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운(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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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심리학 학사
베를린 자유대학교 대학원 문화심리학 박사
여러가지문제연구소 소장
2012년경에 명지대학교 교수직을 그만 두었다.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 <김정운>.
대한민국심리학 교수. 특유의 입담으로 방송상에 얼굴을 자주 비추는 편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한 편이다. 2011년 KBS에서 조영남, 최원정 아나운서와 함께 예술가와 예술작품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토크 버라이어티 <명작 스캔들>을 진행했고[1], 이외수와 <두 남자의 수상한 쇼 - 야동(野童)>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았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1화만 방영하고 조기종영되었다.
저서로는 <휴테크 성공학>, <노는 만큼 성공한다>, <일본 열광>,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남자의 물건>''', <내 인생 후회되는 한 가지>, <에디톨로지> ,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등이 있다.

시간이 미쳤다 갈수록 정신 없이 빨리간다 왜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자꾸 빨리 가는 걸까? 침략자들의 대답은 아주 단순 명료하다. 기억할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내용이 많으면 그 시기가 길게 느껴지고 전혀 기억할 게 없으면 그 시기가 짧게 느껴진다 '회상 효과'다. 시간을 천천히 흐르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기억할 일들을 자꾸 만들면 된다 평소에 반하게 하던 반복적인 일들과는 다른 것들을 시도하라는 이야기다 인생과 우주 전반에 관한 막연하고 추상적인 계획은 아무 도움 안된다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들>을 시도해야 한다.-‘남자의 물건’ 중에서-

현재는 교수직을 그만 두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2] 일본에서 일본화를 배우고 돌아와 여수에 화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며 살고있다.
독일 유학시절 독일 재통일의 역사적인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뭔 이야기인고 하니, 유학시절 생활비를 벌기 위해 서베를린 동독 난민 수용소 수위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자 동베를린 시민들이 난민 수용소에 갇힌 가족들을 보러 오느라 몰려들었고 김정운 교수는 동베를린 시민들에게 열쇠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대치했다고. 그리고 이런 역사적인(!) 사건이 자신의 전공 공부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원래 '비판심리학'을 전공했는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문화심리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에가서 미술을 일본 교토 사가예술대에서 일본화를 전공 했다고 한다. 2016년 귀국 후 여수에 살며 그림을 그린다고 한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679489 [ebs[* https://www.ebs.co.kr/tv/show?prodId=7745&lectId=10272875]]]
'''에디톨로지'''(editology)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안하고 동명의 책도 써서 문헌정보학에서도 관심갖고 파고드는 소재가 되었다. 특히 "내 서재는 에디톨로지의 공간" 이라는 표현도 즐겨 사용한다. 이름을 이렇게 지어놔서 뭔가 엄청 있어보이지만 사실은 나무위키에 접속하는 우리 모두가 위키에서 늘상 하는 게 에디톨로지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접하고 이거 재밌다, 흥미롭다 싶은 것들만 쏙쏙 가져와서 자신만의 맥락을 만들어 재해석하는 편집과정이 바로 에디톨로지. 2015년 1월 1일부터 3일까지, KBS 2TV의 '오늘, 미래를 만나다' 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에디톨로지의 내용과 관련된 특강을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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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에서 언급하길 원래는 딱딱하고 말도 재미없게 하던 교수였다고 한다. 복장이나 외모도 지금 같지 않았다고... 머리숱이 적어지면서 아내의 추천으로 한번 파마를 해봤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프란츠 슈베르트의 모습이 보여서 내친김에 슈베르트처럼 원형 안경을 착용했고 복장도 검정 양복이 아닌 캐쥬얼한 정장으로 바꾸면서 지금의 이미지가 되었다. 덩달아 성격도 바뀌고 강의 방식도 바뀌어서 인기 강사가 되었다.
[1] 훗날 '에디톨로지'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시청률 때문에 종영됐다고 한다.[2] 조선일보에 연재하는 독후감 시리즈를 위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다시 읽다가 '자유'에 빠져서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냈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