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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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성악가이자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1962년 11월 22일 경상남도 창원시 동읍 출생. 프로필상에는 서울특별시라 기재되어 있으나 창원에 있는 성산아트홀 개관 행사에서 자신이 직접 밝혔다. 본명은 조수경이였지만 외국어로 'ㅕ' 발음이 힘들어서 조수미로 개명했다. 처음엔 주변으로부터 해외 활동이 많을 것을 고려해 외국식 이름을 지을 것을 권유받았지만, 조수미 본인이 외국식 이름을 짓지 않겠다고 했다.
2006년 파리 독창회의 마지막 앵콜 곡인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2] 1절은 원곡 그대로의 가사로 불렀으며, 2절에서는 라틴어로 노래했다.
2. 성악 교육과 열애
어렸을 적 글을 배우기 전에 피아노부터 쳤을 정도로 음악 신동이었다. 부모는 조수미에게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켰다. 부모는 조수미가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할머니가 조수미를 보며 "저렇게 아이가 영특하면 단명한다" 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부모는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뭐든지 두드리라. 두드리면 나쁜 기운이 빠져나갈 것이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래서 피아노를 두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한 부모는 셋방살이를 하면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고가였던 피아노를 구입했다. 4살부터 어머니와 함께 피아노를 치기 시작한 조수미는 이유도 모르고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쉬지도 않고 하루에 8시간씩 피아노 연습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는 노래 신동 소리를 들었는데 조수미를 가르친 선생마다 모두 부모님에게 "수경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노래를 시키셔야 합니다" 하고 당부했다고 한다.
서울음대 성악과 역대 최고의 점수로 수석 합격했다(81학번). 그러나 대학교 2학년 때 같은 학교 경영학과에 재학중이던 동갑내기 남학생 K와 열애에 빠지면서 조수미의 학업 생활은 모범생에서 날라리로 180도 달라졌다. 당시 K에게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고 조수미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조수미는 K에게 "나인지 그 여자친구인지 담판을 지으라"고 과감하게 대시했고, 결국 K는 자신의 여친과 헤어지고 조수미와 사귀었다. 그 후 다방, 영화관, 디스코클럽, 여행 등 어느 곳에서든 1년 24시간 내내 K와 함께 하면서 수업은 물론 시험까지 펑크 내는 바람에 학점은 선동열 방어율로, 석차는 1등에서 꼴찌로 전락하고 말았다.
당시 이 정도로 깊은 사이였다면 K와 동거 생활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질문을 받았을 때, 조수미는 "상상에 맡기겠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조수미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에는 K가 원한다면 성악가의 길도 포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오로지 K와의 결혼에만 마음이 전부 가 있었고, 심지어 K와 함께 태어날 아기 이름까지도 미리 지었을 정도였다니 말 다했다. 게다가 당시에는 전두환 정권의 학생통제정책 일환으로 대학 입학정원을 늘린 뒤 성적에 따라서 졸업정원을 조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시행 중이었기 때문에, 꼴찌를 계속하다 보면 대학을 졸업하기도 힘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행인지 결국 졸업정원제는 FM대로 실시되지 않았다.
조수미의 재능을 아까워하던 교수들과 조수미의 부모님은 결국 합심하여 조수미를 서울대에서 중퇴시킨 후[3] , 이탈리아 로마의 명문 음악학교인 산타 체칠리아(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음악원에 강제로 유학을 보냈다. 입학시험 때 반주자가 아파 감독관이 "피아노를 칠 수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묻자 반주를 자원해 50여 명의 노래를 반주하고 본인도 로시니의 <La promessa>를 부르고 합격점을 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월간 객석 2014년 7월호 참조 조수미의 어머니는 이 때를 회고하기를, K가 인물도 집안 배경도 흠 잡을 데 없는 괜찮은 인물이었는데, K와 열애하면서 조수미가 음악을 놓았다는 것에 K와의 결혼을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후 몇 달 되지 않아 조수미는 편지를 통해 K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았는데, 주변을 통해 알아보니 조수미의 같은 과 단짝친구가 K와 눈이 맞았다는 것이었다. K는 바람둥이였다. 그 뒤 다시는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이 악물고 독하게 매달려 5년 과정을 2년 만에 마치고 졸업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조수미의 옛 연인이었던 K는 1987년 결혼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MBA를 받고 1996년에 귀국하여 미국의 모 컨설팅 회사의 서울 지점 파트너로 재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조수미가 외국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높아진 성악가가 된 후에 조수미의 공연장에 말 없이 관람하고 가기도 했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이 장난으로 K와 전화연결을 마련했다고 하니 조수미는 정말로 당황스러움 반 설렘 반으로 가득 찬 반응을 보였다. 이에 강호동이 놀려대자 '내가 왜 결혼을 지금까지 안 하고 있었겠냐' 며 진담 반 농담 반의 의미심장한 멘트로 받아치기까지 했다.
아직 미혼이기도 하고 바쁜 스케줄 탓에 제대로 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조수미의 생활 환경상, 자신의 첫사랑인 K에 대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완전히 정리하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실제로 조수미는 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외국인과도 충분히 연애가 가능한 환경에 있지만, 개인적으로 배우자 상대는 반드시 한국인을 원한다고 한다. 이는 "K와의 첫사랑의 추억이 너무나 강렬해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다"고 조수미가 언급하기도 했다.
3. 근황
그녀는 지병인 자궁근종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 사실은 그녀의 임신설 루머가 퍼지자 본인이 직접 일축하며 이야기한 부분이며 만약 미래에 결혼을 하게 된다면 아이를 입양하고 싶다고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4] 또한 전 세계를 정신 없이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적 생활 패턴상 정상적인 결혼생활은 어렵다는 것을 조수미 본인도 알고 있는지, 결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는 듯하다. 1년 365일 중에 330일을 집을 떠나 공연하며, 개인 시간은 당연히 거의 없고, 2~3년 뒤 공연 스케줄까지 다 짜여져 있다고 한다. 모든 유명한 연주자들의 삶이긴 하다. 자서전에 나온 내용에 의하면, 애견인으로서 커다란 셰퍼드를 공연 중에도 동반하기도 했다고 한다.
앙드레 김과의 관계도 유명한데, 조수미의 회고에 따르면 앙드레 김이 처음 조수미의 공연을 관람한 뒤 당시 조수미의 드레스를 보고 "한국을 대표하는 성악가가 입는 것인데 너무 초라하다"고 한탄하면서, 조수미의 드레스를 직접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약 20년 동안 200벌 이상의 드레스를 제작해 주었다고 한다.
로마에서 살았던 덕에 AS 로마와 프란체스코 토티의 팬이며 유로 2012 때 트위터에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했다.[5]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당시,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봉헌된 미사에 메인 게스트로 초청되어, 식전 행사에서 아베 마리아와 넬라 판타지아를, 교황 집전 미사 중에 성체 성가를 불렀다.[6]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친서훈장과 기사작위를 받았다. #, #
2020 이스키아 글로벌 필름 앤드 뮤직 페스티벌(Ischia Global Film and Music Festival)에서 음악 부문 아트 어워드를 수상했다. #
4. 음악 활동과 인지도
데뷔 전에는 카를로 베르곤지와 엘리자베스 슈바르츠코프 등의 가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경력이 있다. 또한 이 무렵 7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1986년 이탈리아 오페라 리골레토의 질다역으로 데뷔한 후, 각국 극장에서 공연하였다. 1991년에는 필립스에서 로시니의 《이탈리아의 터키인》을 녹음했고, 1993년에는 데카에서 《그림자 없는 여인》[7] 을 녹음했는데, 이 두 음반은 오페라 부문 최고 음반으로 선정되었다. 다만, 이 매의 소리 역은 단역이므로 조수미를 기대하고 사지 말 것.
일반인들에게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역을 맡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조수미가 참여한 마술피리는 3년 안에 3개가 서로 다른 메이저 회사에서 녹음되어 나왔고, 게오르크 솔티 경이 이미 조수미와 계약 중이던 에라토 사를 설득하여 데카 레이블의 본인 지휘 음반에 참여시켰을 정도였다. 다만 조수미의 '밤의 여왕'은 너무 기교적으로 예쁘게만 불러서 극의 표현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고, 'Opera Love' 같은 아리아집으로 들어야만 비로소 괜찮다는 평도 일부 존재한다. 하지만 이래저래 듣다보면 비로소 조수미만큼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극의 표현까지 생각하면 유명한 크리스티나 도이테콤과 디아나 담라우가 버티고 있다. 조수미만큼 잘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가창력에 한정해서''' 라는 것을 염두해 둘 것.
MBC 허준의 '불인별곡(不忍別曲)', KBS의 명성황후의 주제가 '나 가거든' 등의 드라마 OST에 참여했고, 2002년 한일 월드컵 응원가로 유명한 Champions 등이 대표곡이다.
인지도는 영미권보다는 유럽 쪽에서 더 높은 편이다.[8] 전성기 시절 그녀의 유럽 내 인기도와 영향력은 굉장했다.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황제라 일컫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도 조수미의 목소리를 높게 평가하고 칭찬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며, 여러 거장들이 조수미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조수미의 목소리는 신이 주신 최상의 선물이다. 이는 조수미 자신에게뿐 아니라 인류의 자산이다. | '''카라얀'''
금세기 최고의 콜로라투라 조수미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다. | '''주빈 메타'''
조수미는 내가 만난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 중 최고의 기량을 가진 소프라노다. | '''게오르그 솔티'''
정통 벨칸토 창법의 소프라노인 조수미의 음악 세계에는 영혼이 깃들여 있다. | '''로린 마젤'''
오페라 <가면무도회>를 통해 만난 오스카 중 조수미가 최고 역량의 소프라노라는 데 나는 주저하지 않는다. | '''플라시도 도밍고'''
5. 주요 배역
90년대 초중반에 조수미가 맡았던 배역을 보면 리릭 콜로라투라 음역이라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보다는 로시니 오페라 히로인이 훨씬 어울린다는 평이 상당수다. 왜냐하면 밤의 여왕은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라도 악녀 역할이라 드라마티코를 겸비한 소프라노가 맡아야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터키인》 중 피오릴라는 마리아 칼라스와 체칠리아 바르톨리 못지 않게 또 다른 매력이 들어있는 '최고의 피오릴라' 라는 호평을 많이 받았다.
조수미가 데뷔부터 리골레토의 질다 역으로 주연으로 시작했지만, 《가면 무도회》의 오스카도 찬사를 받았다.[9] 오스카 역은 당시 신예였던 조수미를 카라얀이 점찍어서 캐스팅한 것인데, 활달한 성격을 가진 시동 캐릭터에 잘 맞아서 이 역으로 몇 번 무대에 오르기도 했고, 카라얀과 같이 가면 무도회 전곡반을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하기도 했다. 다만 이 전곡반은 혹평이 상당하다. 레나토 역의 레오 누치가 매너리즘이 가득한 노래를 들려주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지휘도 전성기 때와는 달리 템포를 늘어지게 설정한 바람에 음악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다는 비평이 상당수. 그나마 구스타보 3세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오스카 역의 조수미만 건졌다고 한다.
리골레토의 젤다는 그녀가 무려 15년동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한 역할이다. 또한 호프만 이야기의 올림피아와 가면무도회의 오스카 또한 뉴욕 무대에서 큰 찬사를 받았다.
메트에서 연기한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는 메트 역사상 최고의 루치아라는 평을 듣기도 하였다. 조수미는 루치아를 메트에서 7번 연기하였다.
세비야의 이발사의 여주인공 로시나 또한 메트에서 호평받은 역할이자.
영국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는 1993년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을 15번의 공연중 무려 10회를 공연하였다.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에서는 2000년에 람메르 무어의 루치아의 타이틀롤을 맡았다.
카라얀이 지휘할 예정이었던 잘츠브루크 페스티벌의 가면 무도회 공연[10] 에서도 캐스팅되었는데 카라얀이 급서한 바람에 계획이 무산될 뻔하다가 게오르그 솔티가 대신 지휘한 덕에 카라얀이 구성한 프로젝트는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1990년 가면무도회 잘츠브루크 페스티벌 실황이며 TDK에서 DVD로 출시되었다. 파바로티의 1989년 메트 실황과 도밍고의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극장 실황과 더불어 완성도가 높은 영상물로 꼽히고 있다.
6. 가수로서의 가창
조수미의 가창력은 이탈리아 유학 시절 2년에 7개의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한 경력과(1위끼리의 왕중왕전인 베로나 콩쿠르까지 우승), 카라얀에게 "신이 내린 목소리",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류의 자산" 이라는 극찬으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고 보여진다.
조수미의 음색과 창법은 서정적이면서도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화려하며 '''테크닉이 완벽에 가까운데''', 이는 오페라에 익숙하지 않은 청중에게도 호응을 일으키며 아리아가 줄 수 있는 감동을 높은 수준으로 구현해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조수미의 트레이드마크는 다른 소리가 섞이지 않은[11] 완전한 두성의 활용과 완벽한 절대음감[12] , 그리고 미분음 플랫마저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시창이다.
다양한 콜로라투라 기교를 완벽에 가깝게 습득하였으며, 특히 C6 이상의 하이 소프라노 음을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로 내는 기교가 매우 유명하다. 당연하지만 고음을 낼수록 목소리는 커지기 때문에 파사지오 위의 고음을 피아니시모로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힘이 딸려서 작게 내네'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데, 하이 소프라노 음을 여리게 내는 것은 강하게 내는 것보다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우며, 완벽한 호흡과 성대 콘트롤을 가졌다는 것을 과시하는 것이다. 휘슬 레지스터와는 메커니즘이 다르며, 실제로 공연에서 들으면 두성의 울림을 유지한 채 음량만 줄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오묘하고 신비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라벨의 곡은 고난도의 멜로디에 프랑스어로 발음을 정확히 해주어야 하는 난곡 중의 하나입니다. 다들 발음문제 때문에 애먹는 곡인데 저는 자신 있게 노래했지요. 첫 연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마젤은 노래가 끝나자 ‘수미는 거의 절대음감을 갖고 있구먼’이라고 말하더군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제가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마에스트로, 저는 거의가 아니라 완벽한 절대음감을 갖고 있습니다.’ 로린 마젤은 당돌한 제 말에 화들짝 놀라며 잠시 놀란 토끼 눈을 뜨더니 ‘브라보’라고 외치는 거예요.
하지만 나쁜 점도 있어요. 음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그 음의 터치가 낮거나 높으면 노래하기가 어렵습니다. 정확한 소리밖에 낼 수가 없기 때문이죠. 저는 그래서 대학 1학년 시창 시간 때마다 애를 먹었어요. 특히 애를 먹었던 것은 이런 경우입니다. 다장조(C major)에서 C음을 ‘도’로 부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장조(G major)에서 G를 ‘도’로 부르고, 사장조 멜로디를 다장조 계음으로 부르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할 수 없었던 겁니다. 왜냐하면 제 귀에는 솔은 솔로 들릴 뿐 도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죠. 그런데 솔을 도로 불러야 하니 계음이 온통 뒤죽박죽 돼버리고 마는 거죠.
▲ 2014년 신년 콘서트. '''1시간 28분 28초경'''에서 콜로라투라 음인 '''D6'''(4옥레!)을 '''피아니시모(매우 여리게)에서 크레셴도 없이 순간적으로 포르티시모(매우 세게)로 바꾸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본인 스스로는 이 기교를 '''메가폰'''이라고 부른다.
특히 리릭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로서 두성의 활용은 절대적이면서도 묘하게 교과서적이지는 않은데 C4(2옥 도)에서 C6(4옥도)에 이르는 소프라노의 테시투라(음역)에서 완벽하게 두성을 내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는 일정 음역대에서 성구 전환(파사지오)라는 것을 겪게 되는데 소프라노의 경우 그 파사지오는 C4(2옥도)에서 C5(3옥도)에 해당한다. 이 구간은 흉성과 두성이 교차되는 부분으로 만일 두성을 억지로 유지하면서 이 음역대를 내면 소위 '할머니 소리' 라고 하는 음색이 나게 된다. 이것은 인간 성대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이기 때문에 위대한 소프라노들도 마찬가지로 피할 수 없는 현상인데 조수미의 테시투라는 특이하게도 C4(2옥도) 위로 성구 변환 없이 쭉 두성으로 이어진다.
쉽게 말해 초고음과 초저음을 제외하면 음색이 변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현상은 연습한다고 되는 게 아니며, 그냥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성악은 모든 음악 장르를 통틀어 가장 재능이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승승장구에서 조수미는 자신은 '목젖이 없다'고 말한 바 있는데, (물론 울대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고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성악 발성의 핵심이 울대(목젖)에 긴장이 가지 않게 위치를 유지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쪽을 두성으로만 이뤄진 테시투라의 이유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초고음역대의 콜로라투라 기교를 완벽한 음정으로 클린하는 모습은 조수미의 상징이 되었으며 전성기에는 그야말로 단 하나의 음정 실수도 내지 않는 모습으로 유명했다. 플랫과 미분음에 민감한 지휘자들의 사랑을 받은 데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 플랫된 음정을 들으면 괴로워하는 양반들이니... 그 유명한 마술피리의 '밤의 여왕의 두 번째 아리아' 의 경우 조수미는 다른 소프라노들보다 훨씬 빠른, 알레그로에 가까운 속도로 곡을 녹음했으며(당연하지만 빠를수록 어렵다) 단 하나의 음정 미스도 내지 않았다. 다만 비판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완벽한 테크닉은 오히려 단점이 되기도 했다.
80년대에는 맑고 서정적인 젊은 목소리의 창법이었다면 90년대 이후로는 기교도 절정에 이르렀다고 보이며, 근래 나이가 들어서도 보다 풍부해진 성량과 노련미로 오페라 'Norma' 의 'Casta Diva' 같은 본인의 본래 음역과는 조금 차이가 있는 곡에 대해서도 능숙하게 접근하고 있다.
동양인으로서 세계 5대 오페라 극장에 프리마돈나로 무대에 선 최초의 인물이며[13] 1993년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에서 루치아 역으로 메트로폴리탄에서 공연시 "메트 사상 최고의 루치아" 라는 찬사를 메트로부터 받은 바 있다. 프랑스에 데뷔시 "요정도 조수미의 노래에 귀 기울인다" 라는 찬사를 받았으며 이탈리아의 밀라노 신문은 "동양에서 온 소프라노가 서양을 가르친다"며 오페라의 혁명이라고 극찬을 한 경우도 있다.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조차 실제 부르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판단하여 악보를 수정한 '낙소스의 아리아드네' 의 체르비네타 역을 처음으로 원본 그대로 공연하고 레코딩으로도 남겼다.[14] 이에 대해 메트오페라 뉴스는 "조수미의 노래는 비평을 넘어섰다" 라고 표현했다.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안젤라 게오르규, 르네 플레밍과 함께 세계 3대 소프라노로 초청되어 개막식 행사에서 공연하였다.
2006년 국내 성악가 중 처음으로 바로크 음악 앨범을 출반, 2010년에 독일 가곡집을 출반하였고 2013년 DECCA 레이블로 나온 'Norma' 앨범에서는 세계적인 메조 소프라노 체칠리아 바르톨리와 함께 원래의 메조와 소프라노의 역할을 바꿔 녹음, 취입할 정도로 영역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다. 오페라 뿐만이 아니라 크로스오버로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성악가로서 첫 크로스오버 앨범 'Only Love' 는 비대중가요 앨범으로는 전무후무한 100만장의 판매고를 달성하였고 크로스오버와 바로크, 가곡까지 다양한 영역을 추구하는 도전파이기도 하다.
7. 비판
7.1. 테크닉에만 충실한 가창
조수미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꽤 있다. '''아름답게 표현하는 것에만 지나치게 충실'''하기 때문에 오페라 아리아는 그냥 아리아집에서만 들으면 충분히 아름답고 음정도 정확하며 훌륭한 가창이지만,[15] 극의 표현에서는 조금 약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솔티가 2번째로 녹음한 마술피리 전곡반에서의 평가는 가창은 충분히 훌륭한 콜로라투라라고 할 수 있지만. 크리스티나 도이테콤에 비하면 극의 표현과 분노심이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16] 디아나 담라우와도 연기력에서 비교되기도 한다. 연기력은 디아나 담라우가 우세이지만, 기교와 음정은 조수미가 우세라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편.
이와는 별개로 (콜로라투라 소프라노니까 당연하지만) C5 이하의 중저음에서 저음에는 매우 약하다. 팝, 크로스오버를 부를 때 팝의 창법을 종종 내기도 하는데, 음이 처진다거나 벨팅이 필요한 부분에서 내지 못하는 등의 실수가 많다. '천하의 조수미도 이 노래는 못하네' 라는 댓글이 달릴 정도이다.
7.2. 크로스오버/팝페라
2000년대 이후에는 클래식보다는 크로스 오버와 대중의 인기에만 집착한다는 비판도 있다. 조수미는 오페라 극에서 배역을 맡기보다는 본인의 이름을 내건 콘서트를 더 선호하여 주로 콘서트에만 치중하고 있으며, 이는 오페라의 발전과 확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조수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조수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들 모두가 거의 인정하는 부분이다.
조수미 팬들 중 일부는 "조수미가 크로스 오버나 대중가요가 아닌 오페라나 정통 클래식을 계속 맡았으면 목소리도 더 풍요로워지고 레퍼토리도 더 폭넓게 구사할 수 있는 더 완벽한 콜로라투라 가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한다. 그러나 본인이 "다른 사람이 되어 맡은 노래만 해야 하는 오페라 배역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연주가 더 좋다"고 하니, 이는 정통 오페라 팬으로서는 아쉽겠지만 이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조수미를 더 접하기 쉬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마리아 스투아르다, 연대의 딸,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청교도의 엘비라 역을 조앤 서덜랜드의 남편 리처드 보닝이 조수미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배역이라고 권유했다니 더욱 안타까운 점이다. 콘서트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전성기 때보다는 못하다고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만약 조수미가 오페라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크로스오버를 일정한 나이가 되었을 때까지 미루거나 또는 서로 골고루 병행했다면 "딴 길로 샜다", "대중의 인기와 상업성에만 치중한 것으로 변질되어 버린 가수" 라는 비판을 듣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오페라 팬의 입장에서 나온 비판이다. 오페라 무대 대신 크로스오버나 팝페라로 기울어진 조수미가 안타깝고 잘못되었다고 말할 때의 기본 전제는 '오페라는 크로스오버보다 우월한 예술 장르이고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이 대중적인 인기와 상업성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칫 '오페라가 절대적인 예술성의 기준이며 다른 장르는 오페라보다 열등한 것' 이라는 식의 위험한 아집으로 읽힐 수도 있다.
오페라 팬으로서 조수미가 오페라 가수로서의 경력 대신 크로스오버를 택한 것이 아쉽다고 말할 수는 있겠지만, 크로스오버를 시도한 조수미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조수미는 오페라 가수로서 음악적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비판 대신, 팝을 이해하는 가수로서 음악적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대다수의 성악가들이 조수미와 같이 크로스오버 쪽을 시도할 의도도, 또 크로스오버로서 성공할지 의문시되기 때문에 이는 가수로서의 역량에 달린 문제이지 비판의 대상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 등의 테너도 존 덴버와의 'Perhaps love' 나 모린 맥거번과의 'A love until the end of time' 같은 히트곡들이 있으니 말이다.
또한 2006년 '바로크로의 여행' 이나 2010년 '독일 가곡집', 2013년 데카 레이블의 'Norma' 같은 앨범에서 보듯이 여전히 정통 클래식에서 녹슬지 않는 기량을 보여주고 있으며, 조수미는 음악적 역량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확장시켜나가는 노력파, 프론티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토록 다양한 음악적 볼륨을 가진 성악가는 조수미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성악 독창회는 관객이 거의 없는 수준이고 성악가들이 설 무대는 전무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모 방송국에서 크로스오버를 내세운 오디션 프로그램이 3기까지 진행되고 있다. 그 프로그램에 엄청난 수의 클래식 전공자들이 몰려들어 무대를 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크로스오버는 좋은 무대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악과에서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학생을 압박하고 비난하기까지 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한다. 용기를 내서 세상에 자신의 목소리를 내놓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수미의 그간 행보는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수미의 행보는 많은 성악가들에게 폭넓은 선택과 많은 무대를 가질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8. 음반과 영상물
8.1.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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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의 첫 오페라 전곡반으로 《오리 백작》 관련 음반들 중에서 헤수스 로베스 코보스가 지휘한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과 비토리오 귀이의 EMI 음반과 함께 오리의 대표적인 연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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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가 부른 도니제티, 베르디, 로시니, 마이어베어 아리아 모음집으로 《리골레토》의 '그리운 그 이름(Caro nome)', 《몽유병의 여인》 중 '아! 믿을 수 없어라(Ah! non credea mirarti)', 《세빌리아의 이발사》에 나오는 로지나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 목소리(Una voce poco fa)' 가 녹음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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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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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미 관련 영상물 중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오페라 실황물이다. 1990년 잘츠부르크 패스티벌 가면 무도회 실황으로 베르디의 원래 의도했던 스웨덴 판본 버전[17] 을 사용하고 있다. 오스카 역의 조수미는 물론 플라시도 도밍고가 구스타보 3세를, 레오 누치가 요한 앙카스트롬 백작[18] 을, 조세핀 바스토우가 아멜리아를 맡았다.
이 실황은 본문에서 언급했듯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카라얀의 가면 무도회 전곡반과 같은 캐스팅이며 이를 토대로 카라얀이 프로덕션을 계획하고 지휘까지 담당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카라얀은 1989년에 급서하게 되고 그로 인해 이 프로덕션은 해체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다행히 게오르그 솔티가 지휘봉을 잡은 덕에 카라얀이 구성한 프로덕션은 무사히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는 훈훈한(?) 에피소드가 담겨진 영상물이다.
조수미의 오스카는 카메라 앵글이 너무 근접할 땐 비주얼에선 약간 부담이 간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편이며 음악적인 면에선 이 역으로 유명했던 래리 그리스트 못지 않은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구스타보 3세 역의 도밍고 역시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에 비해 노련한 노래와 연기를 보여주며 요한 백작 역의 레오 누치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훨씬 괜찮은 노래를 들려준다.[19] 솔티 경의 지휘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두 전곡반[20] 에 비해 박력은 약간 떨어졌으나 가수진들을 잘 배려하는 편이고 아멜리아 역의 조세핀 바스토우는 좋은 연기에 비해 실망스러운 노래를 들려준다. 카라얀이 남긴 가면 무도회 전곡반은 카라얀의 처진 템포와 레오 누치의 매너리즘 가득찬 노래도 있지만 바스토우의 실망스러운 가창 역시 혹평을 받는 데 한 몫 했다.
음악적인 면에서는 도밍고와 조수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아쉬움은 있으나 인지도에선 1975년 런던 코벤트 가든 실황물과 1989년 메트로폴리탄 영상물과 더불어 높은 축에 속하는 편이다. 이유는 윌리엄 더들리의 아름다운 무대 디자인이 압권이었고, 내용에 있어서도 설득력 있는 존 슬레신저의 연출이 내용과 잘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조수미 팬들 뿐만 아니라 이 오페라의 애호가들 또는 가면 무도회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한 번쯤 감상해도 좋은 영상물이다. 녹화된 연도에 비해 음질과 화질도 좋다.
2016년에서 벨지움 로열 오페라 리에주에서 타이틀롤 마농으로 공연한 다니엘 오베르의 [[미농 레스코]}의 실황 영상이 있다.
2012년 프랑스 파리 샤를레 극장에서 마담 마오로 공연한 존 아담스의 닉슨 인 차이나 또한 실황 영상이 있다.
9.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 개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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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9일 소향과 함께 2018 평창 동계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 서서 평창 패럴림픽 주제가 <Here as One>을 열창하기도 하였다. 기사 영상
이날에 조수미와 소향의 의상도 관심을 모았다. 조수미는 하얀색, 소향은 검은색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흑백의 조화가 아름다웠다고 평가 하였다.
이 날에 조수미도 "영하 8도의 추위도 녹인 강렬한 공연이었다"면서 자신의 공연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패럴림픽에 많은 관심을 가져 달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그녀가 패럴림픽 개회식에 선 이유는, 본인은 이미 큰 대회의 개회식에 여러 번 출연하기도 했고, 패럴림픽이 올림픽의 유명세에 가려져 큰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패럴림픽에 관심을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먼저 받았던 패럴림픽 개회식 출연 요청을 아주 흔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
10. 여담
- 파울로 소렌티노의 2015년 영화 <유스>에서 본인 역으로 출연했다. 여기서 부른 곡 'Simple Song #3'으로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는 루머가 있으나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것은 해당 곡을 작곡한 프로듀서이다. 시상식 원칙상 노래를 부른 가수가 아닌 작곡가가 후보에 오른다. 제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초청받아 참석하였고 특별공연을 제안받았지만, 클래식의 특성상 6분이 넘어가는 곡의 길이 탓에 공연용으로 짧은 편곡을 요청을 받았고, 원곡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제안을 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 자기관리 방법이 약간 독특하다.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킥복싱이나 역도 같은 과격한 운동을 즐기고, 공연 등을 앞두었을 때 마음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숙소에서 빨래하기'란다. 물을 튀기면서 빨래를 하며 노래를 부르다보면 기분이 맑아지기에 해외 공연을 하러 갈 때도 고무장갑과 빨래판을 꼭 챙기고 직접 옷을 빨아서 정리해 입는다고 한다.
- 2015년 1월 6일, 5월 12일 2번에 걸쳐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출연하여 인터뷰했다. 1월 인터뷰, 5월 인터뷰
- 한국어외에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알며 러시아어(!)도 배우고 있다.[21] 이 중 독일어와 이탈리아어는 성악 자체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익혀야 하는 언어이다. 클래식의 절대 다수가 저 두 언어로 작사/작곡하기 때문이다.
- 축구광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유로 2012 이탈리아와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이탈리아 팬임을 인증하며 응원했다.[22] 특히 로마의 왕자라고 부르던 토티의 열혈 팬이라고 한다. 하지만 발로텔리가 부진하자 자신의 SNS에 “프란델리씨, 내가 당신이라면 나는 디 나탈레를 후반에 넣겠어”라고 하면서 “발로텔리는 머리 스타일이나 바꾸러 가라”고 깔 정도로(...) 축구에 무한한 사랑을 증명했다. 그런데 우연히도 체사레 프란델리는 그 경기에서 정말로 디 나탈레를 교체투입시켰고, 디 나탈레는 그 경기에서 골까지 넣었다!
- SNS를 통해 코로나19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나왔음을 밝혔는데, 이 때 보건소 알림 문자를 받은 핸드폰이 애니콜 피처폰이었다. 트위터 사진 이에 수많은 트위터리안들이 뒤집어져서 "코로나 시대의 시대고증 오류"(...)라느니, "조수미는 애니콜을 쓰는데 내가 아이폰 12를 바랄 자격이 있는가"(...) 같은 드립을 쏟아냈는데, 조수미 본인이 팬들과 직접 멘션을 주고받으며 더욱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한편 정작 이 사진을 찍은 건 안드로이드 폰인데, 사생활용과 공적인 업무용 등으로 여러 개의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조수미처럼 사생활과 일을 반드시 분리해야 하는 유명 인사라면 흔한 일이다. 게다가 2g폰 자체의 보안성도 이유로 추정할 수 있다.[24] 조수미 본인의 답멘에 의하면, 한국에 있을 때 사용하는 핸드폰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