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태(독립운동가)
1. 청양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태
김경태는 1880년생이며 충청남도 청양군 출신이다. 그는 1917년 대한광복회에 가담한 뒤 친일부호 처단 활동을 수행했다. 1918년 1월 김한종, 장두환, 임봉주(林鳳柱) 등과 함께 악질면장으로 지목되어 처단 대상이었던 충남 아산군 도고면 면장 박용하(朴容夏)를 처단했다. 그러나 대한광복회 조직이 발각되면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된 그는 1921년 8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에 처해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김경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2. 완도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태
김경태는 1915년 2월 20일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 장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4년 6월 고금면 장용리에서 정후균(鄭後均) 등 8명의 동지들과 함께 사회주의 비밀결사 전남운동협의회 재건위원회를 조직하여 동지를 규합하고 야학을 개설하여 문맹퇴치 등 여러 활동에 힘쓰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1941년 8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르다 병보석 처리된 뒤 1941년 11월 20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김경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부안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경태
김경태는 1886년생이며 전라북도 부안군 우산내면 중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2월 25일 서종채 의병장의 부대에 가담하여 동료 의병 1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전북 부안군 일대의 촌락을 보름 동안 전전하면서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1910년 4월 4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경태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