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마(오페라)
Norma (이탈리아어 표기)
빈첸조 벨리니가 작곡한 벨칸토 오페라로 1831년 초연된 작품이다. 초연 후 한동안 잊혀졌으나 마리아 칼라스의 활약으로 다시 빛을 본 작품 중 하나다. 갈리아 지방의 드루이드 종파 대사제 노르마와 사제 아달지사, 로마 총독 폴리오네 간의 애증과 우정, 삼각관계 등을 다룬다. 모티브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에 있었을 때 쓴 갈리아 전기.
벨리니는 당시 같은 회사 소속이었던 라 스칼라 극장과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오페라를 의뢰받았다. 이에 따라 벨리니는 노르마와 텐다의 베아트리체를 작곡해 1년 간격으로 올렸다.[1] 바로 전해에 올렸던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에서 벨리니의 여자친구인 주티타 파스타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에 벨리니 신작 오페라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항상 그랬듯이 벨리니는 펠리체 로마니와 대본 작업에 들어갔고 알렉상드르 수메의 극을 기초로 하여 노르마 대본을 완성하였고 주연인 노르마 역에 주티타 파스타, 아달지사 역에 소프라노 줄리아 그리시, 폴리오네 역에 도메니코 돈첼리를 기용했고 11월 말에는 오페라가 완성되었다.
12월 5일의 리허설에서는 주디타 파스타가 1막을 부르기 힘들어했고 결국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를 비롯한 몇 아리아는 음을 낮춰야 했다. 게다가 초연일 오전에는 2막 리허설을 했는데 이후에 가수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작곡가 본인도 첫날 공연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막은 꽤나 호평했던 것으로 보인다.) 벨리니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초연 때의 실패는 외부적 요인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벨리니가 라이벌로 생각한 조반니 파치니의 오페라가 벨리니의 공연수를 압도하고 있었는데 벨리니의 오페라 '해적(Il Pirata)' 이후 벨리니의 오페라 공연 수가 파치니의 그것을 넘어섰고, 파치니의 후원자였던 줄리아 사모일로프 백작부인이 공연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831년의 공연 이후 거의 즉각적으로 대호평을 받았고 그 시즌에만 34번의 공연을 기록했고 유럽 전역에서도 공연했다. 바그너도 1837년에 이 오페라를 지휘하고 음악과 극본에 대해 호평했다.
19세기 말까지 200번이 넘는 공연횟수를 자랑했지만 이후 베리스모 오페라의 득세 이후 점차 공연이 되지 않았다.
칼라스하면 노르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이 높다. 실제로 테발디와 경쟁하던 칼라스를 테발디를 제치고 최고의 디바로 오르게 한 오페라가 노르마다. 칼라스는 당시까지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처럼 소프라노의 기교를 보여주는 오페라로 활용되던 노르마를 완전히 다르게 불렀다. 곡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극적인 연기를 바탕으로 노르마 해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칼라스의 열연으로 노르마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조안 서덜랜드, 몽세라 카바예 같은 가수들이 노르마 역을 시도하는 바탕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벨리니의 작품 중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어려운 기교 때문이다. 2막의 마지막 트리오 부분에서 갑자기 저음에서 C6음을 내야 하는 부분이나 하이라이트 끝에서 내는 D6도 있다. 하물며 칼라스 이전 그 동안은 투란도트를 위시한 푸치니 오페라나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 같은 베르디의 오페라,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등 기성 유명오페라가 자주 상연되었고 그래서 기교가 어려운 오페라는 등한시되었다. 혹자는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같이 스타카토가 심한 오페라가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고음을 길게 내거나 소리의 강약이 있는 오페라 아리아가 많은 오페라가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려운 기교 때문에 공연 안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작품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악적인 기교를 제외하고 음악적으로 그다지 인상 깊은 작품이라 하기는 어렵다. 성악아무리 기교가 어려워도 매력이 있는 곡은 자주 공연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보다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갈리아에 사는 드루이드 족은 로마의 침략을 받고있었다. 신성한 숲에 모인 용사들에게 지도자인 오로베소가 대사제인 노르마의 예언에 따라 모두 로마에 맞서라 한다. 하지만 로마에서 갈리아 총독 폴리오네가 오고, 노르마는 적국의 남자인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는다.
하지만 이후 폴리오네는 노르마를 배반하고 그 몰래 사제 아달지사와 사귀며 로마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한편 드루이드족 사람들이 로마와의 전쟁을 원할 때 폴리오네를 사랑하게 된 노르마는 로마가 머지 않아 서서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을 진정시킨다. 노르마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틀리면 로마군을 공격하자, 폴리오네를 먼저 공격하자고 한다.
아달지사는 사제의 신분에 허락되지 않은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데, 폴리오네가 로마에 같이 가자고 하자 노르마에게 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노르마는 아달지사의 연인이 폴리오네인 것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아달지사의 심정을 이해하여 그를 사제의 신분에서 풀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아달지사의 남자가 폴리오네라는것을 알게 되고 크게 분노하는데, 폴리오네는 변명을 한다.
진실을 알게 된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배반할 수 없다며 폴리오네를 거절하고, 노르마는 폴리오네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하려 하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아달지사를 불러 자신이 죽은 후에 남을 아이들을 부탁한다.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위해 폴리오네의 마음을 돌리도록 설득하겠다 하고, 두 사람은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2중창을 부른다.
숲에서 용사들과 사람들이 모여 로마와의 전쟁을 논의하고 있는데 노르마는 초조하게 아달지사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 시녀 클로틸다가 와서 폴리오네가 아달지사의 간청을 거절했다는 말을 듣자 '''분노'''하여 로마와 전쟁을 선포한다.
그 와중에 사제들이 있는 곳에 숨어있다가 잡힌 폴리오네가 노르마 앞에 끌려오고 사람들이 노르마에게 그를 죽이라고 외치나 노르마는 칼을 들고 고민하다가 그를 심문하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자 노르마가 폴리오네에게 혼자 로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달지사와 같이 화형당할것이라고 충고한다. 폴리오네는 아달지사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자신만 죽겠다고 간청한다.
노르마가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은 후에 나라와 신을 배반한 사제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사제가 누구냐고 묻고 폴리오네는 아달지사의 이름이 불릴까 초조해하지만 노르마는 자신의 이름을 대며 '''그것은 바로 나다!'''라고 말하고 아버지 오르베소에게 아이들을 맡긴 후 용서를 빈다. 이에 노르마의 용기와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폴리오네는 그에게 용서를 빌며 같이 불길로 뛰어든다.
칼라스는 노르마에서도 많은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스튜디오 음반 2종, 실황 음반 4종을 남기고 있다. 그 중 1954년과 1960년에 녹음한 스튜디오 음반과 1955에 남긴 두 실황 음반이 좋은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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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오 세라핀이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폴리오네 역에 마리오 필리페스키, 아달지사 역에 에베 스티냐니가 기용되었다. 칼라스의 목소리와 연기가 절정에 있을 때 녹음한 음반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필레페스키의 폴리오네는 무난하거나 좀 벅차다는 평이 있고 스티냐니는 목소리가 배역과 안 어울리게 나이든 거 같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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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960년에 녹음한 음반은 칼라스와 프랑코 코렐리,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노래와 연기가 조화를 잘 이루고, 노르마라는 오페라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전성기를 살짝 지난 시점이지만 음악적 해석에서는 모노반보다 더 성숙해졌다는 평이 많으며 크리스타 루드비히는 독일 메조 소프라노임에도 당시 이탈리아 메조들 못지 않게 절창을 들려주고 있으며 2막 2장의 노르마와 아달지사의 이중창은 이 음반 최대 하일라이트로 꼽히고 있다. 코렐리 역시 절창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며 당시 코렐리에게 큰 혹평 중 하나였던 과도하게 우는듯한 창법이 폴리오네라는 캐릭터에 잘 들어맞으며 그렇다고 찌질하지 않은, 델 모나코와는 또다른 호남적 느낌의 폴리오네라고 평가받는다. 노르마를 입문할 때 많이 추천되는 녹음으로 스테레오로 돼있으며 음질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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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의 로마 국립 가극장 실황 녹음은 칼라스 노르마 중 최고로 손꼽히기도 하는 음반이다. 칼라스의 목소리와 연기는 최고 수준이고 스튜디오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초절기교와 고음, 연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직선적으로 뻗어나가는 목소리는 정말 폴리오네가 찌질해보이지 않고 호남 같이 노래했다는 평을 받는다. 스티냐니의 노래는 스튜디오 녹음 때보단 상태가 좋으나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라 아달지사가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들린다는 평이 있다. 세라핀의 지휘도 호평.
1955년에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남긴 녹음도 있는데 지휘가 안토니노 보토라는 것만 제외하면 별 다른 점이 없다. 대신, 시미오나토가 맡은 아달지사는 노르마역의 칼라스와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오르베소역의 쟈카리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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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노르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몽셰라 카바예의 음반이다. 카바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을 휘어잡고, 데뷔 초기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폴리오네로 등장하여 서정적인 목소리를 뽐내고 피오렌차 코소토가 아달지사 역을 맡았다. 코소토는 콘트랄토라기보다 메소소프라노~소프라노 사이의 소리를 낼 때가 있고 목소리가 낮아 거의 노르마에 준하는 중압감을 보여준다. 카를로 펠리체 칠라리오의 지휘는 나쁘지 않고 평이하다는 평이다.
조안 서덜랜드가 남긴 두 스튜디오 녹음과 1970년 메트 실황연주 역시 좋은 평을 받고 있으며, 레나타 스코토가 소니에서 녹음한 노르마 전곡반도 괜찮은 평을 받는 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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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예는 영상물도 남겼는데, 노르마의 전곡으로는 최초의 영상이다. 노르마 영상 중 가장 많이 추천되는 영상 중 하나이다. 존 비커스가 폴리오네를 맡아 호남 같은 면모를 보인다. 다만 아달지사 역의 조세핀 비제이가 컨디션 난조로 평소 실력을 완전히는 발휘하지 못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너무 평범하고 화면이 어두우면서 화질은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화질을 고려한다면 노르마 입문으로는 추천하기는 어렵고, 근래에 나온 세 실황영상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빈첸조 벨리니가 작곡한 벨칸토 오페라로 1831년 초연된 작품이다. 초연 후 한동안 잊혀졌으나 마리아 칼라스의 활약으로 다시 빛을 본 작품 중 하나다. 갈리아 지방의 드루이드 종파 대사제 노르마와 사제 아달지사, 로마 총독 폴리오네 간의 애증과 우정, 삼각관계 등을 다룬다. 모티브는 카이사르가 갈리아 지방에 있었을 때 쓴 갈리아 전기.
1. 작곡
벨리니는 당시 같은 회사 소속이었던 라 스칼라 극장과 라 페니체 극장에서 오페라를 의뢰받았다. 이에 따라 벨리니는 노르마와 텐다의 베아트리체를 작곡해 1년 간격으로 올렸다.[1] 바로 전해에 올렸던 벨리니의 몽유병의 여인에서 벨리니의 여자친구인 주티타 파스타는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기 때문에 벨리니 신작 오페라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항상 그랬듯이 벨리니는 펠리체 로마니와 대본 작업에 들어갔고 알렉상드르 수메의 극을 기초로 하여 노르마 대본을 완성하였고 주연인 노르마 역에 주티타 파스타, 아달지사 역에 소프라노 줄리아 그리시, 폴리오네 역에 도메니코 돈첼리를 기용했고 11월 말에는 오페라가 완성되었다.
2. 초연
12월 5일의 리허설에서는 주디타 파스타가 1막을 부르기 힘들어했고 결국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를 비롯한 몇 아리아는 음을 낮춰야 했다. 게다가 초연일 오전에는 2막 리허설을 했는데 이후에 가수들의 피로가 누적되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서 작곡가 본인도 첫날 공연에는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2막은 꽤나 호평했던 것으로 보인다.) 벨리니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초연 때의 실패는 외부적 요인도 있다고 할 수 있다. 벨리니가 라이벌로 생각한 조반니 파치니의 오페라가 벨리니의 공연수를 압도하고 있었는데 벨리니의 오페라 '해적(Il Pirata)' 이후 벨리니의 오페라 공연 수가 파치니의 그것을 넘어섰고, 파치니의 후원자였던 줄리아 사모일로프 백작부인이 공연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1831년의 공연 이후 거의 즉각적으로 대호평을 받았고 그 시즌에만 34번의 공연을 기록했고 유럽 전역에서도 공연했다. 바그너도 1837년에 이 오페라를 지휘하고 음악과 극본에 대해 호평했다.
19세기 말까지 200번이 넘는 공연횟수를 자랑했지만 이후 베리스모 오페라의 득세 이후 점차 공연이 되지 않았다.
3. 마리아 칼라스와 노르마
칼라스하면 노르마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평이 높다. 실제로 테발디와 경쟁하던 칼라스를 테발디를 제치고 최고의 디바로 오르게 한 오페라가 노르마다. 칼라스는 당시까지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처럼 소프라노의 기교를 보여주는 오페라로 활용되던 노르마를 완전히 다르게 불렀다. 곡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극적인 연기를 바탕으로 노르마 해석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것이다. 칼라스의 열연으로 노르마에 대해서도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조안 서덜랜드, 몽세라 카바예 같은 가수들이 노르마 역을 시도하는 바탕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벨리니의 작품 중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4. 자주 공연되지 않은 이유
어려운 기교 때문이다. 2막의 마지막 트리오 부분에서 갑자기 저음에서 C6음을 내야 하는 부분이나 하이라이트 끝에서 내는 D6도 있다. 하물며 칼라스 이전 그 동안은 투란도트를 위시한 푸치니 오페라나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 같은 베르디의 오페라, 마술피리나 피가로의 결혼 같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등 기성 유명오페라가 자주 상연되었고 그래서 기교가 어려운 오페라는 등한시되었다. 혹자는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같이 스타카토가 심한 오페라가 어렵다 하지만 오히려 고음을 길게 내거나 소리의 강약이 있는 오페라 아리아가 많은 오페라가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어려운 기교 때문에 공연 안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작품 자체의 매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성악적인 기교를 제외하고 음악적으로 그다지 인상 깊은 작품이라 하기는 어렵다. 성악아무리 기교가 어려워도 매력이 있는 곡은 자주 공연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보다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는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5. 등장인물
- 노르마 : 드루이드교의 대사제지만 로마 총독 폴리오네와 금지된 사랑을 나눠 아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몰래 키운다. (소프라노)
- 아달지사 : 드루이드교의 사제. 폴리오네가 노르마를 배신하고 아달지사를 꾀어낸다. (소프라노)[2]
- 폴리오네 : 갈리아 지방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3] 노르마와 사귀고 두 명의 아이까지 낳게 했지만 나중엔 아달지사를 노리고 그를 로마로 데려가려는 생각을 한다. (테너)
- 오르베소 : 드루이드교의 남성 제사장이자 노르마의 아버지. 작중에선 다른 드루이드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노르마가 로마 총독의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이며 로마에 대한 반발심을 살짝 드러낸다. (베이스)
- 클로틸데 : 노르마의 시녀. (소프라노)
- 플라비오 : 폴리오네의 동료. 1막에서 폴리오네한테 충고해준 후에는 곧바로 공기화한다.(...) (테너)
6. 줄거리
갈리아에 사는 드루이드 족은 로마의 침략을 받고있었다. 신성한 숲에 모인 용사들에게 지도자인 오로베소가 대사제인 노르마의 예언에 따라 모두 로마에 맞서라 한다. 하지만 로마에서 갈리아 총독 폴리오네가 오고, 노르마는 적국의 남자인 폴리오네와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는다.
하지만 이후 폴리오네는 노르마를 배반하고 그 몰래 사제 아달지사와 사귀며 로마로 돌아갈 생각을 한다.
한편 드루이드족 사람들이 로마와의 전쟁을 원할 때 폴리오네를 사랑하게 된 노르마는 로마가 머지 않아 서서히 멸망하게 될 것이라며 그들을 진정시킨다. 노르마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말이 틀리면 로마군을 공격하자, 폴리오네를 먼저 공격하자고 한다.
아달지사는 사제의 신분에 허락되지 않은 사랑 때문에 고민하는데, 폴리오네가 로마에 같이 가자고 하자 노르마에게 가 남자와 사랑에 빠졌음을 고백한다.
노르마는 아달지사의 연인이 폴리오네인 것을 모르고, 사랑에 빠진 아달지사의 심정을 이해하여 그를 사제의 신분에서 풀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아달지사의 남자가 폴리오네라는것을 알게 되고 크게 분노하는데, 폴리오네는 변명을 한다.
진실을 알게 된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배반할 수 없다며 폴리오네를 거절하고, 노르마는 폴리오네에 대한 분노로 자신의 아이들에게 분풀이를 하려 하나 차마 그러지 못하고 아달지사를 불러 자신이 죽은 후에 남을 아이들을 부탁한다.
아달지사는 노르마를 위해 폴리오네의 마음을 돌리도록 설득하겠다 하고, 두 사람은 영원한 우정을 약속하는 2중창을 부른다.
숲에서 용사들과 사람들이 모여 로마와의 전쟁을 논의하고 있는데 노르마는 초조하게 아달지사를 기다린다. 그러던 중 시녀 클로틸다가 와서 폴리오네가 아달지사의 간청을 거절했다는 말을 듣자 '''분노'''하여 로마와 전쟁을 선포한다.
그 와중에 사제들이 있는 곳에 숨어있다가 잡힌 폴리오네가 노르마 앞에 끌려오고 사람들이 노르마에게 그를 죽이라고 외치나 노르마는 칼을 들고 고민하다가 그를 심문하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자 노르마가 폴리오네에게 혼자 로마로 돌아가지 않으면 아달지사와 같이 화형당할것이라고 충고한다. 폴리오네는 아달지사만이라도 살려달라며 자신만 죽겠다고 간청한다.
노르마가 사람들을 다시 불러모은 후에 나라와 신을 배반한 사제를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그 사제가 누구냐고 묻고 폴리오네는 아달지사의 이름이 불릴까 초조해하지만 노르마는 자신의 이름을 대며 '''그것은 바로 나다!'''라고 말하고 아버지 오르베소에게 아이들을 맡긴 후 용서를 빈다. 이에 노르마의 용기와 진실한 사랑에 감동한 폴리오네는 그에게 용서를 빌며 같이 불길로 뛰어든다.
7. 음반과 영상물
칼라스는 노르마에서도 많은 녹음을 남기고 있는데 스튜디오 음반 2종, 실황 음반 4종을 남기고 있다. 그 중 1954년과 1960년에 녹음한 스튜디오 음반과 1955에 남긴 두 실황 음반이 좋은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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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리오 세라핀이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를 지휘하였고, 폴리오네 역에 마리오 필리페스키, 아달지사 역에 에베 스티냐니가 기용되었다. 칼라스의 목소리와 연기가 절정에 있을 때 녹음한 음반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필레페스키의 폴리오네는 무난하거나 좀 벅차다는 평이 있고 스티냐니는 목소리가 배역과 안 어울리게 나이든 거 같다는 평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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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960년에 녹음한 음반은 칼라스와 프랑코 코렐리, 크리스타 루트비히의 노래와 연기가 조화를 잘 이루고, 노르마라는 오페라를 가장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는다. 칼라스의 목소리는 전성기를 살짝 지난 시점이지만 음악적 해석에서는 모노반보다 더 성숙해졌다는 평이 많으며 크리스타 루드비히는 독일 메조 소프라노임에도 당시 이탈리아 메조들 못지 않게 절창을 들려주고 있으며 2막 2장의 노르마와 아달지사의 이중창은 이 음반 최대 하일라이트로 꼽히고 있다. 코렐리 역시 절창의 노래를 들려주고 있으며 당시 코렐리에게 큰 혹평 중 하나였던 과도하게 우는듯한 창법이 폴리오네라는 캐릭터에 잘 들어맞으며 그렇다고 찌질하지 않은, 델 모나코와는 또다른 호남적 느낌의 폴리오네라고 평가받는다. 노르마를 입문할 때 많이 추천되는 녹음으로 스테레오로 돼있으며 음질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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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의 로마 국립 가극장 실황 녹음은 칼라스 노르마 중 최고로 손꼽히기도 하는 음반이다. 칼라스의 목소리와 연기는 최고 수준이고 스튜디오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는 초절기교와 고음, 연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직선적으로 뻗어나가는 목소리는 정말 폴리오네가 찌질해보이지 않고 호남 같이 노래했다는 평을 받는다. 스티냐니의 노래는 스튜디오 녹음 때보단 상태가 좋으나 이미 전성기를 지난 시점이라 아달지사가 더 나이가 많은 것처럼 들린다는 평이 있다. 세라핀의 지휘도 호평.
1955년에는 라 스칼라 극장에서 남긴 녹음도 있는데 지휘가 안토니노 보토라는 것만 제외하면 별 다른 점이 없다. 대신, 시미오나토가 맡은 아달지사는 노르마역의 칼라스와 좋은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오르베소역의 쟈카리아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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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노르마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몽셰라 카바예의 음반이다. 카바예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극을 휘어잡고, 데뷔 초기의 플라시도 도밍고가 폴리오네로 등장하여 서정적인 목소리를 뽐내고 피오렌차 코소토가 아달지사 역을 맡았다. 코소토는 콘트랄토라기보다 메소소프라노~소프라노 사이의 소리를 낼 때가 있고 목소리가 낮아 거의 노르마에 준하는 중압감을 보여준다. 카를로 펠리체 칠라리오의 지휘는 나쁘지 않고 평이하다는 평이다.
조안 서덜랜드가 남긴 두 스튜디오 녹음과 1970년 메트 실황연주 역시 좋은 평을 받고 있으며, 레나타 스코토가 소니에서 녹음한 노르마 전곡반도 괜찮은 평을 받는 연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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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예는 영상물도 남겼는데, 노르마의 전곡으로는 최초의 영상이다. 노르마 영상 중 가장 많이 추천되는 영상 중 하나이다. 존 비커스가 폴리오네를 맡아 호남 같은 면모를 보인다. 다만 아달지사 역의 조세핀 비제이가 컨디션 난조로 평소 실력을 완전히는 발휘하지 못하고 오케스트라, 지휘자는 너무 평범하고 화면이 어두우면서 화질은 좋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화질을 고려한다면 노르마 입문으로는 추천하기는 어렵고, 근래에 나온 세 실황영상으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1] 노르마를 작곡하고 슬럼프를 겪은 벨리니는 텐다의 베아트리체 작곡에 그다지 열의가 없는 상태라 연인인 소프라노 주티타 파스타의 응원에도 불구하고 초연 때는 노르마의 아류라는 평까지 들었다.[2] 일반적으로 아달지사는 메조 소프라노가 맡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원래는 소프라노가 아달지사를 맡았었다. 이 점 때문에 음반이나 실황에서 아달지사역을 소프라노가 맡는 경우가 가끔 있다. 데카의 조안 서덜랜드,루치아노 파바로티,몽셰라 카바예 노르마 음반과 체칠리아 바르톨리, 조수미, 존 오스본이 맡은 음반이 그 대표적인 예. 콘서트 실황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는데 2013년에 마리엘라 데비아가 노르마, 카르멜라 레미죠가 아달지사를 맡은 적도 있다. 과거 실황에서는 메조 소프라노 그레이스 범브리가 노르마를, 소프라노 레일라 쿠베를리가 아달지사를 맡았던 기록도 있다. 이 역시 실황음반으로 발매되었다.[3] 실제 역사에서도 비슷한 인물인 폴리오라고 하는 인물이 있었는데 노르마의 배경이 된 시기에 프랑스에 잠시 있다가 이탈리아로 돌아간 뒤 문학작품을 많이 남기고 영사를 하다가 81세에 사망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