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수(독립운동가)
1. 울진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수
김광수는 1878년 2월 28일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부구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3일 울진군 북면 부구리 시장에서 장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때의 시위과정에서 군중들은 경찰의 해산 명령에도 불응하고 시위를 계속하였다. 헌병들이 총을 들고 해산시키려 하자, 김광수 등은 육박전을 벌여 헌병보조원의 총을 빼앗았다.
이로 인해 체포된 그는 1919년 4월 21일 대구지방법원 울진지청, 1919년 5월 1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직무집행방해,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조용히 지내다 1939년 11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김광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2. 무안군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수
김광수는 1924년 4월 19일 전라남도 무안군 자은면 고장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4년경 일본군에 징집된 뒤 중국 호남성 장사지구에 주둔했다. 그러다 1944년 12월 일본군 진영을 탈영한 뒤 1945년 4월 광복군총사령부 경위대에 입대했다. 이후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 8.15 광복 후 조국으로 귀환했고, 대전에서 조용히 지내다 1999년 9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김광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9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3. 창원시 출신 독립운동가, 김광수
김광수는 1925년 12월 6일 경상남도 창원군 창원면 중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2년 7월 창원군 창원면 동정리에 소재한 창원 신사 뒤에서 창원보통학교(昌原普通學校) 출신의 급우 박상규·박대근 등 10여 명과 함께 조국 독립을 목적으로 청년독립회(靑年獨立會)를 조직하여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1943년 4월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창원역과 주요 관문에 붙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발각되었고, 그는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이첩 계류되어 8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다 8.15 광복을 맞이하여 부산형무소에서 출옥하였다. 이후 창원에서 조용히 지내다 2002년 4월 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김광수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