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검
1. 郄儉
1.1. 행적
생몰년도 미상
삼국시대의 인물. 자는 맹절(孟節).
양성현 사람으로 박물지에서는 조조가 초대한 방사 중의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곡식을 피했다고 한다.
왕진을 스승으로 해 수십 년 모셔 중단소이법을 전수받아 도세[1] 할 수 있게 되었다. 대추씨 크기로 몸을 작게 해 먹지 않고도 10년을 버틸 수 있었으며, 공기를 닫아 숨을 쉬지 않은 채 몸을 전혀 움직이지 않아 죽은 사람처럼 해 1백 일이고 반년이고 견뎌낼 수 있었다.
이 방법이 왕진이 습득한 교간인의 비법으로 집안도 꾸리고 있었다고 하며, 사람됨이 진실하고 조심성이 많아 말을 마구하지 않았다. 조조가 여러 방사들을 초대하면서 자신을 위해 초막집을 지어주고 여러 방사들을 부릴 수 있게 해줬으며, 진나라의 혜제와 회제 때 장안의 시중에서 극검을 본 적이 있다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포박자에서는 사냥을 나섰다가 빈 무덤에 떨어졌고, 커다란 거북이가 입을 벌리고 숨을 삼키느라 하는 것을 보았는데, 거북이 하는 대로 따라 했더니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고 한다.
1.2. 관련 사료
- 박물지
- 신선전
2. 郤儉
후한 말의 인물. 극정의 조부, 극읍의 아버지.
영제 말에 익주자사를 지냈고 백성들을 수탈해 소문이 먼 곳까지 알려졌으며, 영제가 극검을 불러 형벌을 가하려 하면서 유언을 감군사로 삼고 익주목을 겸임하게 했다.
이 때 영제가 내린 조서에서는 이전 자사인 유준과 함께 탐욕스럽고 흉악하면서 절제가 없어 거두는 것이 난잡하게 어지러워 백성들이 크게 울부짖어 들판을 채웠다고 언급했다.
188년에 익주에서 마상, 조지 등이 반란을 일으켜 낙현에 왕요, 조파 등을 보내자 살해당했다.
그가 살해당한 후에는 익주목으로 들어온 유언이 익주자사의 치소를 낙현에서 면죽으로 옮겼다.
2.1. 미디어믹스
소설 삼국지 정훈전에서는 정훈이 익주목으로 부임해 익주를 공격하자 감녕이 정훈에게 투항해 자신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분노했으며, 부하들이 나가 싸우는 것을 권하자 감녕을 당해내지 못할까 겁내다가 감녕이 무서운 것은 장강에 있을 때 뿐이라고 하자 군사 오 천을 모아 직접 싸우러 덕양에 군사를 주둔했다.
감녕을 보자 욕하면서 장수들에게 누가 감녕과 싸우러 갈 것인지 물었지만 아무도 답하지 않자 궁수들을 시켜 활을 쏘게 했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며, 감녕, 관우, 장비, 장합 등이 군사를 이끌고 돌격하자 도망갔다.
극검은 계속 도망가면서도 장비의 추적을 받다가 광한의 현위로 있던 엄안을 발견하고 자신을 구하라고 외쳤지만 엄안의 대도에 참수된다.
[1] 삶과 죽음의 현실을 극복하고 열반에 들어가거나 미혹한 세계에서 깨달음의 피안에 이른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