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민

 


<colbgcolor=#F5F5FD> '''이름'''
구민
'''본명'''
구교문
'''생년월일'''
1932년 1월 25일 (92세) (음력 1931년 12월 4일)
'''소속'''
KBS 성우극회 특기
'''활동 시기'''
KBS: 1948년 ~ 1990년대
[image]
1990년대 당시 증명사진
1. 개요
2. 생애
3. 특징
4. 출연
4.1. 애니메이션
4.2. 방송 및 라디오
4.3. 연극
4.4. 영화
5. 음반
6. 수상 경력
7. 참고 자료


1. 개요


구민(具珉). 본명 구교문(具敎汶)[1] '''대한민국 최초의 성우 중 한 명'''으로 생년월일은 1932년 1월 25일(음력 1931년 12월 4일, 92세).[2] '''1948년''' KBS 성우극회 '''특채''' 성우.[3] 이춘사, 이혜경과는 동기. 2020년 기준으로 '''80대 후반'''이 되었고, 성우 출신 중에서 동기 이춘사(1925년생) 다음으로 최고령이기도 하다.[4]
후술할 바와 같이 노인 목소리 연기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특히 이승만의 성대모사를 한 것으로 유명했다. 다만 라디오 드라마에 많이 나온 데다, 이민으로 국내 성우계를 떠나는 바람에 1970~80년대생 이후 성우팬들에게는 인지도가 떨어지고 출연작도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2. 생애


서울중학교 재학 시절이던 1946년에 국내 최초의 라디오 연속극 <똘똘이의 모험>에서 친구 역할을 맡아 연기에 발을 들였고, 1948년에 KBS 1기 특채로 선발됐다.[5] 1950년 6.25 전쟁 때 대구로 내려가 송범에게 현대무용을 4년 간 배우면서 '구민'이란 예명을 쓰기 시작했고, 경희대 법대를 이수했다.
공채 때 대다수 연기자들이 성우와 배우를 겸했던 거랑 달리 그는 라디오 방송에서 목소리 연기 하나에 매진하여 DBS <잘 돼 갑니다>와 TBC <광복 20년> 에서 이승만 목소리로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에는 KBS 제1라디오 홈드라마 <즐거운 우리집>이나 사회교육방송 반공드라마 <김삿갓 북한 방랑기> 등지에서도 열연했다.
1974~1978년 및 1984~1986년까지 한국성우협회 이사장을 두 차례 지냈으며, 성우 활동 외에 부업으로 극단 '산하'에서 연극무대에 서본 적 있다. 2001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으로 이민 후 재미동포방송 '라디오 코리아'에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등에 출연하며 성우 활동을 계속했다.

3. 특징


음색의 폭이 넓어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했으며, 이 중 노인 연기를 많이 했다. 특히 이승만의 성대모사를 한 것으로 유명하여 당대 청취자들은 이승만의 진짜 목소린지 아닌지를 두고 점심내기를 하기도 했다. 후배 성우 김순환의 증언에 의하면 그는 후배들에게 'XX씨'라는 호칭을 쓰며 친밀감 있게 대해 주었고, 누군가가 감기 등으로 목소리가 변할 때도 애드립으로 분위기를 살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동안 나이 때문에 은퇴하면서 별세 소식이 없는 성우들도 많지만 90~100세 이상의 생존해있는 원로 성우들이 그다지 많지 않는데 2019년 5월 30일에 최근 모습을보면 90세를 바라보는 고령에 불구하고 정정하다. 행방을 알 수 없거나 사망한 특기 동기들인 이춘사이혜경에 비하면, 그나마 건강한 편이다.

4. 출연



4.1. 애니메이션


  • 호피와 차돌바위 - 호피

4.2. 방송 및 라디오


  • 고승열전(BBS) - 해설
  • 광복 20년(TBC) - 이승만
  • 김삿갓 북한 방랑기(KBS) - 김삿갓
  • 부리부리 박사(KBS) - 부리부리 박사
  • 청실홍실(KBS) - 김사장
  • 세종대왕(KBS) - 황희정승
  • 잘 돼 갑니다 (DBS) - 이승만
  • 똘똘이의 모험 (KBS)
  • 스타탄생(KBS)[6]
  • 은빛세계(MBC)

4.3. 연극


  • 성자의 샘
  • 잉여인간
  • 밀사

4.4. 영화


  • 아아 백범 김구선생(1960) - 둘째 아들

5. 음반


  • 구민의 노래실은 메아리 (1976, 오아시스레코드사)

6. 수상 경력


  • 국민훈장 목련장 (1982)

7. 참고 자료



[1] 능성 구씨 30세 '''교(敎)''' 재(在) 항렬이라고 하지만 족보에 등재되어 있지 않으므로 확인이 필요하다.[2] 1984년 7월 17일 경향신문 기사 참고.[3] KBS 공채 1기를 1954년에 모집했다. 모든 성우에게는 완전 까마득한 선배.[4] 일본의 이시모리 탓코우, 나야 로쿠로, 오오타케 히로시, 시로야마 켄, 타노나카 이사무와 동갑으로 특히 이시모리와 시로야마역시 구민처럼 1940년대에 어린나이에 성우와 배우 세계를 뛰어넘었다.[5] 당시 '''16세'''다. 특기 동기들 중 '''최연소 막내'''다.[6] 1950년대 인기 공개방송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