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두희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남두희'''
'''南斗熙'''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남두희(南斗凞)
'''자'''
극중(極中)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850년 1월 2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거성동
(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2]
'''사망'''
1924년 12월 14일[3]
경상북도 영주군 순흥면 내죽리
'''묘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상훈'''
건국포장
1. 개요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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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남승하는 그의 5촌 조카, 즉 종질(從姪)이다.

2. 생애


남두희는 1850년 1월 29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거성동(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거성리)에서 아버지 남태치(南泰𣜫)와 어머니 선산 김씨 김병모(金秉模)의 딸 사이의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896년 1월 경북 청송군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성지에게 가담해 우익장에 선임되었다. 이후 심성지 의진에서 종군하며 여러 전투에 참가했지만 그 해 2월 아관파천 직후에 고종의 해산 조칙이 내려져서 의병부대가 해산되었고, 이에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곧 경상북도 순흥군 내죽면(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로 이주하여 은거하였다.#
1912년 2월에는 순흥공립보통학교 학무위원을 지내기도 한 그는 1924년 12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남두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1] 송정공파(松亭公派)-청송 문중 13대손 희(熙) 항렬. 영양 남씨 21세.[2] 인근의 도평리·개일리·월매리와 함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석광·남승철·남승하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남씨대동보 2권 대광공후 송정공파(영양 본관) 198쪽에는 1927년 8월 26일에 별세했다고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