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손

 

'''직위'''
정주분도장군(靜州分道將軍)
대장군(大將軍) 겸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
전라도 지휘사(全羅道 指揮使)
추밀원 지주사(樞密院 知奏事)
추밀원 부사(樞密院 副使)
'''본관'''
전주 김씨(全州金氏)
'''이름'''
김경손(金慶孫)
'''초명'''
김운래(金雲來)
'''아들'''
김혼(金渾)[1], 김신(金信)[2]
'''아버지'''
김태서(金台瑞)
'''형제'''
김약선(金若先)[3]
김기손(金起孫)
'''생몰연도'''
? ∼ 1251년
『고려사』 권103, 열전16 김경손
1. 개요
2. 어린 시절
3. 활약
3.1. 귀주성 전투에서의 활약
3.2.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하다
4. 비극적인 최후
5. 기타
6. 창작물에서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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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여몽전쟁 때 대활약한 고려 시대의 명장이자 만고의 호국영웅. 전대의 유금필, 양규, 척준경이나 또한 무신 정권 시절 대정 김취려, 김윤후, 서북면병마사 겸 상장군 박서나 이후 김방경과 후대의 최영, 이성계 못지 않은 고려의 용장(勇將) 중 한 사람이다.

2. 어린 시절


어릴 때 이름은 김운래(金雲來), 본관은 경주지만 전주 김씨가 된다.[4] 즉 본관은 전주가 된다. 평장사(平章事) 김태서(金台瑞)[5][6] [7] 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가 '''오색의 구름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푸른 옷을 입은 아이 하나를 둘러싸고 품 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그를 가졌다고 한다. 어릴 때 이름인 '운래'(雲來)는 이 태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외모가 몹시 빼어났고 머리 위에 용발톱처럼 튀어나온 뼈가 있었다고 고려사에는 기록되어 있다. 성품은 장중하고 온유했으며 지혜와 용기가 다른 사람보다 빼여났다. 다만 한번 화가 나면 수염과 머리털이 꼿꼿히 섰다고 기록되어 있다.

常處室 必著皂衫如對賓 怒則鬚髮輒竪。

방에 있을 때도 반드시 조삼을 입고 손님을 대하듯 예를 차렸으며 화가 날 때면 수염과 머리털이 꼿꼿이 일어섰다.

고려사》 김경손 열전

처음 '음관(蔭官)'으로 관직을 시작했다. 그의 형인 김약선은 바로 무신정권 집권자 최우의 사위이며, 아들로는 김혼이고, 조카로는 김미, 정순왕후 김씨(김연) 등이 있다.

3. 활약



3.1. 귀주성 전투에서의 활약


高宗十八年 爲靜州分道將軍 蒙古兵渡鴨綠江 屠鐵州 侵及靜州。

고종 18년(1231년) 정주(靜州)[8]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있을 때 몽고군이 압록강을 건너 함신진(咸新鎭)을 1차로 점령하고 철주(鐵州)를 짓밟아 도륙한 뒤 정주, 귀주성 부근까지 침범해 왔다.

고려사

몽고의 1차 침입이 있던 해인 1231년 현재의 평안북도 의주군인 정주에서 분도장군(分道將軍)으로 근무했다. 몽골군의 선발대가 정주까지 침입하자 김경손은 '''12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성문을 나와 힘껏 싸워 몽골 장수 수명을 베며, 몽골군을 일격에 격퇴시켰다. 이때 아무도 안 죽었다.''' 하지만 본대가 침입하자 정주의 모든 사람들이 숨거나 도망가버렸고 김경손이 성에 돌아왔을 때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 '''단 12명의 병사들과 함께 정주성을 탈출, 7일간 몽골군과 조우하지 않고[9] 인근 귀주[10](龜州)로 이동하여 상장군 겸 서북면 병마사 박서와 함께 귀주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외로운 성에서 약한 군졸로 천하의 사납고 날랜 강성한 오랑캐를 막아 동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국가를 산악처럼 우뚝 서게 하였다. 우리 동방에서 성을 잘 지킨 것은 안시성 이후 또 귀주가 있으니, '''박서와 김경손의 공은 작지 않은 것이다.'''"

동사강목

그 덕에 1232년 몽골의 1차 침입(제1차 여몽전쟁)이 끝나고 최씨 일가의 칼바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그의 형 김약선이 최우의 정식 후계자로 공인되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패하고 돌아왔어도 칼바람은 안 맞았을 것이다. 역사학자 임용한이 이 점을 굉장히 높이 평가한다. 그냥 도망쳐 왔어도 호의호식할 수 있는 사람이 목숨을 내걸고 나라를 위해 끝까지 싸웠기 때문에 그렇다.

김경손의 아버지가 말로는 유학자이신데 돈과 아첨을 잘하는 분이셨어요. 보통 이런 집안에서 태어난 분은 대체로 비겁하잖아요? 형은 김약선인데 이 양반도 군인이에요. 최씨 집안의 돌격 대장이었던 사람이어서 최우의 사위가 됩니다. 최우가 김약선을 얼마나 마음에 들어했냐면 자기 아들을 내치고 사위를 후계자로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런 사람의 동생이면 출세는 맡아놓은 당상이잖아요. 그런데 (김경손은) 최전방의 별볼일 없는 작은 성의 장군으로 왔어요. 여기까지야 경력관리 하러 왔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가 내내 이야기 했듯이 12명 데리고 돌격하고, 목숨을 건 전투를 한 거죠.'''우리가 보통 인식하기론 이 정도 빽이 있으면 몸을 사릴 텐데, 정말 헝그리한 장군처럼 싸운 겁니다.'''

임용한. 토크멘터리 전쟁사 고려 vs 몽골 전쟁 中

몽골의 1차 침공이 끝나고 대장군(大將軍) 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임명되었다.

3.2. 이연년 형제의 난을 진압하다


몽골의 2차 침입 당시 몽골군과 대적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3차 칩입 도중 전남 담양의 이연년 형제가 일으킨 반란이 세가 커져 광주까지 넘어가게 되자 조정에선 그를 대장군 겸 전라도지휘사(全羅道指揮使)에 임명해 파견했는데 그때 딸려보낸 군사는 고작 30명뿐이었다.
나주에 도착한 뒤 나주 군현의 사람들을 모아 금성산신(錦城山神)[11]에게 제사 지내고 향리들을 선별해 30명의 별초를 뽑은 후 "너희 고을은 어향(御鄕)[12]이니 다른 고을처럼 적에게 항복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라는 간지폭풍의 말을 남기며 이연년의 난을 진압했다. 백제 부흥 운동을 명분으로 일어난 이연년의 난을 고려 황실의 어향(御鄕)임을 명분으로 삼아 진압한 것이다. 《고려사》에는 이연년이 김경손을 붙잡기 위해 부하들에게 긴 창이나 화살 대신 짧은 무기만 쓰도록 했고 그 틈을 타 김경손이 돌격해 이연년 형제의 목을 베고 대승을 거뒀다고 쓰여있다. 이 공으로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로 승진하였다.
무등일보에서는 이연년의 반란에 대해서 미화하는 글을 적었는데 이것은 고려사에서 충신으로 인정하고 동국통감에서도 충신으로 인정한 만고의 영웅, 김경손 장군을 모욕하는 글이나 다름없다.

역사 기록상 가장 의로웠던 사람이 장보고이다.(삼국사기, 번천문징) 고려 때 (1232년) 담양에서 반란을 일으킨 이연년(李延年)도 같은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

김정호의 향토 인문학 (17) 의향(義鄕)

참고로 민란 자체가 주동자는 물론 가담자까지 극형에 다스려도 할말이 없고 더구나 저건 전시 상황에서 벌인 반란이기 때문에 저런 행동은 그냥 주동자나 가담자는 물론 삼족을 멸할 지경이다. 말 그대로 여러 마을이 불타더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나 정작 김경손은 주동자만 죽였다. 차라리 그냥 김경손을 비롯해 김경손에 가담해 이 반란을 막은 백성들을 지지하는 게 낫다. 전국 각지에서 이미 싸우고 있는 백성들과 군인들 입장에선 비판을 당해도 마땅하다. 이들은 최씨무신정권을 위해서 싸운 것이 아니라 '고려'(高麗)라는 이름을 지키고 또한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렇지만 백제 부흥을 기치로 일어난 이연년의 난, 신라 부흥을 기치로 일어난 이비, 패좌의 난 등 전국 각지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민란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보면 최씨무신정권이 마냥 책임을 모면하긴 힘들다.
항간에는 김경손을 제거하기 위해 주동자가 이연년이 아니라 실은 최씨정권 측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당시 김경손의 형인 김약선이 오늘 내일하는 목숨이었고, 결국 최항이 김경손을 죽이게 되는 원인이 되었던 것을 볼 때 신빙성이 크게 낮진 않다. 당장에 이의민도 경주의 반란을 지원했다는 점에서 봐도 그렇다. 전라도에 반감을 얻지 않은 김준이 이를 뒤에서 조종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즉 저 당시 상황만 봐도 이연년이 적어도 독자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이연년의 난을 마냥 비판할 수도 없는 것이 고려 조정의 무능함이 한몫을 했다. 이연년의 경우는 전쟁 도중 반란을 일으킨 것은 고려 조정에 대한 경고라는 측면에서 그렇게 비판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애초에 강화도로 천도를 간 이후 최씨무신정권 측이 보여준 무책임함과 외정에서는 좋은 성과를 냈으나 정작 최씨무신정권한테 실권을 다 잃어 내정에서 손을 쓸 수 없는 고려 고종의 잘못도 어느 정도 있다. 이는 삼별초의 난 이후 원종의 책임을 무는 것도 당연하다. 원종도 외치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으나 최씨무신정권이 붕괴됨에도 권신들(김준, 임연 등)에게 휘둘려 내정 문제를 엉망으로 처리한 것도 이와 같은 상황을 만들었다.

4. 비극적인 최후


1245년 최우의 숙청이 시작되었을 당시 어떤 사람이 그를 모함했으나 거짓으로 밝혀져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전직되었다.
1249년 김약선의 아들이자 김경손의 조카인 김미(金敉)는 최항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김경손에게 편지(밀지)를 보내 최항을 제거할 것을 상의 및 모의하였으나 자신에게 화가 미칠 것을 우려한 김경손이 최항에게 이를 밀고하여 김미가 삭방출가하고 유배당했다.[13]
하지만 이듬해인 1250년 최우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은 최항이 자신의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숙청을 시작하였고, 그 숙청 명단에 포함된 김경손은 백령도로 귀양을 갔다. 원래 최항은 그 어미가 폐출된 서련방의 기생(창기) 출신으로써 '''천한 신분(천출)'''이었기 때문에, 최우가 애초에 삭발출가시키고 승려로 만들었고 대신 사위인 김약선을 후계자로 정식 공인했으나, 최항은 누이, 그러니까 김약선의 부인과 공모하여 김약선을 모함, 무고해 살해하고 자신이 김준, 송길유, 박송비, 이공주, 최양백 등 가신들의 추대를 받으면서 후계자 자리에 올랐던 것이다. 따라서 김약선의 동생 김경손은 눈에 뾰족한 가시같은 최항의 숙청 대상 1호격이 되었다.
1251년(고종 38년) 자신의 계모였던 대씨가 반란을 일으켰던 외조카 김미의 편을 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에 분노한 최항은 그녀와 김미 일파를 처벌하며 자신의 의붓 형제였던 오승적[14]을 죽이기 위해 바다에 빠뜨려 버린다. 그러나 그는 도방에서 최항을 싫어하는 사람이 발에 돌을 허술하게 묶어 바다에 던져진 덕분에 그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강도(江都)를 빠져나와 금강산으로 도망쳤고 그 후 자신의 어머니에게 밀지를 보내는데, 밀성에 있던 종의 밀고로 죽지않고 살아있다는 사실이 결국 발각되었다. 결국 그를 돌로 꽁꽁 묶고 허술하게 묶은 군인과 함께 다시 강에 빠트려 죽이는데, 그 과정에서 김경손 역시 그의 인척이 된다는 명분으로 최항이 대장군 송길유를 보내 독주(毒酒)를 먹이고 배소의 바닷물에 빠트려 처형시켰다.
그의 죽음을 《고려사》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慶孫累立大功 朝野倚重 遽爲奸賊所害 人皆痛惜。

"김경손은 여러 번 큰 공을 세워 조야에서 그를 의지하고 높이 받들었는데, 갑자기 간악한 도적에 의해 살해되었으므로, 사람들이 모두 가슴 아파하고 슬퍼하였다."


5. 기타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한 위인이나 아이러니하게도 후손들 중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친일반민족행위자김동인, 김동원 형제.
그리고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북한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도 김경손의 직계후손이다.[15]

6. 창작물에서


아닌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창작물에 많이 등장한 사람이다.
  • 몽골 제국이 주역으로 나오는 코에이푸른 늑대와 흰 사슴 시리즈에서 고려의 장수로 등장한다. 3편인 원조비사에서는 시나리오 2에서 고려의 장군으로 등장하는데 전투력과 매력이 B이고 정치력과 지도력이 C. 이 게임에서 이만하면 그럭저럭 쓸 만한 장수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는 어쩐 일인지 고종의 사위로 등장한다.
  • 징기스칸 4에서도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능력치가 정치 43, 전투 67, 지모 49로, 이성계김통정 다음으로 고려 최강의 장군이다. 병과 적성은 보병, 궁병, 기병, 수군 순으로 각각 B, C, C, C. 전투 특기는 돌격만을 소유하고 있다. 사실 전체적으로 능력치가 짠 게임이라서 67 정도면 나쁜 능력치는 아니긴 하지만 귀주성에서의 활약을 생각하면 저평가 되어있는 편. 그리고 이 능력으로는 몽골군을 상대하기는 역부족. 특히 몽골과 일촉 즉발 상태인 PK 시나리오 3에서는 김통정이 등장할 때까지는 김경손으로 버텨야 한다. 다만 이규보를 간첩으로 보내서 금나라의 완안진화상을 영입하거나 몽골 제국은 금의 개봉을 먼저 공략하고 고려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으니 몽골 제국의 유능한 장수들을 유언비어와 배신으로 영입할 수 있다.
  • MBC 드라마 무신(武神)에서 배우 김철기[16]가 높은 호소력과 눈물보이는 모습으로 사실감 있게 연기했다.
  • 만화 살례탑의 중요한 조연으로 등장, 주인공 김문민이 빙의한 고려 시대의 도령 김사겸의 친아버지다.[17] 그야말로 참된 아버지, 인격자이며, 전장에선 무시무시한 지휘능력과 일기토 능력으로 포풍간지를 선보인다. 그러나 그 대가로 개성에 있는 자기 집안이 수도를 점령한 몽골군의 보복으로 풍비박산나는 참사를 당한다. 아내는 목이 잘려 귀주성으로 보내져 김경손을 맨붕시키는 데 쓰이고, 식물인간인 딸은 범해진 후 살해, 아들 김사겸은 생사불명, 김경손 사망 이후 몽골로 끌려가 노예병으로 온갖 고생을 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안 김경손은 격노하여 고려 조정의 항복으로 전쟁이 종결되었음에도 자기 집안을 박살낸 원수이자 몽골군 사령관인 살리타이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결국 패배하여 사망한다. 그의 도검은 살리타이가 전리품으로 챙기는데, 이후 스토리상 엄청 중요한 요소가 된다.[스포일러]

7. 관련 문서



[1] 훗날 재상직에 오르며, 김혼의 아들인 김자흥(金子興)과 김혼의 손자 김상기(金上琦) 또한 재상에 오르며 김경손의 자식들은 대대로 재상직에 오르는 명문가로 이름을 날린다.[2] 김신의 딸 수녕옹주 김씨는 정간왕의 10대손인 중원공 왕원과 결혼한다.[3] 최충헌의 아들인 최우의 최측근이자 무신정권의 차기 후계자로 점찍어 두었던 인물이었으나 아내 최씨가 종과 간통 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박승선과 함께 밤사냥을 나간 위위경 이상로, 장군 강우문 등을 같이 엮어 무고로 죄를 뒤집어 씌우자 장인 최우가 가져다 준 독이 든 술을 먹고 사망했다.[4] 1254년에 김경손의 부친 김태서와 일가들이 전주로 이주하면서 전주를 비로소 관향으로 삼기 때문에 생전에는 전주 김씨가 아니었다. 전주군(全州君) 김태서를 전주 김씨 시조로 보기도 하고, 김태서 부친 완산군(完山君) 김봉모를 전주 김씨 시조로 보기도 한다. 완산군(完山君) 김봉모, 전주군(全州君) 김태서로 대를 이어 전주와 계속 연결된 걸로 보아 전주에 어떤 연고가 있었던 듯하다.[5] 전주 김씨의 시조다. 이 인물에게는 흠좀무한 직계 후손이 있다.[6] 여담으로 전주 김씨의 시조이긴 하지만 고려사의 기록으로 보면 평가가 좋진 않다. 관직을 차지하고 있으나 글을 좋아하지 않았고, 자신의 아들인 김약선이 최우의 총애를 받자 탐욕스러움을 자제하지 못해 다른 이들의 땅을 마구 빼앗아 갔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 이런 가문에서 김경손의 성품이나 전쟁에서 보여준 용맹함이 나왔다는 것이 정말 신기할 따름.[7] 본래 김봉모는 진안 김씨 시조인 김한공의 아들이지만 김태서가 전주 김씨의 시조가 되면서 본관이 바뀐듯 하다[8] 지금의 평안북도 의주군 고성[9] 이때 불타는 정주성 안에서 숨어있다 나와서 배가 고프면 날고기(不火食, 익히지 않은 고기)를 먹어가며 아등바등 버텼다고 전해진다.[10] 바로 귀주대첩이 일어난 곳이다.[11] 나주의 신으로 조선시대에도 신앙이 유지되었다. 나주 금성산(錦城山)에는 국가에서 제사를 주관하는 산신제를 지내는 다섯 곳의 사당이 있었는데, 고려에서 다섯 곳의 사당을 갖춘 곳은 금성산과 고려 수도 개경의 송악산 뿐이었다. 조선시대에도 왕실에서 기은별감을 파견하여, 금성산신(錦城山神)에게 제를 지내기도 하였다.[12] 나주는 고려 제2대 혜종 황제의 어머니인 장화왕후 오씨의 본 고향이고 왕건후백제잔당을 치러가기 전에 머물렀던 행궁처럼 비슷한 본거지였다.[1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미 항목 참조.[14] 최항의 계모인 대씨의 아들이었다. 대씨의 전 남편의 아들이라는 점에서 고려 시대에 재혼은 귀족 간에도 일어나는 일임을 알 수 있다.[15] 전주 김씨는 고려시대에는 나름 고관대작을 배출한 가문이었지만 조선시대에는 과거 급제자를 몇 명 배출하지 못한 한미한 가문이었고 김씨라는 성씨를 가진 사람이 흔한 것이지 전주김씨 자체는 인구가 많지 않은 희성이므로 다른 집안보다는 족보 위조 등의 가능성이 상당히 적은편이라고 볼 수 있다. 굳이 사칭해봐야 아무런 이득이 없는 한미한 집안의 후손을 자처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16] 영웅시대에서는 주인공 천태산의 동생 천태일을, 정도전(드라마)에서 권근을, 징비록(드라마)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맡았다.[17] 또한 김문민의 현재의 아버지의 전생이기도 하다. 다만 좋은 부모상인 김경손 부부와 달리 현재의 부모는 막장 부모다.[스포일러] 주인공의 전생은 김경손의 아들 김사겸이 아니라 김경손의 원수인 살리타이다. 김경손 부부의 환생이 막장 부모인 이유도 아들이 원수의 환생이라 그렇게 대하는 것이다. 만화 표지나 일러스트에서 김사겸이 김경손의 도검을 들고 있지만, 정작 극중에서 이 도검을 김사겸은 든 적이 없고 오로지 살리타이가 사용한다. 살리타이와 김문민이 동일인물이란 복선인 것. 김문민을 과거로 끌어들인 건 바로 김경손 딸의 유령인데, 자기 부모와 살리타이를 현세의 지옥에서 구하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었는가는 암시가 있다. 김경손의 진짜 아들 김사겸은 김문민이 빙의하기 바로 전에 사망했다. 김경손에게 불운하게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어도 딸은 식물인간이고 아들은 요절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