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성 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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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성 구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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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향'''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
'''시조'''
구존유(具存裕)
'''집성촌'''
경기도 광주시, 하남시
충청남도 공주시, 당진시
충청북도 보은군, 음성군, 옥천군
전라북도 익산시 함열읍 와리
전라남도 화순군
경상북도 김천시
경상남도 진주시
인천광역시 강화군
'''인구'''
172,243명
1. 개요
2. 역사
3. 기원
4. 항렬
5. 실존 인물
5.1. 전근대 인물
5.2. 24세손(然)
5.3. 25세손(書)
5.4. 26세손(會/善)
5.5. 27세손(滋/潤)
5.6. 28세손(本/東)
5.7. 29세손(謨/烋)
5.8. 30세손(敎/在)
5.9. 31세손(祐/鎬)
5.10. 33세손(林/彬)
5.11. 대수 미상


1. 개요


'''능성 구씨'''(綾城 具氏)는 전라남도 화순군 능주면[1]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2] 시조 구존유(具存裕)는 고려의 공신으로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重大匡) 검교상장군(檢校上將軍)을 지냈다. 능성 구씨는 고려와 조선에 걸쳐 유력 가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속적으로 관직에 진출하고, 조선 왕실의 인척이기도 했다. 현대에는 LG그룹 가문으로도 유명하다.

2. 역사


2세는 평장사(平章事)를 지낸 구민첨(具民瞻), 3세는 문하좌정승(門下左政丞)을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연(具珚), 4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예(具藝), 5세는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구영검(具榮儉), 6세는 면성부원군(沔城府院君) 문정공(文貞公) 구위(具禕)와 문하찬성사(門下贊成事)를 지낸 구흥(具興)과 공조전서(工曹典書)를 지낸 구의(具義)가 있다. 고려 말 좌시중(左侍中) 7세 문절공(文節公) 구홍(具鴻)은 조선의 개국에 협력하지 않고 은둔하여 고려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능성 구씨는 무인의 명가였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를 지낸 구사직(具思稷), 훈련대장 등을 지낸 구굉(具宏), 어영대장인 구인후(具仁垕), 총융사(摠戎使)인 구인기(具仁墍), 어영대장인 구문치(具文治), 총융사인 구감(具鑑), 훈련대장인 구성임(具聖任), 훈련대장인 구선복(具善復) 등이다. 이 중 구굉·구인후·구인기는 인조반정(仁祖反正)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에 녹훈(錄勳)되었다.
또한 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을 지낸 구치관(具致寬), 강릉대도호부사를 지낸 구치홍, 성종 때 상주목사를 지낸 구치명, 경상우도절도사를 지낸 구겸, 중종반정(中宗反正)의 정국공신(靖國功臣)인 구현휘(具賢暉)·구수영(具壽永),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인 능원군 구문신(具文信) 등이 있다. 중종의 부마 구사안(具思顔), 인조의 외조부이며 이조판서·좌찬성·숭록공신(崇祿功臣)에 오른 구사맹(具思孟), 시문에 뛰어나고 관찰사·참판·대사헌을 지낸 구봉령(具鳳齡) 등이 있다. 조선의 왕족으로는 원종의 비 인헌왕후(조선 제16대 왕 인조의 어머니)가 있다. 능성 구씨는 영조대(英祖代)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권력의 핵심에서 가문의 세를 떨쳤다. 그러나 정조 대 구선복임오화변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처형당하고 군부에 대한 영향력을 빼앗기면서 가문의 세가 줄어들었다.
《능성구씨사료집》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총 56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진사 144명, 문과 55명, 무과 363명으로 무과 출신이 65%를 차지한다. 이를 파별로 보면 도원수파 359명, 판안동파 72명, 좌정승파 42명으로 역시 이들 3파가 전체의 84%를 차지한다. 무과 출신 가운데 영조 때까지 종2품의 장신급(將臣級)이 9명이나 배출되었는데, 이는 그때까지의 장신 총수의 12분의 1에 해당한다.

3. 기원


능성 구씨의 시조 구존유가 1224년 주잠과 함께 중국에서 도래하였다는 일부의 주장이 있으나, 중국에 있는 신안 주씨의 기록에 구존유는 고려인으로 기재되어 있으며 1224년 이전부터 호남 지방에 토착 구(具)씨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후백제가 멸망한 뒤 나주(羅州)에서 포로로 잡힌 후백제 장군 구도(具道)의 아들 구단서(具端舒)가 있고, 궁예의 태봉국 시중(侍中)이었던 구진(具鎭)이 918년(태조 1) 나주도(羅州道) 대행대(大行臺) 시중(侍中)에 임명되었으며, 1101년(고려 숙종 6년)에 탁라(乇羅) 성주(星主)인 배융부위(陪戎副尉) 구대(具代)가 유격장군(遊擊將軍)에 임명되었던 사실을 《고려사(高麗史)》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구씨(具氏)가 예로부터 나주(羅州)나 능성(綾城) 지역의 토착 성씨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능성현(綾城縣) 토성조(土姓條)에도 구씨(具氏)를 능성현(綾城縣)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로 기록하고 있다.
대종회에서는 역사서를 근거로 중국 도래설을 반박하고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라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첫째, 고려 이전에도 호남 지방에 토착 구씨가 존재했다는 점이다. 둘째, 본문에 언급한 바와 같이 여러 역사서에 능성 구씨가 토착 성씨로 기록된 점이다. 셋째, 중국 측 주씨의 기록에는 구존유가 고려인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에 편찬된 신안 주씨의 족보를 토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임을 주장하는 일각의 주장은 역사 사실과 맞지 않다. 넷째, 현재 중국에는 구(具)씨 성을 가진 씨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성 구씨가 중국계 성씨라는 주장은 모화사상에 기초하여 중국과의 관련성을 부각하고자 했던 시도로 보는 것이 설득력 있다.

4.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25~29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특히 자(滋), 본(本)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대단히 많아서, 성이 '구본', '구자'씨인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 거의 관계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형제자매 관계로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고, 동명이인도 많다. 특히 가수 구창모, 야구선수 구창모, 래퍼 창모는 서로 한자까지 같은 완벽한 동명이인이다.
'''22세'''
○희(喜)
'''23세'''
○조(祖)
'''24세'''
연(然)○
'''25세'''
○서(書)
'''26세'''
○회(會), ○선(善)
'''27세'''
자(滋)○, 윤(潤)○
'''28세'''
본(本)○, 동(東)○
'''29세'''
○모(謨), ○휴(烋)
'''30세'''
교(敎)○, 재(在)○
'''31세'''
○우(祐), ○호(鎬)
'''32세'''
제(濟)○, 원(源)○
'''33세'''
○림(林), ○빈(彬)
'''34세'''
희(熙)○, 훈(薰)○
'''35세'''
○규(奎), ○배(培)

5. 실존 인물


기업인인 사람들은 대부분 LG그룹 가문이다. 범 LG가 참고.

5.1. 전근대 인물



5.2. 24세손(然)


  • 구상[3] - 시인.
  • 구연영 - 독립운동가.

5.3. 25세손(書)



5.4. 26세손(會/善)


  • 구부회 - 목사, 문서선교사
  • 구상회 - 충북 보은군 기초의원.
  • 구성애[4] - 사회운동가, 성교육 강사.
  • 구영회 - 미식축구 선수.
  • 구예진[5] - 유튜버.

5.5. 27세손(滋/潤)



5.6. 28세손(本/東)



5.7. 29세손(謨/烋)



5.8. 30세손(敎/在)


  • 구교민 - 프로게이머.
  • 구교환 - 배우.
  • 구지헌 - 창업가.
  • 구교현 - 알바노조 위원장.
  • 구흥남[7] - 교육자, 정치인.

5.9. 31세손(祐/鎬)


  • 구용상[8] - 공무원, 정치인.
  • 구철우[9] - 서화가.
  • 구충곤[10] - 정치인, 現 화순군수.
  • 구현우 - 축구선수.

5.10. 33세손(林/彬)


  • 구은수[11] - 경찰.

5.11. 대수 미상


  • 구춘선[12] - 독립운동가.

[1] 1914년 부군면 통폐합 이전에는 전라남도 능주군이었다.[2] 그래서 화순군 쪽 집성촌 사람들이 항렬이 낮다. (항렬이 낮다는 건 통계적으로 종가와 가깝다는 말이다.)[3] 본명은 구상준(具常浚)이다. 항렬자를 쓰지 않지만 능성구씨종보 제157호에 전 대종회 고문이라고 써져 있으며, 27세손 자(滋)자 항렬을 쓴 야구선수 구자욱(具滋昱)이 종증손(從曾孫, 자기 형제의 증손자.)이라고 문화일보 기사에 써져 있다. 그러므로 구상은 24세손이다.[4] 아버지의 이름이 25세손 서(書)자 항렬을 써서 구광서(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이름의 한자가 具廣書라고 써져 있으며, 중앙일보 기사에서는 이름의 한자가 具光書라고 써져 있다.)다. 그러므로 구성애는 26세손이다.[5] 남동생의 이름이 26세손 회(會)자 항렬을 써서 같은 문단에 후술할 구준회(具俊會)다. 그러므로 구예진은 26세손이다.[6] 항렬자를 쓰지 않지만 아버지의 이름이 27세손 자(滋)자 항렬을 써서 27세손 문단에 전술한 구자춘(具滋春)이다. 그러므로 구성재는 28세손이다. 그리고 족보에 다른 이름으로 본주(本珠)라는 이름도 있다고 써져 있다. 출처: 《능성구씨족보》 구성재편.[7]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30세 교(敎), 재(在)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삼모(具三謨), 30세 구흥남(具興南) 순으로 이어진다.[8]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31세 우(祐), 호(鎬)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종학(具從學), 18세 구인정(具仁貞), 19세 구사민(具士敏), 20세 구응두(具應斗), 21세 구신업(具信業), 22세 구이기(具爾起), 23세 구천수(具天壽), 24세 구윤장(具潤章), 25세 구양욱(具陽旭), 26세 구정직(具廷稷), 27세 구항록(具恒祿), 28세 구본신(具本愼), 29세 구기모(具琪謨), 30세 구교복(具敎福), 31세 구용상(具龍相) 순으로 이어진다.[9]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일단은 31세 우(祐)자 항렬을 쓴 것이 맞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항무(具恒茂), 15세 구득인(具得仁), 16세 구용연(具龍淵), 17세 구정(具綎), 18세 구두남(具斗南), 19세 구현경(具玄慶), 20세 구선(具善), 21세 구종전(具宗荃), 22세 구석관(具碩寬), 23세 구삼락(具三樂), 24세 구훈(具壎), 25세 구택현(具宅鉉), 26세 구인원(具仁源), 27세 구상직(具相稷), 28세 구본수(具本修), 29세 구익모(具翼謨), 30세 구교창(具敎昌), 31세 구철우(具哲祐) 순으로 이어진다.[10] 항렬자를 쓰지 않았으나 본래는 31세 우(祐), 호(鎬)자 항렬이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항무(具恒茂), 15세 구득인(具得仁), 16세 구용연(具龍淵), 17세 구정(具綎), 18세 구두남(具斗南), 19세 구현경(具玄慶), 20세 구선(具善), 21세 구종전(具宗荃), 22세 구석관(具碩寬), 23세 구삼락(具三樂), 24세 구훈(具壎), 25세 구택현(具宅鉉), 26세 구민원(具敏源), 27세 구상홍(具相弘), 28세 구본환(具本煥), 29세 구행모(具行謨), 30세 구교석(具敎碩), 31세 구충곤(具忠坤) 순으로 이어진다.[11] 족보에 33세 림(林)자 항렬을 써서 은림(恩林)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본명인 은수(恩洙)는 자(字)라고 기재되어 있다. 다음은 출처 사진이다. [image] 나이에 비해서 항렬이 매우 낮기는 하나 33세인 것은 확실하다.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천용(具天容), 5세 구식(具軾), 6세 구록(具祿), 7세 구영량(具英良), 8세 구인미(具仁美), 9세 구득전(具得全), 10세 구효장(具孝長), 11세 구정여(具定如), 12세 구중절(具中節), 13세 구환(具桓), 14세 구영록(具英祿) 15세 구흥의(具興義), 16세 구충(具冲), 17세 구문(具紋), 18세 구이첨(具爾瞻), 19세 구천우(具天祐), 20세 구사정(具四定), 21세 구운명(具雲命), 22세 구궤상(具樻常), 23세 구길서(具吉瑞), 24세 구순엽(具順燁), 25세 구인성(具仁成), 26세 구세도(具世道), 27세 구영일(具永一), 28세 구낙수(具洛洙), 29세 구희관(具羲觀), 30세 구교인(具敎仁), 31세 구홍우(具弘祐), 32세 구제황(具齊黃), 33세 구은림(具恩林) 순으로 이어진다.[12] 대종회에서 공식적으로 계보 불명으로 소개하고 있다. 출처 《능성구씨종보》 제1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