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미(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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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지휘자. 기악보다는 성악 부문 지휘를 전문으로 한다.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으며,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학과장 및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1978년생,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초등학교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때는 교회 성가대의 반주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음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인해서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끈을 놓지 못하여 세종대학교 재학시절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하였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는 " 지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대학교를 과감하게 자퇴하고, 다음 해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 입학해서, 행복해하고, 매우 하고 싶어했던 음악이라는 학문을 열정적으로 배운 후 졸업한다. 이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교회음악대학교를 졸업하였다.그 후, 빈으로 넘어가서 빈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과정에 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현대 클래식 음악인 중 한명이며,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고 있는 빈 국립음대의 에어빈 오르트너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였다. 빈 국립음대의 학생이면서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의 합창 단원이자 부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스승의 도움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같은 현대 지휘의 거장들과 무대를 서는 등 경험을 쌓아 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르트너 교수가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 자리가 현재 공석이니 오디션을 보는게 어떻겠느냐며 제안을 하자 고민을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워낙 보수적이기 때문이다.[1] 또한 빈 소년 합창단은 역사가 무려 500년이 넘지만 그 긴 역사중에 여성 지휘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도전을 하겠다는 각오로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에 지원, 2박 3일간의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서, 경쟁자였던 수 많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빈 소년 합창단의 4개의 클래스중 하나인 모차르트코어의 상임지휘자에 임명된다.
빈 소년 합창단 5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써, 자신의 반인 모차트르코어를 데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간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소화했으며, 뉴욕 카네기홀, 시카고 심포니홀, 빈 황금홀, 베를린 콘서트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했다. 또한 2014년에는 대한민국에도 자신의 반을 이끌고 내한하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2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공연을 했다.
2013년 오스트리아 최고의 합창지휘자에게 주는 Ortner Preis를 수상하였으며, " 자신의 꿈을 찾아 가세요, 자신이 행복한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 또한 인생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면. 자기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귀를 기울이면, 내 마음속에서 그 마음이 나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까지 않았다.
3년간 활동했던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자진 사임한 이후로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월드비전 신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1. 개요
대한민국의 지휘자. 기악보다는 성악 부문 지휘를 전문으로 한다.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았으며,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학과장 및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2.1. 음악계 입문
1978년생,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초등학교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중학교때는 교회 성가대의 반주를 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음악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으나 부모의 반대로 인해서 세종대학교 호텔경영학과에 진학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끈을 놓지 못하여 세종대학교 재학시절 그룹사운드에서 활동하였다. 그렇게 1학년을 마치고는 " 지금 음악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다 "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세종대학교를 과감하게 자퇴하고, 다음 해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 입학해서, 행복해하고, 매우 하고 싶어했던 음악이라는 학문을 열정적으로 배운 후 졸업한다. 이후 독일 레겐스부르크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교회음악대학교를 졸업하였다.그 후, 빈으로 넘어가서 빈 국립음악대학교를 졸업하여 박사과정에 있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유명한 현대 클래식 음악인 중 한명이며,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의 지휘자를 맡고 있는 빈 국립음대의 에어빈 오르트너교수에게 사랑받는 제자였다. 빈 국립음대의 학생이면서 아놀드 쇤베르크 합창단의 합창 단원이자 부 지휘자로 활동하던 중 스승의 도움으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같은 현대 지휘의 거장들과 무대를 서는 등 경험을 쌓아 나갔다.
2.2. 빈 소년 합창단에서
그러던 어느 날, 오르트너 교수가 빈 소년 합창단의 지휘자 자리가 현재 공석이니 오디션을 보는게 어떻겠느냐며 제안을 하자 고민을 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워낙 보수적이기 때문이다.[1] 또한 빈 소년 합창단은 역사가 무려 500년이 넘지만 그 긴 역사중에 여성 지휘자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래도 도전을 하겠다는 각오로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에 지원, 2박 3일간의 철저한 오디션을 거쳐서, 경쟁자였던 수 많은 경쟁자들을 누르고 빈 소년 합창단의 4개의 클래스중 하나인 모차르트코어의 상임지휘자에 임명된다.
빈 소년 합창단 500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써, 자신의 반인 모차트르코어를 데리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간 100회 이상의 콘서트를 소화했으며, 뉴욕 카네기홀, 시카고 심포니홀, 빈 황금홀, 베를린 콘서트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했다. 또한 2014년에는 대한민국에도 자신의 반을 이끌고 내한하여,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2회. 고양아람누리 아람음악당에서 공연을 했다.
2013년 오스트리아 최고의 합창지휘자에게 주는 Ortner Preis를 수상하였으며, " 자신의 꿈을 찾아 가세요, 자신이 행복한 일을 열정적으로 한다면, 그게 가장 행복한 것입니다. 그것은 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 또한 인생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었다면. 자기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세요. 귀를 기울이면, 내 마음속에서 그 마음이 나에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들을 수 있습니다." 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까지 않았다.
2.3. 귀국 후 활동
3년간 활동했던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자진 사임한 이후로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회음악과에서 교수이자 학과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3월에는 월드비전 신임지휘자로 임명되어 활동하고 있다.#
3. 관련 문서
[1]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비 유럽인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한것으로 유명하다. 예전엔 비 유럽인이나 여성을 받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금기는 풀린 상태. 그러나 여전히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온다해도 심한 왕따나 차별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는 일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