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규(야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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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김성규(金星圭 / Kim Seong-kyu)
'''생년월일'''
1965년 12월 9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1]
'''학력'''
살레시오초 - 무등중 - 광주일고 - 연세대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88년 2차 1라운드 (해태)
'''소속팀'''
해태 타이거즈 (1988~1991)
쌍방울 레이더스 (1992~1993)
'''지도자'''
KIA 타이거즈 3군 수비코치 (2015~2018)
KIA 타이거즈 잔류군 타격코치 (2019)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1988'''
'''1989'''
'''1991'''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0번'''
-

'''김성규(1989)'''

김병조(1994~1997)
'''해태 타이거즈 등번호 1번'''
서창기(1988~1989)

'''김성규(1990~1991)'''

이용석(1993~1994)
'''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13번'''
구단 창단

'''김성규(1992~1993)'''

허대욱(1996)
'''KIA 타이거즈 등번호 91번'''
하세베 유타카(2014)

'''김성규(2015~2019)'''

서동욱(2020~)
1. 소개
2. 선수 시절
3. 지도자 시절


1. 소개


KIA 타이거즈 2군 작전주루코치.

2. 선수 시절


1983년 3관왕을 달성한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의 주장으로 활약한 선수였다. 키는 작은 편이었지만, 리더십이 뛰어나서 팀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했던 선수. 호수비나 결정적인 순간에 큰 소리를 내면서 팀원들을 독려하던 선수였다. 그런 리더십이 인정을 받았는지 1983년 봉황대기 MVP 수상자가 되는 등 고교 무대에서 인정을 받았고, 이어 연세대로 진학했다. 그리고 1987년 해태의 지명을 받아 1988년부터 데뷔하였다.
좌타자가 항상 부족해서 애를 먹었던 해태 사정 상 김성규는 데뷔 초반에 제법 많은 기회를 부여 받았으며, 실제로 1988년에는 타율 0.284를 기록하면서 그럭저럭 성공적으로 데뷔하며 신인왕 후보에도 올랐다. 다만, 이 해는 서울 올림픽으로 인해 유능한 선수들이 프로에 바로 데뷔하지 못한 사정도 있는 탓에 실제로는 그리 인상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해 이후로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제대로 된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199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고, 새롭게 둥지를 튼 쌍방울에서도 인상적인 활약 없이 단 2년만 뛴 후 은퇴하기에 이른다.

3. 지도자 시절


그 뒤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에서 감독, KIA 타이거즈에서 코치를 지냈으며, 개인 사업도 영위하는 등 부침이 많았지만 2015년 기아의 3군 수비코치로 부임했다.
[1] 지금은 살레시오초등학교가 서구에 있지만 김성규 재학 당시 동구에 살레시오여자고등학교와 같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