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도난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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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시 범인들이 훔쳤던 국보 제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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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행 상황도와 같이 훔쳤던 유물들(출처 : 동아일보)
1. 개요
2. 사건 배경
3. 사건 진행 과정
4. 사건 이후


1. 개요


2003년 5월 15일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국보 도난 사건. 다행히 빠른 시간 안에 용의자들이 검거되었고, 도난당했던 국보과 문화재들 또한 무사히 회수하였지만, 대한민국 박물관들의 보안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

2. 사건 배경


1972년 공주시 중동에 세워진 공주박물관은 당시 국립박물관 건물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 박물관이었다. 기존 무령왕릉 출토 유물뿐만 아니라 주변 지역의 백제 유물들을 소화해내기에 부족해서 1995년에는 1층 강당을 전시실로 바꿀 정도록 협소한 부지와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2003년 10월에 임시 휴관을 하고, 2004년 상반기에 현재의 웅진동 신축 건물로 이전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박물관의 보안 관련 시설을 '''전혀 보강하지 않고 있었다'''.
더구나, 공주박물관은 국립 박물관 중 유일하게 별도의 방재실을 갖추지 않았다. 결국, 전문 방재요원이 아닌 당직자 1명이 박물관 전체를 밤새도록 지켜야 하는 실정이었다. 더군더나 공주박물관은 관장을 포함해 직원이 12명으로 지방 소재 국립박물관 중에서 가장 적은 수여서 일주일에 1번 정도 숙직을 해야 하는 형편이었다.[1]
또한, 당직 근무시 셔터문을 내리고 근무해야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셔터문을 내리지 않고 근무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한 마디로 이러면서 그 동안 문화재 절도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

3. 사건 진행 과정


2003년 5월 15일 밤 10시쯤 국립공주박물관에 흉기와 전기충격기를 소지한 강도 2명이 침입하여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던 박물관 당직자를 흉기로 위협해 눈과 입을 가린 뒤 결박을 하고 1층 전시관에 들어가 유리 진열장를 부수고 국보 제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고려청자 2점, 분청사기 한 점을 들고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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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난당한 문화재가 있던 유리 진열장
사건 발생 후 문화재청과 충남지방경찰청은 도난당한 국립공주박물관 소장의 국보 제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비롯한 문화재 4점에 현상금 2천만원을 걸었고, 문화재청은 도난범과 도난품들을 발견하거나 밀거래 정보를 입수할 경우 이를 신고하면 2천만원의 현상금을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조속한 문화재회수를 위해 범인이 자수할 경우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통해 법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5월 22일 부산에서 시민의 제보를 받고 용의자 2명이 체포되었다. 이들을 체포하면서 도난당한 문화재는 발견하지 못하였지만, 체포당시 타고 있던 차의 짐칸에 범행에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도구, 그리고 박물관 당직자로부터 범인이 맞다는 진술을 토대로 이들을 추궁해 자백까지 받아냈으나 알고보니 이들은 이번 사건과 전혀 무관한 용의자들이였고, 24일 진범 중 한명인 임 모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에 체포되어 공주경찰서로 인계되었다.[2]
체포된 임 씨는 범행을 일체 부인했으나 하루만인 25일 범행사실을 자백하였고, 도주한 공범을 휴대전화 문자메세지로 설득하여 26일, 사건 발생 11일 만에 경기도 용인시 한 우유 대리점 앞 화단에 숨겨져있던 국보 247호 금동관음보살입상을 회수하였다. 그외에도 용의자 임 씨를 경찰에 제보했던 손 모(36)씨도 이번 사건의 공범인 사실이 드러났고 손씨가 국보 등의 판매처를 물색하는 과정에 함께 했던 양 모(34), 김 모(36), 윤 모(35)씨가 속속 경찰에 붙잡혀 구속됨으로써 이번 사건에 연루된 구속자는 5명으로 늘어났다.
이어서, 30일에는 호남고속도로 유성 인터체인지 부근 숲 속에서 공범 박 모씨가 숨겨놓은 고려시대 상감 청자 2점과 분청사기 등 문화재 석 점을 찾아내 박물관에 인도하여 사건 발생 보름만에 도난당한 문화재를 모두 회수하였다.
결국, 6월 2일 도난사건 마지막 용의자 박 모씨가 공범인 임 씨와 가족들의 회유에 자수하면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

4. 사건 이후


국보급 문화재를 다수 보관하는 국립박물관임에도 불구하고 신축 이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설마 하는 생각에 보안시설을 강화하지 않고 전시실 내부에 CCTV 1대도 없이 적외선 감지장치 조차 제대로 작동되지않는 허술한 방범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언론들의 질타를 받았다.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던 이건무는 공주박물관 문화재 도난사건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사죄의 뜻을 밝히며 유사 사건의 재발방지를 위해 11개 지방 국립박물관에 대한 일제점검을 실시했다.
빠른 시간에 피의자 검거와 문화재 회수에 큰 활약을 한 공주경찰서 형사계 수사관계자 12명에게 도난사건으로는 사상 최고액에 해당하는 보상금 1천만 원을 지급하였다고 한다. 반대로, 범인 임 씨을 제보했던 손 씨는 공범임이 드러나 보상금은 커녕 콩밥을 먹게 되었다.
그래도 이 사건을 계기로 문화재보호법이 강화되었고,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과 애호의식이 매우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도난 문화재에 대한 신속한 신고와 다양한 제보가 잇따라 이후에 문화재사범 검거와 도난문화재 회수에 상당한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물론, 아직까지 회수되지 못한 문화재들도 많이 있지만 말이다.

[1] 다른 지방박물관의 경우, 별도 방재실에 경비업체 직원 2명이 상주하고 있고, 이들 외에 청원경찰이 외부 초소를 지키는 등 2중 3중의 대책을 세우고 있다.[2] 진범인 임씨를 제보한건 다름아닌 공범인 손 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