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군

 



長湍郡 / Jangdan County
장단군
長湍郡 / Jangdan County / Changdan County
국가
대한민국
북한
폐지 당시 면적
86.28㎢ [1]
광역시도
경기도
황해북도[2]
폐지 당시 행정구역
3면[3]
6면[4]
시간대
UTC+9

1. 개요
2. 역사
2.2. 대한민국의 장단군
2.3. 북한의 장단군
3.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4.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1. 개요


6.25 전쟁 이후 거의 전지역이 민간인 출입통제선에 걸쳐 있게 되어 사실상 행정구역의 기능을 상실하고 분단된 행정구역. 현재는 남북 모두 인근 행정구역으로 통폐합되어 실질 행정구역상 장단군은 남아있지 않다. 명목상 존재하는 장단군에 관한 설명은 아래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문단 참고.

2. 역사



2.1. 남북분단 이전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이곳을 차지한 후 장천성현(長淺城縣)을 설치했다.
신라가 병합한 뒤 신라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정책을 시행하면서 현대까지 이어지는 지명 장단현(長湍縣)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에는 경기도에 소속되었고, 광복 당시에는 10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파주군과 이웃했고, 북쪽으로는 황해도와 이웃했다. 군청은 일제강점기 이후 장단면 도라산리(都羅山里)에 두고 있었다. 특산물로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유명했던 장단 등이 있으며, 장단콩은 남아있는 장단 땅을 가져간 파주시의 특산물로 취급하고 있다. 예성강임진강 사이에 있으므로 개성특별시 문화권에 속하며 개성의 교외지역이었다. 따라서 고려왕릉이나 유적도 많다.

2.2. 대한민국의 장단군



1948년 실질적인 남북 분단과 함께 반토막이 나 38도선 이남의 장단·군내·진동·장남·진서 등 5개 면만으로 이루어졌다. 1953년 휴전협정 이후 남한 땅이 된 지역도 전지역이 민통선에 포함되는 비운을 맞는다.
결국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1954년 강상면, 대강면, 장도면을 연천군에, 1963년 장남면과 군내면을 각각 연천군과 파주군에, 1972년 최종적으로 장단면, 진서면, 진동면을 파주군에 편입함으로서 남한이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장단군은 '사실상' 폐지(행정기능 정지)되었다.
철도역으로는 경의선 , 도라산역[5]등이 지난다.

2.3. 북한의 장단군


북한에서는 1945년 9월 38선 이북의 장단군(강상면·대강면·대남면·소남면·장도면)과 인근 개풍군(영남면·영북면·북면)을 합쳐 황해도 장풍군으로 통합했다. 1952년 12월, 장단군 진서면과 개풍군 봉동면·상도면·중면·흥교면·임한면에 판문군을 분리, 신설했으나 2002년 11월 판문군을 다시 폐지했다.

3. 이북5도위원회 기준 행정구역




[image]
군기
'''장단군'''
長湍郡
Jangdan County
}}}
<colbgcolor=#003764><colcolor=#ffffff> '''군청 소재지'''
장단면 도라산리
'''광역자치단체'''
경기도
'''하위 행정구역'''
10 67
'''면적'''
724㎢
'''인구'''
68,293명[6]
'''인구밀도'''
94.33명/㎢
'''명예읍·면장'''
10석
'''홈페이지'''
이북5도위원회 장단군 소개
이북 5도 체계 하에서는 북한으로 넘어간 2개 면(대남면, 소남면)은 여전히 장단군으로 존치시키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군 자체가 완전히 폐지된 것은 아니며''', 이에 근거하여 여전히 이북5도위원회는 명예 장단군수 및 예하 10면의 명예면장을 계속 임명하고 있다.[7] 한 가지 의아한 점은 완전히 남한령으로 남아있어 실질적인 면장을 두는 것이 가능한 장단면, 군내면, 진동면 등에도 굳이 명예면장을 임명하고 있다는 것.[8] 이곳들은 비록 남한령이지만 민통선 내에 있어 일부 마을을 제외하고는 민간인이 살지 않는 곳으로, 당연히 행정수요도 거의 없기 때문에 면사무소를 따로 두지 않고 장단출장소에서 관할한다.
광복 당시 기준이며, 취소선이 그어진 지역은 현재 완전한 북한 영토인 곳이다.[9]
  • 장단면(長湍面)
    • 군 남단에 있는 면으로 구 명칭은 진남면(津南面)이었다. 경의선 장단역이 부설되고 근대적인 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장단군청도 이 곳으로 이전하고 면 이름도 군명을 따라 1934년 개칭되었다. 동쪽과 남쪽은 임진강으로 둘러싸이고, 서쪽은 사천(砂川)이 흐른다. 장단군의 군청이 도라산리[10]에 있었으나, 시가지가 6.25 전쟁과 함께 완전 파괴되고 비무장지대로 남아있다. 철도(경의선)가 지나가는 유일한 면이며, 장단역 터는 한국령이긴 하지만 휴전선에 매우 가깝게 붙어 있다. 2020년 12월부터 덕산리도 법정리로 인정되었다.
      • 소속 리 : 도라산(都羅山), 동장(東場), 노상(蘆上), 노하(蘆下), , 정동(井洞), 덕산(德山), 거곡(巨谷), 석관(石串), 강정(江井)
  • 군내면(郡內面)
    • 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 조선 중기부터 근대 이전(경의선 장단역 부설 이전)까지 장단도호부→장단군의 중심지였다(읍내리). 서울 방면에서 1번 국도가 진서면을 거쳐 개성시 방면으로 향한다. 현재 파주시 장단출장소가 있어 장단, 군내, 진동, 진서면을 관할한다. 민간인거주지역으로 백연리에 통일촌, 조산리에 대성동마을이 있다. 읍내리에 과거 장단향교가 있었으나 민통선 지역으로 터만 남아 있다.
    • 소속 리 : 읍내(邑內), 점원(點元), 방목(芳木), 정자(亭子), 백련(白蓮), 송산(松山), 조산(造山)
  • 진동면(津東面)
    • 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 대부분이 휴전선 이남에 있다. 하포리에 구암 허준의 묘가 있다. 동파리에 민간인거주지역인 해마루촌이 있다. 해마루촌은 상공에서 보면 높은음자리표 형상으로 조성되었다. #
    • 소속 리 : 하포(下浦), 동파(東波), 서곡(瑞谷), 초(哨), 용산(龍山)
  • 장남면(長南面)
    • 군 동남부에 있는 면으로 고랑포리에 경순왕릉이 있다. 1963년 시행된 '수복지구와동인접지구의행정구역에관한임시조치법'에 의해 현재는 연천군 관할. 유일하게 면의 일부가 민통선 이남에 있는 지역이다. 명승지로 임진강변 고랑포리의 장단석벽(長湍石壁)이 유명하다.
    • 소속 리 : 고랑포(高浪浦), 원당(元堂), 반정(伴程), 판부(板浮), 자작(自作)
  • 진서면(津西面)
    • 군 서쪽에 있는 면으로 개성시1번 국도가 통하는 바 서북 지역으로 가는 교통의 길목이다. 금릉, 어룡, 선적리가 수복되어 있고, 판문점이 위치하는 곳으로 선적리에 있다. 그 중 선적리는 2020년 12월부터 법정리로 인정받았다.
    • 대세현에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지원의 묘가 있고, 경릉리에 고려 문종의 능인 경릉이, 눌목리에 고려 숙종의 능인 영릉이 있으며 면 북쪽 대원리 화장산(560m) 기슭에 화장사(華藏寺)가 있지만 모두 북한 땅.
    • 소속 리 : , , 금릉(金陵), 어룡(魚龍), , , 선적(仙跡),
  • 대강면(大江面)
    • 군 동쪽에 있는 면으로 대강면 우근리 425번지 소재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31호이나, 미수복(북한지역소재)을 이유로 해제되었다. 포춘리가 수복되어 연천군 백학면 관할로 되어 있다.
    • 소속 리 : , , 포춘(浦春), ,
  • 장도면(長道面)
    • 군 중앙에 있는 면으로 조선 전기 장단도호부의 중심지였다(고읍리). 항동리와 매현리가 수복되어 연천군 백학면 관할로 되어 있는데, 장남면이 복원 독립하면서 졸지에 월경지가 되었다.[11] 어차피 비무장지대에 속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관청에서 가 볼 일도 없으니 그냥 둔 것일 듯. 오음리에 조선 중기의 문신인 오음 윤두수의 묘가 있다. 여담으로 휴전선과 38선이 정확히 여기에서 겹친다.
    • , , , , , , , 항동(項洞), 매현(梅峴),
    • 군 북쪽에 있는 면으로 북쪽은 황해도 금천군과 접하고, 동쪽은 (광복 당시 기준) 연천군과 접한다. 1963년 시행된 '수복지구와동인접지구의행정구역에관한임시조치법'에 의해 전 지역이 연천군 왕징면에 편입되었지만, 실제 단 한치의 땅도 수복되지 못한 곳이다. 해당 법률이 전쟁 직후의 혼란한 시기인 1954년에 시행된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여기같이 전혀 수복되지 못한 곳인데 일부 수복이라도 된 양 처리했다든가, 반대로 멀쩡히 대부분 수복되었는데 미수복으로 처리했다든가-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기 때문.
    • 면소재지인 구화리는 일명 구화장(九化場)이라는 장이 서는 지역 상업 중심지였다.
    • 소속 리 : , , , , , ,
    • '남'면인데도 불구하고 군의 북단에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룡산 남쪽에 있는 큰 면이라 해서 대남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12] 이곳과 아래의 소남면도 원래는 개성부 소속이었다가 장단군으로 이관되었다. 수룡산(717m), 고개인 황난령을 사이에 두고 북쪽으로 황해도 금천군과 접한다.
    • 소속 리 : , , , ,
    • 면소재지인 홍화리는 북한 행정구역상 장풍군의 소재지가 되었다. 박연리는 북서쪽으로 나 있는 돌출부로, 대둔산(760m)을 경계로 황해도 금천군과 접한다. 또한 서쪽으로 장단군 영북면과 접한다. 지금리에 고려 말의 학자 이제현의 묘가 있다.
    • 소속 리 : , , , ,

4. 세종실록지리지에서의 설명



[1] 1972년 기준[2] 폐지 당시에는 황해북도 판문군[3] 장단면, 진동면, 진서면(남측)이 1972년 인근 행정구역(경기도 파주시)에 통합[4] 강상면·대강면·대남면·소남면·장도면이 1945년, 진서면(북측)이 2002년 인근 행정구역에 통합[5] 정확한 주소는 경기도 파주시 장단면. [6] 1937년 호구조사[7] 비슷한 케이스로 강원도 김화군이 있다. 단 장단군은 명목상으로만 있고 남북 모두에서 사실상 폐지됐지만, 김화군은 남한만 사실상 폐지했고 북한에는 실제 행정구역이 존재한다.[8] 이 때문에 통일만 되면 다른 행정구역에 편입되었던 지역을 모두 수복하고 분단 이전의 완전체로 부활할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9] 장단, 군내, 진동, 장남면 등은 완전히 또는 대부분 수복 상태이고, 진서, 대강, 장도면 등은 일부(절반 미만) 수복되어 있다.[10] 군청이 도라산리로 이전한 것은 8.15 광복 이후.[11] 장도면 전체를 가지고 따지면 월경지가 아니지만, 실질 한국령으로 남아있는 지역만 가지고 보면 월경지.[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