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타이거즈

 







[image]
'''KIA 타이거즈'''
'''KIA TIGERS'''
'''창단'''
1982년 1월 30일 (42주년)
'''법인 설립'''
1982년 5월 29일 (42주년)
'''팀명 변경'''
2001년 8월 1일 (23주년)
'''법인명'''
㈜KIA타이거즈
'''상장유무'''
비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구단 사무실'''
광주광역시 북구 서림로 10 (임동)[1]
'''구단명 변천'''
해태 타이거즈 (1982~2001)
'''KIA 타이거즈''' '''(2001~)'''
'''모기업'''

'''연고지'''
전라남도 광주시
광주직할시
[image] '''광주광역시''' (1982~)[2]
전라남도 (1982~1999)[3]
전라북도 (1982~1989)[4]
'''구단주'''
정의선
'''사장'''
이화원
'''단장'''
조계현
'''감독'''
맷 윌리엄스
'''주장'''
나지완
'''영구결번'''
'''7 이종범'''
'''18 선동열'''
'''홈구장'''
무등 야구장 (1982~2013)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14~)
'''제2구장'''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 (1982~1989)
'''월명 야구장''' (2001~[5])
'''2군 구장'''
전남 야구장 (2006~2011)
'''기아 챌린저스 필드''' (2012~)
'''마스코트'''
[image]
호연이 · 호걸이 & 호야
'''킷 스폰서'''
없음[6]
'''워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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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
'''최종 우승''' (11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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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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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991년[8]
1993년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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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9]
2009년
2017년

'''페넌트레이스 우승''' (6회)[10]
'''단일 리그'''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전·후기
리그
'''
1983년 전기, 1988년 통합[11]
'''포스트시즌 진출''' (21회)
'''한국시리즈'''[12]
'''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9년''', '''2017년'''

'''플레이오프'''
'''1987년''', '''1989년''', 1990년, 1992년, 2002년, 2003년
'''준플레이오프'''
1994년, 2004년, 2006년, 2011년
'''와일드카드
결정전
'''
2016년, 2018년
'''프랜차이즈 팀 기록'''
[ 펼치기 · 접기 ]
'''최고 승률'''
'''.655'''
1993년 126경기 81승 42패 3무
'''최저 승률'''
'''.392'''
2005년 126경기 49승 76패 1무
'''최다 승'''
'''87승'''
2017년 144경기 87승 56패 1무
'''최다 패'''
'''80패'''
2019년 144경기 62승 2무 80패
'''최다 관중'''
'''1,024,830명'''
2017년[63]
'''최소 관중'''
'''69,830명'''
2000년[64][코로나19]
'''최고 FA 계약'''
'''4년 100억 원'''[65]
2017년 최형우

1. 개요
2. 상세 내용
3. 로고
5. 우승 경험
9. 응원
9.2. 역대 응원단장
9.3. 역대 장내 아나운서
9.4. KIA 치어리더
9.6. 유명 타이거즈 팬
10. 마스코트
10.1. 호돌이&호순이 (1996~2016)
10.2. 호걸이&호연이 (2017~ )
10.3. 호야 (2020~ )
11. 인기
11.1. 최악의 팬 서비스
12. 영구결번
13.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14. 외국인 선수 선발
14.1. 투수
14.2. 타자
16. 홈 구장
17. 지역 연고 학교
18. 출입기자단
20. 팬 커뮤니티
21. 여담
22. 관련 문서
2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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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BO 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광주광역시. 홈구장은 북구 임동에 위치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이다.
KBO 최고의 인기 구단 중 하나이자 한국시리즈 통산 11회 진출-11회 우승으로 승률 100%의 진기록을 보유한 팀[13]이며 한국 프로 스포츠 사상 최다 우승을 자랑하는 명문 구단이다.[14]

2. 상세 내용


KBO 리그가 도시연고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명목상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지만 '''실질적으로는 전라도 전체를 대표하는 구단'''이다.[15] 신인 지명에 있어서도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NC 다이노스가 지명권을 갖는 전주, 군산 제외)가 타이거즈의 지역연고선수 지명지역.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와 마찬가지로 KBO 리그 원년부터 참가한 프로야구단 중 하나로 1982년 해태 타이거즈가 프로야구 원년 참가 당시의 구단명이었다. 호랑이를 심볼로 삼았는데 그 이유는 "해태는 식품업계에서 가장 오랜 연륜을 가졌고 순수한 민족자본으로 성장해 왔기 때문에 전통성과 민족기상의 표상이 되는 호랑이를 팀 상징으로 정했다"라고 한다. 관련글
창단 당시부터 2013년까지는 무등 야구장을 홈 구장으로 사용하다가 2014년부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를 홈 구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통산 최다 우승을 제외한 특징이라면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해본 적이 없는 팀'''이라는 점이다. 다만 정규 시즌 2위는 꽤 있다. 1989, 1990, 1992, 2002, 2003년에 2위를 기록했다. 이 중에서 우승한 년도는 업셋 우승을 한 1989년이 유일하다. 이후로는 전부 플레이오프 탈락. 1989년에는 정규시즌을 2위로 마감해서 플레이오프에서 '돌풍의 팀' 태평양 돌핀스를 제쳤고, 한국시리즈에서는 빙그레 이글스를 꺾고 당시로서는 최초의 기록이던 한국시리즈 4연패에 성공했다. 1990년은 시즌 막판까지 LG 트윈스와 선두경쟁을 하다 결국 뒤집히면서 분위기가 꺾였고 결국 삼성 라이온즈에게 플레이오프에서 스윕당했다. 1992년에는 롯데 자이언츠와 만났는데 5차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2승 3패로 패했고 2002년에도 LG 트윈스에 2승 3패로 아쉽게 패했다. 이듬해에는 SK 와이번스에 완패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실패를 허락하지 않는 그야말로 무적의 팀이지만 이상하게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 특히 KBO 준플레이오프에서는 힘을 못 쓴다. 1989년 플레이오프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상대로 승리한 이후 '''30년이 넘게''' 한국시리즈를 제외한 나머지 시리즈를 승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KBO 플레이오프에서는 1987년과 1989년에 승리한 이후 4번의 플레이오프에서 모두 업셋 당했으며, 통산 4회 진출한 KBO 준플레이오프에서도 정규리그에서 3위가 됐건 4위가 됐건 전부 상위 시리즈에 올라가지 못하고 탈락했다. 통산 2번 진출한 KBO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도 상위 시리즈에 나간 적이 없다.[16] 때문에 11승 무패의 압도적인 한국시리즈 전적을 포함해도 통산 포스트시즌 시리즈 전적은 13승 10패에 그치며(그래도 5할 6푼 대의 준수한 성적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국시리즈를 제외하면 통산 2승 10패로 압살당했다는 의미이다.
팀 컬러는 창단 초기부터 막강 투수진과, 김봉연, 김성한, 김준환(또는 김종모)이 중심타선에 위치한 KKK포라고 불리는 장타력을 앞세운 야수진의 조화로[17] 우승을 경험했고, 선동열의 일본 진출과 이종범의 입단 이후부터는 투수에 중점을 두는 투수 위주의 팀으로 흘러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의 경영 악화로 인해 당시 현대-기아 자동차 그룹이 인수하여 2001년 8월 현재의 이름으로 구단명이 바뀌었다. 굳이 '기아'라고 한글로 팀명을 표기하지 않는 것은 굶주린다는 의미의 기아(飢餓)가 연상되기 때문이라는 카더라가 존재한다. 이 소문의 가장 큰 배경은 해태 타이거즈의 말년과도 연계된다. IMF 한파 당시 모기업 해태제과가 부도를 맞았던 해태 타이거즈는 영광스러운 전성기에 비해 초라하고 가난한 말년을 보내야 했는데 후신 팀이 '굶어 죽는다'는 뜻의 구단명을 쓸 경우 부잣집으로 팀의 주인이 바뀌었음에도 전신 팀의 가난 DNA가 전수됐다고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영어를 썼다고 전해진다. 이는 '해태와의 단절'을 추진했던 초창기 KIA 프런트의 업무 마인드와도 맥이 통한다.[18] 물론 KIA는 Killed In Action의 약어로 사용되는데 어차피 여긴 영미권 국가도 아니고 애초에 내수시장을 염두한지라 그런 것까지 고려해야 할 이유는 없다. 어찌되었든 한국어 기반인 KIA는 로마자로, 영어 기반인 'Tigers'는 한글로 적혀있는 희한한 결과가 되어 버렸다.
2011년 모기업인 현대자동차의 새 CI 통합으로 인해 현대자동차그룹으로 바뀜에 따라 팀명도 현대 타이거즈로 바뀔 수도 있다는 카더라가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는 모기업 이름이 아닌 모기업의 계열사명 중 하나를 딴 셈이 됐다. 두산그룹을 모기업으로 하는 구단이 한때 두산이 아닌 OB라는 팀 이름을 사용한 것과 비슷한 셈. 이는 현대자동차그룹 내부의 '1사 1구단' 정책에 따른 것이다. 모기업 중 가장 중심에 있다고 볼 수 있는 현대자동차전북 현대 모터스 축구단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밑에 설명하겠지만, 덕분에 기아자동차가 타이거즈 구단을 맡으면서 본래 기아자동차 밑에 있었던 부산 KIA 엔터프라이즈 농구단을 같은 계열인 현대모비스에 넘겨야 했다.

3. 로고


'''역대 로고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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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
'''해태 타이거즈 '''
'''해태 타이거즈 '''
'''1982.1.6~1.18'''
'''1982~1995 '''
'''1996~200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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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KIA 타이거즈 '''
'''2001.8.1~2009'''
'''2010~2016'''
'''2017~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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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2021~ '''
팀의 상징색은 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사용하던 빨강색이고 세컨드 컬러로 검은색을 밀었다. 빨강색-검은색 조합은 해태 타이거즈를 상징하던 검빨 유니폼 컬러 조합이기도 하다. 그러다 2015년부터는 유니폼에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의 CI 컬러인 다크블루(감색)를 적용하였고 점차 사용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응원도구 색상은 노란색으로, 해태 타이거즈 시절부터 지켜온 전통이다.
팀 최초의 로고는 팀 창단 직전에 만들어서 아주 짧게 사용했던 로고가 있다. 2017년 어느 블로거의 발견 글 1982년 1월 6일에 공개되었지만 같은 달 18일에 모두가 기억하는 유명한 해태 타이거즈의 로고로 바뀐다. 최초의 로고는 영문으로 TIGERS가 찍혀있는데 너무 짧게 쓰인 탓인지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내 역사 박물관이나 구장 곳곳에서도 이 로고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KIA 타이거즈 초기 로고는 텍사스 레인저스와 유사한 글씨체를 차용했다. 비록 꼴찌를 두 번 찍는 참담한 암흑기를 거치기도 했고 충격과 공포의 회색 원정 유니폼을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이 로고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해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팬들에게는 결국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로고이다. 실제로 KIA의 올드유니폼 데이(Go T09ether Day) 경기에서는 2009년 이전까지의 로고가 표시된다.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는 이전의 대칭형 로고에서 벗어나 비대칭형 로고를 채용하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려 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한화 이글스와 로고가 비슷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 시기 KIA는 2011년 준플레이오프 진출과 2016년 와일드카드 진출을 제외하면 가을야구와는 연이 없었고, 특히나 KIA의 팜을 작살냈다는 평을 받은 선동열 감독의 부임시기와 맞물리면서 좋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시기가 되었다. 이 시기부터 KIA는 팀의 얼터너티브 컬러로 감색(어두운 청색)을 내세웠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사용했던 로고는 이전까지의 비대칭형 로고 및 원형 로고에서 벗어나 대칭형과 홈베이스를 상징한 것이 특징이며, 팀의 세컨드 컬러인 다크 블루(감색)[19]를 본격적으로 밀기 시작했다. 로고의 상하단에는 기아자동차의 특징인 호랑이코 그릴의 모습이 담겨있는 것도 특징이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현대글로비스 럭비단이 창단했는데, 이 로고를 응용하여 만들었다. 그리고 KIA 타이거즈를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의 로고 및 유니폼 디자인이 비슷해지기 시작했다. 팬들 사이에는 처음에는 어색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깔끔한 폰트체로 해태의 공식 첫 로고 이후 가장 좋은 평을 받고 있다. 덧붙여 이 로고 사용하자마자 통합우승으로 V11을 달성하면서 산뜻하게 새 시대를 열었다.
2021년에 모기업인 기아자동차가 회사명을 '기아'로 바꾸고 회사 엠블렘이 변경됐으며 기업 상징색이 붉은색에서 검정색으로 변화하면서 팀 로고 역시 일부 변경됐다. 기존 KIA 로고 부분에는 기아의 새 CI가 삽입됐고 붉은색 타이거즈 워드마크는 그대로 두되[20] 오각형 테두리의 색깔이 바뀌었다. 기존에는 오각형의 윗쪽은 붉은색, 아랫쪽은 다크 블루가 배치됐지만 오각형 테두리를 전부 검은색과 다크 네이비의 중간점 색깔이라 할 수 있는 '미드나잇 블랙'으로 변경됐다. 팬들 사이에서는 검은색을 넣으려면 역사와 전통의 빨강 메인-검정 서브가 있는데 검정을 메인으로 두는 바람에 어색하다는 볼멘소리가 많다.[21]

4. 역사




5. 우승 경험


★★★★★★★★★★★
'''최종 우승''' (11회)[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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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986년
1987년
19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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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991년[23]
1993년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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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24]
2009년
2017년

전신 해태 타이거즈 시절을 포함하여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10회 우승, 통산 11회로 최다 우승팀이다. 역대 우승 연도는 1983년, 1986년 ~ 1989년, 1991년, 1993년, 1996년 ~ 1997년, 2009년, 2017년. 덧붙여 현재까지 인수/인계 경험이 있는 구단 중 인수 전후 모두 우승 경험이 있는 구단은 타이거즈가 유일하다.[25]
특히 1986년부터 1989년까지 이어진 '''한국시리즈 4년 연속 우승 기록'''은 깨지기 힘들 기록이라는 평을 받았었다. SK 와이번스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이렇게 4년 연속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여 3번 우승하며 이 기록에 도전하였으나 2009년엔 직접 SK의 승리를 막아냈다. 이 4년 연속 우승 기록은 후에 2011년~2014년까지 한국시리즈를 연속 우승한 삼성 라이온즈가 타이 기록을 세웠다.[26]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우승은 선동열 효과라는 이야기도 있으나, 선동열 이전에도 1983년에 우승한 적이 있고, 선동열이 팀을 떠난 후에도 이종범 등 다른 선수들의 활약으로 인해 1996~1997년에 다시 2연패를 달성했고, 의외로 선동열은 한국시리즈에서 6승 1패 4세이브 72.1 이닝 1.74의 평균자책점으로 리그보다 부진(?)했다. 선동열의 프로 통산 방어율은 '''1.20''' 이며 0점대 방어율도 수 차례 했으니 부진이라고 하면 부진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정규시즌에서는 선동열의 역할이 컸고 타이거즈의 페넌트레이스 우승에 기여를 해서 한국시리즈에서 유리한 위치를 잡을 수 있었으니 선동열이 우승에 공헌했다고 해도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27]
또한 포스트시즌에서 패배한 적은 있지만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하면 '''무조건 우승했다.''' 즉, 준우승이 한 번도 없다. 7차전까지 갔어도 마지막에 꼭 이겼다. 반대로 준플레이오프,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선 이긴 적이 한 번도 없고, 플레이오프에서도 1989년 승리가 마지막이다. 여태까지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팀은 아래와 같다.
다만 삼성 라이온즈와는 달리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때 삼성 라이온즈빙그레 이글스만 각각 3번씩 만났기 때문에 생각보다 상대하지 않았던 팀이 꽤 된다. 아래는 KIA가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적 없는 팀.

6. 관련 기록




7. 선수단




8. 유니폼




9. 응원



9.1. 응원단


'''2021 시즌 KIA 타이거즈 응원단'''
[image]
서한국, 유수아, 이아영, 김한나, 한유진, 박신비, 김영호 장내 아나운서
호야, 이이슬, 임혜진, 정가예, 이다혜, 김현지
호걸이 [29]
2020년 신입멤버 김해리, 유하영, 진수화

9.2. 역대 응원단장



  • 임갑교 응원단장은 한국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구단에서 공식으로 임명한 응원단장. 원래는 해태제과 직원이었고 부산 구덕구장에서 열린 해태와 롯데의 원년 개막전에서 활동한 것이 응원단장 커리어의 시작이다.
  • 김창규 응원단장은 당시 팬들에게는 붐붐 아저씨 내지는 붐붐 단장으로 불렸다. 응원단장으로 있을 당시 원래 생업은 식당 운영. 광주지방법원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했다고 한다. 해태 타이거즈의 최후를 지킨 응원단장으로 2000년대 초 해태 살리기 운동에도 나선 바 있다.
  • 조지훈 응원단장은 지금이야 약 10년간 롯데 자이언츠 응원단장으로 일하다 보니 롯데 이미지가 아예 고정된 사람이지만 KIA에서도 혁혁한 공적을 쌓았다. 이종범장성호, 홍세완 등 2000년대 초반부터 KIA에서 뛰던 선수들의 응원가는 다 이 사람이 만들었다. 그야말로 응원가 제조 측면에서는 신계에 도달할 수준. 응원단장직을 내려놓고 입대했고 제대 후 롯데 응원단장으로 옮겼다.
  • 김주일 응원단장은 현재 KIA 타이거즈의 응원 체계를 구축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 덕에 10년 간 한 팀에서 장수 응원단장으로 활동할 수 있었다. 다만 응원단장이라는 직업 자체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점도 있었고, 그 외에도 개인적인 집안 사정으로 인해 결국 kt wiz 응원단장으로 옮겼다. 그렇지만, 완전히 타이거즈와의 연이 끊어진건 아니었던지 2017년 한국시리즈 때 서한국 단장에게 2009년 한국시리즈 당시 자비로 구매했던 약 100만원짜리 호랑이 가운을 빌려줬다! 바로 이 옷.

9.3. 역대 장내 아나운서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 첫 해부터 전문 장내 아나운서를 고용하여 응원단장의 업무를 덜어주고 있다. 초대 장내 아나운서는 MC이슈. 2018 시즌까지 5년을 함께 했으며, 결혼 이후 가족에 집중하게 되며 사임했다. 기사
  • 2대 장내 아나운서는 치어리더로 활약했었던 최미진의 남편이자 프리랜서 MC로 활약 중인 김영호가 선임되었다. 김주일, 나윤승, 서한국 응원단장 밑에서 대리로 일한 경험도 있고, 그 후에도 개인 커리어를 쌓아올리며 2019 시즌부터는 대리가 아닌 장내 아나운서로 컴백.

9.4. KIA 치어리더




9.5. 응원가




9.6. 유명 타이거즈 팬


  • 야구선수는 제외.
  • 이름에 ★ 표시가 된 사람은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라북도 출신이다.[30]


10. 마스코트


KIA 타이거즈의 마스코트는 2016년까지 호돌이#s-2, 호순이였으며, 2017년 시즌 전에 호걸이, 호연이로 교체되었다. '''호돌이는 이제 없어져요?'''라고 팬들의 많은 질문이 들어와 KIA 측에서 공식적으로 '''호돌이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실제로 호돌이는 공식 마스코트에서는 물러났지만 2009년 유니폼을 입는 경기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장내에서 메인 마스코트로 활동 중인 사람은 동일하다.

10.1. 호돌이&호순이 (1996~2016)




10.2. 호걸이&호연이 (20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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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호야 (2020~ )



2019 시즌 카카오톡 이모티콘으로 처음 선보인 뒤 2020 시즌부터 어린이 대상 장내 마스코트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11.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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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최고 수준의 인기 구단. 시청률, 원정경기 팬수[31], 설문조사 등이 이를 뒷받침한다.
들쭉날쭉한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인천SK행복드림구장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고척 스카이돔 등 수도권 원정 때마다 아무리 못해도 절반이 붉은 유니폼과 노란 막대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면 KIA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실감할 수 있다. 잠실, 문학, 고척은 물론이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 역시 장성호 은퇴식 때만 봐도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한 kt wiz 팬에 따르면 두산 베어스와 더불어 가장 원정팬이 많다고 한다. 두산은 서울 연고 구단이지만 KIA는 연고지가 광주다. 두산 베어스 응원 영상(주말) KIA 타이거즈 응원 영상(평일)] 또한 기존 연고팀의 입김이 센 타 지방 구장에도 타이거즈 팬들이 원정석에 꽤 모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팬 수가 많은 데에다가 팀 특성상 롯데, LG 등의 팀들과 함께 팬들이 열성적인 것으로도 유명해서, 실제로 야구장에 가보면 응원 소리가 정말 크다. 가끔 원정임에도 불구하고 홈 팬들이 KIA 팬들의 응원 소리에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프로야구가 태동한 1980년대 5번의 우승을 거머쥐면서 성적과 흥행을 동시에 거머쥔 구단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한국 최초의 어린이 야구단/팬클럽 사업을 시작하는 등 철저한 팬 관리도 병행했다. 여기에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을 떠나 전국 각지로 진출한 연고지역[32] 출신 팬들은 물론 해태의 압도적인 성적과 아우라, 그리고 기라성 같은 스타들에 의해 유입된 비연고지 팬들까지 합쳐지며 전성기에는 원정에서도 결코 꿀리지 않는 관중버프를 등에 업고 경기를 펼친다. 요즘처럼 상대팀을 응원하는 친구나 가족들이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관람하는 문화가 자리잡기 전인 80년대 사직 같은 곳에서도 해태 팬들은 열렬한 응원을 했을 정도.
하지만 해태 타이거즈의 몰락시기와 이후 성적 침체기에는 당연히도 팬들이 많이 떨어져 나갔다. 그럼에도 여전히 전국구 인기구단의 위상을 잃지는 않았으며, 잠실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는 엄청난 관중 동원을 보장하고 있다. 수도권 경기에서 50%는 KIA 팬이 채운다고 느끼는 팬들이 많다. 잠실의 경우 농담삼아 제2 홈구장이라는 소리까지 나올 정도이고[33] 그 외에 고척, 문학, 수원에서도 공격 때 엄청난 응집력으로 응원열기가 홈팬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2015년과 2016년부터 각각 추가/변경된 수원, 고척 원정 역시 마찬가지. 한마디로 수도권 원정경기는 말이 원정이지 최소한 중립경기나 다름없다. 특히 2009년과 2017년처럼 우승에 도전하는 시즌의 잠실경기 정도 되면 '''전광판 빼고 모두 우리 것'''이라는 선수들의 호언장담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이다. 2009년 후반기 승승장구하며 정규리그 우승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어올 즈음의 잠실은 KIA 관중이 홈팀 LG/두산 관중의 1.5배 가까이 될 정도였으며 한국시리즈 잠실 중립 경기 때도 SK팬보다 최소 2~3배는 훌쩍 넘겼고, 2017년 시즌 막판 두산과 치열한 우승 경쟁을 벌일 때 수원에서 kt와의 3연전이 마지막 일정이었을 때는 '''kt가 창단 이후 처음으로 위즈파크 3경기 연속 매진을 기록한다.''' 물론 KIA 관중들이 절대다수였던 건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2017년 한국시리즈두산 베어스가 진출하면서 잠실에서 3~5차전을 치르게 되었는데 최근 우승을 차지한 시리즈 때와 마찬가지로 사실상 1~7차전 모두를 홈에서 치르는거나 마찬가지인 셈이 되었다.
오히려 한동안 무등 시절에는 광주의 관중동원이 원정보다 적어 이것만 본 안티들이 '''홈도 못 채우는 주제에 무슨 인기구단이냐?''' 라는 이야기를 해왔다. 해태 시절부터 무등야구장 관중동원 실적은 어디까지나 원정에 비해 좋지 못한 편인 것은 맞다. 상대적으로 적은 광주광역시 인구와, 규모도 작았지만 환경도 열악했던 무등구장의 취약함 탓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행정적으로 보면, 잠실이나 문학 등지를 가득 채우는 원정 타이거즈 팬들이 다 홈팀 관중으로 집계되는 집계 시스템 문제를 개선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하겠다. 실제로 원정관중 동원은 2011년1위로 나타났다. 2016년에 진행한 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에서 두산, LG 다음가는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박동희 기자가 쓴 기사라든가 여타 을 보면 KIA가 프로야구 중계 시청률 1위를 달린다는 지표를 찾아볼 수 있다.
거기에 타종목인 K리그 광주 FC남기일 전 감독은 라이벌팀을 꼽는 기자의 질문에 여타 K리그 팀이 아닌 KIA를 언급할 정도로 같은 연고지에서 넘어야 할 산[34]으로 여기고 있다. 전라남도에 연고를 둔 전남 드래곤즈[35]도 사실상 마찬가지인 상황.
과거 해태시절의 영광과 호남 출신의 이주민들이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점, 호남지역에 연고를 든 야구팀이 KIA 하나 뿐인 점이 합쳐져 매년 식지 않는 인기를 보여주는 추세이다. 충청 지역의 유일한 야구팀인 한화 이글스 또한 인기 많은 팀이라는 사실과 같은 맥락.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가 완공된 후 평균관중수 1위를 기록 중. 성적도 좋지 않지만 팬들이 이 정도로 몰린다는 것이 정말 놀라울 따름. 그동안의 홈관중 동원 부진은 정말 옛 무등구장의 열악했던 시설과 환경 때문이었음이 확인되고 있다. 성적 하락에 가속화가 붙은 6월부터는 관중수 역시 줄었지만 66만으로 총 관중수 5위를 기록. 2016년에는 71만명을 기록하면서 기존 수치를 경신했다. 새구장도 있겠다 성적만 좋으면 80~90만도 가능할 듯.
그리고 2017년, KIA는 초반부터 선두로 치고 나가며 또다시 수많은 관중들을 불러모으는 중이다. [줌업]중계방송 시청률이 말하는 KBO리그 최고 인기팀은 KIA 광주의 자존심 KIA, 꿈의 첫 100만 관중 보인다 암흑기였던 2012~2014년에도 관중동원은 꾸준히 했던 팀인데, 올해는 성적까지 좋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드디어 첫 100만 관중 기록을 달성했다.
관중 수 증가에 이은 또다른 호재는 바로 팬덤 연령대의 하향화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호남출신 노년, 중년 이상 연령층들이 주로 좋아하는 구단'이라는 이미지가 압도적이있다면 2008 베이징 올림픽 직후인 2009년 한국시리즈 우승, 그리고 김기태 감독 부임 이후 팀 연령대가 낮아지고 팀컬러가 180도 달라지는 과정을 거치면서 10~30대 젊은 팬층의 유입이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2017시즌의 선전과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과정에서도 많은 젊은 팬층이 유입되고 있다.
지역별 팬층도 다양한데 연고지인 호남에서는 절대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고 서울특별시인천광역시가 포함된 수도권에도 팬층이 매우 두텁다. 광주광역시전주시는 기본이고 인근의 전남과 전북 지역도 마찬가지다. 특히 쌍방울 레이더스라는 지역 연고팀이 사라진 전북도민들과 전북 출신 사람들은 쌍방울의 해체 이후 옛 쌍방울 선수나 전북 출신 선수들이 다수 소속된 SK 와이번스를 응원하는 팬들이 있긴 하지만,[36] 여전히 절대 다수의 전북 야구팬들은 KIA 타이거즈를 응원하고 있다.
모기업 또한 현대KIA차인 만큼 현대자동차그룹 스포츠단을 응원하는 팬들은 지역과 관계없이 응원하는 편이다. 같은 호남권인 전북지역은 두말할 것도 없이 전북 현대 모터스와 타이거즈를 함께 응원하는 팬들이 수두룩하다. 배구 또한 천안시 연고의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팬들은 성적만 보는 팬들의 경우 한화 이글스 대신 모기업으로 KIA의 팬이 된다. 이로인해 호남인 광주광역시전주시만 아니라 대전광역시가 포함된 충청도의 야구팬 및 기업친화적이며 과거 기아자동차 공장을 인수한 현대위아[37]가 있는 창원시의 일부 야구 팬들은 오히려 KIA 타이거즈에 응원을 보내고 있다.
다만 이런 인기에 비례해 안티도 매우 많다. 이는 인기팀의 팬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인 무개념 팬들의 끊이지 않는 분탕과 더불어, 전라도를 연고지로 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지역차별의 가장 큰 희생양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KIA가 패배하거나 소속 선수나 팀의 범죄 등 안 좋은 일을 겪은 날에 기사에 들어가보면, 가장 기본적인 비하 단어인 홍어부터 시작해, 심하면 5.18에 관련된 비하 드립이나 고인 모욕까지 나오는 등 타 구단에 비해 지역드립이 훨씬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38]
2019년 갤럽 조사에서 인기 구단 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기사가 떴다.
2020년 갤럽 조사에서도 인기 구단 1위를 차지했다.
가끔 팬 분포도를 금호고속과 엮여 야구계의 금호고속으로 불리는 경우가 가끔있다. 참고로 금호고속은 전국구이자 최대 고속·시외버스 기업이자 KIA 타이거즈와 같은 연고지에 위치한 기업이기에 이를 비유하기에는 적절하다는 이야기가 있는 듯 하다.

11.1. 최악의 팬 서비스


팬 서비스란 개념도 희미하던 시대인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이 오히려 팬과 선수, 구단 간의 유대감은 더 좋았단 소리가 나올 정도로, 팬 관리가 굉장히 서툴고 성의조차 부족하다. 이것은 선수단 측면에서도, 구단 차원의 차원에서도 모두 대동소이하다. 선수단이 팬을 외면하고 사인을 하지 않는 것이 공중파 뉴스로 다뤄지기도 했으며, 구단 유튜브 채널의 경우는 다른 구단과 비교하면 보수와 대우가 상당히 짜서 영상의 퀄리티가 낮다. 2018 시즌 들어서 좋아졌지만, 사실 이 동영상 편집 및 관리도 거의 열정페이 수준.[39] 거기에 구단은 팬들의 목소리를 잘 듣지 않는데, 이는 팬들의 의중을 무시한 정재공 단장 현수막 사건이나 선동열 재계약 사태, 김기태 사퇴 운동 시 보여주었던 사찰행동에서 잘 나타난다.
같이 팬 서비스가 나쁜 팀으로 손꼽혔던 롯데삼성은 선수 차원에서든 구단 차원에서든 개선 의지라도 보이지만[40] KIA는 팬 서비스 교육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더 문제가 크다. 오죽하면 야구선수의 팬 서비스 관련 뉴스가 나올 때마다 대표 사례로 KIA가 나오겠는가?
대부분의 팀들이 그러하듯이 KIA도 젊은 선수들은 투타 불문하고 팬서비스가 좋은 편이고, 투수조는 주축이 팬서비스가 좋기로 유명한 양현종이고 최고참 임창용도 팬 서비스가 좋은 편이라 윤석민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팬 서비스가 무난한 편이지만 문제는 베테랑 야수조. 주전 야수조 가운데 팬서비스가 좋다고 내세울 수 있는 선수는 안치홍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2019 시즌이 끝난 후 안치홍도 롯데로 이적해버렸다.
김주찬최형우는 전 소속팀에서부터 팬 서비스가 나쁘기로 유명했고, 인터뷰할 때마다 팬을 자주 언급하고 또 구수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범호는 팬서비스가 당연히 좋을 거라고 사람들이 막연하게 착각하지만 실상 전혀 좋지가 않다. 또한 SK 백업 시절엔 늦게까지 사인을 잘 해줘서 절찬을 받았던 김민식은 KIA 이적 후 주전으로 도약하더니 김주찬, 최형우 수준으로 팬 서비스의 퀄리티가 추락했다. 그리고 신인 시절엔 나름 괜찮았던 김선빈은 상무 입대를 전후로 해서 극도록 나빠졌다.[41] 사정이 이러하니, 심지어 프로 야구 선수들 전체를 기준으로 보면 팬 서비스가 아주 나쁜 편에 속하는 나지완은 안 좋은 모습이 언론에 자주 노출되고 또 그 동안 쌓아놓은 이미지가 별로라서 최악의 팬서비스를 보여주는 선수로 오인되지만 실제론 KIA 타자들 기준에선 최소 중간은 간다는 평이 나올 정도다.
그리고 대부분의 팀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팬 서비스가 상당히 좋지만 KIA는 외국인 선수들마저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다. 2018년 기준으로 팻 딘만 팬 서비스가 좋고 헥터는 외국인 선수치고 팬 서비스가 별로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버나디나 같은 경우는 2017 시즌엔 그럭저럭 좋다는 여론이 우세했으나 2018 시즌엔 평이 갈리는데 어쨌든 작년보단 안좋아졌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된다.
또한 이전 KIA에 소속되었던 선수들 중에도 팬서비스가 그리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 선수들이 있다. 이용규, 강한울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한울은 삼성으로 이적해서도 평이 좋지 않다. 이용규는 그나마 한화에 가서는 KIA 시절보단 조금 나아졌다는 말이 나오지만 여전히 보편적인 시각에선 별로다.
2020년 시즌 최종전에서 양현종, 박찬호, 김태진을 제외한 선수들이 관중들에게 손인사도 안해 논란이 되었다. 심지어 광주 홈경기였고 장내 아나운서 김영호가 손을 흔들어 달라고 3번 마이크를 통해 말했으나, 선수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결국 큰 논란이 되며 주요 스포츠 뉴스와 기사를 장식하게 되었다. 결국 선수단과 임직원 측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식 사과문을 올렸다. 선수들은 손인사를 해달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말을 못들었다고 해명했지만 그걸 들어야만 손인사를 해주는 것이냐는 팬들의 반문이 역시 거세다.

12. 영구결번



[image]
'''No.18'''
'''선동열
(宣銅烈 / Sun Dong-Yol)
'''
[image]
'''No.7'''
'''이종범
(李鍾範 / Lee Jong-Beom)
'''
영구결번은 이종범의 등번호 7번선동열의 등번호 18번이 지정되어 있다.
선동열의 18번은 선동열이 주니치 드래곤스 이적을 확정짓자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현재까지 KBO에서 은퇴 전에 영구결번이 지정된 최초의 케이스.[42] 1996년 당시 기사
하지만 해태가 KIA에 매각되면서 눈치 없는 KIA 프런트가 해태색 없애기의 일환으로 영구결번을 무효화하고 신인 최고액 계약금을 받았던 김진우에게 주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18번을 잠깐 받았던 김진우도 구단이 주니까 받기는 했지만 부담이 되었던 눈치라 KIA에서도 영구결번으로 남게 되었다. 선동열 본인이 KIA 감독으로 복귀할 때 이 번호를 되살리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영구결번의 취지를 살리고자 '''감독으로서의''' 선동열에겐 90번이 갔다.
이종범의 7번은 2012년 3월 31일 본인이 은퇴를 선언 함과 동시에 구단에서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같은 해 5월 26일에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이 동시에 거행되면서 타이거즈 역사상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다만 타이거즈는 11번 우승을 한 명문 구단이고 유명한 선수들도 많이 배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구결번의 수가 너무 적다. 그나마 지정된 선동열이종범KBO 리그 역사에 남을 엄청난 기록을 세웠던 터라[43] '''타이거즈의 영구결번 기준이 너무 높은 게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처지.[44] 그래서인지 지금이라도 김응용, 김봉연, 김성한, 조계현, 이강철 등의 레전드들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해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꽤나 있긴 하지만 프런트가 딱히 영구결번을 늘릴 생각은 없어보인다. 프런트가 해태 타이거즈 시절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는 설이 있긴 한데, 안 그래도 해태색 지우기에 이골이 난 팬들은 여기에서까지 해태색 지우기냐고 불평하는 중.

13.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



2009년 7월 25일, 무등 야구장에서 2009 시즌 올스타전이 개최되었다. 한국야구위원회에서는 당시 은퇴한 선수들로 선정한 ‘타이거즈 레전드 올스타’를 선정했다. 기준은 타이거즈 출신으로 올스타전 베스트10을 뽑는 팬투표에서 포지션별로 많이 뽑힌 횟수다. 당시 KIA가 1등을 달리고 있던 와중에 올스타전도 광주에서 열리고, 이런 행사까지 진행되어 인기가 컸다. 위의 포지션에 선정된 인물들은 당시 웨스턴 선수들과 같이 입장했고, 레전드 올스타 중 최연장자였던 김봉연이 시구했다.

2020년부터 구단 공식 어플이 출시되면서, 2020년 8월 7일부터 21일까지 2주간 팬들의 투표로 역대 레전드 올스타를 선정하여 8월 26일 16시에 결과가 나왔다. 총 2,223명의 팬이 참여했으며 결과는 다음과 같다. 11년 전과 비교한다면 투수, 포수, 1루수, 2루수, 3루수, 중견수, 지명타자는 변동이 없고 2009년 투표에서 우익수 레전드로 뽑힌 김종모가 2020년 투표에서는 좌익수 레전드로 뽑혔다.
2009년 투표는 은퇴 선수로만 후보가 한정된 탓에 당시 현역 타자로 뛰던 타이거즈 역사상 최고의 유격수가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2020년에는 무난히 유격수 레전드로 뽑힐 수 있었다. 아울러 우익수 레전드에는 외국인 타자로는 유일하게 로저 버나디나가 뽑혔는데 2009년 외야수 레전드로 뽑힌 김일권이 빠지게 됐다. 김일권이 타이거즈에서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된 것이 1988년이고 시대의 흐름 속에 타이거즈에서 김일권의 활약상을 기억하는 팬들도 적어진데다 구단 어플을 이용하는 젊은 세대 팬들은 타이거즈 시절의 김일권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 득표가 저조했던 것으로 보인다.

14. 외국인 선수 선발



14.1. 투수


과거 해태 타이거즈의 팀 컬러였던 투수 위주의 팀 컬러답게 외국인 선수 선발에 있어서는 투수 용병을 잘 뽑기로 유명하다. 해태 시절을 포함, 투수 용병에 있어서는 게리 레스[45], 다니엘 리오스, 변화구 구사가 뛰어났던 마크 키퍼, 캐나다 국가대표 마이클 키트 존슨, 일본으로 건너가 더 좋은 활약을 한 세스 그레이싱어, 2009년 KIA 타이거즈의 V10을 이끌었던 아킬리노 로페즈릭 구톰슨 등 쟁쟁한 외국인 선수들이 많았다. 게다가 2010년 이후 야구계의 용병농사가 외국인 투수에 집중되면서 더욱 돋보인다. 타선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지 못해서 그렇지 매년 10승급 외국인 선수를 데리고 올 정도이다.
2012년에 아킬리노 로페즈를 포기하면서까지 데려온 앤서니 르루호라시오 라미레즈가 시즌 초반 부진하고, 결국 호라시오 라미레즈헨리 소사로 교체되면서 팬들을 불안하게 했다. 하지만 이후 앤서니와 소사 모두 선발로서의 제 역할을 다해주면서 어느 정도 우려는 불식되었다. 하지만 팀 성적은 시망... 2013년에는 희대의 설레발 디버프로 본인들 성적마저 수직하락했다.[46]
2014년에는 NPB 다승왕 경력이 있는 데니스 홀튼을 선발 투수로, 마이너리그에서 수년간 마무리로 경험을 쌓았던 하이로 어센시오를 영입하였다. 홀튼은 시즌 초부터 선발진의 한 축을 이루며 좋은 성적을 낸 반면, 어센시오는 마무리로 못 쓸 정도는 아니지만 기대보다는 불안한 피칭 내용을 보이며 이런저런 말이 많았다. 그래도 시즌을 거듭할수록 좋은 모습을 보이면서 제대로 망한 2013년을 제외하면 그래도 외국인 투수를 보는 스카우터의 능력은 좋다고 평가받나 싶었으나.. 데니스 홀튼은 7월이후 무릎연골이 찢어져 구위저하의 원인이 되었고 수술이 불가피해 방출통보를 받았다. KIA구단은 어센시오를 경험한 뒤 외국인 마무리투수를 뽑으면 안 된다는 인식의 흑역사를 가져다주었고 당시 활약하고 있던 브렛 필만 애꿎게 되었다[47]. 결국 팬들의 불만을 가져왔고 투수용병쪽에선 실패한 스카우트 사례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2~2013년을 KIA에서 뛴 헨리 소사는 2014년 넥센에서 뛰다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LG유니폼을 입고 뛰기도 했다.
다만 2012년 이후로는 투수 픽이 예전 같지 않아졌다. 2009년 한국시리즈의 영향으로 타 팀에서도 수준급의 외인 선발투수를 오버페이까지 해오면서까지 데려오게 되었고, 선 감독의 고집으로 인해서 뽑아온 투수들은 딱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2014년 타자 잔혹사를 끊음과 동시에 투수 픽은 흉작이 되어가는 현실. 2015년 외인 투수인 조쉬 스틴슨필립 험버 역시 피장타율이 높아서 2009년의 외인 콤비를 봐온 KIA 팬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지 못했다. 그나마 스틴슨이 나아졌지만 험버는 역대 KIA 외인투수 중에서 역대 최악의 투수가 되어버렸다. 조쉬 스틴슨은 2015년 9월 이전까지 10승투수가 되어 다음시즌 재계약에 청신호가 켜졌지만 9월 이후 어깨부상으로 1승밖에 추가하지 못했고 어꺠부상 이후 구위저하와 제구난조가 찾아와 재계약에 적신호가 켜져 다음시즌 재계약에 실패했다. 험버대신 대체용병으로 영입한 에반 믹은 초기엔 불펜의 핵으로 활약했지만 이후 팔통증과 부상으로 저조한 성적을 남겨 결국 이번시즌도 투수용병 뽑기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2016년 시즌에는 프런트가 각성하였는지 헥터 노에시, 지크 스프루일이란 최상급의 용병을 영입하였다. 헥터 노에시는 마이너리그에서 9시즌, MLB에서 5시즌을 보내왔는데, 마이너리그 통산 123G 98선발출전에 584.1이닝, 35승 28패 ERA 3.71 WHIP 1.16을 기록하였는데, 주목할 만한 기록은 삼진/볼넷 비율이다. 584.1이닝동안 삼진은 537개, 볼넷 126개를 던졌다. MLB 5시즌 동안 총 4개의 팀(양키스, 매리너스, 레인저스, 화이트삭스)을 거치며 107G 53선발출전 395.1이닝 12승 31패 ERA 5.30 WHIP 1.46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크 스프루일은 프리미어 12에서 미국전 선발대표로 나섰다. 한국 vs 미국 예선전에서 6이닝 무실점의 호투를 보여주어 KBO 스카우터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이너리그에서 8시즌, MLB에서 2시즌을 보내왔는데, 마이너리그 통산 191G 143선발출전에, 903.0이닝, 52승 60패 ERA 3.86 WHIP 1.30을 기록하였다. 승보다 패가 많지만 통산 ERA가 3점대로 준수하며, 이닝당 출루 허용률도 1점대로 굉장히 훌륭한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MLB에서 2시즌동안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서 활약하였는데 통산 12G 3선발출전 1승 3패 ERA 4.24 WHIP 1.56으로 크게 뛰어난 활약을 하지는 못하였다. 단순 MLB기록으로만 보면 위력적인 투수로 보이지는 않지만, 마이너리그에서 수차례 팀을 옮긴 것으로 보아 성장가능성이 매우 높은 투수로 평가되었다. 결과적으로 헥터는 예상대로 대성공을 거두었지만, 지크는 결정구의 부재와 한국의 폭서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의 문제로 득점지원 덕에 간신히 10승은 거두었지만 높은 평균자책점과 날씨에 따른 심한 기복 등 세부적인 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활약을 거두어 재계약에 실패하게 되었다.
17년에는 헥터와 재계약했고 지크와 헤어진 뒤 미네소타에서 뛰던 팻 딘을 90만 달러에 영입하였다. 16년에는 메이저와 마이너를 오가며 보낸 투수. 좌완으로 140km대의 속구와 벌컨 체인지업을 비롯하여 몇 가지 변화구를 갖춘 투수로 메이저리그에서는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정교한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타입의 투수였으나 140km대의 속구면 메이저에서는 느린 공이지만 한국무대에서는 파이어볼러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구속으로 빠른 구속에 제구력까지 갖춘 완성형 투수로서의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헥터는 양현종과 더불어 32년만의 단일 구단 20승 콤비[48]를 결성했고, 펫 딘은 제구에 난조를 보이며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후반기에 위력을 발휘해 팀의 정규시즌 우승에 한몫했다.
2018년에는 우승 공로로 작년의 외국인 투수 듀오인 헥터, 팻 딘과 모두 재계약하였으나 이것은 최악의 수가 되었다. 헥터는 등판할 때마다 꾸준히 3~4실점 정도는 하고 있고 팻 딘은 선발 성적이 너무나도 안 좋아서 2018년 후반기에는 불펜으로 강등되어 2018년 10구단 외국인 투수 WAR 꼴찌를 찍으며 외국인 원투펀치가 사실상 무너졌다. 사실 애초에 재계약 때부터 외국인 투수들이 2017년만큼의 활약을 해주기는 어렵다는 것은 어느 정도는 예상된 결과였다. 헥터는 너무 굴린 여파로 2017년 후반기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팻 딘은 떨어지는 구종이 없다는 약점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
2019년에는 제이콥 터너와 조 윌랜드를 새로 영입하면서 헥터, 팻 딘과 결별했다. 팻 딘은 워낙 부진했기에 누구라도 교체를 예상할 수 있었지만 헥터는 조금 의외라는 평이 있었는데 사실은 타이거즈측에서 재계약을 추진중이었지만 재계약 시 내야하는 많은 세금에 부담을 느낀 헥터측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고 한다.
2020년에는 처절하게 망한 제이콥 터너조 윌랜드와 재계약하지 않고 애런 브룩스드류 가뇽을 영입했다. 맷 윌리엄스 감독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2021년에는 애런 브룩스와 재계약하고 다니엘 멩덴을 새 외국인 투수로 영입하면서 드류 가뇽과는 결별했다.

14.2. 타자


투수 쪽에서는 꾸준히 평타 이상을 쳐주는 반면 타자 용병은 정말 눈물 날 정도로 뽑기운이 없었는데, 그나마 해태-KIA 역사상 제 몫을 해줬던 타자 용병이라면 1999년 해태에서 뛰었던 트레이시 샌더스, 윌리엄 브릭스, 2000년에 대체 용병으로 들어와 쏠쏠한 활약을 했던 준족의 똑딱이 헤수스 타바레스[49], 3할에 20홈런을 넘겼던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4번 타자 루이스 데 로스 산토스, 그리고 2012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소유자인 2014년 외국인 타자 브렛 필, 2017년 2년 연속 20-20클럽에 가입한 로저 버나디나, 2019년 대체 용병으로 들어와 타선의 한 축을 책임지고 있는 프레스턴 터커 정도밖에 없다.
이로 인해 이름이 '''스'''로 끝나는 외국인 타자를 데려오면 성공한다고 말했지만 밑에 서술된 윌슨 발데'''스'''가 그 전통을 깨뜨리고 말았다.
해태-KIA 타이거즈의 타자용병 잔혹사를 설명하자면, 실력 외에 애초에 해태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잘할수가 없던 '''숀 헤어'''는 일단 논외로 두고, 2000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했던 호세 말래브와 에디 피어슨부터 시작해야 할 듯 싶다. 호세 말래브는 입국 당시 총기를 소지하였던 것이 들통난 데다 실력마저 신통치 못해 시즌 시작도 전에 짐을 쌌으며 에디 피어슨은 1999년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면서 실력은 검증받았지만 당시 해태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대우에 실망해 자기 스스로 짐을 싸서 나왔다. 그 대체 용병으로 제이슨 배스와 일본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에서 뛰었던 내야수 아르키메데스 포조를 데려왔으나 제이슨 배스는 좀 하다 싶더니 부상으로 짐을 쌌고, 포조는 시즌 초반 부진하자 곧바로 쫓아냈다. 여담으로 포조는 해태에서 쫓겨난 후, 해태의 열악한 대우에 대해 자신의 에이전트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다.
2002년 KIA 타이거즈로 바뀌고 첫 풀시즌을 치렀을 땐 멕시칸리그 홈런왕 출신 워렌 뉴선을 데려왔는데, 이 선수는 키는 엄청 작은데 거포스윙을 남발하다 폭삼만 당하며 결국 퇴출. 후임이었던 루디 펨버튼도 마땅한 수비 포지션이 없어 지명타자로만 나왔으나 성적은 썩 좋지 못했다.
2007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에서 홈런왕을 했던 래리 서튼을 영입했다. 나이가 많고 무릎이 좋지 않아 전년도엔 지명타자로 뛰었으나 KIA로 오면서 좌익수 수비에 들어갔고, 그나마 타율은 괜찮았으나 득점권 타율이 처참했고 장타력마저 떨어지면서 최희섭이 KIA에 입단하자마자 퇴출되었다. 서튼은 KIA 타이거즈를 끝으로 은퇴했는데, 2008년 시즌 종료 후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물색하던 KIA 타이거즈에 이 선수를 추천해줬다.
2008년에는 유격수 홍세완의 공백 때문에 메이저리그 경력이 있던 윌슨 발데스를 영입했다. 시범경기만 해도 빠른 발과 쏠쏠한 타격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똑딱이인 주제에 큰 스윙을 가져가고 수비마저 정줄 놓은 수비를 보여주며 일찌감치 퇴출되고 말았다. 이 선수는 KIA에서 퇴출된 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에 대체 용병으로 입단하였으나 거기서도 퇴출. 이후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거쳐 신시내티 레즈에서 활약하였다. 그냥 동양 야구와 안 맞았던 모양.
'''그런데''', 2014년 시즌을 앞두고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가 3명 보유 2명 출장 및 타자용병 의무 영입으로 늘어나면서, 6년만에 타자 용병을 영입했다. 그 주인공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뛰던 브렛 필. 이전까지의 타자 외국인 잔혹사 때문에 의혹을 가지기도 했고 실제로 시범경기까지는 매우 부진했지만 막상 시즌이 시작 되자 OPS 0.894를 찍었다. 득점권 타율은 낮았지만 이것은 매 시즌 편차가 심하니 선수의 능력으로볼수는 없다. 중요한 시점마다 영양가 넘치는 홈런을 때려내며 KIA 타선에서 돋보이는 타격능력을 보여주었고, 삼성 배영수의 공에 손등을 맞아 경기수가 부족해서 누적 기록은 마땅치 않았다.
재계약에 성공한 2015년에는 KIA의 소년가장 역할을 하였다. 예상 대로 득점권 타율이 평균으로 돌아오는지 아주 좋아졌다. 인성 좋고 성실하고 사고 위험이 없으며 잘생기고 잘하자 팬들 사이에서는 타리그로 다시 갈까봐 전전긍긍. 필은 이렇게 타이거즈 타자 잔혹사에 마침표를 찍어주었다.
다만 2014~2015 시즌이 엄청난 타고시즌이라 1루수 포지션임에도 타 구단 외인타자들과 비교해서는 아주 특출나지 않다는게 문제. 나쁜공에도 스윙이 나가는 배드볼 히터라 출루율이 타율 감안하면 낮은 편. 미국에서도 항상 스타일이 비슷해서 이게 한계가 아닌가 하고 교체하자와 3번째 시즌을 같이하자는 의견이 충돌했지만 브렛필은 이번에도 재계약에 성공하며 타이거즈 역사상 최장수 타자용병으로 기록되게 되었다.
브렛 필 본인도 자신을 보는 외부의 시선을 신경쓰고 있는 듯 비시즌 기간 동안 웨이트로 몸을 키웠다고 말했으나 오히려 2016 시즌 처참한 성적을 기록하게 된다. 2015년 종종 보여주던 팬들을 환장하게 하는 클러치히터로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럭저럭 건실하던 수비마저 무너지면서 다른 의미로 환장하게 했다. 포털 사이트 등에서 '필까충 VS 필맘충' 이라며 팬들끼리 서로 비난해대며 싸우는 씁쓸한 광경도 흔히 볼 수 있었고, 이곳 위키에서도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사상 최악의 용병', '90만달러 거품' 이란 표현도 쉽게 볼 수 있었다.
6월 중순부터 잠시 살아나는 듯 했으나 다시 추락을 거듭하며 최종성적 20홈런 OPS .868로 마무리했다. 시즌 내내 1루만 전담했음에도 시즌 초 무상 트레이드로 영입된 OPS .882를 기록한 2루수 서동욱보다도 OPS가 낮다. 게다가 두자릿수 병살+실책을 기록하며 수비에서도 안정감을 주지 못했으며 결국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2016년 12월 1일, 외야수 로저 버나디나와 85만 달러에 계약했다. 그리고 버나디나는 초반 타격에서의 끔찍한 부진으로 퇴출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김기태 감독이 특유의 동행 야구[50] 정신을 발휘해 끝까지 믿어준 결과 20-20을 달성하고 사이클링 히트를 치는 등 KIA 역사상 최고의 타자 용병이 되었다. 게다가 한국시리즈에서는 5할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며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핵심 역할을 하였다. 2018년에는 1번 타자로 주로 나와 테이블세터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3번이나 5번에서 클린업을 담당하기도 하는 등, 상위와 중심 타선에서 활약하였다. 2년 연속으로 20-20을 달성하고 3할도 달성했지만 많은 기록이 2017년보다는 좋지 못했다. 그렇지만 여전히 넓은 수비범위와 도루 2위를 달성할 정도의 주루 능력, 타격 능력을 가지고 있어 재계약을 추진해야한다는 의견도 존재했는데, 결국 재계약을 하지 않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재계약을 하지 않은 이유에도 의견이 분분한데 버나디나의 적지 않은 나이와 유흥을 좋아하는 성격이 큰 이유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에 KIA는 2019년 대체 용병으로 제레미 해즐베이커를 영입한다. 그러나 이 선수는 잦은 삼진과 저조한 타율로 인해 수시로 2군에 다녀오다가 결국 시즌 타율 0.146을 기록한 채 5월 10일 웨이버 공시되었다.[51] 팀은 대체용병으로 프레스턴 터커를 영입하여 5월 17일부터 경기에 기용했다. 프레스턴 터커는 2020시즌 재계약에 성공하였다.

15. 이모저모




16. 홈 구장


KIA의 홈 구장으로 사용중인 곳은 다음과 같다.
  • 1군: 무등야구장 (1982~2013)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2014~ )
    • 제2구장: 이전에는 쌍방울레이더스의 2구장으로 쓰였다: 월명 야구장 (2003 )[52]
  • 2군, 3군: 전남 야구장 (2006~2011) ▶ 기아 챌린저스 필드 (2012~ )

17. 지역 연고 학교


  • 전라북도[53]

18. 출입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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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기자단에 대한 KIA 팬들의 성토가 심각한 편인데, 2019년 김윤동 혹사 논란 등이 나와도 소극적인 보도 태도를 보여서 논란이 있다. 여러모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출입기자단과 비슷한 문제를 겪는 중. 게다가 잘못된 출입기자단 선정으로 논란이 된 케이스가 장강훈.

19. 사건 사고



롯데, LG와 더불어 팬 많기로 유명한 구단이기에 그만큼 이야깃거리도 많은 편이다.

20. 팬 커뮤니티



21. 여담


  • 2012 시즌 들어 롯데 자이언츠넥센 히어로즈(현재 키움 히어로즈) 등 각 팀의 여성 경기보조요원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가 되고 있다. 야구의 인기가 확대되면서 또 다른 구단의 인기요소가 되기 때문인데, KIA는 운영하지 않았다. KIA의 경우에는 경기 보조요원을 지역의 유소년 야구 선수들을 활용하는데, 구단 측에서는 유소년 야구선수들이 경기에 보조로 참여함으로써 선수가 되기 전 프로야구 경험을 축적하여 선수 생활의 바탕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유명한 야구 선수들을 직접 그라운드 안에서 보면서 선수로서의 꿈을 키우는 경험을 해준다는 차원에서는 나름대로 실속있는 방침이라 할 수 있을 듯. 보조요원으로 참여한 학생들에게는 소속 학교에 일 수당 5만원을 지급한다고 한다.. 하지만 2015 시즌부터는 유소년 선수 대신 다른 구단들처럼 배트걸을 쓰기 시작했다. 이 배트걸은 구단 치어리더들이 번갈아가며 맡는다.
(사진은 2011년 올드 유니폼 데이 당시의 이종범.)
  • 2005년 이래 시즌 개막전 전패를 기록하면서 2012년까지 8연패를 기록하였다. 그렇다보니 초반에 팀 분위기가 꼬이는 경우가 계속 발생하였으며 그 분위기가 계속 진행되면 팀 운영에 차질이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KIA 타이거즈의 개막전 승률이 2012년까지는 0.393으로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 그러나 2013~15 시즌 개막전에서 모두 승리하며 3연승을 기록하며 개막전 승률을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 구단 상품들이 정말 안습한 수준이다.## KIA 타이거즈의 유니폼과 상품은 10개 구단 중 삼성 라이온즈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영 좋지 못했다. 프런트에서도 인식은 하고 있다고.## 그래서인지 2017년을 끝으로 기존 사업자였던 비젼코리아와의 계약이 끝나자 마자 킷 스폰서인 마제스틱의 한국 판매를 담당하는 '케이엔코리아'와 상품 계약을 맺은 뒤 상품의 다양성이 증가되면서 점차 고객들의 의견을 만족하고 있다. 다만 아직 초기여서인지 몰라도 일부 상품의 마감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은 있다.
  • 한동안 지나칠 정도로, 해태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출신 감독을 선호하는 일명 해태순혈주의를 고집하였다. KIA 타이거즈 역대 감독들은 김기태 감독, 조범현 전 감독을 제외하고는 모두 해태 출신이었다.[54][55] 하지만... 2009년 타이거즈에 12년 만의 V10을 안겨준 비해태출신 조범현 감독은 2011년 전반기 1위를 했지만, 후반기의 16연패로 인해 빗발치는 팬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고, 결국 정규리그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패배를 기록하며 조범현 감독은 이에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를 한다. 그러나 구단과 팬들에게 이를 깨게 만든 장본인이 있었으니... 2012~2014년 3년간 감독을 맡은 한국야구의 살아있는 전설 해태 출신인 선동열. 하지만 3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탈락과 588이라는 처참한 성적은 감독이 꼭 해태 출신이 아니어도 된다는 해태순혈주의를 깨는 시금석이 됐다.
  •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인성이 좋고 실력이 좋은 선수라면 용병이든 누구든간에 차별하지 않고 섭섭하지 않게 대우 잘해주는 구단으로 정평이 나있는 편. 이를 증명하는게 2015년 7월 27일 외국인 타자 브렛 필의 딸 킨리의 돌잔치가 열렸는데,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외국인 선수가 한국식으로 돌잔치를 열게 된 건 처음이고, 돌잔치를 여는 과정에서도 구단은 이를 위해 많은 신경을 써준 것은 물론, 선수단, 코칭스태프, 구단 직원까지 참여를 하였다. 또한, 2015년 시즌 전반기에는 필의 가족을 초청하여 시구를 하는 시구자가 되었고 이후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신경 써주었다. 게다가 필의 은퇴 이후에는 외국인 선수의 북미지역 담당 스카우터로 채용하고, 한국시리즈에도 초청하는 등, 이러한 복지 면에서는 뛰어난 편이다.
  • 지방 연고 구단인 만큼 시구행사가 많은 편은 아니다. 다만 타 구단들이 유명인사를 시구자로 섭외하기 위해 돈을 쓰는 것에 비해 KIA는 반대로 시구를 원하는 쪽에 돈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덕분인지 유독 광주/전남[56] 산하 기초 지방자치단체장들의 시구가 잦은 편이다. 해당 지역의 단체관람객 동원은 덤. 그러면서 구단 한 켠에(특히 외야 출입구 부 울타리) 해당 지자체의 지역 행사를 홍보하는 현수막이 걸리는 등 홍보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KIA가 시구행사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러브 투게더 행사 등 자선단체 기부에 쓰인다.
  • 김기태 감독이 취임 후 2015년 시즌 선수들의 부상을 막기 위해 홈팀 덕아웃인 3루 쪽에 고사를 지낸 뒤 덕아웃에 북어를 달았다고(!!!) 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선수들의 부상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물론 김주찬 덕에 효과가 미미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지만 북어는 현재까지 걸려 있다고 한다.
  • 구단 프런트가 야알못이라고 오랫동안 까였었다. 현대자동차 그룹의 방침상 사장이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 한화 이글스 사장이 대신 결정권을 행사하며 오는 단장들 역시 순수하게 돈과 인프라 지원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정재공 단장 이후 프런트가 구단 운영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고 현장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야말로 지갑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 역시 존재한다. 그러나 2015년 이후로는 조금식 개선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현장의 요청이 있기 전에 박한우 사장, 허영택 전 단장을 필두로 한 구단 고위층이 2020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 재활센터를 건립하는 등[57] 구단 인프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 KIA 협력병원에 안과병원이 있는데, 이 곳이 나름대로 시력교정 수술이 유명해서 KIA 소속 선수들이나 KIA를 거쳤던 선수들 중에서 이 곳을 통해서 안경에서 벗어난 선수들이 몇몇 있다. 양현종[58]이나 김종국, 노수광 등이 그 예이고, 장성호는 롯데 시절에 했음에도 KIA와의 연을 통해 안경에서 해방되었고 조영훈 역시 삼성 시절에 시력 문제로 고생했다가 KIA 이적 후에 안경에서 해방되었다.
  • 2017년 7월 5일 기준 한미일 사상 최초 8경기 연속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하였다. 다음 날인 7월 6일에는 5득점만을 기록하면서 연속 기록이 중단되었지만, 7월 9일 20득점을 하며 두 자리수 득점을 기록했다.[59][60]
  • '타이거즈(스)'를 구단 이름으로 하는 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합하면 전신이었던 해태 시절까지 포함한 11회 우승으로 최다이다. 두번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소속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로 4회의 우승 기록을 소유. 3위이자 맨 꼴찌인 일본대표 한신 타이거스고작 1회인데다가 그마저도 1985년 우승이다.
  • SK 와이번스가 가을야구 전문구단이라면 여기는 한국시리즈 전문구단이다. 전신이던 해태시절을 포함, 총 11번의 한국시리즈 진출 모두 우승으로 종결지었다.
  • 두산 베어스와 같이 80년대, 90년대, 00년대, 10년대에 모두 우승을 경험해 본 구단이다.[61]
  • 해태 아줌마가 올드팬들 사이에선 제법 유명하다. 평소에는 껌이나 담배, 응원도구 등을 파는 행상인인데, 경기가 시작되면 특유의 한복치마 복장을 하고 응원단석까지 올라가 해태를 응원했다.[62] 반응은 꽤 괜찮았던 편. KIA 인수 후에는 무등구장 외야석에 자주 나타났으며, 챔필 완공 이후에도 가끔 외야석에서 응원 유도나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 매년 5월 18일 광주 홈경기를 치룰 때는 5.18 민주화운동을 추모하기 위해 경기 전 국민의례 때 희생자들을 기리는 묵념을 하고, 치어리더 응원도 생략하는 등 조용히 경기를 치루는 편이다.

22.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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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내 2층.[2] 행정구역 개편만 몇 차례 있었을 뿐 메인 연고지 '광주'는 프로 원년부터 지속되고 있다. 참고로 광주는 1986년 직할시로 승격됐고 1995년 다른 직할시와 함께 광역시로 개칭됐다.[3] 창단 당시 광주시(현 광주광역시)와 광산군(현 광산구)는 전라남도에 속해있었다. 분리는 1986년. KBO의 연고지 제도가 도시연고제로 전환되면서 연고권이 광주광역시로 한정됐다.[4] 전라북도 연고의 제8구단 쌍방울 레이더스 창단으로 인한 연고지 제도 개편으로 제외. 쌍방울 해체 후 연고권이 회복될 수도 있었으나 KBO의 연고지 제도가 도시연고제로 전환되면서 전북 연고권은 상실됐다. 다만 1차 지명은 여전히 호남지방에서 할 수 있다. 단 전라북도 지역 연고 학교 중 전주시, 군산시는 제외로 전주고, 군산상고NC 다이노스 보호권으로 편입되었으나 정읍시, 고창군인상고, 고창영선고는 1차 지명 대상이다. 하지만 NC가 군산상고, 전주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1차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지 해당 지역의 제2구장 홈 경기를 치를 권리까지 준 것은 아니다. 이 둘은 별개의 사안이다. 당장 NC 다이노스가 1차 지명권을 행사하는 울산에서 제2홈구장 경기를 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예가 있다.[5] 2014년 이후로 프로야구 제2홈경기가 없지만 일단 제2구장 지위는 유지하고 있다.[6] 2019 시즌까지는 마제스틱이 담당했으나 2020년부터 계약이 해지되었다. 유니폼 판매는 라커디움에서 진행한다.[7] 해태 시절 9회, KIA 인수 이후 2회.[8] V6이니까 별이 여섯 개여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별이 일곱 개다. 모기업이 KIA로 바뀌면서 엠블렘을 재정리했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이 말이 맞다면 엠블렘을 다시 그리다가 실수로 별 개수를 착각한 듯하다. 그 외에도 SERIES를 '''SERISE'''라고 써 놓는 초보적인 오타가 있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수정되었고,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에 부착된 로고는 별이 6개로 수정되었다.[9] 여기서도 series가 아니라 serise라고 써있다.[10] 단일 리그 기준[11] 전기, 후기 우승[12] KBO 유일의 한국시리즈 무패 기록 중.[13] 국내 유일의 챔피언결정전 승률 100% 기록팀이다.[14] 국내 프로 스포츠 사상 챔피언결정전 최다 우승 기록이다. 여자프로농구(WKBL) 아산 우리은행 위비와 함께 11회로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한 팀이다. 대한민국 4대 프로스포츠를 기준으로 KIA 다음 순위는 삼성 라이온즈,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전북 현대 모터스의 8회이다.[15] 다만 과거 쌍방울 레이더스가 존재하던 전라북도는 팬 분포가 다양한 편. 그러나 전주시에서도 쌍방울의 인기가 해태 타이거즈의 인기를 넘지 못했었다. 해태에도 초창기부터 군산상고 등 전북 출신 선수들이 상당히 많았던 데다가 성적도 해태는 IMF 전까지 밥먹듯이 우승을 하는 팀이었지만 쌍방울은 창단 후 한동안 최약체 수준을 면치 못했기 때문. 그러다 쌍방울도 가을야구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팬이 늘기 시작했지만, 전성기는 너무도 짧았다. 쌍방울 해체 이후에는 타이거즈로 완전히 돌아오거나, 선수단 대부분을 이어받은 SK 와이번스를 응원하거나, 아니면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거나 하는 식으로 팬이 갈렸다.[16] 두 번 다 시즌 5위 자격으로 WC 결정전에 나갔는데 역대 WC 결정전 사례를 봐도 5위 팀이 4위 팀을 뒤집고 올라간 업셋 사례는 아직 없다.[17] KKK포 외에도 '김씨 타선', '가장 한국적인 타선'이라는 별명도 있었다. 김일권부터 시작해서 앞서 언급된 김준환, 김봉연, 김성한, 김종모 등에 포수 김무종이 있는 등 유독 라인업에 김씨 성을 가진 선수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시절에는 감독마저 김씨(김응용)였다.[18] 참고로 기아자동차에서의 '기아'는 '아시아에서 일어나다.'(起亞)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단어인 Gear를 일본식 발음대로 옮겨적은 것이기도 하다. 자세한 사항은 기아자동차 문서 참고.[19] 모기업 KIA의 로고 변경을 반영하면서 색상 일부를 함께 바꾸었다.[20] 다만 붉은색도 일부 변화가 있다. 색깔의 톤이 살짝 밝아졌다.[21] KIA의 로고가 바뀌면서 야구단 갸의 로고도 약간 바뀌었다[22] 해태 시절 9회, 이후 2회.[23] V6이니까 별이 여섯 개여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별이 일곱 개다. 모기업이 KIA로 바뀌면서 엠블렘을 재정리했다는 카더라가 있는데, 이 말이 맞다면 엠블렘을 다시 그리다가 실수로 별 개수를 착각한 듯하다. 그 외에도 SERIES를 '''SERISE'''라고 써 놓는 초보적인 오타가 있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수정되었고,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에 부착된 로고는 별이 6개로 수정되었다.[24] 여기서도 series가 아니라 serise라고 써있다.[25] 현대삼청태 시절에 우승한 적이 없고, 트윈스청룡 시절에 한 적은 없다. 베어스이글스는 구단명만 OB와 빙그레에서 바뀌고, 모기업인 두산그룹한화그룹은 그대로 유지됐었다.[26] 재미있는 점은 해태의 4연속 우승에 삼성 라이온즈가 큰 지분을 담당했다는 점이다. 삼성은 1986년1987년에 셧아웃 당하면서 거의 우승을 헌납하다시피 했다. 빙그레 이글스도 마찬가지로 1988년, 1989년에 해태에게 연속으로 패했다. 4연속 우승 이후에도 삼성은 1993년에 다시 한번 패하여 준우승, 빙그레도 1991년에 패하여 준우승.[27] 선발로 하루 등판시켜서 며칠씩 쉬게 하느니 선발, 불펜, 마무리 가리지 않고 등판시키는 방식을 썼다. 선발이 일찍 무너지거나 무너질 기미가 보이면 바로 올려서 몇 이닝씩 던지게 하고 심지어 컨디션이 엉망인 날에도 상대팀 기죽이기를 위해 불펜에서 몸을 풀게 했을 정도. 실제로 선동열은 프로 통산 367경기에 출장했지만 선발로 출장한 경기는 109경기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이 당시에는 에이스 투수고 나발이고 마구잡이로 굴리는게 관례였다.[28] 한화 이글스로서 만난 적은 없다.[29] 프로필 촬영 사진 순서대로 최대한 배열하려고 노력하였다. 발목부상으로 은퇴한 김지혜 치어리더를 제외하고 구성원이 2020 시즌과 동일하다.[30] 연고지는 광주광역시이나 과거 광역연고지였던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포함[31] 바로 위의 사진 3장 중에 맨 아래 사진만 광주 홈구장에서 찍었다. 나머지는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찍은 것이다.[32] 서울 내 호남 출생자만 해도 21% 정도로 적은 수가 아니며(자녀, 손주는 포함하지 않은 값이다), 그 외 수도권이나 부산 등지로 떠난 호남 출신도 많다.[33] 수도권 중에서도 특히 잠실의 KIA 경기를 보면 홈팀과 원정팀이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챔필과 마찬가지로 3루를 쓰기도 하고). 때문에 일부 KIA 팬들이나 금지어 응원단장잠실 KIA 챔피언스 필드라고 부르는 경우까지 있었으나 KIA팬들끼리만 모인 상황이 아니라면 이런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잠실을 홈으로 쓰는 두산, LG 팬들은 이 표현을 매우 불쾌해하며, 애초에 충분히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표현이다.[34]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시즌 개막전에 시구자로 나섰을 정도이다.[35] 전 경기가 광양과 순천에서만 치러지니 서부권인 목포나 나주 등지만 가도 존재감을 느끼기 힘들다. 최근엔 여순광 지역에서도 인기가 좋지 않고 2부리그로 강등될 정도로 성적도 그다지 좋지 못하다. 해태왕조 시절의 성과를 현재진행형으로 구가하며 지역에서 존재감이 상당한 전북 현대 모터스만 사정이 다른 편.[36]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말년이다.[37] 현대기아차 부품회사 및 KTX 부품회사로 본사가 창원 성산구에 있다.[38] 이는 삼성도 마찬가지로, 삼성 기사에서도 대구 지하철 참사의 희생자들을 비하하는 '통', '통구이' 등의 단어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사건 이후에는 도박 사건에 빗대 비하하는 '칩성'이라는 멸칭이 새로 만들어져 쓰이고 있다.[39] 타 구단은 SPOTV에 외주를 맡긴다거나, 혹은 적당한 보수를 주는데 KIA는 연봉 2,400에 포토샵+일러스트 자격증 소유자를 찾고 있다. 게다가 1명만 모집했고, 유튜브 편집자가 구단 홈페이지도 관리해야 한다.[40] 롯데는 팬서비스가 나쁜 대표적인 선수였던 이대호가 MLB 리턴 이후 팬 서비스가 어느 정도 괜찮아졌고, 삼성은 성적이 떨어진 2016~2018년에 거쳐 팬 서비스 교육이 강화되어 전체적으로 팬서비스가 나아졌다.[41] 2019년 5월 10일에는 '김선빈 팬서비스'로 실검에 오르기도 했다.[42] 이승엽도 NPB를 거쳐 다시 삼성으로 복귀한 뒤 복귀 시즌부터 영구결번 지정이 확실해진 상태에서 은퇴 시즌까지 커리어를 마무리 했다.[43] 특히 선동열의 경우에는 지금처럼 체계적인 분업화가 자리잡기 전인 8~90년대에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기록한 성적이라 더더욱 나오기 어렵다.[44] MLB, NPB 최다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아예 1번부터 10번까지 모두 사용 불가), 요미우리 자이언츠는 모두 소속 리그에서 가장 많은 영구결번을 가진 팀이기도 하다. 거기에 순혈에 골몰한 요미우리 자이언츠조차 영구결번에는 순혈을 따지지 않는다.[45] 2001년에 대체 용병으로 해태에 입단했으나 정작 해태에선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고, 다음 시즌 두산으로 이적해서 확 터졌다.[46] 앤서니 르루는 팀 사정상 마무리로 전환했다가 무너졌고(결국 시즌 도중에 퇴출되었다), 헨리 소사는 2012년에 비해 자주 난타를 당하였다.[47] 선발 투수용병이 등판하는 날이면 브렛필은 강제휴식이었다. 경기에 외국인선수는 2명만 출전할 수 있었다.[48] 1985년 삼성라이온즈의 김일융&김시진 이후 처음[49] 2000년의 활약을 바탕으로 2001년에도 재계약을 맺었는데, 발바닥 부상을 당해 퇴출되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계약 내용 중 부상을 당해 퇴출되어도 잔금을 받지 못한다는 노예 계약을 맺었다는 것이다.[50] 소위 믿음의 야구. 나믿가믿과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51] 2019 시즌 첫 웨이버 공시이다.[52] 2014년 이후로부터 경기가 없지만 아직 홈 구장 지위를 잃지는 않았다.[53] 군산상고와 전주고는 NC 다이노스의 1차지명 대상 학교로 편입되었다.(어디까지나 1차지명권을 행사할 권리를 얻은 것이지 제2구장 홈 경기와는 상관이 없다. 전주시,군산시 지역은 제외이고 정읍시는 지역 연고 학교이다.)[54] 김기태도 광주광역시 출신이라 사실상 비연고지 감독은 조범현이 유일하다.[55] 아이러니하게도 위 비해태 출신 두 감독이 KIA 타이거즈의 유이한 우승 감독이다.[56] 전라북도의 경우 경기도 열리지 않은지 오래되었지만 그룹 계열사가 스폰하는 지역 축구팀이 리그를 탈탈 털며 왕조를 구축하다 못해 아시아의 정복자로 등극하고 있는 형편이라, 국내축구와 K리그의 전반적인 사정과 달리 지역내 위상과 축구 열기가 이례적으로 뜨겁다. 그래서 이 지역 지자체장들은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자주 볼 수 있고 지역 지자체의 날이나 홍보행사 역시 전주성에 집중되어 챔피언스 필드에서 볼 수 있는 전북권 정치인들은 정세균 국회의장처럼 전국구 헌법기관장 등으로 축소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단 이러한 현상이 전북 지역에서 타이거즈에 대한 관심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57] 현장의 요청 때문에 만든 게 아니라 그룹 고위층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한다.[58] 경기를 할 때 안경을 쓰지만 도수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2017시즌 전 팀 우승이 확정된다면 다음 시즌부터 안경을 벗고 던진다고 했으나 2018년 시범경기 첫 등판에서 안경 없이 나와 좋지 못한 기록을 남기면서 안경을 다시 쓰고 던지기로 했다.[59] 한미일 종전 기록은 뉴욕 자이언츠가 1929년 6월 20~23일까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기간 동안 더블헤더 4경기가 포함돼 나흘 만에 이러한 기록이 탄생하게 되었다.[60] 타팀 팬들이 한미일 사상최초 혹은 메이저리그를 넘어섰다는 등의 수식어 때문에 리그 간의 수준차를 논하면서 이 기록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면 2003년 이승엽이 기록한 아시아 홈런 신기록도 종전 기록이 NPB에서 나왔기 때문에 이것 역시 인정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종전 기록은 1929년에 뉴욕 자이언츠가 기록한 6경기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다. 이 기록이 탄생한 해가 최근이라면 수준차를 논할 수 있었겠지만 1929년 탄생한 기록이기 때문에 수준차를 애초에 논하기 힘들다.[61] 한국시리즈 우승 2회의 삼성 라이온즈마저도 1990년대 한국시리즈 우승이 없다.[62] 잠실이나 인천(숭의야구장 시절) 원정때도 종종 따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