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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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김국주(金國柱)
생몰
1924년 ~
출생지
함경남도 원산부
서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
2. 생애
3. 서훈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김국주는 1924년생이며 함경남도 원산부 출신이다. 그는 1943년 17세의 나이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에서 독립군 활동을 하던 장조민(張朝民)을 만났다. 이후 장조민의 소개로 그해 8월 안후성 푸양에서 한국 광복군 제3지대의 전신인 광복군 초모위원회 제6분처에 참여한 그는 기간요원으로 활동하며 광복군 모집 및 후방 공작 활동을 수행했다. 1944년 쑤저우 지역에 파견되어 초모공작을 전개했으며, 쑤저우에서 철수한 후에는 중국군 제10전구 산하 간부훈련학교 특설 한국 광복군반에서 훈련을 받았다.
1945년 초 안휘성 하류지구 연락 책임자로 임명되어 동지들의 안내와 지하공작 확보를 위해 노력했으며, 이후에는 상하이 지구에 파견되어 공작 활동을 지속했으며, 아울러 국내 진입을 준비했지만 8.15 광복으로 무산되었다. 광복 후 광복군을 대한민국 국군의 토대로 삼고자 모집 활동을 전개했지만 미군정의 불허로 무산되었고, 1946년 6월 미 해군 대형수송선을 타고 상하이를 거쳐 인천으로 귀국했으나 광복군은 해체되었다.
이후 육군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1948년 특별 제7기로 졸업했으며, 1950년 대위로 진급하여 제5사단 제15연대 제2대대 제6중대장을 역임했다. 이 시기 6.25 전쟁이 발발하자 의정부 방면에 투입되어 다부동, 낙동강, 평양, 운산 전투 등에 참여했으며, 특히 평양을 점령할 때 가장 먼저 평양에 진입한 국군 부대는 바로 그가 이끌던 부대였다고 한다. 1953년 휴전 조약이 수립될 무렵 제12사단 제52연대 제1대대장을 맡았다.
이후 1963년 육군 대학을 졸업하고 1966년에 국방대학을 졸업했으며, 1969년 제36사단장을 맡았고, 1975년 제1군 군수 사령관, 1977년 제1군 부사령관을 잇달아 역임했다. 1979년 예편 후 광복군 동지회 회장을 맡았고, 1981년 광복회 부회장, 1986년 독립기념관 이사, 2001년 독립유공자협회 회장, 2005년 6월 광복회 회장을 역임했다. 제14대 광복회 회장에 부임한 그는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식을 전수하고 독립유공자 유족과 후손들의 열악한 처우 개선에 발 벗고 나서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광복회 회장에서 물러난 뒤 서울 영등포구 목동에 거주하고 있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서울 보훈병원에 입원했다.

3. 서훈


금성 충무무공훈장: 1950년
금성 화랑무공훈장: 1953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훈장 애국장: 199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