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병구
[clearfix]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병구는 1888년 3월 4일 경상도 영해도호부 묘곡면 칠성동(현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서 이매당(二梅堂) 남신명(南愼明)의 6대손인 아버지 남조혁(南朝赫)과 어머니 안동 권씨 권석진(權錫進)의 딸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만주로 이주했고, 1924년 중국 흥경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3] 에서 대한통의부 군사부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1926년에는 반석현(盤石縣)[4] 에 근거를 둔 한족노동당(韓族勞動黨)에서 김응섭(金應燮), 이광민, 김원식(金元植), 박동초(朴東初), 김상덕(金相德) 등과 함께 중앙집행위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봉천성 해룡현(海龍縣)[5] 에 거주하며 활동하다가, 1927년 5월 14일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철령(鐵嶺)[6] 영사관으로 압송되었으며, 같은 해 8월 29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다만, 1993년 간행된 《남씨대동보(南氏大同譜)》 2권 825쪽에 의하면, 1933년 7월에 별세했으며, 남병구와 그의 부인 야성 정씨(野城鄭氏) 정종한(鄭宗漢)의 딸은 서간도에 함께 매장되어 있다고 기재되어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남병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