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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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권경섭(權景燮)

윤중(允中)
본관
안동 권씨[2]
생몰
1890년 2월 5일 ~ 1944년 3월 16일[3]
출생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내성현 유곡리
(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4]
사망지
경상북도 봉화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권세연은 그의 조부이다.

2. 생애


권경섭은 1890년 2월 5일 경상도 안동대도호부 내성현 유곡리(현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의 양반가에서 아버지 권상태(權相台)와 어머니 반남 박씨 정언(正言)을 지낸 박명수(朴明壽)의 딸 사이의 두 아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927년 8월 27일 경북 봉화군에서 신간회의 지회설립대회(支會設立大會)를 개최하고 간사(幹事) 15인 중 한사람으로 피선되었으며 지회조직 및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 일부를 지원하였다. 1928년 12월 29일 신간회 봉화군 지회 제3회 정기대회에서 대의원(代議員)으로 피선되어 규약 및 의사(議事)를 처리하였다.
1929년 2월 15일 신간회중앙본부 복대표대회(新幹會中央本部複代表大會)의 봉화군 대표로 피선되었다. 1932년 8월 조선일보 봉화지국(奉化支局) 기자로 언론에 종사하면서 비밀결사 청년반제동맹(靑年反帝同盟)에 가입하고 독립사상의 보급과 동지획득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34년 7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봉화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4년 3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권경섭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1933년 6월 4일, 청년반제동맹 사건 관계로 경북안동경찰서에 검거되었을 당시 촬영된 사진.#[2] 복야공파 두경(斗經)1계 34세 섭(燮) 항렬.[3] 안동 권씨 대동세보에는 1943년 2월 14일에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4] 안동 권씨 집성촌이다. 권성기 전 국회의원과 독립유공자 권상익·권세연·권영섭·권차응도 이 마을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