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문학
1. 금문학이란?
유학의 한 갈래로 今文을 중심으로 한 학문 풍조. 유학이 한의 관학이 되면서 경전복원의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그로 인해 탄생한 것이 바로 금문경전. 이 금문경전을 학문적으로 탐구하는 것이 금문학이다.
2. 분서갱유, 그 이후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은 국가운영의 편의 및 효율을 위한 여러 통일정책을 펼쳤는데 도량형, 화폐, 서체에 이어 마지막으로 단행한것이 바로 학문의 통일(...)로 유학따윈 필요없다능!! 하며 유교경전을 불태우고(분서) 유학자들을 생매장(갱유)하는 일을 저질렀다. 자세한 내용은 진시황과 분서갱유 문서를 참조할 것.
그러나 그 넓은 땅덩이의 책과 사람을 일일히 전부 수거(...)하여 태우고 묻는 것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했기에 많은 유학자들이 살아남았고 책 역시 학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서 한 부씩을 함양의 서고에 보관하게 했다. 즉, 시중에 유통되는 서적류를 검열한 것.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진 분열 이후 유교경전의 복원은 매우 수월했을 것이지만 함양을 점령한 항우가 함양을 홀라당 태워먹어서(...) 사실상 소실되었다.
3. 관학이 되다
그러나 유방이 전한을 건국한 이후 새로운 정치질서 수립을 위해서는 기존민중들의 반발을 사던 법가사상의 법치보다는 좀 더 유화적인 사상이 필요하였고 이에 유학이 관학으로 채택, 국가적인 푸시를 받게 된다.
관학이 되었으니만큼 경전의 복원이 필요하였는데, 다행히(?) 분서갱유 후 15년만에 진나라가 망해버려서 여기저기 숨어있던 유학자들이 속속 등장, 머릿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경전 복원사업이 시작되었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새로운 유교경전인 금문(今文)이다.
4. 고문vs금문
하지만 분서갱유 당시, 유학자들은 기를 쓰고 경전을 숨겼으니, 한이 수립된 후 여기저기 짱박혀 있던 경전들이 대거 발굴되었다.(특히 담장을 쌓을 때 함께 묻어버린 것이 많았다고 함.) 한은 진과 다른 문체를 사용했기에 원래의 경전(古文)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까진 좋은데...
바로 금문과 고문이 서로 맞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따라서 어떠한 경전을 소의로 삼을 것이냐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다.
하지만 경전복원사업에 뛰어들었던 유학자들은 대부분 한의 중앙정치세력이었고 자신들의 기억력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금문학자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우겼고(...) 금문이 대세를 타게 된다.
결국 금문은 정치이념으로 변주되어 사용되고, 고문은 학문의 모습을 유지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게 되었고 후대에는 이러한 점을 높이 사 고문이 정석으로 인정받고 금문경전들은 춘추를 제외하고 모조리 소실되었다.
하지만 '''자기가 써놓고 벽에서 파내기만 하면''' 되니까 경전이 위조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논쟁거리가 유교 3대 경전의 하나인 서경을 만들어내버린 위고문상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