일적인 사회로 녹아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프리랜서의 상징인 후줄근한 복색, 정돈되지 않고 치렁한 머리 등이 결국 '자유인'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렇게 일본에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직장인 패션(소위 단정한 양복에 단색 넥타이 등), 학생 교복같이 '직업에 알맞은 복색'이 실질적으로 유, 무형적 '''공기(空気: 쿠우키)'''[11] 에 의해 강제되는 문화 역시 일본식 메이와쿠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메이와쿠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조명된 '타인의 생활에 간섭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라는 말은 더 나아가 일본의 전반을 지배하는 개인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공동체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라는 말이 얼핏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개인이 개인을 절대 강제하지 않으나 사회와 시스템에 의해 행동양식이 강제되는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강제하는 대상이 공동체이기에, 예컨데 '거리에서는 질서를 지킨다'는 '당연한 시민의식'이 메이와쿠 사회에서는 '''나 이외의 누군가가 있을 때 외에는 지켜지지 않는다.''' 시부야의 뒷골목이나 하다못해 청소부가 도심만큼 지나다니지 않는 일본 중소도시의 경우 '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람이 많은 대로변 도심지에서는 그 누구도 쓰레기를 버리려 들지 않겠지만, 만일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 해도 일본인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메이와쿠'이다.
만일 일본 외 나라에서 대로변에서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직접적 비난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대로변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뒷골목에서도 잘 버리지 않으려 한다. '왜' 버리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본인이 납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메이와쿠 의식이 없는 미국의 경우 문화의식을 공동체가 강제한다기보단 개인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대로변과 뒷골목의 갭이 일본만큼 심하지 않다.
이러한 일본 문화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기술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일본의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라고 하며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민감하다"라고 했다. 서양에 대해서는 그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죄의 문화(guilt culture)'라고 했다. 즉 일본 문화에서는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 여부가 자신의 죄책감(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신 앞에 회개해야 할 죄악)이 아닌 사회에서 잘못으로 인정되느냐("수치심"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차대전 직후 쓰여진 책이라 지금보다 더 심하겠지만, "일본은 패전 후에도 대동아 이상을 부정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 포로 중에서도 그나마 맹목적 애국주의의 색채가 옅었던 사람조차도 대륙 및 서남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계획을 규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사회 질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그 사안에 대한 선악의 판단은 없기 때문에 앞의 쓰레기 사례와 같이 실제로 폐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비난 받지 않을 사항에는 지켜지지 않거나 때로는 태평양 전쟁이나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같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동작하기도 한다.
한편 대한민국도 부촌 지역으로 갈수록 일본처럼 메이와쿠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촌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일수록 부모님이 전문직, 고위공무원단, 교수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만큼 부모님의 체면과 위신을 지키고, 이웃이나 동네 주민들 중에도 소위 말하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이미지 메이킹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일반 동네에서는 술집에서 술에 취해 시비가 붙어도 큰일로 번지는 일이 없지만, 부촌에서는 그 상대방이 장차관급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아들일 수도 있어 정말 큰일이 날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악플러들을 대인관계 부족 등으로 묘사하는 것도[12] 그 진의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일본처럼 메이와쿠 문화가 강하고 완곡어법의 사용빈도와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민폐'나 '메이와쿠' 등의 개념이 강하지 않지만 또 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민폐를 끼치는 경우, 한국이나 일본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욕 얻어 먹는 경우는 없다.
스웨덴, 덴마크, 68혁명과 통일 이전 독일 같이 수직적인 게르만 문화가 공적 영역에서도 강했던 북유럽 국가들은 일본 못지 않게 공공에서 사적인 일탈에 엄격하지만, 독일의 경우 68혁명 이후 권위주의적 전통 문화에 대한 반발로 인해 이런 집단주의적 압력이 많이 약해졌고, 영국의 경우 이런 게르만 문화를 상당수 공유하긴 했지만 영국/문화 문서와 기행 문서에 나와 있듯이 '''기행의 범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폐보다 공공에게 제공하는 꿀잼이 더 크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기행을 추구하는 성향도 예전부터 있었다. 반대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의 지중해권 문화들은 예전부터 세련된 도시 문화의 공공성에 기반하여 활달한 외향적 성격을 높게 사고, 이런 활발함을 표출하며 생기는 사소한 민폐는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다. 오히려 이런 동네의 사회 분위기는 근대 이전부터 마을 광장 중심으로 발달 된 사회 생활 + 외향적 과시 문화라는 조합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더라도 너그럽게 보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서 일본인은 물론, 같은 서양권 내에서도 개인 간의 거리를 중요시하는 북유럽이나 북미인들에게도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층간 소음이란 일상적인 예만 들어도 스위스 같이 상술한 수직적 문화적 전통에 작은 사회적 성격까지 띄어 개인간의 거리에 지극히 민감한 나라들은 밤 10시경 넘어서 가전 제품의 사소한 소음만 들려도 즉각 고소미 먹기 쉬운 반면, 애초에 집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취급하고 길거리 축제 문화가 발달한 스페인의 경우 적어도 새벽 2-3시 이전에 층간이나 길거리 소음 문제로 경찰을 부르면 오히려 경찰이 '쓸데없이 사소한 문제로 공권력 부른다'며 은연중에 오히려 피신고인들을 옹호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같이 흡연률 자체가 높고, 사회문화적으로도 관대하며, 2000년대 중반 유럽 연합에서 일괄적으로 공공장소 금연 때리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실내 흡연 되는 곳이 많았던 곳들은 아직도 기차역 같은 곳에서 공공연하게 담배 까치 꺼내 물고, 여기에 항의하면 오히려 주변에서 '담배 좀 필 수도 있지 뭐'하며 적반하장으로 신고인을 바보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반대로 법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흡연에 대해 엄격한 영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미혹[1][2]
[image]他人に迷惑を掛けるな(다른 사람에게 민폐를 끼치지 마라.)
'''他人にめいわくをかけ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합시다.'''
1970년대 초 일본 공익광고 표어로 추정된다.
1. 개요
'''메이와쿠'''는 일본 문화의 특색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혐오하는 경향을 말한다.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자'는 개념 자체는 전세계 여느 공동체에서나 있는 보편적 개념이지만, 그 중에서도 메이와쿠는 다소 독특한 양상을 보이는 일본식 문화이다. 이는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 한정되지 않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상호 갈등의 불씨가 될 만한 행동을 금기시하는 것으로까지 확대된 개념으로, 각국에서 일본어 '메이와쿠'를 번역할 경우 한국어로는 '민폐', 영어로 'nuisance'라 쓰고는 있으나 사실 이보다는 메이와쿠의 범위가 더 넓고 복잡하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위화감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한 일이나 심지어는 사고의 피해자와 그 유족까지 메이와쿠에선 민폐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다.
'''다테마에(建前)''' 문화 역시 메이와쿠를 끼치지 않도록 표현을 자제하는 것에서 생겨난 관습으로, 전근대 열도라는 폐쇄적 세계관 안에서 사회 평온을 보전하기 위한 규범으로 작용하였다. 또, 이와 관련된 일본 특유의 토론 문화가 바로 '''네마와시(根回し)'''다. 원래 뜻은 '나무를 옮겨 심기 전 뿌리를 둥글게 다듬는다'는 뜻인데, 정부기관이나 기업 등에서는 사전교섭, 물밑작업을 뜻하는 속어로 쓰인다. 회의나 토론 전 상급자가 하급자들에게 자세한 내용이 무엇인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지 등을 미리 알려서 이견(異見)과 불편한 감정이 유발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2. 비판
2.1. 메이와쿠의 범위와 오남용 문제
민폐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 제멋대로'''여서, 자기들의 입장여하에 따라 '메이와쿠'를 아무 데나 갖다 붙이는 경향이 있다. 집단에서 조금만 튀거나 다르거나, 심지어 구성원의 수준이 약간 달라져도[3] 메이와쿠라고 낙인을 찍는 일이 많다. 이지메 가해자의 흔한 변명인 '저 녀석이 집단에 적응 못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로 이용될 정도이니 문제가 정말 심각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그저 겉으로만 조용히 지내려는 습성을 배울 뿐이지 '''진심 어린 배려는 있을 리가 만무하다.''' 막말로 사회적 처벌과 불이익 때문에 도리가 없어서 지킬 뿐이다. 까닭이 무엇이건 메이와쿠를 깨트린 상대는 사회에서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간주한다. 고로 "상대방에게 민폐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의 '메이와쿠'라는 특이 정서는 곧 "민폐를 끼치는 상대방을 상종하지 말고 그냥 깡그리 무시하라." 혹은 "민폐을 끼치는 상대방에게 민폐로 앙갚음하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다.[4] 이런 비뚤어진 정서는 결국 '지구상에 존재하는 혐오정서' 중 하나인 것이다.
2.2. 사회의 경직화 문제
또 언뜻 오지랖이 없으니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답답한 사회상이 생겨버린다.[5] 지나치게 민폐(?)[6] 금지, 정숙할 것을 강조하며 감정 표출조차 메이와쿠로 봄으로써, 큰 사고가 터져 가족이나 지인이 죽어나가는데도 마음대로 울 수조차 없다. 이런 점은 서구권은 물론이고 그나마 일본과 사회 분위기가 어느 정도의 공통점이 있는 한국에서도 경악할 정도이다.[7] 남에게 무언가를 베풀려 하는 것도 상대방이 먼저 요구할 때까지는 불가능하게 만드는데, 모순적이게도 베풂을 요구하는 것도 민폐로 보기 때문에 서로간의 자유로운 베풂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는 전근대적 가치관과 성차별적 관습에도 반영되어 사회와 가치관 변화에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없게 만드는 결과를 낳게도 한다. 일본은 선진국 중에서는 여성에 대한 성 차별이 특히 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이 성 차별적인 관습이 곧 메이와쿠와 결부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놀란 것 가운데 하나가 '여자들이 남자처럼 양반다리(胡坐) 자세를 하고 앉는 것'이었다고 하며 지금도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 여성의 올바른 앉기 방법은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앉는 것'이다. 일본에서 이를 지키지 않는 것은 '여성으로서 기본적인 예절 교육도 받지 않은 것'이며 '마주 앉은 상대에 대한 민폐'이기 때문에, 일본의 기성 세대 중에는 이를 두고 '한국인 여성은 몸가짐이 나쁘다.' 등의 어이없는 논평을 하는 작자도 있었다. [8] 이 문화는 비단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비교적 서구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한다는 신세대 젊은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 구석구석은 물론 개인의 내면에까지 메이와쿠가 스며들어 있는 까닭에, 성차별적인 관습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남에게 폐를 끼치는 불편한 행동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집단따돌림(이지메), 엔자이 등이 여전히 횡행하는 이유 또한 바로 메이와쿠라는 비뚤어진 미덕 때문이다. 메이와쿠는 시대가 요구하는 표현의 자유와 개인의 개성을 크게 억압하기 때문에, 일본의 젊은 층에는 메이와쿠에서 탈피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다.
2.3. 피해자에게 은연중 침묵 강요 문제
역설적으로, 남이 먼저 폐를 끼치거나 실수를 저질러도 이를 발 벗고 나서 지적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른바 '''"너 하나만 입 싹 다물고 있으면 우리 모두가 평온할 수 있다."'''든지의 비합리적인 악습으로 적용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에는 대상이 약자나 소수자,[9] 성폭력 피해자, 이지메 당한 청소년, 엔자이 피해자 등인 경우가 많다. 이들은 혼자서는 너무 무력해서 공론화를 통한 사회적 도움이 절실하나, 메이와쿠라는 이름 아래 이들의 입을 막아버린다. 실제로 일본에는 이런 식으로 무고한 사람이 침묵하는 사회 앞에서 강간, 폭행 등의 중범죄를 당해도 혼자서 앓아넘기는 사례가 아주 많다.(일본/사법 문서로.) 이는 중요한 사건이나 사고의 목격자에게도 적용되어, 목격자가 증언이나 증거를 제출하면 칭찬은 커녕 오히려 사회적으로 매장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일본 매체를 보면 가끔씩 '''피해자'''인 사람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고 사죄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면 ''''이 사람이 무슨 죄를 지었는데 사과를 해야 하는가'''' 하고 속 터질 일이지만, 위와 같은 메이와쿠 문화에 따라 '''사회의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 사회의 평온한 분위기를 깨뜨린 것 자체가 논란'''이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긴다. 사회의 문제들을 숨기면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여도 사회 내부는 심각하게 썩어들어갈 수밖에 없음에도, 메이와쿠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파헤치고 고칠 기회조차 빼앗고 있다. 피해를 주지 말 것을 강조하는 일본에서 가해자가 마음 놓고 피해를 줄 수 있는 아이러니함이 생기는 셈이다.
미나마타병 사건이 터졌을 때, 많은 피해자들이 질병에 대한 보상을 받기는 커녕 마을 사람들로부터 동네 이미지를 망친다며 비국민, 매국노 취급받고 숨어 살아갔다. 교린대 병원 나무 젓가락 사망 사건에서 죽은 아이의 가족이 오히려 나중에 맹비난을 받았다는 점 역시 메이와쿠 문화의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19의 일본 내 확산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의료진과 그 가족들까지 이러한 따돌림의 피해를 받고 있으며, 이것 또한 일본 내 의료붕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한다. 코로나 이지메 논란 게다가 엄마가 딸에게 코로나19 감염 이유로 극단적으로 자살하는 사건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다.#
2.4. 집단으로서의 '일본'과 메이와쿠 문제
또한 메이와쿠라는 개념이 일본인 자신들에게만 해당된다란 비판도 있다. 아시안 홀로코스트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제2차 세계 대전에 대한 사과 문제, 하시마 섬을 비롯해 일본에 강제징용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역시 위와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이 사고에서 일본은 적절한 후속 대응을 실시하지 않아 인접국에 방사능을 유출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십에서 수백만 톤의 방사능 오염수를 정화도 하지 않은 채 태평양에 무단 방류하여, 북서태평양 어장 생태계를 박살내 놓은 전과가 있다. 그럼에도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해서 국가적인 차원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
2019년에는 일본이 국제포경위원회의 탈퇴를 선언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공식적으로 고래잡이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유럽 연합을 포함한 외국에서는 이를 두고 엄청난 비판이 쏟아졌다. 집단으로서의 일본이 '민폐를 싫어하고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는' 개인으로서의 일본인과 다르다는 걸 나타내 주는 사례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대에 와서는 진보 성향의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일본의 고질적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며, 또 역사적으로 봉건제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배경으로 인해 지방 문화의 전통이 긴 일본답게 지역별로도 어느 정도 온도차가 있어서, 도쿄나 교토에 비해 일본인치고 솔직담백하다는 평이 많은 오사카, 후쿠오카, 오키나와 등 지역 사람들은 비교적 널널하게 사는 경우가 많다.
3.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
기본적으로 메이와쿠 의식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기본 예절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점 또한 있다. 대표적으로 '''상대방이 기분 나빠할 말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 것'''. 예를 들어 우리나라처럼 '취업을 했냐', '결혼을 했냐' 등등을 직접적으로 물어보지 않는다. 물론 착각하면 안 될 것이, '물어보지 않는다'는 것이 '상관하지 않는다', 즉 그 사람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유보한다는 말은 아니다. 결국 공동체가 생각하는 정도에서 벗어날 경우 공동체에서 꺼림 혹은 이지메를 당하는 것은 일본인 특유의 공동체 지향주의의 소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시부야구 등지에서 무척이나 과감하고 다양한 패션을 선보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더 거대한' 공동체의 영역으로 나아갔을 때 이러한 것들은 단지 젊은 날 혈기의 소산으로 치부되어 버린다. 결국 학생 때 단정하게 머리 땋고 교복 입고 단화 신고 다니던 학생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한 뒤, 취업을 하기 직전까지는 실컷 갸루를 하건 폭탄머리를 하건 개성적인 패션을 즐기다가도 취업만 하면 머리 검게 물들이고 단정한 양복[10] 을 입고 획일적인 사회로 녹아든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프리랜서의 상징인 후줄근한 복색, 정돈되지 않고 치렁한 머리 등이 결국 '자유인'의 이미지를 상징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이렇게 일본에 유독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직장인 패션(소위 단정한 양복에 단색 넥타이 등), 학생 교복같이 '직업에 알맞은 복색'이 실질적으로 유, 무형적 '''공기(空気: 쿠우키)'''[11] 에 의해 강제되는 문화 역시 일본식 메이와쿠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위에서 메이와쿠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조명된 '타인의 생활에 간섭 혹은 오지랖을 부리지 않는다'라는 말은 더 나아가 일본의 전반을 지배하는 개인주의와도 연관되어 있는데, 공동체주의에 가까운 개인주의라는 말이 얼핏 이해하기 힘들 수 있지만, 개인이 개인을 절대 강제하지 않으나 사회와 시스템에 의해 행동양식이 강제되는 공동체주의라고 생각하면 틀린 말은 아니다. 강제하는 대상이 공동체이기에, 예컨데 '거리에서는 질서를 지킨다'는 '당연한 시민의식'이 메이와쿠 사회에서는 '''나 이외의 누군가가 있을 때 외에는 지켜지지 않는다.''' 시부야의 뒷골목이나 하다못해 청소부가 도심만큼 지나다니지 않는 일본 중소도시의 경우 '여기가 일본인가?' 싶을 정도로 쓰레기가 쌓여있는 모습을 잘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사람이 많은 대로변 도심지에서는 그 누구도 쓰레기를 버리려 들지 않겠지만, 만일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 해도 일본인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비난하진 않을 것이다. 이것이 '메이와쿠'이다.
만일 일본 외 나라에서 대로변에서 누군가가 쓰레기를 버린다면 누군가가 나서서 그에게 직접적 비난을 가할 것이다. 그리고 대로변에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뒷골목에서도 잘 버리지 않으려 한다. '왜' 버리면 안 되는지 그 이유를 본인이 납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메이와쿠 의식이 없는 미국의 경우 문화의식을 공동체가 강제한다기보단 개인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대로변과 뒷골목의 갭이 일본만큼 심하지 않다.
이러한 일본 문화는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기술되어 있는데, 이 책에서는 이를 일본의 '수치의 문화(shame culture)'라고 하며 "일본인들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보느냐에 민감하다"라고 했다. 서양에 대해서는 그에 대응되는 개념으로 '죄의 문화(guilt culture)'라고 했다. 즉 일본 문화에서는 어떤 행위가 잘못인지 여부가 자신의 죄책감(서양 기독교 문화에서 신 앞에 회개해야 할 죄악)이 아닌 사회에서 잘못으로 인정되느냐("수치심"을 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2차대전 직후 쓰여진 책이라 지금보다 더 심하겠지만, "일본은 패전 후에도 대동아 이상을 부정해야 할 것으로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인 포로 중에서도 그나마 맹목적 애국주의의 색채가 옅었던 사람조차도 대륙 및 서남태평양에 대한 일본의 계획을 규탄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문화는 사회 질서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반면, 그 사안에 대한 선악의 판단은 없기 때문에 앞의 쓰레기 사례와 같이 실제로 폐를 끼침에도 불구하고 비난 받지 않을 사항에는 지켜지지 않거나 때로는 태평양 전쟁이나 위안부 강제 동원과 같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식으로 동작하기도 한다.
한편 대한민국도 부촌 지역으로 갈수록 일본처럼 메이와쿠 정신이 스며들어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부촌지역에서 자란 사람들일수록 부모님이 전문직, 고위공무원단, 교수 등 사회적으로 높은 직업을 가지고 있는만큼 부모님의 체면과 위신을 지키고, 이웃이나 동네 주민들 중에도 소위 말하는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항상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고 이미지 메이킹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일반 동네에서는 술집에서 술에 취해 시비가 붙어도 큰일로 번지는 일이 없지만, 부촌에서는 그 상대방이 장차관급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아들일 수도 있어 정말 큰일이 날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악플러들을 대인관계 부족 등으로 묘사하는 것도[12] 그 진의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높아질수록 일본처럼 메이와쿠 문화가 강하고 완곡어법의 사용빈도와 난이도가 높아진다는 의미다.
3.1. 서구권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민폐'나 '메이와쿠' 등의 개념이 강하지 않지만 또 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민폐를 끼치는 경우, 한국이나 일본처럼 "사회 전반적으로" 욕 얻어 먹는 경우는 없다.
스웨덴, 덴마크, 68혁명과 통일 이전 독일 같이 수직적인 게르만 문화가 공적 영역에서도 강했던 북유럽 국가들은 일본 못지 않게 공공에서 사적인 일탈에 엄격하지만, 독일의 경우 68혁명 이후 권위주의적 전통 문화에 대한 반발로 인해 이런 집단주의적 압력이 많이 약해졌고, 영국의 경우 이런 게르만 문화를 상당수 공유하긴 했지만 영국/문화 문서와 기행 문서에 나와 있듯이 '''기행의 범위가 이로 인해 발생하는 민폐보다 공공에게 제공하는 꿀잼이 더 크다'''고 판단될 경우 과감하게 기행을 추구하는 성향도 예전부터 있었다. 반대로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같은 남유럽의 지중해권 문화들은 예전부터 세련된 도시 문화의 공공성에 기반하여 활달한 외향적 성격을 높게 사고, 이런 활발함을 표출하며 생기는 사소한 민폐는 너그럽게 봐주는 편이다. 오히려 이런 동네의 사회 분위기는 근대 이전부터 마을 광장 중심으로 발달 된 사회 생활 + 외향적 과시 문화라는 조합 때문에 이러한 과정에서 서로에게 의도치 않게 민폐를 끼치더라도 너그럽게 보는 사회 분위기가 강해서 일본인은 물론, 같은 서양권 내에서도 개인 간의 거리를 중요시하는 북유럽이나 북미인들에게도 생소하다고 할 수 있다.
층간 소음이란 일상적인 예만 들어도 스위스 같이 상술한 수직적 문화적 전통에 작은 사회적 성격까지 띄어 개인간의 거리에 지극히 민감한 나라들은 밤 10시경 넘어서 가전 제품의 사소한 소음만 들려도 즉각 고소미 먹기 쉬운 반면, 애초에 집을 잠만 자는 공간으로 취급하고 길거리 축제 문화가 발달한 스페인의 경우 적어도 새벽 2-3시 이전에 층간이나 길거리 소음 문제로 경찰을 부르면 오히려 경찰이 '쓸데없이 사소한 문제로 공권력 부른다'며 은연중에 오히려 피신고인들을 옹호하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프랑스, 스페인, 그리스 같이 흡연률 자체가 높고, 사회문화적으로도 관대하며, 2000년대 중반 유럽 연합에서 일괄적으로 공공장소 금연 때리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실내 흡연 되는 곳이 많았던 곳들은 아직도 기차역 같은 곳에서 공공연하게 담배 까치 꺼내 물고, 여기에 항의하면 오히려 주변에서 '담배 좀 필 수도 있지 뭐'하며 적반하장으로 신고인을 바보 만드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반대로 법뿐만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흡연에 대해 엄격한 영국에선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4. 여담
- 일본의 다수의 지방자치단체가 일명 '메이와쿠방지조례'(迷惑防止条例. 한국 언론의 보도에서는 민폐방지조례라고 번역하기도 한다)를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상세는 일본 위키의 설명 참조.
[1] '사람을 미혹하다' 할 때의 그 '''미혹'''이다. 본래 한자상으로는 우리나라 식의 뜻이 맞지만, 일본식 조어가 되면서 의미가 변화한 대표적 케이스.[2] 일본에서도 각각 떼어서 迷い(마요이), 惑い(마도이)라 하면 그냥 '미혹하다'라는 뜻이다. 두 글자를 합쳐야 비로소 '폐를 끼침'라는 뜻이 된다.[3] 우월이든 열등이든 평균에서 벗어나서 눈에 띄는 것을 말한다.[4] 2010년대 초에 인터넷과 스마트폰 보급으로 시청률이 나날이 떨어져가던 와중에 역대급 관심을 받으며 시청률 40%가 넘는 국민적 흥행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의 명대사이자 핵심 대사가 "당하면 배로 갚아준다가 내 신념이다!"인 것도 생각해볼만한 점이다. 물론 드라마의 내용은 직장인으로 상관에 의해 누명을 쓰고 매장당할뻔 하다가 복수를 하는 멀쩡한 내용이긴 하지만 그런 내용보다도 해당 대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5] 동아일보 2013-08-15 '오지랖과 메이와쿠'.[6] 최대 범위로 넓히면 사실상 간섭 및 접촉 금지를 넘어 표현 금지까지로 커진다. 자신의 기분을 표함으로서 상대방이 그걸 보고 불쾌해진다는 이유. 앞서 언급한 이지메의 이용 예시 또한, 존재 자체가 불쾌하다는 쪽으로 몰고 가는 게 많다.[7] 단국대학교 교내신문 2011-03-29 대중문화 touch '메이와쿠' 문화, 선진국형 대처인가 지나친 배려인가.[8] 이 논평이 합리적이라고 볼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몸가짐'이라고 하는 것도 일종의 특정 행동양식이고 문화 규율로서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에서 오는 필요성에서 오는 필수불가피한 것이 아닌, 순전히 전근대적인 여성관과 가치관이 반영된 다분히 성차별적인 관습일 뿐이기 때문이다.[9]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소수자에는 장애인도 포함된다. 우생보호법 문서로.[10] 취업하려는 회사에서 두발, 복장제한을 따로 명시하지 않더라도 일본의 취준생들은 대개 똑같은 복장을 하는 게 불문율로 통한다. 출처: 중앙일보 2013-02-11 日유학생, 면접장서 구직자들 복장에 '깜짝'.[11] 분위기를 의미.[12]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