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중(장기)
공식 카페: 장기사랑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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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음력 5월 23일~
한국 장기계의 기린아. 등단 이후 기적 같은 행보를 이어나간 최고의 프로로 손꼽을 만한 인물.
대전광역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프로장기기사. 9단이다. 별명은 전투신.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다.
장기는 '힘의 균형'이라는 철학이 있다. 브레인TV를 통해 장기 강좌 방송 프로그램 비급시리즈 《비급초반16수》, 《비급중반전략》, 《비급종반마무리》를 진행한 경력이 있다. 네이버에서 '장기사랑 아카데미'라는 장기 카페를 운영하고, 2009년 8월 27일부터는 한게임 장기에서 장기 칼럼을 연재 중이다.한게임 장기 공지사항
첫 포진상 특징이 있다면 거의 원앙마(車馬象象馬車)포진을 사용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귀마(馬象車)로 포진한다. 김경중 이전의 한국 장기계는 귀마와 원앙마로 나뉘었지만 김경중 이후론 대부분이 귀마로 통일되었다. 소수의 기사가 아직 선수로 둘 시 원앙마의 형태를 취하긴 하나 소수의 경우일 뿐이다. 최근에는 조선족 출신 기사들의 영향으로 원앙마가 다시 연구되고 있는 상태이다.
기풍을 요악하면 공격. 다만 무모한 수를 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공수의 균형을 적절히 잡아가면서 상대의 빈틈을 집요하게 공략한다. 실수를 찾기 어려운 데다 상대의 실수를 포착하면 그것을 계기로 판을 뒤집어 버리니, 못 두어도 비길 정도라 전성기 시절 김경중은 패배를 몰랐을 정도. 당시 김경중의 지는 패턴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김경중 본인이 실수를 뒀을 때.
경력이 워낙 화려하여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프로에서 최초로 중포 전략[1] 을 사용한 기사다. 본래 포는 수비용으로 사용되다 차가 모두 사라진 후반에서야 활용되는 것이 정수였으나, 이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당시 내로라 하는 유명 기사들이 이 중포 전략에 말려 모두 깨져 나갔다.
특이하게 대국을 할 때 항상 무릎을 꿇고 둔다. 예전 일본에 갔을 때 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두는 것을 보고 뭔가를 느낀 뒤로 이렇게 둔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꽤 유명하다. 중국에서도 잘 알려져 공항에 나가면 팬들이 마중 나올 정도라고. 사실 장기 꽤나 아는 사람이라면 김경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래 전적만 봐도 어마어마한 성적을 자랑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 덕분에 대회 영상을 보면 장기계의 양김이라 불리는 김동학 프로와 엄청나게 자주 격돌하는데 김동학 기사는 철저한 수비 위주 기풍이라 매번 엄청난 접전을 펼친다.
그야말로 한국 장기계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전적을 가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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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1970년 음력 5월 23일~
한국 장기계의 기린아. 등단 이후 기적 같은 행보를 이어나간 최고의 프로로 손꼽을 만한 인물.
대전광역시 출신의 대한민국의 프로장기기사. 9단이다. 별명은 전투신.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듯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다.
장기는 '힘의 균형'이라는 철학이 있다. 브레인TV를 통해 장기 강좌 방송 프로그램 비급시리즈 《비급초반16수》, 《비급중반전략》, 《비급종반마무리》를 진행한 경력이 있다. 네이버에서 '장기사랑 아카데미'라는 장기 카페를 운영하고, 2009년 8월 27일부터는 한게임 장기에서 장기 칼럼을 연재 중이다.한게임 장기 공지사항
첫 포진상 특징이 있다면 거의 원앙마(車馬象象馬車)포진을 사용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 귀마(馬象車)로 포진한다. 김경중 이전의 한국 장기계는 귀마와 원앙마로 나뉘었지만 김경중 이후론 대부분이 귀마로 통일되었다. 소수의 기사가 아직 선수로 둘 시 원앙마의 형태를 취하긴 하나 소수의 경우일 뿐이다. 최근에는 조선족 출신 기사들의 영향으로 원앙마가 다시 연구되고 있는 상태이다.
기풍을 요악하면 공격. 다만 무모한 수를 둔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공수의 균형을 적절히 잡아가면서 상대의 빈틈을 집요하게 공략한다. 실수를 찾기 어려운 데다 상대의 실수를 포착하면 그것을 계기로 판을 뒤집어 버리니, 못 두어도 비길 정도라 전성기 시절 김경중은 패배를 몰랐을 정도. 당시 김경중의 지는 패턴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김경중 본인이 실수를 뒀을 때.
경력이 워낙 화려하여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프로에서 최초로 중포 전략[1] 을 사용한 기사다. 본래 포는 수비용으로 사용되다 차가 모두 사라진 후반에서야 활용되는 것이 정수였으나, 이 고정관념을 깨뜨림으로써 당시 내로라 하는 유명 기사들이 이 중포 전략에 말려 모두 깨져 나갔다.
특이하게 대국을 할 때 항상 무릎을 꿇고 둔다. 예전 일본에 갔을 때 기사들이 무릎을 꿇고 두는 것을 보고 뭔가를 느낀 뒤로 이렇게 둔다고 한다. 해외에서도 꽤 유명하다. 중국에서도 잘 알려져 공항에 나가면 팬들이 마중 나올 정도라고. 사실 장기 꽤나 아는 사람이라면 김경중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아래 전적만 봐도 어마어마한 성적을 자랑하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그 덕분에 대회 영상을 보면 장기계의 양김이라 불리는 김동학 프로와 엄청나게 자주 격돌하는데 김동학 기사는 철저한 수비 위주 기풍이라 매번 엄청난 접전을 펼친다.
그야말로 한국 장기계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최고의 전적을 가진 기사.
2. 약력
- 1994년 1월 프로 입단 (당시 최연소 입단)
- 1995년 제6회 명인전 준우승, 제10회 천석배 우승
- 1996년 제7회 명인전 우승
- 1997년 제2회 국수전 우승, 제8회 명인전 우승, 제1회 프로 10걸전 우승, 제12회 천석배 준우승
- 1998년 제3회 국수전 우승, 제13회 천석배 우승
- 1999년 제4회 국수전 우승, 제9회 명인전 준우승, 제3회 프로 10걸전 준우승
- 2000년 제10회 명인전 준우승
- 2001년 제11회 명인전 우승
- 2002년 九단 승단 (최연소, 최단기 九단 승단), 제12회 명인전 준우승
- 2003년 제3회 KBS 장기왕전 우승, 대한홍삼배 엠게임 프로리그 1, 2, 3기 우승 및 통합 챔피언전 우승, 제2회 [[제주도지사배 전국 장기왕 대회 전문기사부 준우승
- 2004년 한국장기 최고수전 우승, 제9회 전주시장배 전국 장기왕 대회 전문기사부 우승, 제1회 한중교류전 준우승
- 2005년 제5회 KBS 장기왕전 우승, 제10회 [[전주시장배 전국 장기왕 대회 전문기사부 우승
- 2006년 제1회 총재배 장기 최강자전 우승
- 2007년 제2회 총재배 장기 최강자전 준우승, 제1회 한게임 장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08년 제1회 이체배 왕위전 준우승
- 2010년 제3회 총재배 장기 최강자전 우승, 한게임 장기 그랑프리 준우승
- 2011년 설날특집 KBS 장기왕전 우승, 제2회 장기 기성전 우승, 제5회 한게임 장기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 2016년 설날특집 KBS 장기왕전 우승
[1] 포를 본진의 2선 쪽으로 넘겨 좌우를 오고 가며 공격적으로 활용하는 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