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정

 


郤正
(? ~ 278년)
1. 개요
2. 정사
2.1. 촉나라에서
2.2. 위나라에서
2.3. 진나라에서
3. 연의
4.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의 촉한의 정치가. 자는 영선(令先). 본명은 극찬(郤纂). 하남군 언사현 사람.

2. 정사



2.1. 촉나라에서


조부 극검(郤儉)은 익주자사로 있다가 도적에게 살해당했고 부친 극읍(郤揖)은 맹달을 따라 위나라에 항복하여 중서령사가 된다.
어려서부터 부친이 죽고(위나라에 항복한지 얼마 안 되어 죽은 듯) 어머니가 재혼하여 혼자 외로운 생활을 했지만, 빈곤함에도 불구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성질이 선천적으로 명예나 이익은 가볍게 보지만 문장에는 특히 마음을 기울여 사마상여, 왕포, 양웅, 반고, 부의, 장형, 채옹 등이 남긴 문장이나 사부로부터 당대의 우미한 서간과 정묘한 논설에 이르기까지, 익주에 있는 것은 찾아 연구하며 거의 전부 읽어 약관의 나이가 되자 문장을 훌륭하게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로 인해 궁궐로 들어가 비서사가 되었고, 영사에거 랑으로 승진하고, 령까지 올라갔다. 그 중에 맹광과는 특히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극정은 궁정 안의 직책이 임명된 이후로 환관 황호와 함께 일을 처리하며 '''30년'''을 보냈다. 황호는 극정을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성질이 위에서 얘기했듯 명예나 이익을 가벼이 보는 성격이었기에 황호의 미움도 받지 않았다. 이 때문에 봉록은 6백 석에 불과했지만, 황호의 참언에 의한 우환은 면했다.
극정은 이전 시대의 학자들을 본받아 문장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석기(釋譏)》라고 제목을 붙였다. 이 문장은 최인(崔絪)의 《달지(達旨)》를 계승한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1]

─ 어떤 사람이 나를 비난하며 말했다.

"과거의 기록에서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릇 사업은 시대와 함게 일어나고, 명성은 공과 조화를 이룹니다. 이와 같으면, 명성과 사업은 이전 시대의 현인들이 긴급하게 처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제도를 세우고 규범을 만들 경우,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하면 세울 수 없었고, 널리 칭찬하여 이름을 남길 경우에는 공로가 없으면 기록되지 못했습니다.

명성은 반드시 공을 세운 후에 나타나게 되고, 사업 역시 시기를 기다린 후에야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도리에 통달한 인물은 도를 연구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진리를 탐구하며, 천체 운행시 나타나는 운명의 징조를 관찰하여 인간 세상의 흥성하고 쇠함을 고찰하며, 변설가는 유세하러 달려가고 지혜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하며, 책모가는 계략을 추인하고 용감한 무사는 위험을 떨치며, 구름이 합치고 안개가 모이고 바람이 거세고 번개가 번쩍이면, 시기를 관찰하여 일의 마땅함을 파악할 수 있고, 처세의 자본을 취하여, 작은 몸을 굽혀 큰 것을 펴고, 공적인 것을 보존하고 사사로운 일을 홀시하며, 1척을 굽혀 8척을 펼 수 있고, 최후에는 빛을 날려 발휘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삼국이 정립하고 있고 천하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으며, 광대한 사해 안은 재화와 멸망이 닥쳐 도덕과 인의의 상싱을 한탄하고 있고, 불쌍한 백성들은 떠돌며 고난을 겪고 있으니, 이것은 확실히 성인과 현인이 구제할 때이며, 열사가 공을 세울 기회인 것입니다.

그대는 고명한 재간과 보옥같은 미덕을 갖고 있으며 아울러 전적을 광범위하게 읽고 연구하였으며, 도덕 학술에 마음을 두어 먼 곳까지 이르지 못함이 없고, 깊은 곳까지 통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당신은 임명을 받아 궁궐의 비밀 문건을 처리하고, 제왕 곁에서 조용히 국가 중신의 직책을 맡았으며, 구고(아홉차례의 근무평가)에서도 옮기지 않아 궁궐로 들어온 이래 나간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은 고금의 진위를 탐구하여 현재 필요한 임무의 득실을 계산하였습니다.

당신은 비록 계책 하나를 바치면서 우연히 간언을 한마디 하여 자신의 관직의 책임을 지고, 이것으로써 국가의 봉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충성을 다하고 가슴속을 피력하며 바른 말을 열거하고 직언을 받들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점에서는 우리처럼 비천한 신분의 사람의 귀에도 할 수 없음이 전해졌습니다. 당신은 또한 수레를 멈추지 않고 고삐를 느슨하게 하여 말머리를 돌려 길을 바꾸어서 수레바퀴를 느슨하게 하고 말이 뜻대로 가도록 하십니까? 물의 깊이를 자세히 살펴 건너고, 아름답고 평탄한 길을 구하고, 추란을 심어 세상에 향기가 나도록 하며, 우리를 도와 학업을 개척하는 것 또한 흉성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탄식하여 말했다.

"아, 결국 이와 같이 말하는구나! 인심의 차이가 확실히 사람의 얼굴 같다. 그대의 말은 광휘가 나고 화려하며 아름답고 염려하지만, 대통 구멍으로 표범을 보고 광주리로 바다를 들어올리면서 자기의 식견을 고집하고 있으니, 우주의 형체에 대해 말하거나 여러 사물의 정련됨을 서술할 수 없구나!"

어떤 사람은 생각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들어 눈썹을 떨며 말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나는 그에게 대답했다.

"우제는 겉으로 순종하는 것을 경계했고, 공성(공자)은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허물로 간주했습니다. 당신의 말은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것이니, 그대를 위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논리하여 해석하려 합니다. 과거 태고시대에 사람들은 처음으로 몽매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되어 삼황(중국 최초의 지배자 세 사람)은 하늘의 비기를 순응하고, 오제(삼황의 뒤를 계상한 다섯 명의 군주)는 상서로운 운명을 이어 받았으며, 하ㆍ상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이전의 전적에 이미 적혀 있씁니다. 희주가 쇠망하고 도리가 피폐해지자 패자가 왕실을 보좌했는데, 영씨는 잔학하여 전영토를 병탄시켰습니다.

그래서 합종연횡의 책략가들이 구름처럼 일어나고, 속이는 기술이 별처럼 늘어섰으며, 아첨하는 행위는 벌 떼처럼 일어났고, 교활한 말은 풀에 싹이 돋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실을 꾸며 허위를 공격했고, 어떤 사람은 사악한 마음을 끼고 영예를 구했으며, 어떤 사람은 기교를 부려 자신을 뽑냈습니다. 정의에 등을 돌리고 사악함을 숭상하고, 정직함을 버리고 아첨으로 향했으며, 충성에는 일정한 내용이 없고, 도의의 개념에는 보편적인 원칙이 없었습니다.

때문에 상앙의 법이 정점에 이르자 사악함이 흉기하고, 이사의 법도가 실패하자 간사함이 출현했으며, 여불위의 문중은 거대했지만 종족은 멸망했고, 한비자는 능변으로 섰지만 처형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이익이 그 마음을 바꾸고, 총애가 그 눈을 비추며, 빛나는 용 장식, 찬란한 거마와 의복, 일시의 행운을 쥐고 전전반측하며 기뻐하고, 사악하고 음란하게 거리낌없고 수레 방울의 소리는 아직 조화를 이루지 않았는데 몸은 끌채곁에 있고, 궁궐의 정원은 아직 밝지 않았는데 마룻대가 부러지고 서까래가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그 신령을 거두고, 땅이 그 은택을 거리며, 사람이 그 몸을 매장하고, 귀신이 그 이마를 베어냅니다.

당초에는 높은 산 위로 올라갔으므로 마지막에는 깊은 계곡으로 떨어진것입니다. 아침에는 위세를 머금었으므로 저녁에는 말라 비틀어진 혼백이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현명한 사람과 군자는 깊이 계획하고 멀리 생각하여 그 허물을 경계하고 세속을 초월하여 그 고상함을 들고 신령스런 거북이가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것>을 편안해 하듯이 혼탁한 세상의 영예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하는데 어찌 군주를 경시하고 백성들에게 방자하게 굴고 시대의 임무를 홀시겠습니까? 《주역》은 나아감과 물러남에 관한 경계를 나타냈고, 《시경》은 안정과 공경의 감탄이 있는데, 이것은 신령이 들은 것이고, 규율이 그렇게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을 창업한 이래로 하늘의 명에 응하고 백성들의 마음을 따랐으며, 정치의 융성함은 봄날의 햇살처럼 밝게 빛나고, 고개 숙여 대지의 법칙을 따르며, 얼굴을 들어 하늘의 현상을 법으로 취했습니다. 황제의 은택을 펼쳐 세상을 비추고, 풍부하고 순박한 교화를 빛내며, 군주와 신하가 법도를 집행하여 각자 그 본성을 각자 그 본성을 지켰습니다.

군주는 의견을 듣고 받아들여 도량의 넓음을 나타내고, 신하는 정치를 보좌하는 책임을 지며, 선비들은 겉으로 수식하여 총애받는 자를 없도록 하고, 백성들은 전일한 행위를 실천하여 찬란히 빛나도록 노력하고, 이와 같이 충성스런 사업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의에는 흥성함과 쇠함이 있고, 사물에는 흥함과 피폐함이 있으며, 음행할 때도 있고 정숙할 때도 있고, 밝을 때가 있으면 어두울 때도 있습니다.

양의 기운은 가을에 쇠하고, 음의 기운은 초봄에 누그러듭니다. 회화(태양의 수레몰이)가 가면 망서(달의 수레몰이)가 뒤를 잇고, 달의 기운이 다하면 태양의 빛이 내립니다. 후한의 충제, 질제가 요절하고, 환제가, 영제가 실정을 하자 영웅이 천하를 구름처럼 덮고 호걸이 그 시대를 압도하여 집집마다 다른 주장을 가졌으며, 사람들마다 다른 계획을 품었기 때문에 권모가들은 자신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서술했고,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그들의 언론을 토해냈습니다.

지금 하늘의 기강(국법)은 이미 엮어졌고, 덕정은 서방 이웃에 세워졌으며, 선조의 커다란 법칙을 이어 선비들의 관직에 대한 야심을 제한시키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진흥시켜 습속을 훈도하며, 아홉 가지 덕을 풍부하게 하여 백성들을 구조하고, 신명한 제사를 정돈하여 행앟며, 제왕의 규율을 고찰하여 참된 천자를 보좌하고 있습니다. 비록 할거하는 자는 아직 통일되지 않았고, 거짓스런 군주는 아직 제거되지 않았지만 성인이 후대에 남긴 훈꼐, 즉 전체가 평등하여 가난한 자가 없습니다.

때문에 군주와 신하는 조정에서 아름답게 협력하고, 백성들은 들녘에서 기쁜 마음으로 제왕을 받드니, 행동할 때는 일정한 규칙을 중시하는 것 같고, 조용히 있을 때는 규칙이 없는 것 같습니다. 우수한 인재들은 원개 같은 인물이며, 허물이 있으면 반드시 아는 것은 안자 같은 인덕이 이씃ㅂ니다. 강직한 행정은 염구, 계유의 정치 같은 인덕이 있습니다.

강직한 행정은 염구, 계유의 정치 같고, 매같이 날아오르고 맹금이 도약하는 무용은 이윤, 태공망처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준재들의 우수한 책략을 총괄하면, 모두 칠공의 세가지 계책(한나라 초기, 반란을 일으킨 경포의 상, 중, 하 세가지 계략을 설공이 예측하여 한고조에게 진언했다)을 포함하고 있으며, 장량, 진평의 신비한 책략을 펴고 있습니다. 때문에 정벌에 힘써 세상 사람들을 부지런하게 했으며, 영재를 등용함에 있어서는 한가하게 하지 않았는데, 어찌 잡초 속에서 마른 대나무 잎을 찾으며 한가롭게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재능이 없어 조정에서 해를 거듭하면서 일신을 황상에게 의탁하고 마음을 기대었습니다. 창해의 광활함과 깊음을 좋아하고, 숭사의 우뚝 솟은 모습을 감탄하며, 공자가 자하를 칭찬하는 것을 듣고, 향교(각 지방에 세워진 학교)가 자기에게 좋음을 감개해 했습니다. 그 평중(춘추시대 재상)의 보좌 역시 선을 진언하고 악을 물리치도록 했씁니다. 때문에 저는 우매하고 어두운 주장이라도 항상 진언하고 있는것입니다. 마치 주인(교화를 선포하는 일을 맡은 관리)이 길거리에서 민요를 채취하고, 놀고 있는 어린 아이가 밭에서 노래부르는 것과 같이 복과 길상이 증가하기를 희망하므로 힘껏 제왕에게 간언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간언이 제왕의 마음과 부합한다면, 우매한 주장이 성명한 군주와 일치하는 것이므로 계속적으로 관리가 되어 신령스런 부명에 순응할 것입니다. 만일 간언이 군주의 뜻과 다르다면, 저의 평범한 자질에서 말미암은 것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저 자신의 어리석음을 지키겠습니다. 나아가고 물러가는 것은 운명에 따르는 것이니, 거짓으로 구미지 않고 세상을 속이지 않으며 본성에 순응하고 천명을 즐겨 따르는데, 어찌 유감스럽겠습니까?

이것이 궁궐로 들어온 후 나가지 않고, 관직에 있지만 없는것 같았던 까닭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모두 취해 있을 때 항상 깨어 있었던 굴원을 편협하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취해 있는 어부(굴원 작품 속의 인물)의 태도를 불순하다고 하고, 유하혜(춘추시대 대부)의 몸을 낮추어 굴육을 받는 태도를 경시하며, 백이, 숙제의 고결함을 원망했다고 느꼈습니다.

군주의 마음과 합쳐졌다고 하여 얻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다르다고 하여 잃는 것이 아닙니다. 뜻을 얻어도 비굴하게 되는 것이 아니고, 잃어도 애통해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레에 타서도 앞에 있을 때는 뒷부분의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뒤에 있을 때는 앞 부분의 무게를 아는 일이 없습니다. 평판을 팔아서 은택을 구하지 않고, 과실을 범함에 있어서 실각을 피하지 않습니다. 무슨 책임을 져야 합니까? 무슨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슨 바른 말을 할 필요가 있습니까? 무슨 직언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홉 차례의 근무평가에 전이시키지 않은 것은 진실로 제가 지켜왔던 것입니다.

지금 조정의 관리들은 산처럼 많고, 발탁된 준재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어 어류와 폐류가 거대한 바다속에 숨어있고, 새나 짐승이 등림(전설상의 큰 숲)에 모여 있어 새가 날아가도 그 수는 감속하지 않으며, 부유하는 방어(담수어의 일종)가 와도 그 수가 증가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태양은 당의 시대에 쇠하였고, 달은 상의 시대에 대응하여 성하였으며, 양우 냇물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홍수의 피해는 멈추었고, 상림 해안가에서 기도하자 은혜로운 단비가 대지를 적셨습니다.[2]

[3]

만물의 동작과 정지에는 도리가 있고, 운명의 개폐에는 시기가 있습니다. 제 스승(공자)이 남긴 교훈에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논어》,〈헌문〉)`고 하여, 운명에 몸을 맡기고 자기를 단정하게 했으니 제가 또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말은 다했고 저의 길은 한가지입니다. 저는 당초의 지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경전에 전해져 내려오는 향기를 종합하고, 공자가 남긴 학문을 연구하여 미묘하고 심원한 언어를 엮어 도의를 보존하고, 선인의 도를 규범으로 하여 오늘의 제 언어를 엮어 도의를 보존하고, 선인의 도를 규범으로 하여 오늘의 제도를 만들겠습니다. 저는 숙힐(춘추시대 진나라 대부 양설힐로 자 숙향)의 유유자적함을 평가하고, 소씨(한나라 소광과 그의 형의 아들 소수)가 먼 곳으로 떠난 것을 칭찬하며, 멈춤과 만족할 줄 알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하고, 강물로 떠돌아다니다가 작은 집에 안주하여 욕심 없는 생활을 즐기며, 이 세상에서 받은 허물과 후회를 없애려고 하는데, 이 마음이 아직 불안함을 돌아보고 만년의 길이 정체될까 두려워 부단히 격려하며 노력을 배가하고, 내심의 감정을 자유롭게 하여 운명을 받기를 청합니다.

과거 구방은 최고의 말에서 정기를 고찰했고, 진야는 다른 형세를 자세히 살폈습니다.[4]

[5] 호량은 현에 의탁하여 명성은 전했습니다. 제나라의 노예는 손으로 대퇴부를 쳐 닭 울음소리를 내서 전문을 구했으며, 초나라의 식객은 적진에 침입하여 형초를 보전시켰습니다. 옹문은 금슬을 타고 설득하고, 한애는 수레를 잘 몰아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 노오가 현관산에서 비상하자, 그 인물은 오히려 구름 저쪽으로 몸을 두었습니다. 저는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기예를 갖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조용히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 것입니다."

설촉은 보검을 식별하여 명성을 날렸고[6]

, 호량은 현에 의탁하여 명성은 전했습니다.[7] 제나라의 노예는 손으로 대퇴부를 쳐 닭 울음소리를 내서 전문을 구했으며[8] 초나라의 식객은 적진에 침입하여 형초를 보전시켰습니다.[9]

옹문은 금슬을 타고 설득하고[10]

,한애는 수레를 잘 몰아 명성을 크게 떨쳤습니다.[11][12] 노오가 현관산에서 비상하자, 그 인물은 오히려 구름 저쪽으로 몸을 두었습니다.[13]

저는 실제로 이러한 사람들과 같은 기예를 갖출 수 없었습니다. 때문에 조용히 자신을 지키며 스스로를 편안하게 한 것입니다."


2.2. 위나라에서


263년에 초주의 의견에 따라 유선이 항복할 때 극정이 등애에게 항복할 문서를 작성하였고 위나라로부터 열후에 봉해진다. 그러나 264년에 종회가 성도에서 반란을 일으키자 유선은 낙양으로 옮기게 되었고, 촉나라의 중신 중 극정과 장통만이 처자식을 버리고 유선을 따랐다. 그 때 유선은 극정의 조언에만 의거하여 행동하니 모든 일에 잘못이 없어 감개하며 그의 능력을 이제서야 알아 그를 발탁하지 못한 것을 그제서야 후회했다고 한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정사 주석 한진춘추에도 서술되어 있는 사마소와 유선이 술자리를 가졌을 때의 일이다.
사마소가 유선을 위해 옛 촉의 기(技-가무)를 짓게 하자 주위에 있는 모든 촉 출신의 사람들은 모두 슬퍼했으나 유선은 기뻐하고 웃으며 태연자약하니, 사마소는 가충에게 "사람이 무정하니 가히 이 지경에 이른 것이오! 비록 제갈량이 살아 있었다고 해도 능히 보필하여 오래 보전하지 못했을 것인데, 하물며 강유라고 오래 가겠소?"라고 말했다. 가충이 이에 "이와 같지 않았다면 전하께서 어찌 그를 아우를 수 있었겠습니까?"라며 서로 유선을 디스했다. 그 후 어느 날, 사마소가 유선에게 "촉이 생각나지 않으시오?"라고 묻자 유선은 "여기가 즐거워 촉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에 극정은 유선을 따로 만나서 눈물을 흘리며 간했다.
"왕(사마소)이 다음에 묻거든 흐느끼며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선인들의 분묘가 멀리 농, 촉에 있어 마음이 서쪽을 향해있고 비감하니 하루라도 생각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눈을 감고 가만히 있으시면 됩니다."
때마침 사마소가 다시 묻자 유선은 눈물을 흘리려 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고, 어쨌든 극정이 시킨 대로 대답했다. 이미 심복을 통해 엿들었던 사마소가 "어찌 극정의 말과 같단 말이오!"라고 말하자 유선이 놀라서 쳐다보며 말했다, "참으로 존명과 같습니다." 그로 인해 좌우에서 모두 웃었다는 이야기.[14]

2.3. 진나라에서


272년에는 옛날 성도가 혼란하였을 때 절의를 지켜 충성과 절개를 위배하지 않았고 임용을 받음에 이르러서는 마음을 다해 일을 다하였다는 찬사와 함께 파서태수로 임명된다.
278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그가 저술한 시ㆍ논문ㆍ사부 등을 합하면 백개가 넘어갔다고 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의 일부 판본에서는 이름이 각정(卻正)으로 등장한다.
연의에서 창작된 장면으로 황호와 다투었던 강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조언을 준 일화가 있다
황호가 유선의 곁에 붙어 정사를 좌지우지하더니, 급기야 위나라를 치러 나간 강유를 불러들이고 벼슬을 빼앗으려는 짓도 행하려 했다. 이에 강유는 곧바로 성도로 돌아와서 황호에게 따지러 갔지만, 황호는 이미 몸을 피했고 유선은 황호의 편을 들었다. 이 얘기를 극정에게 하자, 극정은 "장군에게 곧 화가 미칠 것이며, 그리 되면 촉한도 흔들리게 된다."라고 경고했다. 강유가 대책을 묻자, 극정은 이렇게 답했다.
"무후(제갈량)를 본받아 농서(?)의 고을에서 둔전(군사로 하여금 농사를 짓게 함)하겠다고 하고 지방으로 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군량을 마련하는 동시에 농서의 지방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고, 위나라 군사를 막을 수 있으며, 결정적으로 군사권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으니 내란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에 강유는 "천금보다 귀한 충고를 해 주셨습니다."라고 사례하며 극정의 충고를 그대로 따랐다.
물론 이건 연의에서 창작한 일화일 뿐이지만 정사에서도 강유를 '''한 시대의 모범'''이라 극찬했던 평이 있는것을 보면 실제로도 강유에게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던 듯 하다. 한편 연의에서도 사마소와 유선과 술자리를 가졌을 때 유선에게 조언한 것이 나온다.

4. 미디어 믹스


[image]
삼국지 11
[image]
삼국지 12, 13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B급 문관으로 등장한다. 삼국지 4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6/무력 4/지력 63/정치력 74. 병법은 쓰레기 같은 투석, 조영이 전부다. 내정이나 시키자.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7/무력 6/지력 63/정치력 73/매력 61에 명사 특기를 가지고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반박, 명사. 총 2개다. 특이하게도 내정 관련 특기가 하나도 없다.
삼국지 11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0/무력 4/지력 63/정치력 75/매력 61에 발명#s-2 특기를 가지고 있다. 성도에서 등장하는 사실 시나리오에서는 동일한 특기에 소속이 같은 윤묵과 활용이 겹친다. 하남군 출신이라 영웅집결에서는 낙양에서 등장하는데, 이때는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삼국지 12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42/무력 23/지력 68/정치력 75로, 삼국지 11 때보다 통솔력과 무력이 대폭 상승하고 지력도 5나 상승했다. 존재감 없는 무장 대부분이 전작 능력치를 그대로 계승한 삼국지 12에서 이례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전법은 지력상승에 특기는 경작, 감시, 냉정으로 동급 무장 중에서는 많은 편이나 경작 이외에는 유명무실하다. 일러스트는 "그러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는 듯, 유선과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모습이다.
삼국지 13에서는 통솔력 42/무력 23/지력 68/정치력 75의 능력치로 등장하는데, 언변이 무려 7이나 된다. 전제척으로 특기는 상업 3, 농업 2, 문화 2, 언변 7. 전수특기는 언변으로 전법은 위무.
삼국지 14에서의 능력치는 통솔 10, 무력 6, 지력 63, 정치 74, 매력 61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32, 무력이 17, 지력이 5, 정치력이 1 하락했는데 특히 통솔력이 3배나 깎였다. 개성은 진흥, 문화, 학자, 소욕, 주의는 예교, 정책은 병기강화 Lv 3, 진형은 투석, 전법 역시 투석, 친애무장은 강유, 유선, 혐오무장은 없다.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는 하남군 언사현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도의 재야로 등장하는데 하필 대다수의 재야무장이 등장하는 유언이 자리잡고 있는 도시다. 능력치가 평범함에도 불구하고 성도의 재야로 있는 것이 너무 아깝다. 하남군 출신답게 낙양의 재야로 등장했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아쉽다.
[image]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에서 이름은 언급안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유선한테 충고하는 신하가 정황상 극정으로 보인다.
84부작 삼국지에서도 낙불사촉 일화 때 짧게 등장한다. 자기가 옆에서 몰래 간언한 것을[15] 유선이 쉽게 불어버리자, 옆에서 째려보며 술을 마시는게 소소한 백미.
[1] 이하 각주는 배송지의 주석이다.[2] 회남자에 이르길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몸소 양우(陽盱)의 강에서 제사를 지냈고 탕 임금은 가뭄 때문에 상림(桑林)에서 친히 기도를 드렸으니 성인이 백성을 걱정하는 것이 이와 같이 명백하다.[3] 여씨춘추에 이르길 옛날 은나라 탕왕이 하나라의 걸왕을 이기고 천하에 큰 가뭄이 들어 3년동안 수확이 없었다. 탕왕은 마침내 친히 상림에서 기도 드리며 말하길 "저 한사람에게 죄가 있다면 만방에 미치지 말고 만방에 죄가 있거든 저 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으니 한 사람의 불민(不敏)으로 말미암아 상제께서 백성들의 대명(大命)을 해치지 말기 바랍니다." 탕왕은 이에 그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손톱을 꺾어 스스로를 희생으로 삼아 상제에게 복을 빌었다. 백성들은 이에 크게 기뻐하였고 비가 마침내 크게 내렸다.[4] 회남자에 이르길 진목공이 백락에게 말하길 "그대의 나이가 많은데 그대의 친족중에 가히 말을 구하도록 시킬만한 사람이 있는가?"하니 대답하길 "양마(良馬)는 모습과 근골의 형상으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천하의 말(天下之馬)을 보는 사람은 마치 멸몰(滅沒)하는 것과 같고 마치 실망(失亡)하는 것 같으니 한번 이 말과 같으면 달릴 때 먼지가 일지 않고 땅에 바퀴자국이 없습니다. 신의 아들은 모두 하급의 재주를 가지고 있어 양마를 일러바칠 수 있을지라도 천하의 말은 일러바칠 수 없습니다. 천하의 말은 신과 더불어 나무하던 구방인(九方堙)이라는 자가 있는데 그의 말을 보는 실력이 신의 아래가 아니니 청컨대 불러보시기 바랍니다." 목공이 그를 불러보고 말을 구하라고 시킨 지 3개월 뒤에 돌아왔는데 보고하길 "이미 말을 얻었는데 사구(沙丘)에 있습니다." 목공이 말하길 "어떤 말인가?" 대답하길 "암컷이고 노란색입니다."사람을 시켜 가서 가져 오도록 하니 수컷의 검은 말이었다. 목공은 불쾌해하며 백락을 불러 물어 말하길 "잘못됐다. 그대가 말을 구하라고 시킨 사람 말이오! 털 색깔과 암수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는데 또 무슨 말인들 능히 알겠는가?"백락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길 "이런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는 곧 천리마요 신이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방인이 본 것은 천기(天機)요 정밀한 것을 얻고 추솔한 것을 잊었으며 안에 있으면서 밖을 잊고 봐야 될 것을 보고 볼 필요가 없는 것을 보지 않았으니 만약 이런 사람이 본 것 이라면 마침내 진귀한 말일 것입니다." 말이 도착하자 과연 천하의 말이었다.[5] 또한 회남자에 이르길 백락, 한풍, 진아, 갈청이 본 것은 모두 다르지만 말을 안 것은 동일하다. 대체로 구방은 말의 정기를 관찰하고 진아는 그 형태를 본 것이다.[6] 월절서에 이르길 옛날 월왕 구천에게 보검 다섯 자루가 있어 천하에 명성이 있었다. 객중에 검을 보는 사람이 있어 이름이 설촉(薛燭)이었는데 왕이 불러 물어보길 "나에게 보검 다섯 자루가 있는데 그대에게 보여주고자 하오."곧 호조, 신궐을 가져왔는데 설촉이 말하길 "모두 아닙니다."또 순구, 담로를 가져왔는데 설촉은 말하길 "그 칼끝을 보니 난란한 것이 마치 별자리의 운행 같고 그 빛을 보니 혼혼한 것이 마치 장차 연못에서 솟아 오르려 하는 것과 같고 그 문양을 보니 환환한 것이 마치 얼음이 장차 녹으려는 것 같으니 이것이 소위 순구라는 것입니까?"하니 왕이 말하길 "그렇다." 왕이 말하길 "이것을 고을 3개, 준마 1000필, 1000호의 성읍 2개로 사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럴만한가?" 설촉이 말하길 "불가합니다. 이 검을 만들 때에 적근산을 뚫어 구리를 얻고 약사의 계곡을 말려 동을 얻었으며 우사(雨師)가 비로 씻고 뇌공(雷公)이 번개로 두들기며 태일(太一)이 내려다보고 천정(天精)이 강림하여 구야(歐冶)가 마침내 하늘의 정기로 말미암아 모든 기교를 다 써서 하나는 순구(純鉤)라 하고 하나는 담로(湛盧)라 하였습니다. 지금 적근산이 이미 합쳐졌고 약사의 계곡은 깊어 측량할 수 없는데다 구야자가 이미 죽었으니 비록 성을 기울게 할 만한 황금과 강을 막을 정도의 주옥이 있다하여도 오직 이 물건만은 얻을 수 없습니다. 고을 3개, 준마 1000필, 1000호의 성읍 2개로 사려는 것은 또한 어찌 말할 만하겠습니까!"[7] 회남자에 이르길 호파가 비파를 연주하자 물고기가 와서 들었다.[8] 신 송지가 말하길 생각건대 이는 맹상군 전문의 빈객인데 능히 닭의 울음소리를 내어 그 곤경을 구한 것입니다. 무릇 닭 울음소리를 내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넓적다리를 두들겨 닭이 날개로 (몸을) 두드리는 것을 모방해야 합니다.[9] 회남자에 이르길 초나라의 장수 자발(子發)은 기술이 있는 사람을 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초나라에 도둑질을 잘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가서 보고 말하길 "듣건대 그대가 기술이 있는 사람을 구한다고 하는데 신은 도둑질을 잘합니다. 원컨대 기술로 한 명의 병졸을 담당하고자 합니다."자발은 이를 듣고 옷에 띠를 차지도 못하고 관을 바로 할 새도 없이 (급히) 나가 보고는 예를 갖췄다. 좌우에서 간언하여 이르길 "도둑질하는 사람은 천하의 도적인데 어찌하여 예를 갖추십니까?"하니 자발이 말하길 "이는 그대들이 간여할 문제가 아니오."라 하였다. 이후 얼마 안 있어 제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였다. 자발이 군대를 이끌고 이를 막는데 세 번이나 퇴각해야만 하였다. 초나라의 현대부들은 모두 그 계책을 다 짜내고 모든 정성을 다했지만 제나라의 군사는 더욱 강성해졌다. 이에 끝내 도둑질하는 자가 나아가 청하여 말하길 "신에게 소소한 기술이 있는데 원컨대 그대를 위해 행하고자 합니다."하니 자발이 대답하길 "알았다."고 하였다. 도둑은 곧 밤중에 나와 제나라 장군의 깃발을 풀어서 자발에게 바쳤다. 자발은 사람에게 시켜 이를 돌려주며 말하길 "저에게 나가서 나무하는 사람이 있는데 장군의 깃발을 얻었기에 사람을 시켜 집사에게 보내드립니다."하였다. 내일 또 다시 가서 베개를 가져왔고 자발은 다시 사람을 시켜 돌려보냈다. 내일 또 다시 가서 비녀를 가져왔고 자발은 다시 사람을 시켜 돌려보냈다. 제나라 군인들이 이를 듣고서는 크게 놀랐는데 장군과 군리들이 더불어 상의하여 말하길 "오늘 가지 않는다면 초나라 군대에서 아마도 우리의 머리를 가져갈 것이다 !"하고선 즉시 군대를 돌려 떠났다.[10] 환담의 신론에 이르길 옹문주가 비파로 알현했는데 맹상군이 말하길 "선생이 비파를 연주하여 또한 능히 나를 슬프게 할 수 있겠소?"하니 대답하길 "신이 능히 슬프도록 만들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존귀했다가 후에 비천해진 사람입니다. 옛날에는 부유했다가 지금 빈궁하여 누추한 고을에 버리고 억눌러져 사방과 교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신체가 훤칠하고 재주가 훌륭하며 순박함을 간직하고 있다 참언과 비방을 당해 원한을 맺고 신용을 받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아니면 서로 교제하여 사랑하게 되었는데 원한도 없이 생이별 당하여 머나먼 이국으로 떠나게 되어 서로 보게 될 때가 없을 사람입니다. 아니면 어려서 부모를 잃고 자라서는 처자식이 없으며 나가서는 들과 연못을 이웃으로 삼고 들어와서는 굴을 파서 집으로 삼아 아침저녁으로 빈곤해도 돈을 빌릴 곳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런 사람들이라면 다만 날아가는 새가 우는 소리나 가을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만 들어도 곧 마음이 상하기에 신이 한번 그들을 위하여 비파를 타면 길게 탄식하고 처량하게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지금 족하와 같은 경우는 높고 넓은 집에 거처하면서 문들이 방에 연달아 있고 비단 휘장을 내리면 맑은 바람이 불어옵니다. 앞에는 연기하는 배우들이 있고 옆에는 아첨하는 사람들이 시중을 들며 초나라 노래가 드날리고 정나라 여자들이 춤을 추며 흐르는 노랫소리는 귀를 즐겁게 하고 미색은 눈에서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물에 논다면 용선을 타고 깃털 깃발을 꼽고서는 깊이를 잴 수 없는 연못에 낚싯대를 드리웁니다. 들에서 논다면 평원에 올라 드넓은 동산을 치달으며 강노로 높이 나는 새를 떨어트리고 용사들은 맹수와 격투를 벌입니다. 술을 놓고 오락을 즐기며 취하여 돌아갈 줄을 모르니 바야흐로 이시기에는 천지를 하나의 손가락만큼도 생각하지 않으니 비록 비파를 잘 타는 사람이 있다하더라도 능히 족하를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맹상군이 말하길 "과연 그렇습니다!"옹문주가 이르길 "그러나 신이 감히 헤아려 보건대 족하에게는 항상 슬픈 점이 있습니다. 무릇 제왕을 다투다가 진나라에서 곤경을 당한 것도 그대이고 다섯 나라를 연합하여 초나라를 공격한 것도 그대입니다. 천하는 무사한 적이 없어 합종을 하지 않으면 연횡을 해야 하는데 합종을 하면 초나라가 천하를 제패하고 연횡을 하면 진나라가 천하를 제패하게 됩니다. 무릇 진나라와 초나라의 강함으로 약한 설(薛)에게 보복을 가하는 것은 도끼를 갈아서 조균(朝菌:아침에 생겼다가 저녁에 스러지는 버섯에 비유)을 자르는 것 같으니 식견이 있는 선비는 족하를 위해 두려워 떨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하늘의 도리에는 항상 성대한 것이 없고 춥고 더운 것은 번갈아가며 진퇴하니 천추만세가 지난 이후에는 종묘가 반드시 제사를 받지는 못할 것입니다. 높은 누대는 이미 기울어졌고 파인 연못 또한 이미 평평해졌습니다. 분묘에는 가시밭이 생겼고 여우와 살쾡이들이 그 가운데 굴을 팠습니다. 노닐던 아이와 목동들이 발로 밟으며 그 위에서 『맹상군의 존귀라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는 말인가 !』하고 노래 부르고 있습니다."이에 맹상군이 길게 탄식하고 눈물이 눈썹에 걸려 떨어지지 않았다. 옹문주는 비파를 끌고와 연주하였는데 천천히 궁음과 치음을 연주하고 각음과 우음을 연주하였으며 끝내 곡을 완성하니 맹상군이 마침내 흐느끼며 다가가 말하길 "선생이 연주하는 비파는 나로 하여금 마치 나라를 잃은 사람처럼 되게 하였소."[11] 여씨춘추에 이르길 한애는 수레를 모는 사람이다.[12] 왕포의 성주득현신송에 이르길 명마인 설슬을 수레에 매고 명마 승단을 곁말로 쓰며 이름난 마부 왕량이 고삐를 잡고 한애가 수레를 함께 몰면 말이 멋대로 달려 종횡무진 하여 홀연히 경치들이 한쪽으로 쏠린 듯 도읍을 지나고 국경을 넘기를 흙덩이를 지나듯 빨리 달릴 것입니다. 번개를 좇아 달리고 유풍을 좇으면서 팔방으로 두루 돌아, 만 리 길을 한 숨에 달릴 것이니 얼마나 멀리 달리겠습니까? 사람과 말이 서로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13] 회남자에 이르길 노오가 북해를 노닐면서 태음을 지나 현궐에 들어가 몽곡의 위에 이르러 한 명의 선비를 봤는데 눈이 깊고 코가 검었으며 목이 비뚤어지고 어깨가 치켜 올라갔는데 신체의 윗부분은 넓고 아래 부분은 좁았다. 서서히 몸을 들어 올려 바야흐로 바람을 맞아 춤을 추다 노오를 돌려보고서는 만연히 그 어깨를 내리고 산기슭 뒤편으로 도망갔다. 노오가 고개를 숙여 바라보니 바야흐로 거북이 껍질에 걸터앉아 조개를 먹고 있었다. 노오가 마침내 그와 더불어 말하길 "오직 저처럼 무리를 등지고 육합의 바깥을 보고자 하는 사람이 저, 노오 한명이 아니라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유람하는 것을 좋아하고 커서도 게을리 하지 않아 천하를 주유하였는데 오직 북음을 보지 못했는데 지금 창졸간에 부자를 여기에서 만나니 그대는 저와 더불어 교유를 맺을 수 있겠습니까!" 그 선비는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하길 "하하! 그대는 중원의 백성이고 어찌 이토록 먼 지방까지 기꺼이 오려고 하였는가? 이곳은 오히려 일월이 빛을 발하고 뭇 별들을 이고 있으며 음양의 조화가 행해지고 사계절이 만들어지니 이곳을 이름 붙이지 못한 곳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방의 한 귀퉁이나 다를 바가 없네. 만약 내가 남쪽으로 망량의 들판을 거닐고 북쪽으로 침묵의 고을에서 쉬며 서쪽으로 어둠으로 가득 찬 장소를 지나고 동쪽으로 해가 솟아오르는 곳을 관통한다면 그곳은 아래로는 땅이 없고 위로는 하늘이 없어 듣고자 해도 들리지 않고 보고자 해도 보이지 않으니 그 밖에 오히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듯한 장소가 있고 그 너머에는 한 번 움직여 천만리를 갈 수 있다하여도 나는 오히려 능히 도달하지 못했네. 지금 그대가 비로소 이곳에 유람와서 이에 전부다 봤다고 말하니 어찌 또한 (진실과) 멀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대는 이곳에 잠시 있게. 나는 한만과 구천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니 오래 있을 수가 없네."그 선비는 어깨를 들고 몸을 치켜세우더니 마침내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노오는 고개를 들어 바라보고는 보이지 않을 때가 돼서야 멈춰서 말하길 "내가 그와 비교하면 마치 (하늘을 나는) 고니와 땅속에 사는 벌레와 같아 종일토록 지척을 떠나지 못하고서 스스로 멀리 왔다고 생각하니 또한 슬프지 않겠는가!"[14] 다만 이것은 유선이 살기 위해서 매우 현명하게 대처했다는 평가도 있다. 과거 조조가 영웅을 논할 때 번개에 놀란 척을 했던 유비와 대비시키는 것인데,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유선은 그 이후로 편안히 살다 죽었다.[15] 물론 사마소가 말없이 보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