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유튜버)

 


  • 작가 댄 브라운의 유명 소설이며 영화화 된 작품 다빈치코드에 대해서는 다빈치코드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
2. 활동 이력
3. 유튜버 활동
4. 여담


1. 개요


'''"씨벌교황과 더불어 유저로서는 디시 구조와 성격을 바꿔놓은 유일한 투톱 본좌로 손꼽힌다.'"'''

- 네이비필드의 ''디시인사이드 영향력 순위'' 문서에 작성된 다빈치코드에 대한 평가

디시인사이드 대표이사 김유식과 더불어 막장 유저와 덕후가 공존하고 있는 작금의 디시를 창조해내고 만들어냈다 평가받는 유저이다. 씨벌교황, 싱하와 더불어 디시인사이드에서 직접 선정한 디시 3대 유저에 포함되는 유저이기도 하다.

2. 활동 이력


'''디시인사이드 3대 유저'''중 1인으로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이사 김유식이 인정한 디시유저이며 사실상 씨벌교황이 만들어낸 막장 디시에 자연스럽게 인물갤 덕후들을 섞어낸 상징과도 같은 유저이다.
전성기에는 인물갤과 드라마갤을 대표하는 유저였고 속칭 디시에서조차 인정한 디시의 대통령이었다. 디시 국내 연예 갤러리(이하 국연갤) 시절 속칭 '''다코당'''을 이끌고 도배꾼으로 디시의 메인 서버를 폭파시킨 적이 있다. 이후에는 디시에서 소외당하던 인물갤을 키워냈으며 국내 드라마로는 처음 개별 갤러리가 개설된 부활갤의 대표유저로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스갤등 당시 주요 갤러리들의 인물갤과 드라마갤에 대한 무시와 탄압을 격한 욕설로(...) 막아내기도 했다.[1]
그는 디시 활동 시절 듣보잡에 불과했던 신인배우 김옥빈의 갤러리를 인물갤 초창기에 혼자 힘으로 개설시켜 김옥빈을 디시인사이드 내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냈다. 특히 이는 국연갤 뿐 아니라 2005년 당시 6개월간 전 디시를 뒤덮고 있던 최지연 열풍을 박살내버리고 만들어낸 결과다. 즉 혼자 힘으로 디시의 여론과 디시의 대세 연예인을 아예 뒤바꿔버린 것이다.
이후 다빈치코드는 소녀시대 갤러리(이하 소시갤)에 정착, 소시갤의 대표유저로 활동하며 소시갤이 발전하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었다. 다빈치코드를 등에 업은 소시갤원더걸스 갤러리를 누르고 갤러리 분열 직전엔 디시 수도로까지 치고 올라섰다. 그는 소시갤 활동 중 사이가 나쁘던 디시의 사장 김유식을 낚아채기 위해 와이프인 박유진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김유식을 곤경에 빠뜨렸고 이에 디시에서 사실상 격리당했지만, 이후 회원수 만 명을 기록중이던 네이버 소녀시대 안티까페를 접수한 뒤 폭파시켰고, 당시 SM과 전략적인 제휴를 맺은 디시인사이드의 대표이사 김유식은 이에 반색하며 그를 '''옹골찬 개념유저'''라 찬양하며 디시 메인에 글귀를 걸어주었는데 그것조차 그 유명한 디시와 힛갤, 디시뉴스 그리고 김유식을 엿먹이기 위한 천재적 속임수 일명 '''다빈치코드 디시 낚시 사건'''[2]으로 이어져 김유식의 어안을 벙벙하게 만들었다.
대체적으로 씨벌교황과 더불어 디시 역사를 바꿔놓은 유저로 손꼽힌다. 디시 유저 5천명의 투표 결과에서 거의 절반에 가까운 몰표로 2007년도 디시인사이드 올해의 유저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기나긴 디시 역사에 남은 디시 5대 관광 사건 중 두 개의 사건을 몰아서 일으키기도 했다. 최강급 욕설, 천재적인 낚시, 도배까지 매우 능수능란했으며 디시라는 커뮤니티 안에서 자신이 이루고자 했던 모든 것들을 이루어낸 인물이다.
하지만 다빈치코드는 현재 디시 내에 성행하는 친목질과 덕후의 막장화를 주도화한 유저라는 점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피해갈 수 없다. 실제 그는 힘없고 순수했던 인물갤 성향 유저들의 친목을 가속화시키고 그들을 막장스러운 모습으로 변질시킨 것에 가장 큰 책임을 지닌 인물이다. 2008년도 그가 디시 활동을 종료한 시점에서 그가 키워낸 소녀시대 갤러리 덕후들의 행패는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으며 특히 다빈치코드가 시작한 아프리카TV에서의 소통을 통한 방송 스타일로 인하여 디시는 혼돈의 카오스장으로 변했다. 특히 이들은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에 진출하여 온갖 패악 패륜질을 부려대며 이를 코프리카라는 문화로 변질시켰는데, 이들의 이러한 막장성은 전성기 스갤이나 막갤의 수준을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들의 컨트롤 타워였던 다빈치코드는 자신조차 이들을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다다르자 비겁하게도 작성했던 글이나 흔적들을 모조리 지우고 도주하는 길을 선택했는데, 이는 정말이지 책임감 없는 행동이었다.
말 그대로 똥을 싸질러놓고 도망가는 길을 택한 셈인데...

3. 유튜버 활동


'''채널명'''
랟프 → 다코 → 랟프
'''구독자 수'''
약 47,000명[3]
'''총 조회수'''
1,143,897회[4]
'''링크'''
채널
디시 활동을 종료한지 12년만에 유튜버로 돌아왔다. 유튜브 채널명은 '랟프'였다가 2019년 12월에 다빈치코드를 줄인 '다코'로 바꾸었다.
자신의 신원과 정체를 숨긴 가면 유튜버로 활동하고 있으며 구독자 7천명을 모은 시점에서 자신이 다빈치코드임을 밝히는 영상과 함께 인증을 하였다. 다빈치코드로서의 활동내역을 부정하고 이를 삭제하고 다닌 전례를 생각해볼때 본인은 이를 밝히고 싶어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나, 소녀시대 갤러리 활동 시절 아프리카TV 등에서 채팅 보이스 등으로 소덕후들과 소통한 내역으로 목소리가 까발려진 증거가 존재하였기에 이를 반강제적으로 밝힌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기 이전에도 데블스TV의 정부지원금 사태를 최초 제기하는 등 디시 시절 어그로나 한차원 높은 지능적인 활동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많다. 디시시절 국내 연예 갤러리에서 활동한 대표적 유저답게 연예계통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에 능숙한 유튜버로서의 모습을 보이는 것도 특징. 대체적으로 매너있는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와 더불어 골수 매니아층도 탄탄하고 타 유튜버들과의 관계도 원만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교롭게도 그가 정체를 밝힌 직후 유튜버 윾튜브카광이 과거 디시 시절 활동 내역이 드러나며 몰락했다. 상대적으로 그들보다 예전 시대에 활동한데다 활동종료시 문제시되는 내용들을 십수년전 모두 삭제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로서는 일찍이 정체를 밝힌 것이 결과적으로는 신의 한수가 되었다. 그러나 뛰어난 논리력에 비해 내용이 지나칠 정도로 장황한데다 목소리도 나긋나긋한 편이라 흡입력이 뒤떨어지는 약점이 보인다. 이에 향후 유튜버로서 성장 가능성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영상을 다 내린 상태다.
2020년 10월 25일 랟프라는 닉네임으로 다시 영상활동을 시작했다.
2020년 12월 31일 마지막영상을 올리고 더이상 소식이없다.[5]

4. 여담


  • 김유식이 실제 만나고 싶어하는 디시 유저로 손꼽았다. -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종교학과에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당초 디시내에서 처음 유명세를 떨친 것도 명문대 출신임에도 막장 짓거리를 하고 다닌다는 특이성 때문이었다. 원래는 서울대 법대를 꿈꾸었으나 실패해서 그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인터넷에 빠졌다고 한다. 서울법대 출신 디시 유저이자 악플러였고 이후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까지 되는 루트비히 오준규의 까마득한 선배인 셈. 디시 활동을 종료한 뒤 필사적으로 자기 글을 삭제하고 다닌 것도 이런 신상의 공개 위험 때문으로 판단된다.
  • 디시 시절 밝힌바에 따르면 나이는 빠른 84년생으로 추정된다. 디시에서의 활동 종료 뒤 삼성전자에 재직한 것이 밝혀졌다.
  • 디시 활동 시절 키보도를 만들어낸 격갤유저 당룡과 엮이는 일이 잦았다. - 사실상 키보도를 당룡과 함께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다.
  • 과거 자신이 디시 역사에서 거론되지 않도록 리그베다 위키등에 기재된 자신의 항목과 디시 활동내역들을 다 지우려 시도하는 반달을 저지른바 있다. 해당 항목 또한 본인의 반달이 일어나지 않도록 유의가 필요하다.

[1] 물론 다빈치코드가 스갤을 상대로 대등한 싸움을 펼쳤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스갤러들은 디시 화력의 70%에 가까운 집단이었기에 아무리 다빈치코드라 해도 스갤을 상대로 싸울 수는 없었다. 실제 그는 스갤을 두려워했고 스갤러들로부터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는 그가 디시 시절의 업적에 비해 여론상으로는 아직까지 저평가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이다.[2] 사건의 전말[3] 2019년 12월 3일 기준.[4] 2019년 1월 29일 15시 00분 기준.[5] 이로서 2020년 인터넷계를 완전히 떠났다