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통의부
1. 개요
'''大韓統義府'''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활동했던 무장독립운동단체. 통의부라고도 일컫는다.
2. 상세
2.1. 결성 이전
1920년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승전하였으나, 일본군은 간도 참변을 일으켜 만주에 사는 한인들을 학살하였다. 이에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밀산에 집결하여 여러 독립군 세력을 통합해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하였다. 하지만 대한독립군단은 1921년 소련의 자유시에서 일어난 자유시 참변으로 와해되어, 대일 독립투쟁은 한동안 위축되었다.
2.2. 대한통군부 결성과 개편
1922년 남만주 지역의 독립군들은 통합된 독립군 조직의 필요성을 느끼고 봉천성 환인현에서 분산적으로 활동하던 독립군들을 통합하여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결성하였다. 대한통군부는 효과적인 대일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동시에 만주 한인사회의 자치행정을 담당하는 행정부 기능도 맡고 있었다.
이후 대한통군부는 통군부보다 더 큰 독립운동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기존 통군부를 조직할 때 참여하지 않았던 다른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들과 교섭하여 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대한통군부를 대한통의부로 개편시킨다.
2.3. 대한통의부의 활동과 해체
대한통의부는 대한통군부를 계승하여 대일무장투쟁을 전개하며 만주 한인사회의 자치를 담당하는 민정기능을 그대로 갖고 있었다. 이외에도 통의부는 교육계몽활동을 위해 교육기관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통의부는 남만주에 있던 다양한 독립운동단체가 모여 조직된 만큼 지도이념에서 오는 차이와 조직 상의 이견이 있었다. 통의부에 있던 독립운동가들 중 1명인 전덕원은 구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유인석의 문인으로 대한제국 황실 복원을 주장하는 복벽파였는데, 통군부를 통의부로 개편하면서 공화주의 성향의 인물들이 들어와, 복벽파와 공화파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였다. 결국 전덕원을 포함한 몇몇 독립운동가들은 1923년에 통의부를 이탈하여 별도로 의군부(義軍府)를 결성하였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독립운동가 사이에서는 공화주의 사상이 대세를 이루었고, 또 사회주의 사상도 들어오면서 복벽파가 중심이 된 의군부는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의군부와 통의부의 대립 속에 일부 세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접촉하여 대한민국 임시정부 산하의 육군주만참의부로 편입되었다. 의군부와 통의부의 계속된 대립으로 한인에 대한 행정과 무장투쟁 역량이 약화되면서 통의부는 결국 정의부와 참의부로 분열되어 통의부는 사실상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