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암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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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암리 고분군 전경[1]
[image] '''대한민국의 사적''' '''제463호'''
'''충주 누암리 고분군'''
忠州 樓岩里 古墳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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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산41 외 일원
'''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고분군
'''면적'''
56,305㎡
'''지정연도'''
2005년 3월 25일
'''제작시기'''
6세기 중엽 이후
'''위치'''


1. 개요
2. 조사 내용
3. 바깥고리
4. 사적 제463호


1. 개요


충청북도 충주시 가금면 누암리 일대에 위치하는 신라의 고분군. 사적 제463호로 지정되어 있다. 최근에는 누암리 고분군으로 불리고 있지만, 옛날에는 루암리 고분군이라고도 표기하였으며 지금도 몇몇 표지판에는 여전히 루암리 고분군으로 되어 있다.

2. 조사 내용



누암리 고분군은 영남지방을 제외한 외부 지역에서 가장 밀집도가 높게 형성된 신라의 고분군이다. 1992년에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지표 및 발굴조사를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 누암리 고분군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고분들이 석실(石室)이라는 점은 이 고분군의 중심연대가 6세기 즈음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6~7세기를 중심으로하는 고분군이라는 점에서 충주 중원경(중원소경)과 관련이 있는 유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석실을 위시한 늦은 시기의 부장품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서 출토 신라토기의 기종은 짧아진 형태의 중 고배인 단각고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장경호류의 경우에도 부가구연장경호[2]라고 불리는 각진 아가리를 갖는 장경호가 같이 부장되는 등 아주 전형적인 6세기 이후의 토기유물군이 확인되고 있다. 더 늦은 시기의 유물로는 인화문토기도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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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세기 대의 화려한 금, 금동, 은 재질로 만든 삼엽문(三葉紋) 대금구 패용문화에서 6세기 중엽부터는 위의 도면처럼 비교적 단촐한 장식성을 갖는 소위 누암리형 대금구로의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관등제와 복식체계의 정비와 불교적 영향으로 화장 및 박장(薄葬)이 실시되기 때문에 정형화되고 간소화된 장식의 대금구가 일반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위의 도면과 같은 버클형태를 이 누암리 고분군에서 확인된 것을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소위 누암리형 대금구라고 부른다.
정형화된 누암리형 대금구가 유행을 지나면서 7세기 이후부터는 점차 황룡사형 대금구로 유행이 변화한다. 이러한 신라의 대금구의 큰 변천을 보면 원삼국시대의 곡봉형 대금구에서 출발하여 진식대금구 - 삼엽문형 대금구 - 누암리형 대금구(역심엽형 대금구) - 황룡사형 대금구(당식 대금구) 로 변화한다.

3. 바깥고리



4. 사적 제463호


신라말기에 조성된 이 고분군은 신라 진흥왕이 충주지방까지 그 영역을 확대한 후 중원소경을 설치하고자 귀척(貴戚)들을 이주시켜 한강유적을 경영하고자 하였던 사실을 증명하는 유적으로서, 누암리 일대에만 230여기의 고분이 위치하고 있다.

발굴된 26기의 고분 가운데 주류를 이루는 것은 굴식돌방무덤(橫穴式 石室墳)이고 앞트기식돌덧널무덤(橫口式 石槨墳) 2기, 소형의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 石槨墓) 3기를 제외한 나머지는 외방무덤(單室墳)임이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로는 짧은굽다리접시, 바리, 합, 항아리 등의 후기신라양식 토기류와 쇠손칼(鐵刀子), 덩이쇠(鐵鋌) 등의 철기루, 청동제띠끝장식(靑銅制帶端金具丘), 금동제귀고리 등의 장신구류, 가락바퀴(紡錘車) 등의 토제품이 있다.


[1] 출처 : 문화재청 홈페이지[2] 또는 이중구연장경호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