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약선

 



金若先. 생몰년 미상.
김태서의 장남으로 최우의 사위이자 고려 원종의 장인어른이고 최측근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교정도감의 수장인 교정별감에 앉아 잠깐이나마 후계자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귀주성 전투의 영웅이자 백제부흥운동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한 김경손의 친형이기도 하다.
최우에게는 적실에게서 낳은 아들이 없고 딸만 있었고, 서련방이라는 기생 출신의 여인에게서 낳은 아들들만 있었기에[1], 집권 이후에 천출에게 대를 물려주기 곤란했던 최우의 후계자로 임명되었다. '''조선과 달리 고려시대엔 아들이 없으면 형제나 사위가 대를 잇는 게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1235년에 딸(정순왕후 김씨/이름: 김연)을 고려 고종의 태자, 후에 원종(고려)이 되는 왕식의 태자비로 삼았다. 여러 번 자리를 옮겨 추밀원부사가 되었다.
김약선이 최우의 부중에 있는 여자들을 망월루(望月樓) 모란방(牧丹房)에 모아놓고 음란한 관계를 가져 물의를 빚은 적이 있었다. 이를 시기했던 부인 최씨가 “저는 집을 버리고 비구니가 되겠습니다.” 하자 분노한 최우는 김약선과 관계한 여자들을 섬에 유배시키고 망월루와 모란방을 허물었다.
한편 부인 최씨도 일찍이 집안의 남자 종과 간통했는데, 김약선이 그 사실을 알아채자 다른 사건을 가지고 최우에게 참소하였고, 결국 김약선의 목숨을 빼앗았다. 한참이 지나 최우는 무고인 것을 알고 그 종을 죽이고 자기 딸도 멀리하여 죽을 때까지 보지 않았다. 후에 김약선에게 "장익공"(壯翼公)이라는 시호를 내리고 복권시켰다.
[1] 이 가운데 한 사람이 후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최씨 무신 정권의 세 번째 권력자가 되는 천출 최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