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민(독립운동가)

 

金秀敏
1867년 (추정) ~ 1909년 12월 17일
대한민국독립운동가이다.
1907년, 제 3기 의병전쟁인 정미의병때 활동한 의병장으로 경기 동북부 지역 의병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다.
경기도 장단군 북면 솔랑리에서 태어났다. 농민 출신으로 제 2차 동학 농민 운동에 참여하였으며 화약 및 탄약 제조에도 뛰어났다고 한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정미 7조약으로 인한 대한제국 군대 해산 등을 계기로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8월 고향인 장단군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일정한 전과를 올렸다. 또함 13도 창의군과 함께 서울진공작전에 참여 하였지만 총대장 이인영의 갑작스러운 귀향과 참여 부대들의 진군 차질로 작전이 무산되었다.
1908년에는 휘하 의병부대를 이끌고 경기 동북부 지역에서 연합의병을 형성하여 반일항쟁을 전개하였다. 김수민 선생은 일제의 계속된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의병운동을 펼치며 일본군 헌병분파소를 파괴하는 등 전과를 올렸으며 나중에는 허위 등의 임진강 의병연합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장단군, 강화군 등에서 활약하였다. 그러다가 1909년 3월에 벌어진 일제의 대대적인 의병소탕작전에 김수민 선생은 군자금을 모으기 위해 ‘창의 도독부 사령장 겸 군량관’ 명의로 전국에 격문을 보내는 한편 새롭게 의병부대를 재편하였다.
이후 직접 서울에 인력거꾼으로 위장해 서울에 잠입하여 총기 및 군수품을 구입하였고 그러다가 같은 해인 8월에 경기도 고양군 하동면으로 피신하였으나 일제의 밀정의 의해서 선생의 잡입 사실이 탐지되어 정체가 발각된후 경성 필동 헌병대에 부하 2명과 함께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1962년 3월 1일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