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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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 수형기록카드에 남아있는 의열단 창립 초기 단원들의 사진. 오른쪽 선 사람부터 김원봉, 곽재기, 강세우, 김기득, 이성우. 앉아 있는사람은 정이소다. 우측 하단에 따로 붙은 사진은 김익상이다.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김기득은 1899년 11월 9일 한성부 수표동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김기득(金箕得), 김태희(金泰熙), 김영환(金永煥), 백남두(白南斗), 백영호(白永鎬)이다. 그는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한 뒤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 지린성 동녕현 소수분에서 독립운동을 꾀했다. 이때 김원봉, 곽재기 등과 의기투합한 그는 상하이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의열단을 조직하고 단원으로 가입했다.
1919년 9월 상순, 곽재기와 함께 거사에 필요한 폭탄을 구입하려 했지만 여의치 못하자 다시 지린성으로 돌아와 군자금을 모금한 뒤 1920년 2월 폭탄을 구입했다. 이후 곽재기, 황상규, 윤세주, 이성우(李成宇) 등의 동지들과 함께 이낙준(李洛俊)의 집에 모여 구입한 폭탄을 국내로 반입할 방법과 군자금을 모금할 방법, 그리고 정보를 수집할 방안 등을 의논한 끝에 폭탄을 경상남도 밀양청년단장 김병환(金煥)에게 보냈다.
그 직후 동지들과 함께 서울로 잠입한 그는 비밀리에 총독부 동양척식회사·경성일보사 등의 정황을 수집하는 등 거사계획을 준비하던 중 경기도 경찰부에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소위 밀양 폭탄사건으로 7년형의 징역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부에서 감시를 받으며 어렵게 지내다 1933년 4월 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8년 김기득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